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몇십 년이나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五味太郎다. 젊었을 때부터 유랑극단의 연출에 참가하기도 하고, 마네킹을 제작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디자이너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흥미가 있는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부딪치는 동안 어느새인가 그림책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어린이를 위해서’라든지 ‘교육을 위해서’라는 생각보다는 그림책은 ‘발견’이고 ‘발명’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미 타로는 즐거운 것을 발견하는 천재다.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달인이며 상업적인 아티스트다.
28세에 그림책 작가가 되어서 71세인 현재 최신작 『조심해きをつけて』童心社, 2015까지 378권이다. 이 정도의 출판 권수를 자랑할 수 있는 그림책 작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작품은 일본 내에서만 아니라 해외 25개국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있으며 국내외 강연에도 불려 다닌다. 스토리, 말놀이, 색감, 디자인, 어느 것을 거론하더라도 독특하고 개성적인 고미 타로의 세계. 가장 특징적인 것은 고갈되는 일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풍부한 아이디어, 기상천외한 발상,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쾌한 사생활과 멈출지 모르고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직감적인 일상이다.
70을 넘기고도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멈추지 않는 어른 고미 타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단호하게 말한다.
“거침이 없어요, 내가 하는 일은.”
“제가 쓴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스스로 잘난 척해요. 멋지지요?”
“나는 그다지 설명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어른의 시선이 없네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어린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말투는 전혀 없지요.”
“다른 사람이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나도 좀 시켜 달라고 졸라요.”
“‘미술관은 되도록 빨리 걸으세요.’라고 나는 건방지게 말해요.”
“가게에 들어가면 옷이 나에게 말을 걸어요.”
“그날을 위해서 닦아 온 직감이 소중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지 않고, 살지 못하고, 살아갈 힘을 모으지 않아요.”
독창적인 생각과 직감적인 행동력이 뒷받침이 된 고미 타로의 어록의 일부분이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출판이라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지요. 혼자서 가위바위보를 하면 재미가 없지만 상대가 있음으로 해서 ‘가위바위보 할까’하는 기분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제멋대로 ‘읽어 줄 상대가 있다’라고 설정해 두고, 나를 ‘쓰는 사람’ 편에 두고 그림책을 만들고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의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고요. 나는 상대가 있는 놀이를 좋아합니다.
읽는 상대를 전혀 개의치 않고 표현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내가 만약 무인도에 있다면 그림은 그릴지 몰라도 책은 출판하지 않을 거예요. 야자수나 게를 상대로 책을 출판하지는 않겠지요? 역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잖아요. 한밤중에 작업을 하다보면 ‘이거 좋은데!’ 하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지거든요. 그건 최고의 기분이지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얼마 후 ‘누군가 내 그림책을 읽어주는구나!’라고 느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더라고요. 내 책을 봐주는 독자 중에는 꼬맹이가 있잖아요. 아이들은 내 그림책을 즐겁게 봐주는 좋은 독자이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돈이 없다는 거지요. 제 속에는 이런 걸 생각하는 상놈근성이(계산속이) 있기 때문에 어린이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의식으로 작가가 된 사람들과는 생각이 조금 비켜 서 있어요.
꼬맹이들의 반응은 살아있어요. 요 녀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거라면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지요. 왜냐하면 이 녀석들은 재미가 없으면 앞뒤 생각지 않고 버려버리거든요. 어른들은 본전 생각도 하고 때로는 불평을 털어놓기도 하고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꼬맹이들은 가장 냉정하고 독한 독자예요. 그들이 내 그림책을 중간에서 멈추는 일 없이 페이지를 끝까지 넘겨주기를 절대적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80살 노인에게 좋은 반응을 얻거나 40대 후반의 남자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즐거워요. 또 외국에서 출판되기도 하고, 전혀 인연이 닿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런 유쾌한 사건은 나를 너무 흥분시키지요. 이래서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너무 멋진 일인 것 같아요.
굳이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울트라맨이 되고 싶거나 새가 되어서 날아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요.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는 느낌이에요. 꼬맹이 때부터 어떤 일이든 먼저 말을 꺼내는 편이었어요. 예를 들면 “깡통 차기 할까?”라고 말을 꺼내면 모두 함께 놀려고 하잖아요. 모두 어울려 한참 동안 놀다 보면 나는 지겨워지는데 친구들은 여전히 열심히 놀고 있어요. 그러면 나는 그 무리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내곤 했지요. 계속 그런 행동들의 반복이었던 것 같아요.
그림책은 좋아했지만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에도 그리 깊이 고민하지 않았어요. 당시 대충 얼쩡거리던 녀석들이 예술대학에 가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이었어요. 시험을 보긴 했는데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아서 아주 보기 좋게 떨어졌지요. 그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디자인연구소’라는 전문학교 간판을 발견했어요. 뭔가 나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우선 소속감을 가지기 위해 입학을 했어요. 디자인에는 조금 흥미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단, 디자인의 근본은 누군가에게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의식은 가지고 있었어요.
