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리 몸,
100조 개의 세포로 된 은하계
[ 세포 ]
나는 나를 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은하입니다. 사실은 천 개의 은하입니다. 내 몸을 이루는 세포는 은하 천 개를 이루는 별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세포 가운데 내가 누구인지 알거나 나를 신경 쓰는 세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아닙니다. 실제로 생각을 하는 건, 전자 신호를 방출하고 그 신호가 척수를 지나 내 손의 근육세포에 이르게 하는 뇌세포다발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100조 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세포가 함께 작용한 결과입니다. 미국의 생물학자 루이스 토머스Lewis Thomas, 1913~1993는 “나는 내 세포가 나를 위해 일하고 나를 위해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어쩌면 매일 아침 공원을 산책하고 내 감각을 느끼고 내 음악을 듣고 내 생각을 생각하는 것은 세포들인지도 모르겠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거대한 세포 집단이라는 것을 알려면 세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세포는 네덜란드의 아마천 상인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 van Leeuwenhoek, 1632~1723이 발견했습니다. 레이우엔훅은 작은 확대경으로 천이 조밀하게 짜였는지를 살펴보다가 세계최초로 살아 있는 세포를 발견했습니다. 런던왕립학회가 발간한 1673년 4월차 〈철학회보the Philosophical Transactions〉에서 레이우엔훅은 “내 손에서 뽑은 피를 들여다보니 작고 동글한 덩어리들이 보였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세포’라는 용어는 그보다 20여 년 전에 영국 과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훅은 1655년에 식물 조직을 관찰하다가 작은 방(죽은 세포)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훅도 레이우엔훅도 세포가 생명의 레고 블록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포는 정말로 생명의 레고 블록입니다. 세포는 ‘생물학적 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은 생명체는 없습니다.
원핵생물 : 자루 속 작은 우주
가장 오래된 세포의 흔적은 약 35억 년 된 화석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다소 불확실하지만 또 다른 더 오래된 생명의 증거가 있습니다. 38억 년 된 암석에서 화학 물질의 균형이 깨진 곳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생명체의 특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원핵세포라고 알려진 최초의 세포들은 기본적으로 세포 지름이 1천 분의 1밀리미터보다 작고 찐득거리는, 아주 조그맣고 투명한 자루에 불과했습니다. 내부에 물질을 농축함으로써 이 자루는 에너지 생산 같은 중요한 화학 반응을 재빨리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자루는 또한 화학 반응으로 만들어진 단백질 같은 연약한 생성물을 산과 염분 같은 외부의 독성 물질과 분리해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찐득한 자루는 무질서하고 혼란한 바다에 떠 있는 지상 낙원이자, 세포 내부가 질서를 갖추고 복잡하게 분화할 수 있게 보호해주는 작은 우주였습니다.
원핵세포가 복잡하게 분화하게 된 것은 주로 단백질 때문이었습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 분자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거대 분자인데, 단백질 분자 하나는 수백만 개의 원자로 이루어집니다. 스위스 군용칼처럼 다재다능한 단백질은 모양과 화학적 성질에 따라 화학 반응을 촉진하거나 세포의 토대를 세우거나 돌돌 말린 스프링처럼 수축되어 있다가 세포의 운동에 동력을 주는 등 수많은 일을 해냅니다. 생식을 할 때 필요한 단백질처럼 가끔씩만 발현되고 생성되는 단백질도 있지만, 구조가 단순한 세균도 4000개에 이르는 단백질을 갖고 있습니다. 단백질의 구조는 DNA(디옥시리보핵산)에 입력되어 있습니다. DNA는 원핵세포의 내부를 채운 세포질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이중나선 분자입니다.
세포는 구조가 아주 정교합니다. 먼저 세포질을 담는 자루인 세포막이 있습니다. 세포막은 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방산의 한쪽 끝은 물을 좋아하는 친수성이고 다른 쪽 끝은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입니다. 이런 지방산이 아주 많이 모이면 ─ 대략 10억 개 정도가 되면 ─ 소수성인 부분은 안쪽으로 들어가고 친수성인 부분은 바깥쪽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두 층을 형성합니다.
