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목
김광규, 『오른손이 아픈 날』
2016-01-18
- 스크랩
저자 · 김광규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및 동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에서 수학했다.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이후 1979년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으로 녹원문학상을, 1983년 두번째 시집 『아니다 그렇지 않다』로 김수영문학상을, 1990년 다섯번째 시집 『아니리』로 편운문학상을, 2003년 여덟번째 시집 『처음 만나던 때』로 대산문학상을, 2007년 아홉번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으로 이산문학상을, 2011년 열번째 시집 『하루 또 하루』로 시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시집 『크낙산의 마음』『좀팽이처럼』『물길』『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누군가를 위하여』, 산문집 『육성과 가성』『천천히 올라가는 계단』, 학술 연구서 『권터 아이히 연구』 등을 펴냈다. 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하인리히 하이네 시선 『로렐라이』 등을 번역 소개하는 한편, 영역 시집 Faint Shadows of Love(런던, 1991), The Depths of A Clam(버팔로, 2005), 독역 시집 Die Tiefe der Muschel(빌레펠트, 1999), Botschaften vom grunen Planeten(괴팅엔, 2010), 불역 시집 La douce main du temps(파리, 2013), 중역 시집 『模糊的旧愛之影』(북경, 2009) 등을 간행했다. 독일 예술원의 프리드리히 군돌프 상(2006)과 한독협회의 이미륵 상(2008)을 수상했으며 2016년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독문학)이다.
김광규 지음ㅣ 문학과지성사, 2016-01-07
동사목凍死木
유달리 추웠던 지난겨울
영하 17도의 혹한을 비껴갈 수 없어
뒷동산 언덕배기에 뿌리박은 채
꼿꼿이 서서 얼어 죽은 나무들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소리
비명처럼 들린다
산 아래 첫 집 담 너머
우리 마당에도 누렇게 얼어 죽은
낙엽송과 단풍나무
한여름 녹음 속에 처연하게 숨 멎은
동사목 두 그루
살아 있는 나무들만 바람에 수런거리고
마른 잎을 떨어버릴 수 있다는
수목의 유언에 귀 기울이며
말 없는 미라를 보듯
두고두고 바라보기만 할 뿐
녹색 두리기둥
전깃줄 끊긴 채 자락길 어귀에
시멘트 기둥으로 홀로 남은 전신주
담쟁이덩굴이 엉켜 붙어
앞으로 옆으로 위로 퍼져 올라가
우뚝 솟은 녹색 두리기둥 만들어놓았네
폐기된 전신주 꼭대기
담쟁이 더 기어 올라갈 수 없는 곳
바람과 구름을 향해
아무리 덩굴손 허공으로 뻗쳐보아도
이제는 더 감고 올라갈
기둥도 나무도 담벼락도 없네
살아 있는 덩굴식물이 한자리에
그대로 소나무처럼 머물 수 없어
제 몸의 덩굴에 엉켜 붙어
되돌아 내려오네
온갖 나무들 드높이 자라 올라가는
저 푸른 하늘에 앞길이 막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되돌아 내려오며
삶터 잘못 잡은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두리기둥 만들어놓았네
나비 두 마리
빨래 말미도 없이
한 달 내내 쏟아지는 장맛비에
주황색 능소화
아깝게 뚝뚝 떨어졌다
검은 구름 동쪽으로 몰려가며 겨우
앞산의 모습 나타나고 잠시
비가 멎었을 때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니 하얀
나비 두 마리
안쓰럽게 나풀나풀
잡초 우거진 채마밭으로 날아간다
장마철에 잘못 태어나
축축하지 않니
해도 못 보고
꽃도 못 찾고
금방 땅으로 떨어질 듯
서투르게 나풀나풀 날아가는
하얀 나비 두 마리
풋사랑 이루지 못하고 비 맞으며
사라지는 어린 영혼들인가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스크랩
Error bbc_msg; item: counter0.inc / state: o
Error bbc_msg; item: access.php / state: o
Error bbc_msg; item: last.php / state: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