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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약 135억 년 전(2013년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를 반영한 우주의 나이는 137억 9,800만 년±3,700만 년이다. 그 이전에는 약 137억 년으로 추정했었다. 저자는 135억 년 전이라고 적었으나, 이는 더 오래전 수치이다 ─ 옮긴이)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이런 근본적 특징을 다루는 이야기를 우리는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물질과 에너지는 등장한 지 30만 년 후에 원자라 불리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원자는 모여서 분자가 되었다. 원자, 분자 및 그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학이라고 부른다.
약 38억 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 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생물학이라 부른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후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하기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현대 인류와 아주 비슷한 동물은 약 250만 년 전 출현했지만, 수없이 많은 세대 동안 그들은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다른 수많은 동물들보다 딱히 두드러지지 않았다.
우리가 2백만 년 전의 동부 아프리카에서 하이킹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우리가 마주칠 인간 군상의 모습은 오늘날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진흙탕에서 즐겁게 노는 어린이들, 사회의 규범에 반항하는 흥분한 젊은이들, 그저 평화롭게 지내기만을 원하는 무기력한 노인들, 동네 미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총각들. 오래전부터 이런 광경들을 보아온 현명하고 나이 든 우두머리 여성.
이들 원시인류는 서로 사랑하고 놀면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지위와 권력을 위해 경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침팬지, 개코원숭이, 코끼리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한 점은 없었다.
당시에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들 원시인류의 후손이 언젠가 달 위를 걷고 원자를 쪼개고 유전자 코드를 해독하며 역사책을 쓰리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선사시대 인류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동물, 주변환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종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릴라, 반딧불이, 해파리보다 딱히 더 두드러지지 않았다.
생물학자들은 생물을 종으로 분류한다. 동물을 같은 종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서로 교배를 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으면 된다. 말과 당나귀는 최근에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고 신체적 특질에 공통점이 많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성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굳이 교배를 하게 유도할 수는 있으나 그 후손인 노새는 불임이다. 그러므로 당나귀의 DNA에 생긴 돌연변이는 말에게 전달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두 동물은 각기 다른 종으로 분류되며 각자 다른 진화의 길을 걷는다. 이와 대조되는 경우는 불도그와 스패니얼이다. 둘은 매우 달라 보이지만 같은 종이다. 동일한 DNA 정보를 공유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교배를 하고, 그들이 낳은 강아지는 자라서 다른 개와 짝을 지으며 많은 새끼를 낳는다.
같은 조상에게서 진화한 각기 다른 종들을 묶어서 ‘속屬, genus’이라 부른다. 사자와 호랑이, 표범과 재규어는 ‘표범 속Panthera’에 속하는 각기 다른 종이다.
생물학자들은 두 개의 라틴어로 생물의 학명을 붙인다. 속이 먼저 나오고, 종은 그 뒤에 쓴다. 예컨대 사자의 학명은 ‘Panthera leo’로, Panthera 속에 속하는 leo 종이라는 뜻이다. 속의 상위에 있는 것이 ‘科, family’다. 고양이과(사자, 치타, 집고양이), 개과(늑대, 여우, 자칼), 코끼리과(코끼리, 매머드, 마스토돈) 등이 그런 예다. 같은 과에 속하는 모든 동물은 동일한 선조의 후손이다. 예컨대 모든 고양이과 동물은 약 2,500만 년 전에 살았던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작은 집고양이에서 무서운 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이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서 가장 은밀히 숨겨진 비밀이었다. 오랫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다른 동물과 동떨어진 존재로, 속한 과科가 없는 동물인 것처럼, 형제자매도 사촌도 없고 가장 중요하게는 부모도 없는 동물인 것처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거대 영장류라는 크고 유달리 시끄러운 과의 한 일원이다. 현생종들 중 우리와 가까운 친척으로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이 있고, 가장 가까운 것은 침팬지다. 불과 6백만 년 전 단 한 마리의 암컷 유인원(꼬리 없는 원숭이)이 딸 둘을 낳았다. 이 중 한 마리는 모든 침팬지의 조상이,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종의 할머니가 되었다.