세포를 둘러싼 지방산 층은 수동적인 막이 아닙니다. 사실은 아주 능동적입니다. 두 겹으로 이루어진 지방산 층은 세포 안으로 드나드는 물질을 관리합니다. 세포를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대 도시라고 상상해봅시다. 생쥐처럼 작은 생명체는 쉽게 성벽을 드나듭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분자는 세포막을 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처럼 큰 생명체는 성문을 지나야만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듯이, 커다란 분자도 세포막에 있는 ‘문’을 통과해야만 세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포막에는 커다란 분자가 세포 안과 밖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세포막 전체를 관통하는 관 모양의 단백질이 있습니다. 또 커다란 분자를 세포막 안팎으로 나르는 수송 단백질도 있습니다.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분자는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단백질을 만들거나 외부 정보를 얻는 데 필요한 분자들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분자가 충분하면 그런 환경에 세포로 하여금 생식을 시작하도록 촉발합니다. 한편, 세포막을 통과하는 물 분자가 부족하면 그것이 세포에게 말라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됩니다. 그러면 세포 내부에서는 연속해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궁극적으로는 DNA 가닥이 계속해서 RNA(리보핵산)라는 분자를 복제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RNA는 리보솜이라고 하는 세포소기관으로 이동하고, 리보솜은 그 RNA 주형(template)을 이용해 세포의 탈수를 막을 점액 성분이 되는 단백질을 합성합니다. 단백질은 너무 커서 세포막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세포질에 떠 있는 단백질 분자 수백만 개는 주머니(소낭vesicle)에 담겨 세포막으로 옮겨집니다. 이 주머니는 세포막과 융합하기 때문에, 세포막을 찢거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단백질을 세포 밖으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세포는 주변을 둘러싼 분자들에 반응할 뿐 아니라, 다른 세포 안에 들어 있는 분자에도 반응합니다.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는 미생물 군집 화석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심지어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원핵세포도 다른 세포와 협력했습니다. 지금도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얕은 열대 바다 같은 곳에서 살아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는데, 가장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은 대략 35억 년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포는 환경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보호하는 단백질을 만들 뿐 아니라 같은 종류의 세포에게 자신과 같은 일을 하라고 경고하는 단백질도 만듭니다. 이런 화학 신호는 구조가 단순한 원핵세포의 생존에 아주 중요합니다. 원핵세포는 생물막biofilm이라고 하는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생물막이 지구에 등장한 첫 번째 조직적 구조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생물막을 구성하는 세포들 중에서 안쪽에 있는 세포들은 세포막과 세포막을 잇는 당단백질을 분비하고, 바깥쪽에 있는 세포들은 생물막을 환경 독성 물질로부터 보호하는 단백질을 생산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동료들에게 귀중한 질소를 제공하려고 스스로 죽음을 맞은 세포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 집단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이런 식의 협동은 우리 몸의 세포들을 연상시킵니다. 생물막은 세포가 수십억 년 전부터 복잡한 협동 작업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원핵세포의 크기와 복잡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세포 내부에서 천천히 떠다니는 ─ 확산되는 ─ DNA만으로 단백질을 만들어내야 ─ 발현해야 ─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면 원핵세포는 환경의 위협에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자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1997년에 발견한 희귀한 원핵생물 ‘티오마르가리타 나미비엔시스Thiomargarita namibiensis’는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지름이 0.75밀리미터나 되고 육안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 거대한 황세균의 DNA는 하나가 아니라 수천 개의 세포질 곳곳에 균일하게 퍼져 있습니다. 따라서 DNA가 느리게 움직인다 할지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DNA가 발현해 단백질을 만들기 때문에, 세포의 모든 부분으로 단백질이 재빨리 도달할 수 있습니다.
원핵세포의 크기를 제한하는 심각한 문제는 또 있습니다. 더 크게 자라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티오마르가리타 나미비엔시스 같은 전략을 구사하려면 DNA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DNA를 늘리는 데만 에너지를 전부 소비하면 세포는 다른 대사 작용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더 복잡한 세포가 될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혀버리고 말겠지요. 하지만 더 크게 자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포식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