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 알파고에게 없는 것
그것이 나에게 있다
슬픔 그리고 마음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뉘우친다
내 슬픔은 얼마나 슬픔인가
내 마음은
얼마나 몹쓸 마음 아닌가
등불을 껐다
만년
몇번쯤은 천년의 성벽이 무너진 듯 극명할 것
이렇게
오끼나와로 비바람 치는 날에는
이렇게
사무치게
못 사무치게 비바람 치는 날에는
그냥 팔다리 늘어뜨려
느런히 느런히 누워버린 내가 밉다
이렇게
개마고원으로 눈보라 치는 날에는
이렇게
아프게
아픈 줄도 모르게 눈보라 치는 날에는
심사숙고라든가
삼매라든가
그런 갖가지 핑계로
한나절이나 반나절 내내 주저앉은 내가 아주 밉다
나 대신
누가 책을 던지는가
쨍그랑
누가 술잔을 던지는가
나 대신
누가 누대의 권력을 빈 잔으로 내던지는가
늦었다
벼랑으로 솟구쳐
저놈의 비바람 속에 서야겠다
저놈의 눈보라 속 두 다리 부들부들 떨리는 썩은 분노로
기어이 기어이 달려가야겠다
남은 세상
이렇게 비바람 쳐
이렇게 눈보라 쳐
어쩌자고 다 뚝 그친 밤
히말라야 상공 팔천개 별빛의 무지몽매로
눈 감아야겠다
그뒤에야 미풍이거나 나비의 요절이거나 말거나
첫 대면
아직껏
뒷산자락 으스스할 때
앞산자락 빈 밭머리로
올해의 뱀 처음으로 납시었다
내가 흠칠
뱀도 흠칠
똬리 튼 것 풀어서 부랴사랴 어디로 가버린다
한 자락 바람 도로 가버린다
어디 이뿐이더냐
뜨락의 작은 못 기슭 뒤늦은 개구리
내 인기척에 오싹
저쪽으로 뛰어가버린다
종일 나는 세상의 타인이었다 서글펐다
그 시절
전선은 물속 해파리로 형세가 바뀌어갔다
북위 38도 이남 대부분을 차지하다가
그 이북의 대부분을 차지하다가
다시 언 땅
그 삼팔선 이남의 상당 부분을
한동안 차지하다가
분단 본연의 삼팔선 부근으로 돌아가
피범벅 무승부의 초토였다
북위 38도 이남의 후방
전선 같은 후방
휴학
개학을 거듭하다가
학도병
소년병으로 죽어간 뒤
6년제 중학교가
3년제 중학교
3년제 고등학교로 나누어졌다
나누어지기 전
중학교 4학년인 그
아무런 요령도 행운도 없이
전선과 다를 바 없는 후방
피골짝
오밤중 뼈골짝 거기서
재수 없는 그믐달 한조각같이 살아남았다
그 우연의 목숨 두서넛 속
고등학교 1학년 학생 노릇 따위 그만두었다
모가지 없이
무슨 꿈도 없이 하루 한사발 반사발로
삼십리 길 갔다 밤마다 더 추웠다
산도 냇물도 몇천년의 묵은 뜻 같은 것도 다 잃어버렸다
그냥 폐허였다
거기서 무엇을 시작하기 따위
밤의 램프
아늑자늑 밝혔다가 끄기 따위
행여
소경의 아침햇살 같은 혼령맞이 따위
다 부질없이
내일은 와도 그만 오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오다가다
술이 걸리면 흙탕으로 취해버렸다
보살이
부처이기를 그만두고
중생 쪽으로 내려가는 그런 허황한 뜻 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이
소위 무명無明 그것 하나로 떠돌았다
일천칠백 공안公案의 하나 또 하나
그것도 끝내 개 짖는 마을 앞 둠벙에 던져버렸다
구름도 믿지 않았다
구름 뒤
깊은 푸른 하늘도 믿지 않았다
중력도 허구라고
진리도
진리인 적 없다고
멍청한 안개였다
안개 대신
더 멍청한 는개였다
방고래 속 죽은 개는 혼자 식었다 익었다 했다
그는 또 누구네 처마 밑
앓는 늑골 위에
구운 돌 얹고 밤을 보냈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통증 속에도 번뇌망상이어서
진공 허공 속 깃털 하나
더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들릴락 말락 먼 울음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허무가 와 있었다
허무에게
먼 항구로 가는 지친 밤 완행열차에게
한푼 줍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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