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뭄바이에서 예일 대학교까지
요즘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되 도중에 중퇴해야 한다. 낮에는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또 테크놀로지 회사를 창업해서 공개해야 한다. 이것은 요즘에 새롭게 정립된 아메리칸 드림이다. 이런 시도를 할 만한 모험심이 강하지 않다면 전기공학을 전공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풍족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할 금기는 교양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폭넓은 지식을 함양하는’ 교양 교육이란 개념은 미국과 미국의 크고 작은 대학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 교양 교육은 기피의 대상이다. 테크놀로지와 세계화로 정의되는 시대를 맞아, 모두가 기능技能에 기반을 둔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물론이고 교육자까지도 국가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능 중심 교육이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이제 헛된 꿈을 그만 버리고 직장에서 필요한 기능과 능력을 실질적으로 함양할 방법을 강구하라고 재촉한다. 지식을 향한 폭넓은 탐구는 이제 어떤 결실도 맺을 수 없는 길이라 여겨진다.
*
일반 교양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보수주의자들은 교양 교육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고 씩씩댄다. 하지만 ‘진보liberal’란 단어는 당파적인 의미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은 교양 교육이 지나치게 엘리트 지향적이라 불만을 터뜨린다. 반면에 학생들은 심리학으로 학위를 받더라도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 걱정하고, 부모들은 노후를 위해 저축한 돈을 그런 자식들에게 빼앗길까 노심초사한다.
이런 불안감의 증가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학 등록자 수는 증가했지만, 영문학이나 영어학 및 철학 같은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의 비율은 급격히 감소했다. 예컨대 1971년에는 대학 졸업자의 7.6퍼센트가 영어학과 영문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2012년에는 그 숫자가 3.0퍼센트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에 경영학을 전공한 학부생의 비율은 13.7퍼센트에서 20.5퍼센트로 증가했다.
이런 변화가 고등교육기관에 새롭게 진입하는 학생들이 교양 과목보다 직장 생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실무적인 학문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교육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던 초창기에는 이렇지 않았다. 예컨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학생들은 대학을 직업학교 이상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민자 가정과 중하위 계급 출신의 학생들은 교양 교육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대학을 직업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을 보았고, 미국 문화에 동화되는 방법의 하나로도 생각했다. 필립 로스Philip Roth의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의 주인공으로 이민자의 아들인 알렉스 포트노이는 “나는 영어를 완전무결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미국 고등교육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처음 수십 년 동안에는 영어영문학과 역사학 등 인문학의 인기가 높았다.
요즘 미국 고등교육이 직면한 위험은 지나치게 많은 학생이 교양 과목을 공부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자. 2011-2012 학년도의 경우, 미국 학부생의 52퍼센트가 2년제 대학의 재학생이었고, 48퍼센트가 4년제 대학교의 재학생이었다. 2년제 전문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문 분야는 건강관리와 그에 관련된 학문이었고(23.3퍼센트), 비즈니스와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하는 학생은 11.7퍼센트였다. 4년제 대학교의 경우에도 전반적인 양상은 거의 똑같았다. 비즈니스를 전공하는 학생이 가장 많아 18.9퍼센트였고, 두 번째가 건강으로 13.4퍼센트였다. 한편 학사학위 수령자 중 3분의 1만이 이른바 교양 학문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분야를 공부한다는 조사도 있다. 또한 전체 학부생 중 1.8퍼센트만이 애머스트, 스와스모어, 포노마 등과 전통적인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에 다니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역사학이나 문학 혹은 철학,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도 그다지 많지 않다. 대다수가 업무 현장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고 있다. 그런 학문이 취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미국인에게 기술 교육이 필요하고, 모든 미국인에게 더 많은 과학적 소양scientific literacy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자리와 취업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학생들이 인문학을 초조하게 포기하고 경영학과 언론정보학 강의를 선택한 만큼이나 공학과 생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하기야 모두가 과학에 재능을 지닌 것은 아니다. 