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무엇을 모으고, 무엇을 버리십니까?
A 처음 받아보는 질문입니다. 우선 제일 모으기 힘든 게 금전임에는 분명하고… 제가 뭔가를 모으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 버리기 위해 모으는 것일 겁니다. 제가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있다면 아프리카 미술작품들일 텐데, 그것들 또한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것을 전제로 한 것들이지요. 책은 책장의 로열층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새 책들이 들어오면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물건들, 이를테면 니콘 F3 카메라, 라미 만년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죽 가방, 저절로 구멍이 나고 밑단이 너덜너덜해진 청바지도 곧 제 수명을 다하거나 행방불명될 처지에 몰린 물건들입니다.
무언가를 모은다면 그것을 담아놓을 공간을 필요한데, 그 공간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복마전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공간을 사용할 뿐이지 소유할 순 없지요. 사람은 떠나도 공간은 남는 거니까. 저는 죽어서도 지상에 공간을 차지하는 걸 부질없다 생각하는 쪽입니다.
Q 돌연 하늘에서 떨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행 편도 티켓을 쥐고서 선생님은 고민에 빠집니다.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대차대조표’의 내용과 결과는?
A 고민이라니요? 전 그냥 갑니다. 지금껏 쌈짓돈 털어 다녔는데요 뭐. 편도라 아쉽긴 하지만 공짜 티켓이 생겼는데 못 갈 이유가 없죠.
남아공은 넓어서 여러 번 다녔지만 못 가본 지역이 꽤 많습니다. 우선 요하네스버그에 떨어지면 공항 관광정보센터에 비치된 지도를 잔뜩 챙기고 차 한 대 빌려서 레소토를 거쳐 더반으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음푸말랑가와 크와줄루나탈 주를 돌아다닌 다음 인도양 해안을 따라 포트엘리자베스까지, 몇 번 다녔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가든루트를 따라 다시 케이프타운까지. 여기까지 일주일, 케이프타운과 웨스턴케이프 주에서 또 일주일, 이렇게 보름 싸돌아다니다 돌아오면 대차대조표 그리고 말고 할 일도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기왕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데 왕복 티켓은 안 되나요?
Q 인간을 대표해 외계 생명체 모임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무엇을 자랑하시겠습니까?
A 꼬랑지부터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 모임의 주최 측은 필시 외계의 어떤 생명체일 테니까요.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앞선 기술과 문명을 누려왔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별의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지켜봐 왔을 테고, 우주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책임감을 느끼고 있거나, 공존의 미덕과 세련된 소통의 방식을 갖추고 있거나, 최소한 타자에 대한 예의를 아는 생명체들일 테니까요. 먼저 인류가 오랫동안 가져온 오만과 과오에 대해서 고백하고, 그래도 지구라는 푸른 별에는 아름다움, 희망, 꿈, 사랑 같은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Q 늘 해보고 싶어 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일은?
A 비보이들의 격렬하고 현란한 댄스, 자전거 타고 마실(속초, 고수들이 그렇게 부름)가서 회 먹고 오기, 달력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나 잡아봐라~,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채집해 온 송이로 친구 불러 술 마시기, 케이프타운 앞바다의 황새치 낚시, 차마고도 도보 여행 등등. 이렇게 적고 보니 다 몸으로 하는 거네요.
Q 정해종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어떤 명분으로도 삶을 스스로 구속하지는 말자, 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꼭 말해야 한다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Q 정해종에게 행복이란 ㅇㅇㅇ 이다.
A ‘몰입’이다. 비록 순간일지라도 취한 듯 뭔가에 빠져 있을 때, 그때만큼은 행복이란 게 대충 이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면, 어느 소설가의 표현대로 비루하고 천박하며 던적스러운 생과 마주치는데,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어 괴롭거든요.
사람들은 흔히 행복에는 어떤 조건들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최소한 불행의 이유들은 없어야 하며, 삶의 기본적인 공통분모들에서의 조건들은 충족되어야 한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게 아닙디다. 충족된 조건은 또 다른 조건을 필요로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게 조건들로 구축된 행복의 비극입니다. 몰입의 상태에선 그런 조건들이 안개처럼 희미해집니다. 결핍도 부족함이 아니고 남아도 쓸모가 없지요. 존재는 강렬해지고 에너지는 끓어오르지요.
Q 요즘 품고 있는 고민거리나 ‘불편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A 모든 게 너무 쉽게 익숙해진다는 것,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일들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 싶게 데면데면해져 버리고 만다는 것, 그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늘 그게 문제지요.
일상은 열망을 무장해제하고 열망이 사라진 삶은 견디기 힘들지요. 그리하여 열망은 또 다른 열망을 낳고 마침내 열망은 욕망이 됩니다. 일상은 거대한 욕망의 도가니가 되고… 그러니 어쩌란 말입니까? 두 손 내려놓고 그냥 컹컹 짖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