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낭만주의
매혹
호텔은 말라가*에서 동쪽으로 반시간 거리에 있는, 나지막이 노출된 암반 위에 서 있다. 가족을 대상으로 지어졌고, 가족의 일원으로 있어야만 하는 공교로운 과제를 안겨주기도 하는 곳이다. 특히 식사 시간에. 열다섯 살의 라비 칸은 아버지, 새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다. 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음울하고 대화는 이미 실종되었다. 라비의 어머니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호텔 측은 매일 수영장이 굽어보이는 테라스에 뷔페를 차려놓는다. 이따금 새어머니는 파에야**나 남쪽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에 대해 한마디 한다. 새어머니는 글로체스터 출신에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스페인 남부의 항구도시.
**스페인 요리의 일종.
결혼의 시작은 청혼이 아니고, 심지어 첫 만남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이 움틀 때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맨 처음 영혼의 짝을 꿈꿀 때다.
라비는 워터슬라이드 옆에 있는 소녀를 처음 본다. 그보다 한 살가량 어리고 남자아이처럼 밤색 머리를 짧게 잘랐으며 올리브색 피부에 팔다리가 가느다랗다. 줄무늬 세일러복 상의에 푸른색 반바지를 입었고, 레몬빛 샌들을 신고 있다. 오른쪽 팔목에는 가는 가죽 밴드를 하고 있다. 소녀가 그를 힐끗 보더니 건성으로 미소 같은 걸 짓고는 접의자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소녀는 생각에 잠긴 듯 먼 바다에 눈길을 던진 채 가끔씩 손톱을 물어뜯으며 워크맨을 듣는다. 양쪽에는 소녀의 부모가 앉아 있다. 어머니는 〈엘르〉를 훑어보는 중이고 아버지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렌 데이턴의 소설을 읽고 있다. 나중에 라비는 방명록을 뒤져보고 알아낸다. 소녀는 클레르몽페랑에서 왔고 이름이 알리스 소르다.
지금까지 어떤 것도 이렇게 멀리 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런 감정이 처음으로 소년을 압도한다. 이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다. 마치 어떤 식으로든 항상 그녀를 알아온 듯하고, 그녀가 그의 존재 자체에, 특히 마음 한구석의 혼란스러운 상처에 어떤 답을 내미는 듯하다. 그 후 며칠 동안 소년은 호텔 여기저기에서 거리를 두고 그녀를 관찰한다. 아침에는 치맛단에 꽃무늬 장식이 있는 흰색 드레스 차림으로 뷔페에서 요구르트와 복숭아를 담아 간다. 테니스장에서는 코치에게 악센트가 매우 두드러지는 영어로 자신의 백핸드에 대해 애처로우리만치 정중하게 사과한다. 골프 코스 주위를 (그가 보기에 분명) 쓸쓸히 산책하다가 걸음을 멈추고 선인장과 히비스커스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이 영혼의 짝이라는 느낌, 이 확신은 아주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 객관적 지식은 끼어들 틈이 없다. 대신에 중요한 건 직관, 즉 이성의 정상적 작용 과정을 건너뛰기에 더더욱 정확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는 것만 같은 자발적인 감정이다.
매혹은 일련의 요소들을 둘러싸며 공고해진다. 발에 매달려 무심히 끌려가는 샌들, 선크림 옆의 타월 위에 놓인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페이퍼백, 경계가 또렷한 눈썹, 부모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태도, 저녁 뷔페에서 손바닥으로 뺨을 괸 채 초콜릿 무스를 조금씩 떠먹는 동작…….
본능적으로 그는 이런 요소들로부터 그녀의 성격 전체를 알아내려고 해본다. 방 천장 선풍기의 나무 날개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라비는 마음속으로 그녀와 함께하는 인생 이야기를 쓴다. 그녀는 성격이 우울하고 세상 물정에 밝을 것이다. 그만을 신뢰하고 남들의 위선을 비웃을 것이다. 예민하고 속 깊은 성격 탓에 때때로 파티에 갈 때나 다른 여학생들과 어울릴 때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녀는 늘 외톨이였을 테고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완전히 신뢰한 적이 없을 것이다. 둘은 장난스럽게 깍지를 끼고 그녀의 침대에 앉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두 사람 간에 그런 결속이 가능하다고 상상해본 적도 없으리라.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소녀는 사라지고 네덜란드인 부부와 남자아이 두 명이 그녀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녀가 에어프랑스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모와 함께 새벽에 호텔을 떠났다는 게 매니저의 설명이다.
이 모든 사건은 별게 아니다. 두 사람은 다시는 못 만날 것이다. 소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돌이켜보건대 소녀는 완전히 무관심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제 시작이라면, 그것은 라비가 세월과 함께 많이 변하고 어른스러워지겠지만, 사랑에 대한 그의 이해는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열다섯 살 여름 카사알수르 호텔에서 처음 형성된 바로 그 구조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신속하고도 진심 어린 이해와 감정이입이 일어나고, 외로움이 완전히 끝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 믿을 것이다.
그는 버스에서, 식료품 가게 통로에서, 도서관 열람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잃어버린 다른 영혼의 짝에게도 그와 같은 달콤 씁쓸한 갈망을 경험할 것이다. 스무 살에는 맨해튼에서 공부하던 학기 중에 북부행 C열차의 왼쪽 좌석에 앉은 여자에게서, 스물다섯 살에는 베를린의 건축 사무소에서 실무를 배우다가, 그리고 스물아홉 살에는 파리-런던 간 비행기를 타고 영국해협 위를 날아가는 동안 클로에라는 여자와 짧은 대화를 나눈 후에,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의 일부분을 만났다는 느낌을 다시 경험할 것이다.
낭만적인 사람은 낯선 사람을 언뜻 본 순간부터 최단 경로를 밟아 그 사람이 실존에 대한 무언의 질문들에 포괄적 답안이 될 수도 있다는 장엄하고도 상당한 결론을 공언하게 된다.
이러한 강렬함은 사소하고 심지어 익살스러워 보일지 모르나, 본능을 존중하는 태도는 관계의 우주론에서 작은 행성에 불과하지 않다. 그것은 오늘날 사랑의 이상들이 선회하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근원적인 구심체이다.
낭만적 믿음은 항상 존재해왔지만, 몇 세기 전에야 비로소 병이 아닌 어떤 것으로 판정받았다. 영혼의 짝을 찾는 일이 인생의 목적에 근접한 어떤 것으로서의 지위를 갖추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신과 영적 존재를 향하던 이상주의가 인간 주체에게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 변화는 표면상으론 인간적이고 관대해 보이지만 꺼림칙하고 상처 입기 쉬운 결말에 이를 부담을 안겨준다.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비행기 옆자리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관찰자에게 언뜻 비친 듯한 누군가의 완벽함이 평생토록 유지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과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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