전문학교를 나와서 한참 동안 광고나 상품 디자인을 하는 일이 재미도 있었지만 어딘가 탐탁지 않은 부분도 있었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광고주가 원하는 대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나에는 맞지 않았던 거죠. 그러던 참에 그림책을 그려봤더니 즐거웠어요. 그렇게 10권 정도 그렸을 즈음에 친구가 “이거 팔면 좋지 않아?” 하면서 출판사 리스트를 건네주었어요. 아이우에오 순으로 그린 그림을 가져가 보았더니 “좋네요. 우리 출판사에서 출판하죠!” 하고 말해 준 곳이 이와자키 출판사였어요. 그 책이 생각보다 팔려서 두 번째 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그 후로 점점 더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그림책 작가’라고 불리고 있더라고요.
“그림책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나에게 있어서 그림책을 만드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생활’이지요. 그저 이걸 잘 하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이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지요.
‘편안하다’라는 뜻을 가진 ‘樂락’과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楽しい’라는 형용사는 같은 한문을 사용하지요. 다시 말하면 즐거워서 하는 일은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나에게 있어서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가장 편한 일이예요. 그러니까 계속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즐거운 일을 찾아서’라는 것이 우리 고미五味 집안의 전통이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즐거우면 열심히 살게 되잖아요. 그러니 여러분도 좀 더 진지하게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자기발견을 하는 것에 시간을 쓰면 좋겠어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광고 일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했었는데, 광고주에게 클레임을 받기도 하고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림책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쉽거나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어느 날 상을 받기도 하고 출판한 책이 증쇄를 거듭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그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놓고 싶어요. 그 이외의 여유는 그리 필요하지 않고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초대를 받아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는데, 활기찬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이는 잘하면 3학년 정도까지예요. 역시 이 정도의 꼬맹이들은 재밌어요. 확고한 자기 자아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 이상이 되면 학교 교육의 영향을 받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면서 어른들이 기대하는 말을 골라서 해요.
어디에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대방에 따라서 태도가 변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데요. 나 자신도 그런 부분을 그림책 속에 담고 있어요. 그림책 속에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해’라는 부분 이외는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들의 꿈을 위해서’라든지, ‘어린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든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좋아하니까 그림책을 만들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나를 믿고 좋아하지요. 고미 타로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보통 우리는 ‘어른’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지요? 하지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고미 타로로 살아 왔어요. 그 속에는 가끔 어린이로 불리기도하고, 초등학생으로 불리기도 하고, 어른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요. ‘어린이’라는 것은 그저 하나의 직함에 불과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특별히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지는 않아요. 나의 그림책을 읽고 편지를 주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폭이 넓지요.
그림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편집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고미 타로 씨는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요? 아니면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요?”라고요. 나는 “특별히 없어요.”라고 대답했지요. “그럼 왜 그림책을 쓰나요?” 하고 물으면 “그저 재미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어요. 좀 더 멋지고 그럴싸한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참말로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있는 그것뿐이에요.
차분히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특별히 뭔가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의 어린이들은 자기 자신이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것이 언젠가부터 산수를 못하는 아이,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 음악적인 감각이 뒤떨어지는 아이로 바뀌어가면서 ‘좀 더 노력합시다!’라든지 ‘잘 했네요!’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내가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전에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별로 부족한 것이 없었으니까요.
“장래에 뭐가 되고 싶어요?” 하고 어린이들에게 물으면 뭐 별 생각이 없다는 느낌이에요. 신칸센 운전사라든지 간호사라든지 이런 대답들은 어른들의 기대에 맞추어 대답해 주는 것이지요. 이 정도는 말해 두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린이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지요. 어린이들은 매우 친절한 존재거든요. 그래서 어른들을 힘들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조금 굽히는 것으로 ‘피할 수 있는 거라면 피하지 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집에서는 부모님의,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정말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어버리게 돼요.
어린이는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예요. 부모는 ‘아이들을 키워야지’라든지 ‘안내해야지’라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어린이들이 자라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처음부터 ‘키운다’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말이에요. 나는 자주 “수염을 기르셨네요”라는 말을 듣는데 그건 아니지요. 그 수염은 깎고 남은 거잖아요. 의지로 기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수염이 자라는 거지요. 아주 단순한 사실인데요.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자라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면 되는 거지요. 서두르거나 당황해보았자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도 지금의 교육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다, 문제다 말해요. ‘너는 불가능해.’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해서 잘 못 하는 것까지 잘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지경이지요. 성실한 아이일수록 마이너스 면을 메우려고 해요. 그러다보면 자신이 정말 잘하는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없게 돼요. 이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니 단순하게 어린이를 사랑합시다.
* 번역 및 정리: 황진희
★ 2017년 9월 22일,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제3회 순천 어린이 문화포럼 - 어린이·도서관·책〉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글은 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고미 타로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일본에서 진행되었던 인터뷰 기사를 요약·발췌하여 자료집에 실은 글로서, 주최측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