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람들은 왜 보수 세력이 국가를 더 잘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1장
진보는 왜 무능해 보이는가
‘진보 세력은 무능하다’는 보수 세력의 담론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상당수의 사람도 내심 이에 동의한다고 할 정도로 ‘진보 세력 무능론’은 진보의 위기와 보수의 강화를 초래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이러한 ‘무능’ 담론은 한국의 보수 세력이 반대 세력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써 오래전부터 동원한 것이다. 해방 직후뿐 아니라 5.16 군사정변 이후에도 장면 정권의 무능을 쿠데타 근거 중 하나로 내세웠다. 그만큼 ‘진보’ 세력과 반대 세력을 향해 보수는 ‘무능’ 담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는 진보를 공격하는 보수의 대표적인 수사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앨버트 허시먼Albert Hirschman이 200여 년간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도출해낸 위험, 무용, 역효과 등 세 가지 보수의 수사학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진보를 공격하기 위한 보수의 수사학으로 허시먼이 가장 처음 제시한 것은 역효과 명제이다. 이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로 개혁이 대중의 삶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논리다. 그다음은 무용 명제이며 이는 개혁을 시도해도 체감하는 변화의 의미가 거의 없다는 논리다. 이는 개혁에 대한 무력감 형성을 의도한 것이다. 그다음은 위험 명제로서 개혁을 하게 되면 기존에 성취했던 소중한 가치가 손상되는 위험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허시먼이 제기한 세 가지에 더해 무능까지 포함시킨 무능, 위험, 역효과, 무용의 네 가지 담론은 진보 세력을 공격하는 보수 수사학의 완성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먼저 이러한 생각의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진보 세력은 유약하다’고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진보 세력이 유약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약해가지고 어디에다 쓰겠어. 암만 봐도 야당 체질이야. 운동권 사람들이 올바른 말은 잘하니까 그건 분명히 쓸 데가 있어. 그런데 약해빠져서 뭘 제대로 하지를 못해. 그게 결정적인 문제야. 일은 여당이 잘하니까 여당보고 하라고 하는 게 맞는 거고, 이 사람들은 약해서 실행 능력은 없지만 그 대신 말은 잘하니까 야당을 하면 되지.”
이창혁, 69세
인터뷰에서 보듯 사람들은 진보 세력의 무능함을 ‘유약하다’는 것과 연계해 인식하고 있다. 여기서는 포괄적인 측면에서 지적한 것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계급적 시각에서 진보 세력의 ‘유약함’을 무능과 연계해서 인식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자신들이 독재하는 게 마음에 걸리니 문제 있는 재벌이나 이런 특권층을 혼도 내주고 그랬고, 그러니 특권층도 무서워서 함부로는 못했거든. 잘못하면 망하는 수가 있으니까. 근데 지금은 민주화, 민주화 하니까 대통령도 뭐라고 못하잖아. 나도 조그마한 구멍가게 하나 하고 있는데 재벌들이 이런 골목에다 슈퍼마켓까지 열어서 지금 매출이 벌써 30% 정도 떨어졌어. 구청에도 가고 따지고 할 건 다해봤지만 어림도 없어. 민주화가 되어서 살판난 건 힘 있는 사람들이라니까.”
