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반가사유상
멀리서 보니 그것은 금빛이었다
골짜기 아래 내려가보니
조릿대 숲 사이에서
웬 금동 불상이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고 있었다
어느 절집에서 그냥 내다 버린 것 같았다
금칠은 죄다 벗겨지고
코와 입은 깨져
그 쾌변의 표정을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줄기 희미한 미소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표정의 그것이
반가사유보다 더 오래된 자세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골짜기를 벗어나 돌아보니 다시 그것은 금빛이었다
안부
그대여, 내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멀리 나를 찾아온대도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
피는 벌써 칼을 버리고
어두운 골목으로 달아나버리고 없다
그대여, 내 그토록 오래 변치 않을 불후를 사랑했느니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 아래
붉은 저녁이 오누나
장미를 사랑한 당나귀*가
등에 한 짐 장미를 지고 지나가누나
*사석원의 그림 「꽃과 당나귀」.
분홍 나막신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여우털 목도리
분명 여자가 남자를 떠민 것 같았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는 선로로,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터져 나오는 울음 사이로 여자는
남자가 발을 헛디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본 것일까?
하기사 나는 사랑이나 탐욕 따위를
운명 앞에서 한 번도 떠밀어본 적 없으니,
여자는 불꽃 같은 여우털로 만든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얼굴은 희고 손톱은 길었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죄 많은 여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뜨거운 불을 목에 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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