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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이 잎보다 먼저 찾아오는 이유
자연과학자가 배운 기다림의 가치
매화는 잎을 내기 전에 꽃을 피운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전이어서 곤충을 유혹하기에 경쟁률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매화나무를 비롯해서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올괴불나무 등도 잎을 내기 전에 부지런히 꽃을 피운다.
대부분의 식물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핀다.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하고 양분을 만들어 꽃을 피운다. 그러나 이른 봄꽃들은 그럴 시간의 여유가 없다. 곤충들을 선점하여 가루받이에 성공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꽃이 지고 난 뒤부터 만든 양분을 저장해두었다가 이듬해 봄꽃을 피우는 데 이용한다. 잎을 내어 광합성을 하기 전에 생식기관인 꽃을 먼저 피운다는 것은 종족번식을 우선순위에 두고 성장을 후순위로 미루는 것이다. 다른 나무들과 경쟁을 피하는 식물의 전략인 셈이다. 수요 공급의 법칙이 이른 봄, 꽃들과 그 매개체 사이에서도 성립된다. 작은 봄꽃들은 왜 성급히 꽃을 피울까 하는 의문에 대하여 답을 구하다 보면 수 세기에 걸쳐 진화한 그들의 계획에 놀랄 수밖에 없다.
자연을 이루는 모든 종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유행이나 대세를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환경과 생존에 가장 적합한 순서를 안다. 꽃을 빨리 피우는 것이 나을까, 양분을 모았다가 나중에 꽃을 피우는 것이 현명할까? 빨리 피는 꽃은 다른 꽃이 피기 전에 진다. 그러나 주목받는 생을 산다. 꽃이 많이 피는 시기에는 곤충 역시 많은 시기라 꽃들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지구 상의 꽃들은 한 번에 피었다가 한 번에 지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다. 모든 꽃이 일 년 내내 피어 있지도 않다. 사람 인생도 꽃의 개화처럼 절정의 시기가 다르다. 피어 있는 기간도 다르다. 피는 시기나 기간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이나 꽃이나 다르지 않다. 내 인생은 꽃이 먼저일까, 잎이 먼저일까?
봄을 맞는 우리 선조들의 예식은 풍류 그 자체였다. 여든한 장의 매화 꽃잎을 그린 백매화白梅花 그림인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벽에 붙여두었다. 여든한 장의 꽃잎이 찬 기운을 소멸시킨다는 뜻이니, 남아 있는 겨울도 매일 한 걸음씩 물러갈 준비를 할 것이다. 동지 이튿날부터 꽃잎을 한 장씩 붉게 칠해서 마지막 꽃잎까지 색칠을 완성해, 벽 위의 매화나무가 붉은 꽃을 가득 피우면, 때는 경칩과 춘분의 중간쯤에 이른다. 비로소 〈구구소한도〉를 떼어내고 창문을 열면 그림 속 매화가 창밖의 뜰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한다. 기다림 끝에 만나는 계절이기에 더 반가운 자연의 선물이다.
꽃은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건만, 심지어 꽃의 종류는 여름꽃이 가장 많음에도 사람들이 봄꽃에 더 열광하는 이유는 기다림이 더 길고 간절하기 때문이다. 찰나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이고, 긴 기다림 끝의 만남은 더욱 귀하다. 초봄에 피는 꽃들은 화려하지 않고 크기가 작아도 배경이 무채색에 가까운 탓에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매화는 곧 뒤따라 필 벚꽃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매화는 전채요리나 전주음악 같은 아쉬움을 남기고 내년을 기약하며 사라진다.
기다림……. 아기가 태어나 걸음을 뗄 때까지 수백 번을 넘어져도 엄마 아빠는 기꺼이 기다려주었다. 늦게 걸음마를 떼었다고 해서 달리기 선수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다르고 사랑도 다르고 기다림도 다르다. 인내할 줄 모르고 기다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가운데 방황하는 우리는 여전히 꽃 피울 시간을 탐색하고 있다.
매화는 가장 일찍 꽃이 피는 나무 중 하나다. 매화 애호가들은, 매화나무는 가지가 번성한 것보다 드문 것이, 어린 나무보다 늙은 나무가, 비만한 것보다 마른 것이, 만개한 꽃잎보다 오므린 꽃이 귀하다고 말한다. 나무는 오래 묵은 고목이지만 피어난 꽃은 새로워서 더욱 아름답다. 풍성하고 건강하고 굵은 가지에서 하나 가득 꽃이 피어야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요즘의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보다 많은 것, 젊은 것, 있는 것을 한껏 자랑하고 늘어놓아 펼쳐보이는 것이 어느새 우리 삶의 목표가 되고 방향이 되어버린 지금, 매화는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인지 반추하게 만든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지난 세월을 반납시켜주겠다는 유혹의 광고가 버스 한 자리를 채워도 특별할 것이 없는 시대.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칭찬은 기쁜 것이지만 매화가 고목에서 피어나듯, 연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열은 젊음의 정열만큼, 혹은 그보다 더 깊고 강하다. 땅은 지층의 역사로, 나무는 나무껍질 속 나이테로, 사람은 눈가의 주름의 깊이와 개수로 삶을 증명한다.
아무리 오래 보아도 아름답고, 알아갈수록 매력적인 꽃이 매화이다. 매화는 알아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오래 보아야 더 사랑스럽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서로 오래 보고 세월이 지날수록 사랑하고 있을까?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은 많은 부부들로 하여금 상대방을 가구처럼 보게 만드는 듯하다. 한 검색엔진에 ‘부부 20년’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이혼’이라는 연관어가 따라 나온다. 나무의 꽃은 매년 피지만 그 꽃은 작년의 꽃이 아니고, 내년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지도 않는다. 나무는 고목이라도 피어나는 꽃은 매년 새로운 꽃이다. 우리는 서로를 신선함 없는 어제와 같은 꽃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새로 피어난 꽃도 작년의 꽃과 똑같게 보지 않았을까? 꽃의 한쪽 모습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매화는 앞태도 아름답지만 춘향이도 울고 갈 고운 뒤태를 갖기도 했다. 햇살이 꽃잎을 투과하니 꽃잎의 선은 더욱 선명하다.
매화는 싸늘한 공기 속에서 피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초봄에 눈이라도 내려준다면 꽃과 눈의 대비가 만든 아름다운 설중매를 만날 수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이른 봄 도도히 꽃을 피워낸 모습 덕분에 매화는 절개, 충절의 상징이 되었다. 추운 겨울 잘 이겨내고 나온 녀석들에게 잘 견뎠다고, 삶이 겨울일 때 우리도 그렇게 기다려보겠다고, 눈길 한 번 따스하게 건네며 기다림의 가치를 배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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