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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는 가족 만찬을 할 때마다 어른들이, 그가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인 듯 말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
“걔 요새 고기 좀 제대로 먹고 있다니? 비쩍 말랐던데.”
“캐리, 그러다가 애 버릇 망치겠어. 밥을 안 먹으면 나가 놀지 못하게 해야지. 너도 어렸을 때 그랬잖니?”
“나는 녀석만 할 때 손도끼로 나무를 베어 넘길 만큼 건장했는데 말이야. 데이비드는 기껏 안개도 못 헤치고 나갈 것 같더구나.”
데이비드는 어른들이 자기에 대해 말하는 동안, 투명인간이 되어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상상을 했다. 누군가 그에게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느냐고 물으면, 어른들은 그에게 실제로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에는 상관없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데이비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숨어 뚱뚱하고 대머리인 데다 너무 부자라서 더 싫은 클라렌스 삼촌에게 광선총을 겨누었다. 클라렌스 삼촌은 아기가 기저귀에 싸 놓은 똥처럼 보일 때까지 마구 휘저은 당밀과 버터 시럽에 과자를 푹 찍었다.
“그 앤 아직도 생물학자가 되고 싶대? 의대에 가서 월트의 일을 도와야 할 텐데.”
광선총으로 삼촌의 위胃를 깔끔하게 잘라내면 그 틈으로 살집이 그대로 흘러나와 사람들을 덮을 것 같았따.
“데이비드.” 아버지가 야단을 칠 듯 불렀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따. “밖에 나가서 다른 애들이 뭐하고 노는지 보는 게 어때?” 아버지의 조용한 말은 사실 ‘이제 그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다른 아이에게로 화제를 바꿨다.
자라면서 데이비드는 어렸을 때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삼촌, 고모, 사촌, 육촌, 팔촌, 그리고 가족과 결혼한 사람의 형제, 자매, 부모 같은 사돈의 친척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따. 섬너, 위스톤, 오그레이디, 하이네만, 메이어, 카펙, 리조 가家 모두 비옥한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강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휴가철을 특히 또렷이 기억했다. 오래된 섬너가 저택에는 방이 많았고, 맨 꼭대기에는 서쪽 창에 커다란 환풍기가 달려 있고, 바닥에 아이들을 위한 요가 잔뜩 깔린 다락방이 있었다. 휴가철 내내 어른들이 번갈아 다락에 올라와, 아이들이 질식하지나 않았는지 확인하곤 했다. 나이 든 아이들이 더 어린아이들을 돌보게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큰 애들이 하는 일은 밤마다 귀신 이야기로 동생들을 겁 먹이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지면 결국은 어른이 끼어들었다. 론 삼촌이 묵직한 몸으로 쿵쿵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오르면, 아이들은 웃음을 참고 비명을 삼키며 자기 침대를 찾아가며 허둥댔고, 삼촌이 다락을 희미하게 밝히는 복도등을 켤 즈음에는 모두 자는 척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러면 삼촌은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문을 닫고 불을 끈 다음, 등 뒤에서 다시 시작된 재잘거림을 못 들은 체하며 쿵쾅거리며 내려갔다.
클라우디아 고모가 올라올 때는 마치 귀신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베개가 날아다니고, 누구는 울고, 누구는 손전등을 켜서 책을 읽고, 남자아이들 몇 명은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붉어진 얼굴이나 어른이 갑자기 다가갈 때의 절망적인 표정으로 미루어 볼 때 달콤한 비밀임이 분명한 이야기를 한데 모여 속삭였다. 그러다 갑자기 문이 덜컥 열려 엉망진창인 방안으로 불빛이 새어 들어오면 클라우디아 고모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고모는 큰 키에 말랐으며 코가 너무 컸고, 피부는 오래된 가죽색이었다. 고모가 꼼짝 않고 무시무시하게 서 있으면 아이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고모는 아이들이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다가, 문을 소리 없이 닫았다. 방은 계속 조용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문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문을 살짝 열어 내다보고, 고모가 가고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휴가철의 냄새는 데이비드의 기억에 선명히 남았다. 언제나 같은 냄새, 과일 케이크, 칠면조, 달걀을 물들일 때 쓰는 식초, 나뭇가지, 월계수 양초에서 나는 짙고 매끄러운 연기. 하지만 무엇보다 또렷하게 떠오르는 냄새는 바로 독립기념일 모임마다 쓰던 화약 냄새였다. 머리카락이며 옷에 스며든 그 냄새는 며칠이 지나도록 손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산딸기를 따느라 보라색으로 물들었던 손, 그 색과 냄새는 유년시절의 잊히지 않는 이미지로 남았다. 산딸기 향에는 벼룩을 잡느라 온몸에 뿌렸던 유황 냄새가 섞이곤 했다.
