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산촌자본주의’를 추천하다
‘경제 100년의 상식’을 깨다
결코 편리한 도시생활을 버리고 시골생활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탄Bhutan 같은 행복’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생활 자체는 그다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은 ‘혁명적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것은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경제 상식’에 농락당하고 있는 사람은 예를 들면 이런 사람이다. ‘돈을 더 벌어야 해,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해’라는 생각으로 맹렬히 일한다. 당연히 집에 가서는 잠만 자는 생활. 식사 준비를 할 시간도 없어서 전부 밖에서 사오고, 빨래도 못 해서 양말 같은 것은 편의점에서 새로 사는 일이 다반사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는 실은 그다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급은 많이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일 물건을 구입하는 지출이 치명타가 되기에 수중에 돈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더 노력한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월급은 올라가지만 그만큼 스스로 하는 일은 더 줄어들고 지출이 늘어난다. ‘세상의 경제’에 있어서 그는 고마운 존재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그러진 생활이다.
오늘날의 경제는 “자잘하게 절약하지 마라. 계속해서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해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수익을 올리면 된다. 규모를 키울수록 이익은 늘어난다. 그것이 바로 ‘풍요로움’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런 생활방식을 장려하고 있다.
미국이 약 100년 전에 시작한 이러한 ‘상식’은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침투했고, 그 뒤에는 발전도상국으로 확산되어갔다. 울타리 없는 글로벌 경제체제가 성립되고 지금은 전 세계의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가 동일한 상식을 바탕으로 동일한 풍요로움을 추구하게 된 그 순간, 선진국이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경제상황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발상의 전환’이다.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앞에서 소개한 ‘낭비청년’의 뒷이야기를 우리의 취재성과를 반영해 각색한 스토리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열혈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청년. 실은 회사도 맹렬한 경쟁을 겪고 있었다. 라이벌은 최근 매출을 늘리고 있는 신흥국의 기업이다. 같은 수준의 상품을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다. 경쟁력의 비밀은 신흥국의 저렴한 임금이다. 회사는 주주로부터 ‘비용을 더 삭감하라’라는 압력을 받아 ‘노동 코스트’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는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했다.
실의에 빠진 그는 시골로 돌아왔다. 괜찮은 일자리도 없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과일로 100% 무첨가 유기농 잼을 만드는 잼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다. 월급은 이전의 10분의 1.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난뱅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잼 공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한 달에 몇만 엔씩 내고 있던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정말 꼭 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원시인이 되라는 건가요?”라고 대답하자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너희들은 휴일이 되면 큰돈을 들여서 캠프장을 찾아서 장작과 숯으로 밥을 지으며 즐거워하잖아. 여기는 그런 일들을 매일 할 수 있는 곳이야. 주위에는 나무가 얼마든지 자라고 있어. 그런데 멀리 아랍에 있는 나라에서 사온 석유나 천연가스 그리고 그것으로 만든 전기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 말도 안 돼.”
청년은 시도해보기로 했다. 냉장고와 세탁기는 평범하게 사용하면서(직접 빨래를 하는 ‘평범한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저씨들이 가르쳐준 대로 석유 드럼통을 개조한 ‘친환경 스토브’라는 것을 만들어 거기에 솥과 냄비를 올려 식사준비를 하기로 했다. 안에 단열재를 넣어서 에너지 효과를 개량했다는데, 뒷산에서 주워온 잡목 5개로 하루치의 밥을 지을 수 있다. 광열비는 확실히 줄었다.
근처에 사는 할머니가 놀리고 있는 밭을 빌려서 채소농사도 시작했다. 아직 첫 농사라 그리 수확이 많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는다. 실은 할머니가 채소를 나눠주고 있다. “가지랑 오이가 너무 많이 열려서 썩히게 됐으니 먹어” 하면서 가져다준다. 덕분에 슈퍼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가더라도 채소는 거의 사지 않게 되었다.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월급이 10분의 1이라도 전혀 힘들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음식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어졌다. 도시에서는 고급 식재료 가게에서 파는 수준의 유기농채소. 몇만 엔이나 하는 ‘최신형 전기밥솥’보다 맛있게 지어지는 친환경 스토브의 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삶이 즐겁고 인간다워졌다. 도시에서 맹렬하게 일하던 시절에는 직장을 제외하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은 편의점 점원 정도였다…. 확실히 ‘풍요’로워졌다.
