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속물 근성의 사회
경멸하는 인간, 속물
사람들은 충동과 의무감으로 이런저런 일을 한다. 그런데 충동과 의무감이 매우 생생하고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가치와 무관할 때가 있다. 이 경우 그 충동과 의무감은 허공에 서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허공의 충동과 의무감은 단연 ‘속물 근성’에서 생긴다. 속물의 세계에서는 충동과 의무감이 선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속물들은 속물 근성을 만족시키는 것이 곧 인생의 의미를 구현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이것은 속물 근성이 하나의 세계관이며, 매우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매우 강력하여 단순히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틀을 형성한다. 삶의 경로를 좌우하고, 선택지를 좁히고, 자기 평가의 기준이 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불안감을 만들어 낸다.
속물이란 무엇인가? 속물이란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여러 종류의 위계 속에 등급별로 놓인다.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그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한다.
돈이 많다면, 외모가 뛰어나다면, 사회적 지위가 높다면, 권력이 강하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더 나은 사람이다. 반대로 돈이 적다면, 외모가 못나다면, 사회적 지위가 낮다면, 권력이 약하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볼품없는 사람이다.
위계에는 위와 아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속물은 필연적으로 타인을 경멸하며 자신도 경멸에 노출된다. 그 결과 속물의 삶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 가지 방향은 타인을 틈만 나면 경멸하며 자신이 확보한 위치를 자랑스럽게 뽐내는 것이다. 다른 방향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경멸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추가적인 지위를 획득하고자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때때로 살아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며, 불멸을 찾아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증오하는 세력가와 자신이 경멸하는 부자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영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비굴과 그들의 보호를 거만하게 자랑한다. 자신의 노예 상태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그 노예 상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속물에게 중요한 것은 위계에서 위치이지 활동이나 속성 자체의 가치가 아니다. 이 점에서 속물에게는 가치가 뒤바뀐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등 요리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자신이 그려 낸 위계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래에 놓이는 것이 꿈이요 포부가 된다. 타인의 권리와 복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타적인 인간이라고 인정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깎아내리는 일이 주된 충동이 된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속물은 진정으로 향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속물이 유일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은 허영심뿐이라고 말했다. 속물은 이상적인 것과 탁월한 것에서는 아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며, 특히 정신적인 것을 음미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속물은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제나 발버둥 치고, 의지를 간질이는 사소한 놀이에 몰두한다.
속물의 포부는 양립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사람들 위에 서려면 자신 아래 있어서 자신을 우러러볼 사람들이 필요하다. 덜 경멸받고자 하는 욕구는 오로지 타인을 더 경멸받는 지위로 몰아넣음으로써만 충족할 수 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그들 각자의 속물의 포부를 성공적으로 실현한다면, 그들 자신의 삶은 시궁창에 처박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칸트는 “서로 동등하게 존경하는 이들에게도 필수적인 예의와는 전적으로 다른” “전하, 존하, 좌하, 각하”와 같은 말들은 “인간들 가운데 넓게 퍼져 있는 비굴로의 성벽의 증거들이 아닌가”라고 질문하면서, “자신을 벌레로 만드는 자는 나중에 그가 짓밟힌다고 불평할 수가 없다.”고 했다.