셀리아만 아니었다면 데이비드의 유년기는 완벽했을 것이다. 셀리아는 데이비드의 사촌, 그러니까 어머니 여동생의 딸로 데이비드보다 한 살 어렸고 사촌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게 예뻤다. 둘은 아주 어렸을 때는 자라서 결혼하기로 약속했지만, 나이가 들어 사촌끼리는 절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못 말리는 적이 되었다.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았는지는 몰랐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은 확실했지만, 어쨌든 알게 되었다. 그 뒤로 그들은 서로 피해갈 수 없으면 싸웠다. 데이비드가 열다섯 살 때는 셀리아가 그를 마구간 다락에서 밀어 팔을 부러뜨렸고, 열여섯 살 때는 위스톤 농장집의 뒷문에서 울타리까지 거의 50미터를 맞붙어 싸웠다. 그들이 서로 옷을 잡아 뜯는 사이에, 데이비드는 셀리아의 손톱에 등을 긁혔고, 셀리아는 어깨를 바위에 긁혀 피가 났다. 난폭하게 뒹굴고 꿈틀거리던 중 어쩌다가 뺨이 셀리아의 드러난 가슴에 닿자 데이비드는 싸움을 멈췄다. 그는 갑자기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며 바보처럼 울먹였고, 셀리아는 돌로 데이비드의 머리를 쳐서 싸움을 끝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둘의 싸움에서 나는 소리라곤 헉헉대는 숨소리와, 속삭이듯 내뱉었던 부모님이 들으면 기겁할 욕설뿐이었다. 그러나 데이비드가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생기를 잃고 멍해져서 흐느적거리자, 셀리아는 두려움과 괴로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다. 가족들이 앞다투어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첫눈에는 데이비드가 셀리아를 강간한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때리려는 것처럼 데이비드를 헛간으로 끌고 들어갔다. 하지만 헛간 안에서, 아버지는 한 손에 허리띠를 들고 그를 화난, 그리고 묘하게 동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데이비드를 때리지 않았고, 그가 돌아서서 나간 다음에야 데이비드는 눈물이 아직도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 중에는 농장주, 변호사, 의사 두 명, 보험직원, 은행원, 제분업자, 공장장, 그리고 이런저런 상인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골짜기의 중산층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백화점의 소유주였다. 골짜기는 풍요로웠고, 농장은 광대하고 푸르렀다. 데이비드는, 뭘 해도 별 볼 일 없는 몇 사람을 제외하면 가족 대부분이 잘 사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데이비드가 가장 좋아했던 친척은 아버지의 형인 월트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삼촌이 아니라 월트 박사라고 불렀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며, 진심으로 혼내주고 싶을 때는 어디를 때려야 하고 장난으로 싸울 때는 어디를 쳐서는 안 되는지 같은 어른의 일을 가르쳐 주었다. 월트 박사는 다른 어른들보다 훨씬 먼저 아이들을 어린애로 대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안 것 같았다. 데이비드가 과학자가 되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던 것도 월트 박사 때문이었다.
데이비드는 열일곱 살이 되자 하버드에 들어갔다. 9월에 생일이 있었지만, 집에 가지 않았다. 추수감사절이 되어 마침내 가족들과 모여 앉자, 섬너 할아버지는 관례대로 식전주 마티니를 따르더니 그에게도 한 잔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워너 삼촌이 물었다. “데이비드, 네 생각에는 바비 걔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미리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나 불분명한, 설명할 수 없는 교차점에 도달한 것이다. 데이비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마티니를 홀짝이며 자신의 유년기가 끝났음을 깨달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과 외로움을 느꼈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의 크리스마스는 흐릿했다. 다락을 꽉 채운 아이들, 음식 냄새, 눈송이 모두 언제나처럼 그대로였으나 새로운 위치에서 바라본 그곳은 이제 더는 어렸을 때의 이상한 나라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위스톤 농장에 하루 이틀 더 머무르며 셀리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셀리아의 어머니가 ‘셀리아는 브라질 여행을 준비하느라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오지 않지만 확실히 들렀다 가기로 했다’고 위스톤 할머니에게 말한 탓에 데이비드는 행복도 기대도 아닌 분노에 사로잡혀, 남의 잘못 때문에 벌을 받는 사내아이라도 된 것처럼 오래된 집 안을 서성거리며 기다렸다.
집에 돌아온 셀리아가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쌓였던 분노는 눈 녹듯 사라졌다. 마치 뒤틀린 시간의 틈으로 셀리아의 과거, 현재,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창백한 머리색은 거의 변하지 않겠지만 골격은 더 도드라질 테고, 지금은 텅 빈 것 같은 얼굴에 근심, 사랑, 나눔, 단호한 자기다움, 연약한 몸만 보아서는 예상치 못할 힘이 담기리라. 위스톤 할머니는 고운 노인이었다. 데이비드는 지금껏 알아채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셀리아의 어머니는 딸보다 더 미인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데이비드의 어머니와도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데이비드는 좌절하여 아무 말 없이 집 뒤로 돌아나가 할아버지의 두툼한 재킷을 걸쳤다. 이제 셀리아와 아예 마주치고 싶지 않았고, 옷은 셀리아가 서 있는 곳과 지나치게 가까운 정문 현관 옷장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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