해 지는 쪽으로햇살동냥 하지 말라고밭둑을 따라 한줄만 심었지.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나는 꼭,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벗 그림자로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르는 까만 눈동자,속눈썹이 젖어 있네.머리통 여물 때면 어김없이또다시 고개 돌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겨나지.그늘 막대가 가리키는 쪽을나도 매일 바라본다네.해마다 나는석양으로 눈길 다진 그 녀석을종자로 삼는다네.돌아보는 놈이 되자고.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눈에 넣어도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어두운 뿌리에 눈물 같은 첫 감자알이 맺힐 때처럼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눈에 넣어도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운다목마른 낙타가낙타가시나무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자신에게 피를 바치듯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눈망울에 길이 생겨나발맘발맘,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망망 가슴, 구름에 젖는 깃들 때문에물뿌리개 꼭지처럼물뿌리개 파란 통에한가득 물을 받으며 생각한다이렇듯 묵직해져야겠다고좀 흘러넘쳐도 좋겠다고지친 꽃나무에흠뻑 물을 주며 마음먹는다시나브로 가벼워져야겠다고텅 비어도 괜찮겠다고물뿌리개 젖은 통에다시금 물을 받으며 끄덕인다물뿌리개 꼭지처럼고개 숙여 인사해야겠다고하지만 한겨울물뿌리개는 얼음 일가에 갇혔다눈길 손길 걸어 잠그고주뼛주뼛, 출렁대기만 한 까닭이다얼음덩이 웅크린 채어금니 목탁이나 두드리리라꼭지에 끼인 얼음 뼈,가장 늦게 녹으리라(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