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마음이 가난하십니까?
A 어려운 질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완전하게 장악해야 하는데, 마음이 하루에도 수만 번 바뀝니다. 수만 개의 꼬리를 가진 도마뱀 같습니다. 잡았다 싶으면 꼬리를 남기고 도망친 뒤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가난을 꿈꾸는 대신, 마음을 실시간으로 ‘중계방송’하기로 작정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실황중계는 제가 고안한 것은 아닙니다. 위빠사나라는 수행법에서 빌려왔습니다. 한 마디로, 제가 제 마음의 현재 상태를 저 자신에게 일러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문재는 질투하고 있다’ ‘이문재, 자격지심이 너무 과한 거 아냐?’ 등등.
깨어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여기-나, 이 세 꼭지점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가 ‘지금’이라는 시간입니다. ‘나’는 대부분 ‘여기’에 있지만, 그 ‘여기’가 ‘지금’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이 마음에게 들키지 않을 때, 그때가 마음이 가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가난할 때, ‘나’는 지금-여기에서 나로서 충만해지겠지요.
Q 어떤 의자를 좋아하십니까?
A 기능이나 디자인의 문제가 아닐 듯 싶습니다. 한때 영화감독들만 앉는다는 접이식 의자를 선망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의자는 ‘신분증’이기도 하네요. 요즘 시간이 날 때면, 혼자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그립니다. 10년 쯤 뒤, 내가 들어가 살 작은 집인데요, 구조와 동선을 단순화하면서, 실내와 실외가 서로 소통하는 공간--마당도 아니고 마루도 아닌, 테라스 비슷한 것을 머릿속에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합니다. 거기다 등받이가 길고 팔걸이가 있는 나무 의지를 하나 내놓고 싶습니다.
거기에 앉아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과, 집에서 나가는 길, 그리고 길 주위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 의자에 앉는 시간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저녁 어스름이 어울리겠지요. 그러다 보면 내 삶을 한두 문장으로 정돈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쯤이면 내가 내 마음을 장악해서, 마음이 한결 가난해져 있겠지요.
Q 이문재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이 질문을 받고 보니, 포기한 가치들이 너무 많네요. 그렇지만 아직 놓치지 않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놓칠 수 없는 가치라면 ‘더불어 살기’일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문명, 인간과 지구가 더불어 사는 ‘녹색 가치’라고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요즘 제 글쓰기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관계의 재설정’입니다. 현재와 같은 산업문명적 ‘관계’로는 인류가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관계와 아울러 근원에 대한 재발견도 제가 요즘 붙들고 있는 가치입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단 한 순간도 근원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 근원은 지구/우주입니다. 그러니까 관계와 근원에 대한 성찰을 통해 ‘지구적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것, 이것이 제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Q 이문재에게 행복이란 ㅇㅇㅇ 이다.
A 우리 세대에게는 몇 가지 사어(死語)가 있습니다. 희망, 사랑, 부(돈), 제국… 행복도 그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웃음을 주제로 짧은 글을 쓰려다가 마침표를 찍지 못해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눈물에 대해서만 써왔던 것이지요. 행복에 대해서도 유전자가 거의 없습니다.
저에게 행복이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지금’-‘여기’-‘나’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상태입니다. 내가 과거나 미래로부터, 또 타자로부터 크게 억압받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나로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상태말입니다. 흔치는 않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한 편 썼을 때 그런 경험을 합니다. 가족의 배려나 친구들의 우정을 고마워하고 미안해할 때 지금-여기-내가 일치되는 것을 체험하곤 합니다.
Q 요즘 품고 있는 고민거리나 ‘불편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A 변화, 전환입니다. 생태적 위기는 경고 수준을 넘어 궤멸 직전인데, 산업자본주의는 태평하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굴러간다기보다는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류는 언제, 어떻게, 왜 전환을 이루었는가’가 요즘 제 고민의 요체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이 분명합니다. 기후 변화, 화석 연료 고갈(오일 피크), 식량 부족, 인구 과잉--. 인류는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과 인류는 생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사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불편한 진실’입니다. 기왕의 시, 소설과 같은 장르나 매체, 문학제도를 뛰어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을 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철 교수나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문학’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각종 미디어에 발표하는 작품으로서의 시에서 벗어나 직접 ‘전환의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활동으로서의 시/시인말입니다.
ㅣ복면 인터뷰이 이문재는…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