시골생활에 흠뻑 빠지게 된 청년. 그러나 ‘도시에서 이런 생활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친환경 스토브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도시는 도시대로 문서파쇄기에서 폐지가 산더미처럼 나오잖아. 그걸 비싼 돈을 들여 운반해서는 태워버리고 있잖아.”
글로벌 경제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다’ 하고 포기했던 지출을 다시 검토하고 줄여나간다면 ‘풍요로움’을 되찾을 수 있다. 그렇게 경제는 ‘우리들의 것’이 되어간다. 이것이 ‘경제 100년의 상식을 깨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발상의 출발점은 ‘머니자본주의’
우리가 ‘경제 100년의 상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그것은 2008년 가을, 미국의 증권회사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발생한 이른바 ‘리먼쇼크’(리먼 사태)였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머니자본주의〉라는 NHK 스페셜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리먼 사태를 계기로 마치 유리판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처럼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자동차업계도 취재했다.
어째서 일개 증권회사의 파산이 전 세계를 위기에 빠트린 것일까? 어째서 미국의 금융가 월스트리트의 실패가 세계 실체경제의 근간이 되는 자동차산업으로 옮겨가 자동차산업을 화염에 휩싸이게 만든 것일까? 베일에 싸인 세계의 내부로 들어가 취재를 시작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사기 같은 시스템에 발을 담그고 있었는지를 알고 경악하게 되었다. ‘사기경제’로의 전락. 그것은 지금까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 세계로 확산된 ‘미국형 자본주의’의 급속한 쇠퇴와 그것을 연명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세계경제의 견인자들이 취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조치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1970년대 초의 닉슨쇼크였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는 달러화를 언제 어떤 경우라도 일정량의 금GOLD과 교환할 수 있다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던 시대의 시스템. 이것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다른 나라 통화와의 교환비율이 변화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20세기가 끝날 때까지의 30년간, 미국경제는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압도적인 힘을 자랑했던 미국경제. 그 상징이 세계최대의 자동차제조기업 GMGeneral Motors이다. 1960년대의 전성기 때는 매년 눈덩어리처럼 이익이 늘어났기 때문에 종업원의 월급을 아무리 올려도 돈이 남아서 먼 장래를 위한 대비, 즉 연금을 계속해서 늘려나갔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고의 우량기업이었다. 미국이 전 세계로 확산시킨 ‘풍요로움의 형태’는 이러한 ‘계속 성장하는 거인들’, 즉 GM, 전기의 거인 GEGeneral Electric, 화학업계의 거인 듀폰DuPont 등과 같은 우량기업의 성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순조로운 성장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리는 없다. 무시하던 일본자동차 등의 추격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결국 ‘달러박스’인 미국시장을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동차왕국 디트로이트에 군림했던 주 수입원 ‘빅3’의 쇠락으로 미국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후퇴를 제대로 된 실적회복에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한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돈=머니’였다.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그것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해버린 것이었다.
리먼 사태 이후의 미국에서 우리는 그 ‘사기 같은 경제의 최후’를 목격할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딜러가 보여준 신차 구입자용 신청서. 직업도 수입도 묻지 않는 형식이었다. 딜러는 말했다. “거리에서 빈 캔을 줍는 사람에게도 자동차를 팔았죠.” 그가 팔고 있던 것은 한 대에 700만 엔이나 하는 SUV라는 고급 4륜구동 자동차였다.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자동차를 팔 수 있었을까? 그것은 대출을 받게 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라면 “하지만 대출을 받으면 갚아야 되잖아?”라고 질문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지 않다. 대출을 갚을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대출은 곧바로 채권이 되어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잔뜩 모인 대출채권을 조합해서 ‘수학적 가공’을 거치면 금융상품이 만들어진다(대출채권은 몇 년 뒤에 이자가 더해진 큰 금액이 되어서 돌아오는 ‘금융상품’이다. 그렇기에 몇 개의 대출을 합쳐서 만든 금융상품을 사두면 몇 년 뒤에 그 이자가 더해진 금액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한마디로 고금리 금융상품이다. 참고로 대출은 상환기한이 오기 전에 차환된다. 그렇게 하면 영원히 손해 볼 일은 없다. 이러한 시스템을 고안해낸 한 사람이 설명해주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은 이런 금융상품을 엄청나게 많이 팔고 있다. 금융상품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쳐날 정도로 많다. 조금이라도 수중의 돈을 불리고 싶은 연금기금 등이 가장 큰 손님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처음부터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 빌린 대출은 투자하기에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실은 그 과정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조금 전 ‘수학적 가공을 거친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의 수학 천재들이 월스트리트에 모여 특수한 수학이론을 구사하여 그 금융상품의 ‘대손貸損 리스크’를 계산하고, 그 리스크를 모아서 그것을 다시 금융상품으로 판매한다(그 금융상품 중의 하나가 CDS1)이다)는 기발한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이런 기술을 ‘금융공학’이라고 부른다.
