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하루 24시간, 세 끼 식사의 주기가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A 먼저 제가 하루 세끼를 먹는 식사주기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 질문인데, 그 전제가 일단 틀렸습니다. 농경시대의 습관이 하루 세끼였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닌 실용이었을 겁니다. 그럼 지금처럼 근육보다는 뇌를 사용해서 일을 하는 시대에는 강남의 고깃집 이름이 새벽집, 아침집이니 할 정도로 저 마다의 양식이 존재하죠. 그런데 문제는 아직 세끼 식사에 익숙해진 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보통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 식사를 챙겨라’ 라고요. 농경시대 이전의 양식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최소 3000년간은 지켜져 온 습관이 유전자에 전해져 온 탓입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실용적 필요에서 그 습관이 불편하고, 유전체에 전하는 정보로는 그것을 따르는것이 현명하네요. 결국 과도기라는 뜻이죠. 삶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안주하며 물길을 따라 가는 것, 필요에 의해 거스르며 올라가는 것 모두 선택의 문제인데, 최소한 저는 그 점에서 불편하지 않습니다. 습관이 기록한 정보를 맹목적으로 반복하는 것도 그렇다고 애써 거부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으니까요. 다만 그 습관이란 것, 그것이 선택이 아닌 강요로 다가 올 때는 하다못해 ‘세끼 밥을 먹어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되죠.
Q 언제 가장 외롭습니까?
A 이 대답은 ‘이해받지 못할 때’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 같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경우가 있습니다. 내 경우에서 보면 늘 남이 섭섭하죠, 한데 남의 관점에서는 늘 내가 이상할 겁니다. 그 점에서 ‘타인은 곧 비극’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사회는 대대관계에 의해 누군가와 작용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작용의 방식은 이해받기 어렵습니다. 상대와 나 모두가 주체이니까요.
이 경우 나의 걸음이 문제가 됩니다. 가끔 인간은 꿈을 꿉니다. 자기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최소한 한 줌이라도 역할을 하고 싶은 꿈같은 것인데 문제는 이때 자꾸 내가 나아가려고 하는 거죠.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내가 나간 천 걸음이 아니라 천명이 내디디는 한 발자국이거든요. 여기서 괴리가 발생하죠. 나는 자꾸 뛰어나가고 싶죠. 인간의 본성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공명심이죠. 결국 ‘같이 한 걸음’, 이것을 위해 작용해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죠. 내가 내달리는 데는 죄고우면하지 않고 의지만 있으면 되는데, 천 명의 한걸음은 조율이 어렵죠. 더구나 그 천 걸음의 당위를 설득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것이고요. 그 안에 외로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Q 박경철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포기 할 수 없는 가치를 주장할 만큼 단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그리움’ 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세속적인 성공의 관점이건, 형이상학적인 기준이건 간에 하루하루의 삶에서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들고 또 한사람이라도 더 가지고 싶습니다. 가까이는 아내와 아이들이 저를 그저 좋아하기보다 그리워했으면 좋겠고, 친구들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면 저를 그리워 해주었으면 좋겠고, 사회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늘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그리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애잔한 것인지, 또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외람되지만 학생들을 만나면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들라고요. 물론 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대신 그렇게 하려면,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하게 하려면 그들에게 내가 지켜야 할 도리나 원칙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나중에 가치로 불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Q 박경철에게 행복이란 ㅇㅇㅇ 다.
A ‘딸 아이’.
아이의 숨소리, 웃음소리. 앙증맞은 손, 하나하나가 저에겐 기적입니다. 마흔에 얻은 늦둥이라 그런지 저의 모든 행복의 기준은 이 아이에게 수렴됩니다.
Q 요즘 품고 있는 고민거리나 ‘불편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A 아주 깊숙한 곳에 두터워져 가는 ‘분노’를 삭이는 중입니다. 아직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 때문에 때로는 스스로가 비겁하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 한 개인의 열 걸음보다 함께 내디디는 한 걸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깊숙하게 밀어 넣고 하나하나 봉인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세상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다보면 점차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 혹은 몰라도 좋았을 것들과 대면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걸음을 급하게 내딛는 만큼 숨이 차는 셈입니다. 그럴 때는 적당히 외면하며 호흡을 고르는 것이 가장 편리한데, 아직은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다 어쩌면 ‘발작’을 하게 될 까봐 걱정입니다. 딸 아이가 이제 겨우 5살인데 말입니다.
★ 시골의사 박경철은 문화웹진 나비의 상담 필자이기도 합니다. 다다다 칼럼 내에 위치한 "시골의사 박경철의 인생상담"을 통해 문화웹진 나비는 모두의 고민과 열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필자는 인생상담을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의 장으로 기대하고 있고, 여러분과 함께 '청춘의 바다'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나비는 그 장터에서, 그 바다에서 우리 모두가 한 바탕 신나게 어우러지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