속물이 속물의 세계를 만든다
외모, 재력, 권력, 명예는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 속성이지만, 속물은보통 자신의 자존심을 어루만져 줄 속성을 의도적으로 고른다. 자신이 괜찮은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법한 속성을 골라 위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속물들이 탄생한다. 외모, 돈, 권력, 명예뿐만 아니라 학력, 교양, 도덕까지도 속물의 척도가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높은 지위가 그에 합당한 존경을 받느냐에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빼어난 외모가 인정받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남들이 자신을 교양 있는 신사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이 다양성 자체가 속물들의 상호작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어떤 속성으로 누군가가 위계를 만들고 경멸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면 그 속성을 덜 갖추었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사람은 크게 마음 상하고 반발심을 품을 것이다. 그는 반작용으로 그 밖의 다른 속성으로 타인을 경멸할 수 있는 세계관을 정립한다. 누군가가 돈이 많은 사람은 가치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패자라고 경멸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돈이 많아도 머리가 빈 교양 없는 족속은 가치 없는 자라고 경멸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지배적 속성의 힘은 부인할 수 없다. 돈이 많고, 권력이 강하고, 인기가 많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위계의 정점에 오른다. 위계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겉치레로 위로하는 말만 주어지고, 실은 끊임없이 ‘당신의 삶은 가치 없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가 보내진다. 지배적 속성 이외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속물들은 다분히 지배적 속물 근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드러지게 속물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경멸할 일도 뽐낼 일도 자주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속물 근성에 젖어 있지 않더라도, 이따금씩 속물들을 만나기만 해도 인생의 의미에 대해 뒤틀린 시야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속물들이 자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속물들은 사람이라면 가지기 마련인 자연스러운 인정 욕구를 자신들이 그려 낸 위계에 우겨넣어 좌절시킨다. 그렇게 해서 자의식은 자동적으로 위계를 인지한다. 자발적으로 속물 근성의 세계관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속물들에게 자극받으면 ‘주위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낫다.’, ‘저 사람은 이런 점에서 참 한심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검색하고 감지하고 확인하는 습성에 빠진다. “탐욕스러운 자는 이웃에게 독을 전파한다.”
자의식에 대한 이런 자극은 정형화된 삶의 흐름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속물들은 시험을 치르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배우자를 만나고, 집을 사고, 자녀를 기르는 인생의 흐름을 무난히 따르는가, 따른다면 얼마나 잘 따르는가를 항상 따진다. 이런 삶의 흐름을 인생에서 당연히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특별히 속물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채, 정형화된 삶을 무난히 따르지 않는 자들을 경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도 경멸당할지 모른다고 불안해한다. 한 가지 드물지 않은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정규적인 직장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노력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여전히 삶의 여러 부분이 불안하다. 우선 주택담보 대출금 상환에 허덕이고 있고, 아이들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매일 게임만 한다. 배우자와는 서로 데면데면 사무적인 이야기만 나눈 지 오래되었다. 이 사람이 대학교 동창을 오랜만에만났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서로 사는 이야기도 나누려 만난 것이다. 반가운 마음이 크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창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동창의 일상을 전해 듣다가 “너도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운을 띄운다. 물론 이 말은 동창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나온 진중한 조언이 아니다. 단지 때가 되었으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을 기계적으로 꺼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대화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동창은 자신은 지금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주저하면서 말한다. 동창의 말에 이 사람은 격앙한다. 이야기는 점점 열기가 더해져, 결국 동창으로부터 ‘배우자로 매력을 느끼면서도 내가 지금 이루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이 없다.’는 진술을 받아 낸다. 이 진술에 이 사람은 집중포화를 가한다. 그가 보기에 동창은 자신보다 외모가 나은 것도 아니요, 직장이 좋은 것도 아니므로 더욱 한심해 보인다. 요지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더 힘들어진다. 눈을 낮춰서 결혼해서 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창이 배우자감으로 내세운 조건이 허황되다고 본다. 물론 동창은 그런 배우자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신의 삶의 복지와 의미를 위해서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이 사람은 동창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보다 위계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단지 변변찮은 소득만을 올리고 외모도 번듯하지 못한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크게 잘못된 것이다. 동창은 당연히 비난받을 만하다. 응당 위계에서 자기 자리에 찌그러져야 하는데 엉뚱하게 위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대화가 끝난 뒤에 이 사람은 자신이 어떤 속물적인 언행도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삼키기에 쓴 진정한 조언을 친구에게 해주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속물의 세계관이 통상적인 삶의 흐름에 맞추어져 발현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자극하는 것이 위계의 구조에 부딪혀 상처가 나고 부풀어 오르는 속물 근성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물론 다른 곳에 가서는 자식의 성적, 자신과 배우자의 급여, 모아 놓은 재산을 두고 자신도 비슷한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자의식에 자극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런 공격을 받지 않는 상태, 즉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야말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며 나아갈 가치가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