취재에 참여했던 디렉터는 천재 한 사람을 찍어온 VTR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의미 불명의 수식이 가득 적힌 긴 글을 엄청난 속도로 스크롤을 내리며 읽고 있었다. 행도 글자도 전혀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순식간에 다 읽은 뒤에 그 안의 한 수식에 대해 논평하고 있었다. 분명히 천재였다.
21세기가 시작되고 한동안 세계경제를 이끌었던 미국의 호경기는 이와 같은 천재들이 개발한 ‘불가사의한 시스템’ 덕분에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없어도 고급자동차를 살 수 있었던 사람, 자동차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서 신바람이 났던 딜러와 자동차제조회사, 대출채권을 모아 금융상품을 엄청나게 만들고 팔아치워서 큰 수익을 올린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그리고 그 금융상품에 투자해서 노후자금을 효과적으로 불리고 있던 연금기금. 모두가 행복했다. 리먼브라더스라는 거대 증권회사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그 순간 ‘속임수’로 유지되고 있던 시스템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세계경제가 한순간에 이상해진 것도,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GM이 경영파탄으로 내몰린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마법이 풀려버린 것이다. 세계는 지금도 여전히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리스부터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로 산사태처럼 신용불량이 확대되고 있는 유로 위기. 매년 늘어가는 일본의 국가부채도 약 1,000조 엔에 달해서 슬슬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미국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장기간의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좀처럼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그런 미국을 대신해 세계경제를 견인해온 중국경제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약해진 나라’가 돈의 먹이가 되었다
이런 세계경제를 보고 우리는 왜 지금이야말로 ‘산촌里山자본주의2)’라고 생각한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전 세계 사람들이 세계적인 돈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역시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무너뜨려서 ‘건실한 경제’로 바꿀 수 없을까?
앞에서 현역일 때 노후대비를 해두는 연금구조는 기업이 상상을 초월한 성장을 계속하던 시절에 확대되었다고 말했다. 기업과 국가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생각 없이 모두 그 방식을 따라 했으며 선진적인 풍요로움의 방식을 추구해 동료가 되었다. 그러나 전제가 되는 ‘성장’이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역시 아니나 다를까, 실체경제의 성장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우량기업의 주식을 사두면 주가가 올라 돈이 점점 불어나던 시대는 끝나버렸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같이 노후대비를 연금에 의지하려 했고, 어떻게든 예정대로 돈을 불리고 싶어 했다. 그 결과 거짓말로 유지되는 고금리 금융상품에 전 세계의 연금머니가 쇄도하는 사태가 초래되었다.
그리고 리먼 사태 뒤에 찾아온 세계경제의 변화. 위기에 빠진 월스트리트나 GM과 같은 기업을 구하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국가가 재정을 출동시켰다. 빚을 대신 짊어진 것이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번에는 빚을 대신 짊어져서 ‘약해진 나라’가 돈이라는 맹수의 먹이가 되었다. 이것이 유로 위기의 본질이다.
유로권 중에서도 가장 약했던 그리스가 제일 먼저 희생양이도 되었다. 파산한 그리스는 재정재건을 위해 국민연금을 삭감했다. 국가가 이런 결정을 강행하려고 했을 때, 광장에서 항의표현으로 자살한 고령자가 있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후를 윤택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모두가 예외 없이 연금을 받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청경우독晴耕雨讀’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날씨가 좋으면 밭에 나가 일하고 비가 오면 집에서 쉬는, 연금이라는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생각하던 노후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청경’, 즉 날씨가 좋으면 일을 한다는 부분이다. 이 노인은 어째서 연금을 받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드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먹을 것은 가능한 한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구입하는 것이 적다. 현금이 필요한 지출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 “그건 무리다. 지금의 근대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는 반론이 돌아올 것이다. 확실히 100%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돈을 지불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반드시 사야만 하는 것인가? 정말 그렇게 하는 편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가?”라고 묻고 싶다.
