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떤 한 사람을 죽도록 미워해본 일이 있습니까?
A 죽도록, 정도라면 꽤나 집요해야 할 터인데 생각보다 다른 이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미워하기 전에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내 자신의 말과 행동과 매무새를 되짚다보면 ‘너’에게 건너갈 수 있는 여력 같은 게 바닥나고 마는 거지요. 미운 줄 알았는데 그거 또 미워해서 뭐하나, 그렇게 포기가 빠른 편입니다. 두 번의 연애를 경험하는 동안 두 번 다 뻥 차였을 때 그들이 밉기는커녕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당당히 먼저 인사할 수 있어 맘 편하다는 제 얘기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너처럼 지독한 자기애의 소유자도 드물다고, 불쌍한 건 네가 아니라 오히려 그 남자들이라고, 너와 헤어진 그들은 분명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거라고.
Q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대처하는 비법이 있습니까?
A 우회하지 않습니다.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편입니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면 분량에 맞게 시간을 쪼갭니다. 그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는 공상과 망상으로 분주하고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화상을 크게 입고 병원에서 혀 차는 의사를 만나야 비로소 손이 바빠집니다. 응급실에서 링거 맞으며 한 손으로 시를 쓸 때 고도의 집중력 같은 게 나옵니다. 내 사랑 다디단 포도당!
Q 다시 방문해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습니까?
A 스페인, 그중 남부의 그라나다요. 일행들과 플라멩코를 보러 집시마을에 간 적이 있습니다. 흰 굴 같은 집안에서 벌어진 공연 말미에 무희 중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플라멩코를 함께 추자는 제스처를 보내왔는데 그때 의자를 부여잡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버텼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런 손사래로 바쁠 때 단발머리를 한 중년의 일본인 여성 하나가 제 흥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걸어 나오더니 춤사위인지 허수아비노릇인지 모를 몸짓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곳, 그 ‘로씨오의 동굴’. 다시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춤을 배울 작정입니다. 다시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그땐 여행이 아니라 여생을 목적에 둘 작정입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라나다는 한밤중에도 참 하얗게 분칠을 한 도시였는데 말입니다.
ⓒ José Porras (그라나다, 2008년 7월)
Q 김민정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시, 시입니다. 시인이지만 직장인으로 십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사람에게 치이고 일에 눌리면서 힘든 적 참 많았지만 그때마다 돌아갈 곳 ‘시’가 있다는 생각에 치사한 마음 같은 거, 복수할 분노 같은 거, 쓸데없는 욕심 같은 거 먹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렴, 시가 있는데… 시는 제게 ‘let it be’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놀라운 환상이라 생각합니다.
Q 김민정에게 행복이란 ㅇㅇㅇ 이다.
A 누군가의 부음 소식이 아주 느릿느릿 예고되는 것!
Q 요즘 품고 있는 고민거리나 ‘불편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A 늘어지는 턱선, 굶어도 줄지 않는 뱃살, 반쯤 와버린 오십견인가 유방암인가 아픈 오른쪽 팔.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모두를 사랑하는 척하지만 아무도 은혜하지 않는 가증스러움. 그리하여 냉담을 풀고 다시 성당에 나갈 것이냐 아니면 일요일마다 달콤한 늦잠을 더 잘 것이냐,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생각입니다. 아참, 나이를 먹는 일에는 달리 방도가 없겠군요. 이왕이면 아름답게 주름져볼 욕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