많은 학생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학문과 관련된 강의들을 더 심도 있고 다양하게 수강하고, 컴퓨터와 수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으로 보충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4년제 대학에서 교양 과목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기술교육의 부족 현상이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이 무엇이든 간에 교양 학문을 향한 공격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 말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텍사스와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위스콘신 등에서 주지사들이 주립 대학교에서는 교양 학문들에 더 이상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릭 스콧Rick Scott 플로리다 주지사는 “인류학자가 더 많아진다고 우리 주에게 이익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위스콘신 주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문 직종에 일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훈련시키지 않는 학문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할 예정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모닝 인 아메리카」의 진행자 윌리엄 베넷William Bennett은 페트릭 맥크로리Patrick McCrory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에게 “대체 몇 명의 철학박사에게 보조금을 지원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지만, 맥크로리 주지사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의견을 담은 질문이었다. 얄궂게도 베넷 자신이 철학박사 소지자로, 철학을 공부한 덕분에 정부, 언론계와 비영리기관 및 민간 영역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공화당원만이 교양 학문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모두가 직업으로 곧장 이어지는 유형의 교육을 앞다투어 장려하는 추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14년 1월의 연설에서 “장담하지만, 예술사 학위를 가진 사람보다 뭔가를 만들어낸 능력을 갖추거나 경영을 배운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나중에 이 발언을 ‘경박’했다고 사과했지만,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기간 내내 이와 유사한 의견을 꾸준히 피력해왔다. 요즘 세계에서 대학 졸업생은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는 학문과 도구에 주력해야 한다는 오바마의 생각에 보수적인 공화당원과 무당파만이 아니라, 많은 진보적 자유주의자까지 동의하고 있다. 교양 교육의 무용성은 워싱턴에서 보기 드문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진 의견이다.
교양 교육에 대한 공격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교양 교육이란 개념과 목적에 대한 의견마저 제각각이라는 게 그 증거이다. 교양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양 교육의 장점과 미덕을 역설하는 반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교양 교육이 기껏해야 값비싼 사치품이고 최약의 경우에는 역효과를 낳을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라고 주장하며 “애플리케이션의 시대에 영문학을 공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의문 자체가 비非미국적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기능에 기반을 두지 않은 교육을 모두에게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달랐다. 하버드의 경제학자 클로디아 골딘Claudia Goldin과 로런스 카츠Lawrence Katz가 교육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은 어린아이들을 어린 나이에 검사해서 소수만을 선택해서 해당 직업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일련의 기능을 가르치도록 특별히 설계된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가르쳤다. 반면에 “미국 교육 시스템은 개방적이고 관대해서 보편적인 기준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또한 커리큘럼이 학리적이지만 실용적인 것도 미국 교육 시스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새로운 도시와 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 미국은 특정한 직업 훈련과 도제 교육이란 유럽식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지역별로 오랜 시간을 두고 확립된 길드와 조합이 지역민들에게 유일하게 장래의 진로까지 제공했지만 미국에는 그런 지역이 없었다. 또한 미국인들은 새롭게 형성되고 활성화되던 경제의 일원이기도 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노동의 성격이 끊임없이 변했고, 그에 따라 직업에 필요한 조건도 달라졌다. 게다가 하나의 산업에 평생 틀어박혀 종사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골딘과 카츠의 분석에 따르면,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이 특수교육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지만 학생이나 그들의 부모가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대중을 위한 일반교육을 점진적으로 중등학교 수준과 대학교에서 공적으로 지원한 최초의 국가였다. 지금도 다른 국가에 비하면 미국의 고등교육은 훨씬 폭넓고 다채롭게 운영된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전통적인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1,400개 교육기관이나, 상대적으로 제한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1,500개 교육기관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진학할 수 있다. 골딘과 카츠의 계산에 따르면, 일인당 대학교육기관 수를 비교할 때 영국은 미국의 절반, 독일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의 고등교육을 한층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하려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사실은, 이런 방향 전환이 역사적으로 차별성을 띠었고 유일무이하기도 했던 미국의 고등교육 접근법을 포기하는 것이란 점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