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집 1
친구들이여! 우리가 아무리 괴롭더라도 운명의 날이
오기 전에는 아직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자, 그대들은 날랜 배 안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는 한
허기에 시달리지 않게 먹는 일을 생각하도록 하시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0권 174~177행
길이 어디로 이끄는지를 잊고 있는 사람을 또한 기억하라.
─ 헤라클레이토스, DK22B17
일기
철호輟浩는 어릴 적 내 친구였고 중학교 2학년 때 차에 치여 죽었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대학교에 가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달리 꽃이 많이 지던 그해 가을 바닥에 뒹구는 폐지에 냉소를 보내자 폐지도 내게 냉소를 환하게 기울였다. 바늘땀이 아무 데로나 걸어가는 그해, 가을, 시도 때도 없이 땀을 흘렸다. 바닥, 움켜쥠, 환한 양버즘나무의 얼굴. 검열받는 나날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것들에게만 충실한 시간, 그날밤 학교의 연못을 내려다보며 검은 기름을 생각했다. 그때 철호를 만났다. 우리는 처음엔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지만, 곧 웃으며 포옹했다. 바닥, 움켜쥐고, 병든 양버즘나무의 얼굴. 철호는 내가 많이 변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철호는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고 말했다.
비둘기
운韻을 맞춰볼까. 먼저 말한 건 철호였다. 좋아. 철호가 여름,으로 시작하자 나는 거름,을 말했다. 우리 둘은 찬란한 햇살 아래 썩어가는 동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철호가 구름,이라 말하자 나는 주름,이라 답했고 맑은 하늘에 파상운波狀雲이 몰려왔다. 철호가 죽음, 내가 묵음黙吟 ─ 그 순간 입이 딱 달라붙어 열리지 않았다. 하늘이 새카만 철판으로 변했다. 철호가 땀을 흘리며 웃었다.
줄기
그의 가족은 승용차에 타고 있었고 중앙선을 넘어 트럭이 덮쳤다. 의식을 차리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아들이 뇌사腦死 상태라는 말에 잠시 용도를 고민해야 했다.
그때 나는 물잔에 물을 따르며 중학생의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자위할 때 더 쾌감을 얻을 수 있을까, 따위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전화를 걸면 안녕하세요?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그걸 어떻게 꽃잎이나 환한 정원庭園에 비교할 수 있어, 꽃을 녹음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꽃의 재생再生을 생각하며 꽃대와 꽃받침은 공중에서 허무한 문양을 지웠다.
꿈에 온몸에 비누를 칠한 전봇대가 나와 부글거리며 두 눈에서 거품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걸 친구가 흘린 피로 생각했다.
열기
많이 외로웠겠구나
이곳은 너무 더워
하지만 고요해, 불화佛畵 속처럼
황금빛 강은 흐르며
네가 누구였는지 자꾸 질문하게 하지
자꾸, 자꾸
그렇게 하면 꼭 그런 생각이 드는데
정답이 원래 있던 것 같다는
많이 아팠겠구나
이곳은 지독하게 더워
하지만 말이 없어, 흑백화黑白畵 속처럼
사람들은 검거나 흰 얼굴을 지녔고
네가 누구인지 자꾸 궁금하게 했지
자꾸, 자꾸
적어도 내가 누구였을 수는 있겠지만
누구일 수는 없지
이곳을 열어젖힌 그 순간부터는
이게 끝이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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