인류가 스스로 숨겨온 비밀
호모 사피엔스는 이보다 훨씬 더 불편한 사실을 계속 비밀로 해왔다. 오늘날 우리에게 문명화되지 않은 사촌들이 많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형제자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 1만 년간 우리 종은 지구상의 유일한 인간 종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유일한 인류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다. 하지만 ‘human’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호모 속에 속하는 동물’이고, 호모 속에는 사피엔스 외에도 여타의 종이 많이 존재했다.
더구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사피엔스가 아닌 인류와 다시 한 번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살펴볼 주제다. 이런 논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나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원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피엔스’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겠고, ‘인류human’란 표현은 ‘호모 속에 속하는 현존하는 모든 종’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겠다.
인류는 약 25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우리보다 더 오래된 유인원의 한 속으로서 ‘남쪽의 유인원’이란 뜻이다. 약 2백만 년 전 이들 원시의 남성과 여성은 고향을 떠나 여행을 시작해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정착했다. 인류 집단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북유럽의 눈 덮인 숲에서 살아남기에 좋은 특질과 인도네시아의 찌는 듯한 정글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특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여러 종들이 생겨났고, 과학자들은 여기에 거창한 라틴어 이름을 붙였다. 유럽과 서부 아시아의 인류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 골짜기에서 온 사람)’, 흔히 말하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했다. 이들은 우리 사피엔스보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발달한 덕분에 유라시아 서부에서 빙하기의 추운 기후에 잘 적응했다. 아시아의 좀 더 동쪽 지역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이들 ‘똑바로 선 사람’은 그 지역에서 2백만 년 가까이 살아남아, 가장 오래 지속된 인간 종이 되었다. 우리 사피엔스가 이 기록을 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부터 1천 년 후에 존재할지 여부도 의심스러운 마당에 2백만 년은 우리와는 동떨어진 시간이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는 호모 솔로엔시스가 살았는데, ‘솔로 계곡에서 온 사람’이란 뜻이다. 이들은 열대지방의 삶에 잘 적응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섬 플로레스에서는 고인류가 왜소화의 과정을 겪었다. 인류가 플로레스 섬에 도착한 것은 해수면이 이례적으로 낮아져서 본토에서 건너가기가 쉬운 때였다. 그러다 해수면이 다시 높아지자 일부 사람들이 자원이 부족한 그 섬에 갇히게 되었다. 식량을 많이 먹어야 하는 덩치 큰 사람들이 먼저 죽었고, 아무래도 작은 사람들이 살아남기가 수월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플로레스 섬 사람들은 점점 난쟁이가 되었다. 과학자들이 ‘플로레스인(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이라 이름 붙인 이 사람들은 최대 신장이 1미터에 체중은 25킬로그램 이하였다(2003년 발견된 이들 화석인류는 12,000년~9만 년 전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옮긴이). 하지만 이들은 석기를 만들 능력이 있었으며, 가끔 섬의 코끼리를 어찌어찌 사냥하기도 했다. 사실은 그 코끼리들도 왜소화된 종이었지만 말이다.
2010년에 우리의 잃어버린 사촌 중 또 하나가 발견되었다. 시베리아의 데니소바 동굴을 발굴하던 과학자들이 손가락뼈 화석 하나를 찾아냈는데, 유전자 분석 결과 이 손가락의 주인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인류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데니소바인(호모 데니소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 다른 동굴이나 섬에서 발굴을 기다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사촌이 얼마나 많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에서 진화하는 동안, 동아프리카의 진화도 계속되었다. 인류의 요람은 다양한 종을 길러냈다. ‘호모 루돌펜시스(루돌프 호수에서 온 사람)’ ‘호모 에르가스터(일하는 사람)’ 그리고 우리 종이다.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란 이름을 붙였다. 이들 종은 덩치가 크기도 했고 작기도 했다. 일부는 무서운 사냥꾼이었고 일부는 온순한 식물 채집인이었다. 하나의 섬에만 사는 종도 있었지만 대륙을 방랑한 종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호모 속에 속해 있었다. 모두가 인간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 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에르가스터가 에렉투스를 낳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낳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우리 종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직선 모델은 오해를 일으킨다. 어느 시기를 보든 당시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는 한 종밖에 없었으며, 모든 오래된 종들은 우리의 오래된 선조들이라는 오해 말이다.
사실은 이렇다. 2백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많은 종이 동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더구나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하는 것일지 모른다. 곧 살펴보겠지만, 우리 사피엔스 종에게는 사촌들에 관한 기억을 억압할 이유가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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