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현대 세계의 구조
내가 보고 있고, 동시에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조명해줄 현대 세계의 구조입니다. 나는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켜있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 구조를 개괄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 슬픈 상투성이라 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이 상투성의 결과가 도출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30년 전부터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입니다.
이 승리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 과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신자유주의라고 칭했지요 ─ 의 어떤 원초적 에너지의 눈에 띄는 복귀이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자본주의의 구성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의 재등장이자 그 효율성의 재발견이라 하겠습니다. ‘신’néo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타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는 오늘날의 상황이 그만큼 ‘새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는 일종의 되찾은 에너지이자 되돌아온 확고한 능력 ─ 오늘날 공개적으로, 심지어 아무 거리낌 없이, 생산과 교환을 비롯해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 조직의 매우 특별한particulier 형태의 전반적 특징은 물론, 자신이 인류의 역사적 운명의 유일한 합리적인 길임을 표방하고 자처하는 능력 ─입니다. 이 모든 것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창안되고 형성된 후 수십 년 동안 군림했으며, 오늘날의 지배자들에 의해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으며 재발견되었습니다. ‘글로벌세계화’은 약간 다른 뜻을 지닙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분명 지구적 차원에서 구축되어 있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자신의 용해 에너지를 되찾은 자본주의일 뿐 아니라 그 에너지를 발전시켜 이제 하나의 전체적 구조로 간주되는 자본주의로, 지구 전체에 부동의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국가의 약화입니다. 이는 첫 번째 주제의 미묘한 결과이지만 별도로 언급할 만한 아주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여러분 모두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많이 비난받았던 주제는 국가의 소멸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된 국민국가의 혁명적 파괴 이후 국가의 재건이 결국 강력한 공산주의적 집단운동에 의해 국가 없는 사회, 즉 마르크스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부른 사회로 펼쳐질 것으로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매우 병적인 현상, 말하자면 국가 소멸의 자본주의적 과정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비록 오랜 역사적 시간 동안 아주 강력한 힘을 지닌 중심 국가들pôles étatiques의 존속 때문에 가려져 있었지만 이는 오늘날 근본적인 현상입니다. 사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일반적 논리는 국민국가의 존속과 직접적, 내재적 관계가 없습니다. 1960년대부터 대기업의 다국적 성격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초국적 괴물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세 번째 주제는 내가 새로운 제국적 행태라고 칭한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의 강압적 행동 양식입니다.
1.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는 오늘날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세계시장은 지구적 역사성의 절대 기준입니다. 우리는 늘 세계시장을 말합니다. 우리는 상하이 주식시장이 재채기를 하자마자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공포에 질리고, 향후 발생할 일 등을 걱정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지구적 역사성의 기준인 세계시장, 특히 그 지배성의 확장에 따른 공격성은 놀랍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에 규제를 도입했던 과거의 시도가 사방에서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규제’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의 논리와 다른 논리들 ─ 국가의 통제, 노조에 대한 양보, 산업 및 금융 집중에 대한 주저, 부분적 국유화, 몇몇 과도한 사유재산에 대한 규제, 반독점법 등 ─ 사이에서 행해진 타협을 말합니다. 또한 과거에는 모든 인구의 진료 접근성 등 그들의 사회적 권리를 확장하는 조치나, 자영업 활동의 제한 형식 등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었고, 그 모델이었던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지금 사회주의국가, 옛 사회주의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는 이런 규제의 정신을 가장 모범적으로 제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 출발은 당연히 탈국유화와 사유화였습니다. ‘사유화’라는 단어는 매우 공격적이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유화는 과거 공공재를 목적으로 한 활동을 사유재를 위한 활동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이제는 상투적인 것이 되었지만 사유화는 사실 놀랍도록 공격적인 단어입니다. 마찬가지로 ─ 이 점은 우파든 좌파든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 노동법, 사회보장제도, 교육제도…… 등 입법의 모든 영역이 끊임없이 붕괴했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객관적 승리가 파괴적, 공격적 실천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특정 생산 체계의 논리적 혹은 합리적 확장만이 아닙니다. 연속적 파괴에 대한 미미한 저항은 우려할 수준입니다. 실은 그 저항조차 지속적 퇴보입니다. 국지적, 산발적, 때로는 조합적, 업종별 저항에 지나지 않고, 저항의 전체적 비전도 부재합니다. 실제로 삼십 년 전부터 퇴보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자본주의에 최소 형태의 규제조차 금지하는 지배적 표상représentation이 점차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자본의 논리가 해방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자유주의의 족쇄가 풀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삼십 년 전부터 두 손을 놓고 자유주의의 해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 해방은 두 가지 형태를 띱니다. 세계화, 말하자면 중국의 경우처럼 전 지역에 걸친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확장이 그 하나이고, 그와 동시에 자본의 놀라운 집중력, 말하자면 자본의 특징인 변증법적 운동의 놀라운 힘이 다른 하나입니다. 자본은 확장하고, 확장하면서 집중합니다. 확장과 집중은 자본의 변화무쌍한 성격의 두 양태로, 서로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유화와 파괴가 가속화되는 동시에 집중이 계속됩니다. 최근 대형 유통업체의 두 대표주자인 프낙과 다르티의 합병은 그 엄청난 규모로 인해 모두 주목했습니다. 책과 냉장고의 합병이라니요! 합병 목적은 분명 전적으로 금전적인 것이었고, 이는 순수한 자본주의적 합병의 특징으로, 공공의 이익과는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이러한 집중은 점차 국가와 비견되는, 심지어 국가를 능가하는 다수의 권력 극점(들)pôles de puissance을 탄생시킵니다. 금융, 생산, 간혹 투기 권력의 극점은 항상 막강한 개인이 연루되어 있고, 종종 강력한 민병을 보유하고, 종종 무력으로, 항상 부패에 힘입어 사방으로 확산됩니다. 이들 극점은 국가와 대각선적diagonal, 斜線的 관계일지언정 가히 초국적입니다. 이들 막강한 초국적 권력에 비하면 국가 주권은 정말 하찮기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거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최대 기업인 토탈Total이 수년 전부터 프랑스에서 법인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기업이 ‘프랑스’ 기업일까요? 물론 본사가 파리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요……. 그러므로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국적을 표방한 권력 극점에 대해서도 장악력이 없습니다. 초국적 기업은 국가의 주권 위에서 방대한 문어발식 승리를 구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이 객관적 승리에는 주관적 승리가 따릅니다. 가능한 다른 길에 대한 사유의 완벽한 차단이 그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것은 생산 조직과 사회 운용에 대한 전체적, 체계적인 어떤 다른 방향이 당장은 사실상 부재한다는 일종의 전략적 포석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ㅡ 저항의 제안은 물론 규제의 재도입 제안조차 이미 운동 전체의 패배적 관점에 빠져 있습니다. 그 제안에는 사유 영역의 재정복이라는 전략이 없습니다. 사회적 타협과 자본의 준국가적 통제가 가능했던 옛 시절에 대한 무기력한 향수일 뿐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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