문택수, 58세
이 언급에서 보듯 계급적인 시각에서 국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경우, 사람들은 진보 세력의 ‘유약함’이 자신들의 계급 이익 실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진보 세력은 유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진보에서 보수로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심층 인터뷰 대상자 32명이 진보 세력에 보인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진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으로 바뀐 경우인데, 심층 인터뷰 결과 이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진보 세력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경우인데 이들은 진보 세력에 대해 상당한 배신감을 토로한다. 이들은 진보 세력 정치 전략의 ‘진정성’마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둘째, 진보 세력의 ‘진정성’을 대체로 인정하고 긍정하는 경우인데, 이들은 전자의 경우처럼 ‘분노’ 및 ‘배신감’과 같은 태도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들은 진보 세력이 진정성은 있지만 권력의 냉혹한 속성을 제대로 모르는 탓에 진정성을 현실화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적절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여 그들의 의도와 다르게 결과가 좋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진보 세력의 유약함’을 문제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했다. 이들은 “사람만 좋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정현철, 47세), “좋은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문택수, 58세) 등의 언급을 하고 있다.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진보 세력 동원 전략의 주요 성격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람 중심주의’였다. 1970, 80년대 사회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당시 운동권 세력들의 정서와 태도에는 ‘진정성(도덕성)’과 ‘사람 중심주의’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명박 정권 시기에 진보 세력은 신자유주의 재편과정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대상을 위한 전략으로써 ‘사람 중심주의’ 담론을 내세운다. 2009년 11월 4일 당시 이강래 민주당 원내 대표는 “이 정부가 강조하는 시장만능주의와 효율성 지상주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에서는 사람 중심의 철학을 찾을 수 없다”, “부자와 대기업만 있을 뿐 중산층과 서민과 사회적 약자는 존립할 수 없다”라고 언급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에서 피해를 받는 대상을 ‘사람’으로 규정하는 담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내건 대표적 정치적 슬로건도 ‘사람이 먼저다’였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볼 때 많은 사람이 “진보 세력은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인식한다는 것은 진보 세력의 정치 전략이 일정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람 중심주의’ 담론 전략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문재인을 보면 답답하죠. 지난 대선에서도 ‘사람이 먼저다’를 핵심적인 정치 슬로건으로 제시하던데, 이건 우리 학생운동하던 때의 감성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줘요. 물론 그 주변에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많으니까 그 바운더리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국경을 넘어 전 세계 국가와 기업 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고, 우리 사회 내부에 많은 문제점이 쌓여가는데, 이런 문제들을 단호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나치게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 그리고 심하게 말해 싸구려 감성에 호소하는 얕은 정치적 기술로 보이죠.”
윤광혁, 53세
여기서 보듯 사람들은 진보 세력의 ‘사람 중심주의’와 ‘유약함’을 접합하여 인식한다.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 통합의 위기에 대해 적극적이면서도 강력한 대처를 선망하는 사람들은 진보 세력의 ‘사람 중심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또한 ‘진보 세력 유약함’은 진보 세력이 강조하는 탈권위주의론과 맞물리면서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권위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정치적 권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박정희 신드롬이다. 이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한 대중적 향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박정희 신드롬은 권위주의 체제에 심정적으로 우호적인 사람들의 집단적 정서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비판은 ‘박정희 신드롬’ 안에 ‘독재 자체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정치적 권위 자체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세밀하게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문제가 있지만 정치적 권위는 필요하다는 대중적 인식이 나타난다. 그렇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탈권위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이것이 권위 자체를 무력화하여 결과적으로 리더십과 질서를 와해시켰다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
진보 진영에서도 정치적 권위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에는 당내 민주화가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되었는데, 지금은 이것이 야당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약한 리더십을 초래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시대적 분위기에 적응이 되어 그런지 몰라도 난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돼요. 억압적인 분위기는 생각만 해도 싫습니다. … 그런데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권위주의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권위가 없으면 그 조직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돼요. 오합지졸로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지금 민주당이 저 모양 저 꼴인 건 권위주의를 청산하다고 하면서 권위까지 청산해버린 탓이에요.”
사람들은 권위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권위 자체를 무정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위를 사회 질서와 정치 생산성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으로 판단한다. 진보 세력의 탈권위주의에 대한 강박적 태도는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것이 정치 무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었다. 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인데, 진보 세력 입장에서는 매우 뼈아픈 일이라 할 수 있다.
최장집은 진보 세력이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성향을 갖게 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권위 자체는 사회적 질서 유지 및 민주주의의 제도적, 사회문화적 착근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렇게 볼 때 진보 세력의 탈권위에 대한 강박적 태도는 권위 자체를 약화하여 정치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진보 세력의 유약함’과 맞물리면서 ‘진보 세력 무능’ 담론 형성에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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