예를 들어, 산속의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인 농촌에서 사는 사람. 잠깐 산책을 하면 장작 네다섯 개를 줍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소過疎지역이라고 불리는 섬에 사는 사람. 날씨만 좋다면 잠깐 낚싯줄을 드리우면 그날 저녁식탁에 올릴 생선 한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축복을 누리는 생활을 연금에 의지하는 생활의 ‘서브시스템’으로 넣어본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우리들은 그런 삶의 방식을 ‘제대로 된 경제’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또는 그런 생각을 강요받아왔다. 이런 사고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바로 ‘산촌자본주의’이다.
‘마초적인 경제’로부터의 해방
도쿄에서 〈머니자본주의〉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던 시절에는 이의를 제기하기만 했을 뿐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돈은 규모가 큰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다. 돈과 결별하는 것은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서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버리는 것과 같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들은 어느새 자력으로는 호흡조차 할 수 없는 환자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일본을 덮쳤다. 정작 위기가 찾아오자 돈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그런 세상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스위치를 켜면 전기를 쓸 수 있는 당연한 생활도 한순간에 멈춰버렸다. 어딘가 멀리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에너지에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계획정전3)으로 깜깜하게 변해버린 도시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완전히 편입되어 있는 리스크가 한순간에 현실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해 6월, 나는 도쿄에서 히로시마広島로 전근을 갔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을 경험했다. 시골이 짊어진 영원한 과제인 과소와 고령화라는 어두운 이미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기운차고 쾌활한 시골 아저씨들’을 만나 지금까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대표선수 중 한 명, 주고쿠中国지방의 산속마을 히로시마현 쇼바라시庄原市에 사는 와다 요시하루和田芳治 씨는 취재차 방문한 우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나는 말이야, 뭔가 하자야”라고 말하기에, “네? 하자가 있다고요?”라고 되묻자 옆에서 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알고 보니 “언젠가 뭔가 하자고, 뭔가 해보자고 말하면서 뭔가 시작하거든”이라는 이야기였다. ‘뭔가 하자’ 동지들끼리 개발해서 보급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 뒷산의 나무로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친환경 스토브’이다. 동지들은 전국의 시골에서 “이봐, 국수를 만들었어”, “이봐, 맛있는 버섯을 땄어”라며 이것저것 보내준다. 그 보답을 어떻게 할지 머리를 짜내던 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우리를 근처의 텃밭으로 끌고 갔다. 단호박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냥 단호박이 아니었다. 못으로 상처를 내서 메시지를 새긴 단호박이었다. ‘고맙습니다’나 ‘웃는 얼굴’같은 글자가 볼록하게 솟아오른,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선물. 뜻하지 않게 ‘NHK히로시마’라고 적힌 단호박을 건네받았다. 우리도 완전히 동지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목표로 삼을 만한 산촌자본주의의 ‘하나의 완성체’. 그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정식으로 소개하겠지만 조금만 설명하자면, 그것은 그저 단순히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자원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철과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강한 것’을 좋아하던 20세기의 ‘마초적인 경제’ 형태에도 의문을 던지는, 가치관의 전환까지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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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의 약어. 기업의 부도위험 등 ‘신용’을 사고팔 수 있는 신용파생상품거래. 대출이나 채권의 형태로 자금을 조달한 채무자(기업)의 신용위험만을 별도로 분리해 이를 시장에서 사고파는 금융파생상품의 일종이다.
2) 일본어로 ‘마을 숲, 마을 산’을 의미하는 ‘里山’을 이 책 본문에서는 ‘산촌’으로 번역했다. ‘산촌자본주의’는 ‘예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자산을 재이용함으로써 원가 0엔으로 경제재생과 공동체의 부활에 성공하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이다. 2012년 2월부터 일본 NHK에서 〈里山資本主義〉라는 이름의 TV프로그램으로 방송되었다.
3)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전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2011년 3월 11일부터 약 2주 동안 관동지역을 중심으로 제한적 전력공급, 즉 계획정전이 실시되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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