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유서를 썼다. ‘시로 쓴 유언’도 썼다. 「아프리카」라는 시도 썼다.
方法이 없다
昭陽 1橋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하느님같은 것이 말리실 리가 없다
받아주시지도 말라
물고기 밥이 되겠지
썩는데 한참 걸리겠지
떨어지는 순간만 견디면 되겠지
물에 충돌하는 순간만 견디면 되겠지
허우적대는 순간만 견디면 되겠지
물이 숨구멍을 틀어막는 순간만 견디면 되겠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 견디셨다는데
아프리카에 가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
― 「아프리카」 전문
문제는 “아프리카에 가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뜻이냐고? ‘아프리카 여행을 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고 한 게 아니냐’라는 말이 나왔다. ‘사파리’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시를 수정했다. ‘아프리카에 가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 바로 밑에 “땀, 식량, 총알, 페니실린”이라는 구절을 첨가하였다.
아프리카에 가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
땀, 식량, 총알, 페니실린
아프리카는 ‘검은 태양’의 아프리카였다. 天刑의 아프리카였다. 天刑의 아프리카이다. 총에 맞아 죽는 아이들, 굶어 죽는 아이들, 병들어 죽는 아이들.
10여년 전에 ‘인생을 바꾸는 문제’에 봉착하였다. 아프리카에 가서 땀을 흘리는 거였다. 마굿간을 짓는 거였다. 움막을 짓는 거였다. 하우스를 짓는 거였다. 아파트를 짓는 거였다. 밀농사를 짓는 거였다. 보리농사 쌀농사를 짓는 거였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내전이 있는 곳에는 총알을 가지고 가는 거였다. 자본주의도 쏘아죽이고, 공산주의도 쏘아죽이고, 총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총을 빼앗는 것이었다. 총 맞아 죽을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거였다. 병원을 짓는 거였다. 의사 약사 간호사들을 모집하는 거였다. 안 되면 내가 의사 약사 간호사 약사가 되는 거였다.
들려줄 말이 더 있다. ‘시로 쓴 유언’에서 했던 말을 더 쉽게 써본다.
삶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일회성이다. 한 번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월의 무상함’은 일회성 때문이다. Einmaligkeit(아인말리히카이트, 일회성)!
“담배 한 갑에 스무 개의 자유가 들어있다. 스무 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라는 말은 일견 솔깃한 말이지만 일견 문제가 있는 말이다. 스무 번의 순간이 매번 같을 수 없다. 혹시 목표 달성을 강조하는 함의가 들어있는 것은 아닐지. 자본주의적 목적합리주의를 강조하는 함의가 들어있는 것은 아닐지.
순간에 영원의 무게가 실린 삶을 살라. 나는 ‘영겁회귀’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일한 것이 영원히 재귀한다면 ‘한 번의 선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이 순간에 이것을 하면 저것을 하지 못하고, 이 순간에 저것을 하면 이것을 하지 못한다. 이 여자를 사랑하면 저 여자와 살지 못하고, 저 여자를 사랑하면 이 여자와 살지 못한다.
‘탁월한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선택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회성’의 의미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찍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좋다. 대가는 일찍 치르면 치를수록 좋다.
삶의 일회성을 삶의 잔혹성으로 고쳐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 삶의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는 잔혹성이다. 여러 가지 삶의 잔혹성들이 있겠지만 ‘확실한 소멸과 ‘불확실한 소멸 시간’의 모순’이야말로 삶의 잔혹성의 으뜸이 아닐지. 너는 확실하게 소멸한다. 그러나 네가 소멸하는 시간은 불확실하다. 최근에 나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화장실 바닥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구두들
수박들 히브리노예의 합창들
누가 나를 애도한다는 말인가
우울해본 적 없는 수박들
나의 바디에 손대지 마라
누구도 눈 마주치지 마라
화장실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구두들아
깡통에 물을 따라 마신 적이 있었지
한 번도 우울해본 적 없는 수박들아
너희를 위해 히브리노예들 합창을 불러
잔혹함에 대해 알게 하라
잔혹함을 빛나게 하라
― 「화장실에서 노래하는 자들」 전문
‘삶의 잔혹’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삶의 잔혹을 노래 불러 삶의 잔혹을 건너가라는 것이다. 잔혹하게 건너가라는 것이다. 즐겁게 건너가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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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찬일
시인. 1993년 『현대시사상』에 「무거움」 「갈릴레오」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등이 있다. 편운문학상우수상, 박인환문학상, 시와시학상젊은시인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