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유인력에서 벗어난 트럼펫
─ 마일스 데이비스(1)
《마일스 데이비스》마일스 데이비스 · 퀸시 트루프, 성기완 옮김 | 집사재, 2013
오랫동안 절판됐던 마일스 데이비스와 퀸시 트루프의 공저 《마일스》(집사재, 1999)가 《마일스 데이비스》(집사재, 2013)로 다시 나왔다. 온갖 재즈 관련서 가운데 현장감과 역사성에서 이 책을 앞지를 저작은 없다. 이 책은 마일스의 자서전이자 ‘재즈의 자서전’이다. 어떤 분야든 한 시기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자 또는 개혁가가 있기 마련인데, 마일스는 재즈사 속에서 그 일을 세 번이나 했다. 1949년의 《Birth of The Cool》, 1959년의 《Kind of Blue》, 마지막으로 1970년의 《Bitches Brew》. 그의 이 세 앨범은 각기 쿨 재즈의 탄생, 모드 주법의 도입, 퓨전 재즈의 신호탄으로 기록되는 기념비적 작품들이다.
위의 세 작품 가운데 나는 특히 《Kind of Blue》를 좋아한다. 이 음반을 들으며 짜릿한 흥분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여러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놓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Bitches Brew》는 제목만 들어도 구토가 난다. 평자들은 퓨전 재즈가 도래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으로 음의 광역화와 전자 악기의 발달 등을 꼽는데, 이 책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에 음의 광역화와 전자 악기가 필요했던 상황을 재즈 황제의 입을 빌려 솔직히 밝히고 있다. 즉 1960년대 중반부터 많은 사람들이 재즈 대신 록 음악에 몰리기 시작했고 1969년에 열린 우드스톡 축제는 결정적으로 젊은이들을 빼앗아 갔다. 재즈의 퓨전화만이 록 음악에 빼앗긴 젊은이들을 재즈로 되돌아오게 할 방도로 보였는데, 전자 악기의 사용에는 음악 산업적인 또 다른 속내가 있었다. 비전자 악기로는 소규모 클럽에서 연주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수공적’인 소리로는 우드스톡에서처럼 40만 명 이상의 관객을 하나의 콘서트장에 모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재즈 음악사는 미국 흑인 잔혹사다. 따지고 보면 마일스가 ‘재즈 황제’가 된 것도 그렇다. 마일스의 부모는 모두 흑인 중산층의 일원으로, 마일스의 아버지는 두 개의 대학을 졸업하고 마지막엔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치과대학을 나와 개원한 치과 의사였다. 열두 살 때부터 트럼펫 주자가 되기 위한 영재 교육을 받은 마일스는 줄리아드 음악대학에 입학했으나 2년 만에 자퇴했다. 그 결정에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흑인 연주자로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음악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아프로-아메리칸에 기반한 재즈계라고 해서 인종 차별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재즈는 흑인 음악이면서도 그의 음악을 팔아줄 백인 흥행업자들의 취향에 맞게 희석됐다. 백인 재즈 비평가도 그러한 일에 한몫했다. “백인 재즈 비평가들은 우리 음악을 모방한 백인 뮤지션들이 뭔가 위대한 창조자라도 되는 양 줄곧 떠들어댔다. 스턴 게츠, 데이브 브루벡, 카이 와인딩, 리 코니츠, 레니 트리스타노, 그리고 제리 멀리건 같은 사람을 신처럼 떠받들었다. 〔……〕 그들이 처음 시작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들 자신도 그걸 안다. 그들은 최고는 아니었다. 내 기분을 특히 상하게 만든 것은 평론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제리 멀리건 밴드의 쳇 베이커를 마치 제2의 예수나 나타난 양 떠들썩하게 소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사운드는 나와 똑같았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 음악에만 빠져 있었던 그가 흑인으로서의 ‘정치적 의식’을 갖게 된 것은, 1949년 초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연주회를 갔다 오고 나서다. 파리는 그에게 미국의 백인과 다른 또 다른 백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미국에 사는 게 너무나 싫었지만 그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파리로 이주한 뮤지션들은 내가 보기에 미국에서 살 때 가능했던 뭔가를, 이를테면 어떤 에너지를, 어떤 날카로움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사람은 자기가 느낄 수 있고 자기 뿌리가 있는, 자기가 아는 문화에 둘러싸여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재즈 팬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귀환이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마일스는 찰리 파커의 ‘아들’이다. 열여덟살 때부터 음악 경력을 시작한 마일스에게 버드(찰리 파커의 애칭)는 신이었다. 마일스의 삶은 그의 음악적 아버지인 버드에 대한 선망과 무의식적인 라이벌 의식으로 버무려진 것 같다. 평생 마약에 끌려다녔던 마일스의 내부에는 서른네 살에 요절한 찰리 파커의 손짓이 숨어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마일스를 수차례 재즈의 모반자로 만들었다.
세 권짜리였던 《마일스》가 한 권짜리 《마일스 데이비스》로 합본되면서 원래의 구어체가 문어체로 윤색된 것은 무척 아쉽다. 초판본 《마일스》의 첫머리는 “들어봐라. 여지껏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 ─ 옷 입은 상태에서 ─ 경험한 가장 멋진 느낌은 세인트루이스의 미주리에 디즈와 버드가 왔을 때 그들의 연주를 들은 것이다”라고 시작된다. “들어봐라” 식의 도발적인 서두는 이 책이 통상적인 예의나 관습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구어체로 일관했던 《마일스》에서는 “씨팔”, “좆나게”, “그 새끼들”과 같은 비속어가 간투사나 접속사인 듯 자연스러웠다. 그것들은 문어체의 세계 속에 뛰어든 ‘싱커페이션syncopation’(당김음)이나 ‘블루 노트blue note’(재즈 특유의 장음계로 ‘미’와 ‘시’ 음을 반음 낮추는 것을 뜻한다)처럼 빛났다. 재간을 결정한 출판사가 괜한 윤색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번역자는 역자 후기의 마지막에 “이젠 번역도 끝났으니 음악이나 들어야지. 무거운 짐을 벗은 느낌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무거운 짐’이 없었던 독자는 줄곧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사례 보고를 하면서 이 독후감을 마치고자 한다. 나의 경우, 재즈를 들으면서 뜻밖에도 어떤 음악은 얻게 되었고 어떤 음악은 온전히 잃어버렸다. 재즈에 심취한 이후로 바흐나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아, 참 좋은 재즈가 흐르고 있군’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클래식을 더 잘 듣게 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음악은 영영 잃어버렸는데 그 어떤 음악의 장르를 여기 쓰는 것은 왠지 번역자에게 미안한 일이다.
* 사족이 책을 번역한 성기완 형은 시인이자 인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로 있는 음악가이다. 언젠가 홍대 부근의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형은, 나에게 신작 시집과 새로 나온 앨범을 선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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