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달개비꽃
내 생애에는 늘 달빛 치마폭 풍성한 여신이 필요했다. 낳아주고 젖 먹여 키워주고 사랑해주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방황할 때 위안해주고 치유해주는 구원의 여신.
초가을 양광이 쏟아지는 날 한낮에, 어머니의 금잔디 탐스러운 봉긋한 무덤 앞에 서는 순간 나는 만삭한 여신의 불룩한 배를 떠올렸다. 장례를 치를 적에 어머니의 유골을 넣기 위하여 포클레인을 이용하여 세로로 깊이 판 구덩이는 여신의 연꽃 모양새였다.
무덤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났을 때 흰구름 한 장이 동북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이 인도의 흰 코끼리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니, 금잔디를 밟고 선 내 발 앞으로 국숫발같이 오동통한 달개비 덩굴 한 가닥이 기어나왔다. 그 덩굴의 마디마디에서 피어난 닭의 머리를 닮은 남보랏빛의 꽃 몇 송이가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몇 해 전, 토굴 마당의 잔디밭에서 달개비, 바랭이풀, 명아주풀, 비름풀, 환삼덩굴 들을 뽑아 동백나무 밑에 쌓아두었는데, 다른 풀들은 시들어 죽어갔지만 달개비풀 혼자만 살아남아서 남보랏빛의 꽃을 피워냈었다.
창조의 여신은 어쩌면 자기처럼 강인한 생명력과 다산성을 가지도록, 그녀의 줄기와 잎사귀는 오동통하게, 꽃은 선정적으로 노란 암술과 수술을 유난히 기다랗게 만들고, 꽃의 속살은 깊고 그윽하게 창조했는지 모른다.
그 오동통한 달개비 풀꽃처럼 강인하게 세상을 산 한 여인, 나의 어머니를 위하여 이 소설을 쓴다. 이 소설은 나의 껍질이자 뿌리인 ‘어머니 깊이 읽기’일 터이다.
우울증
그해,
내 집에 계시던 어머니가 동두천의 여동생에게로 가신 다음날부터 내 앞에 노인성 우울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나의 영혼과 육체의 폐경, 보호막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허전함으로 인한 정서적 불안과 절대 고독이었다. 그 정서적 불안과 절대 고독은, 내가 그것에 빠져들었다고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쉬 헤어나올 길이 없었다. 그것은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아래로만 빠져들어가는 늪의 수렁처럼 나를 슬프게 하고 절망하게 했다.
어머니가 쓰시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음음한 찬 기운만 담겨 있는 텅 빈 공간 속에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거기 서 있으면 가슴 깊은 곳 어디인가가 이명耳鳴 같은 귀뚜라미 소리를 내며 아렸고, 흐름을 멈추어버린 시간처럼 의식이 막막해졌다. 내 영육 어딘가에 숨어 있던 알 수 없는 뜨거운 울음이 으스스한 전율과 함께 목구멍과 콧구멍과 눈시울로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닷가 산책을 하거나 서재에 앉아 책을 읽으면, 마치 외풍이 심한 방에서, 찬바람을 막아주는 두꺼운 겉옷과 내의를 벗고 얇은 홑옷만 걸치고 있는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 춥고 허전했다.
창밖은 검은 구름 덮인 음음한 세상이었다. 그 세상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처럼 내려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마른 정원수 가지에 솜사탕 같은 하얀 꽃송이들이 피었다. 고뿔로 인해 목과 가슴이 아프고 답답한데 아프다고 어리광할 사람이 없어졌다. 백 살이 내일모레인 어머니가 칠십대 중반에 들어선 나를 두고 동두천에 사는 당신의 막내딸에게로 가셨다는 사실이 어지러운 꿈만 같았다.
아픈 무릎으로 인해 운신 불편한 늙은 며느리가 차려준 밥상을 앞에 놓고, 숟가락으로 방바닥을 쳐대면서 당신의 돈 훔쳐갔다고, 아들인 나까지 싸잡아 꾸짖는 지청구를 연설하듯 쏟아내곤 하는, 전혀 딴 사람같이 변해버린 어머니.
그 어머니가 택시를 타고 천 몇백 리 저쪽으로 가신 이후 나는 고아가 되었다. 오후 내내 솜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은 채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으슬으슬 추워지는 우울한 늙은 넋을 달래려고.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해와 달
“까마아득한 옛날 옛적, 그 시절에는 하늘에 해도 없고 달도 없고 별만 떠 있어서 온 세상이 온통 어슬어슬하고 어두컴컴했더란다. 그때, 남매를 키우고 사는 한 어메가 있었더란다. 그 어메가 아들딸을 낳기는 한없이 많이 낳았는데, 하나씩 하나씩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하늘의 별이 되어버리고 오직, 오빠하고 누이, 남매만 살아남았지.
그 어메는 남매에게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장차 하늘 높이 뜬 커다란 광명체가 되어 세상을 환하게 밝히게 될 거라고 늘 가르쳤더란다. 남매는 어메의 말씀을 따라 착하게 살면서 부지런히 땔나무를 하고, 틈틈이 글공부도 했더란다.
어느 날, 몸 늘씬하고 얼굴이 예쁘고 착한 어메가 나무숲 칙칙하고 하늘 닿게 높은 열두 고개를 넘어, 먼 타지로 가서 길쌈을 해주고, 떡 열 개를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앞에 음흉한 호랑이가 나타났구나.
첫 고개를 넘는데 호랑이가 푸른 눈을 부릅뜬 채 앞을 가로막고, ‘떡 한 개만 주면 안 잡아먹을게’, 그래서 그 어메는 떡 한 개를 주고 모면하고, 다음 고개에 올랐을 때 호랑이가 다시 떡 한 개만 주면 안 잡아먹을게, 그리하여 떡 한 개를 더 주고 모면했더란다. 그런데 셋째 고개, 넷째 고개, 다섯째 고개, 여섯째 고개, 일곱째 고개, 여덟째 고개, 아홉째 고개, 열째 고개를 넘는 동안 떡을 한 개씩 빼앗기고 난께 어메는 빈털터리가 되었단다.
어메가 열한째 고개에 올랐을 때, 호랑이가 ‘젖통 한 개만 떼주면 안 잡아먹을게’, 그래서 어메는 젖통 한 개를 떼주고 모면하고, 열두째 고개에 올랐을 때 남은 젖통 떼주면 안 잡아먹을게, 그래서 어메는 집에 있는 남매에게 갈 욕심으로 남은 젖통을 마저 떼주었단다. 그렇지만 호랑이는 약속을 어기고 불쌍한 어메를 잡아먹은 다음 그 어메의 옷을 입고, 어린 남매가 있는 집으로 가서 어메 행세를 하며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했단다.
어메가 아니고 호랑이인 것을 알아차린 남매는 집밖으로 달아나다 개울가에 있는 하늘 닿게 키 큰 미루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숨었단다. 그런데, 호랑이가 남매를 잡아먹으려고 그 미루나무를 기어올라왔지야. 남매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슬픈 목소리로 한울님과 돌아가신 어메에게 살려달라고 빌었구나.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어메의 혼령은 하늘로 올라가자마자, 마침 상처하고 홀아비가 되어 있는 한울님의 새 아내가 되었던가보더라. 한울님은 새 아내가 된 그 어메에게 자기를 닮은 예쁜 별을 일 년에 한 개씩 낳아주라고 청했지…… 어메는 한울님에게 그 청대로 따르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지상에 남겨두고 온 남매가 걱정되어서 눈물을 흘리며 계속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구나. 그러다가 미루나무 꼭대기에 올라앉아 한울님에게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자기 아들딸을 발견했구나.
어메는 한울님에게 미루나무에 올라앉은 남매를 살려달라고 애원했구나. 한울님은 재빨리 남매에게 튼튼한 동아줄을 내려보냈고, 남매는 그것을 잡고 하늘로 올라갔단다. 호랑이는 남매를 따라잡으려고, 그들이 하던 것처럼 슬픈 목소리로 한울님께 살려달라고 빌었지야.
호랑이의 음흉한 속셈을 훤히 아는 한울님은 중간에 썩은 부분이 있는 동아줄을 내려보냈구나. 그것을 알 리 없는 호랑이는 음흉한 웃음을 히히 하고 웃으며, 그 동아줄을 타고 남매를 쫓아 높이높이 올라갔구나. 그랬는데, 중간의 썩은 부분이 갑자기 끊어지는 바람에 호랑이는 으악 하고 소리치며 땅으로 떨어졌단다. 하필 똥구멍이 잘라낸 수숫대의 날카로운 끝에 찔려 죽었단다. 그래서 지금도 수숫대 밑동을 잘라내보면 호랑이의 피가 묻어 있어 새빨갛단다.
한울님은 하늘로 올라온 착하고 씩씩한 오빠를 해로 만들고, 얼굴이 하얗고 예쁜 누이는 달로 만들었단다. 그래서 이 세상은 지금 이렇게 밤이고 낮이고 다 광명하게 되었단다. 너희들도 그 남매처럼 씨씩하고 착하게 살아야 장차 세상을 환히 밝히는 해와 달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밥
칠십대 중반인 우리 부부로서는 약간의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 데 한계가 있었다. 늙은 내가 운신이 불편한 어머니를 업어다 화장실의 변기에 앉혀드리고, 다시 방으로 업어다드리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나는 막내 여동생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고 전화를 했다. 여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보다 이십 년이 젊었다. 여동생은 왜전부터 자기가 어머니를 모셔 가겠으니 허락해달라고 졸라왔던 것이다.
막내 여동생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겨울에 어머니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나는 암황색 점퍼의 지퍼를 내리고 그 속에 귀엽고 예쁜 인형 같은 아기를 담은 다음 지퍼를 올리고 두 팔을 휘저으며 캥거루처럼 겅중겅중 마을을 돌면서 아기 자랑을 하곤 했다.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던 초등학생 막내 여동생을 다른 두 동생과 함께 우리 부부가 광주에서 딸처럼 키우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보냈는데, 성년이 된 그 여동생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를 잠시라도 모셔보지 못하면 평생 한이 될 것이라고 나와 제 올케에게 자꾸 통사정하였었다.
살림살이가 더 넉넉한 내가 어머니를 모셔야지, 가난한데다 맞벌이를 하는 처지인 네가 어떻게 모신단 말이냐, 하고 내내 반대를 해왔었는데, 그것은 사실상 하나의 핑계였다.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은 세상을 다 가진다는 것이고, 어머니를 누군가에게 넘겨드린다는 것은 그 세상을 모두 넘겨준다는 것이다 싶었다. 어머니는 내 영혼의 보호막인 껍질이고 뿌리였다. 어머니는 늘 내 생명력과 용기와 지혜의 원천이고 훈훈한 여신 같은 위안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체질을 닮았다. 내가 시름시름 앓을 때면, 백 세 가까이 사시는 어머니를 닮아 나도 장수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픔을 견디곤 했다. 내가 평생 써온 소설이나 시, 어린 동생들에게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은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것이고,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힘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생명력 그 자체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