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10번 교향곡을 관통하는 주제는 ‘불안과 갈등’이다. 나는 이 작품이 극한 상황에서 씌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비교적 자세히, 글로, 물론 글로 음악을 묘사하는 것이 불완전하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쇼스타코비치의 10번 교향곡을 따라가면서, 그의 내면으로 살짝 들어가볼까 한다.
10번 교향곡의 1악장은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카라얀이 지휘한 그라모폰 LP에 적힌 바에 따르면, 1악장만 22분 28초다. 암중모색을 하는 듯한 저음의 제시부가 나오기 무섭게, 분노에 찬 전개부가 이어진다. 활화산 같던 그 하모니가 극에 달하는가 싶더니, 1악장의 마지막 대목은 갑작스럽게 평화로워진다. 비가 그친 듯, 조용하고 목가적인 테마가 흐르면서 1악장은 슬프게 끝을 맺는다. 그리고 2악장. 특히 10번 교향곡의 2악장은 당시 쇼스타코비치가 겪었던 내면적 불안과 갈등의 최극단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교향곡에서의 2악장을 이 곡에서는 1악장의 끝부분이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2악장은 느리고 아름다운 안단테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러나 10번에서의 2악장은 알레그로다. 처음부터 과격한 행진곡 풍의 테마가 이어진다. 결의에 찬, 장중한 저음의 액센트를 이어받아 스네어 드럼이 행진을 고양시키고 부추긴다. 단조의 근음을 저음이 정박으로 때리면 목관들이 불길한 바람을 몰고 온다. 목관의 불길함은 마치 태풍이 오기 전에 자기만 아는 깊은 숲 어디엔가로 몸을 피하는 새들의 울음을 연상시킨다. 그 불길함을 받아 드디어 금관 악기들에 의해 폭풍우가 터진다. 태풍이다! 쓰나미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엄청난 폭풍우는 끝내 둔중한 타악기들의 연쇄타격으로 폭발하고 비극적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번개가 쩍쩍 갈라지고 천둥이 친다. 코다(종결부)에 이르기 직전, 숨막히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현의 조용한 흐름,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쓰나미. 그렇게 짧고 휘황하게 태풍은 끝이 난다. 갈등이 파국에 이르는 시간 4분 9초.
1악장에 비해 2악장이 지나치게 짧다. 물론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의 교향곡들에서도 2악장은 짧다. 그러나 아름답다. 2악장의 서정성은 3-4악장의 웅장함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때의 2악장은 1악장과 3-4악장 사이에 놓여진 예쁜 다리 같은 인상을 준다. 쇼스타코비치는 10번 교향곡에서 2악장의 이런 전통적인 역할을 완전히 무시했다. 1악장에서 제시된 갈등의 테마를 보다 심화시켜 분열에 이르게 하는 2악장이다. 이 불균형은 신고전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9번 교향곡의 균형감에 비하면 어색할 정도다.
LP의 A면을 넘기면 B면. 어느새 비가 그쳤다. 멀리서 개짓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문밖으로 뛰어나오는 소리가 골목에서 들린다. 3악장의 도입부는 목가적이고 위트있다. 비가 그친 후의 적막감, 상쾌함을 노래하는 가벼운 테마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상쾌함은 이내 사라지고 어딘지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기억을 들추는 듯한 비극적인 현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다시 조용하고 상쾌한 목관의 흐름. 3악장은 방황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암중모색 중인 쇼스타코비치의 마음 지도를 산책하고 있는 3악장의 장황함. ‘재즈 수트’에서 보여주었던 서민적인 위트가 불을 지피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그 불씨가 살아나지 못하고 어두운 저음의 테마에 묻혀 버린다. 생각, 생각, 또 생각. 불안의 짙은 그림자들이 드리워지나 싶더니, 3악장의 후반부에는 갑작스럽게 곡마단의 브라스와 흡사한 보드빌 풍의 3박자 왈츠 테마가 등장한다. 역시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서민적인 인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위트가 거의 블랙 유머에 가깝다. 딱 28마디만큼 지속되는 이 예외적인 왈츠는 쇼스타코비치의 복잡한 심경을 잘 드러내 준다. 지다노프 비판 이후 공개적으로 행해졌던 자아비판의 모멸감을 자학적으로 드러내는 듯도 하고, 예술을 좌지우지하려는 당 지도부의 강압적이고 야만스러운 태도를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이런 일들은 권력의 유지를 위한 가면 무도회와 비슷하다. 풍악을 울려라! 스스로 비판하라! 달아나는 돼지들을 우리 안으로 몰아 넣어라! 꿀꿀대는 이 왈츠에서 예술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기만술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냉소를 읽을 수 있다. 다른 어느 곡에서보다 이 서민적인 테마는 키취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스물 여덟 마디가 지나면 왈츠의 흥겨움은 사라져버리고 다시 비극적인 폭풍우의 이미지가 3악장을 종결시킨다. 그리고 밤이 찾아 온다. 4악장은 어둡고 느린 테마가 지나치게 길게 이어진다. 이 역시 균형감각은 사라져 있다. 4악장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느리고 둔중한 암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알레그로의 시간이 찾아온다. 4악장 종결부에서 보이는 약간의 희망들. 그러나 빠른 장조의 테마들은 왠지 서둘러 4악장의 문을 닫고 침묵의 세계로 떠나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최종결부에서 힘찬 테마가 안간힘을 쓰며 풀무질을 하지만 불안과 갈등을 휩쓸어 버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게 50분의 시간이 흐르고 쇼스타코비치의 10번 교향곡은 끝이 났다. 갈등의 테마가 너무 두드러지는 가운데 조화와 균형이라는 신고전주의적인 원리가 지워져 있다. 신경증. 쇼스타코비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이 교향곡이 그 증세의 증거다.
이 신경증의 근저에는 말할 것도 없이 소비에트 예술의 복잡한 역사가 숨어 있다.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거참. 대답하기가, 좀, 힘들다. 과연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신화적인 난봉과 과음과 말년의 불행이면 다 되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고뇌는 대답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암중모색. 예술가들은 무조건 자유로워야 하나. 아니면, 창작의 자유를 억압당해도 좋단 말인가. 평생토록 지속된 쇼스타코비치의 화두. 그의 내적인 갈등은 아마도 앤디 워홀의 그것보다 더 복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보면, 그가 혁명에 매우 충실한 작곡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식주의나 순수 실험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러시아적 전통을 현대화시켰고 재즈나 탱고 같은 당대의 대중적 형식들을 과감하게 도입했으며 (리얼리즘 이론가들이 강조했던) 표제적인 요소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한 마디로 그 역시 혁명의 불꽃의 한 갈래였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가 깊어가면서 혁명의 불꽃은 가짜 불꽃놀이 비슷하게 변해갔다. 칼날은 부르조아나 제국주의자들에게 겨누어지기 보다는 자신을 반대하는 내부자들에게 향해졌다.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타락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스탈린주의를 선택한 것은 스탈린 자신이기도 하지만 소비에트 전체이기도 하다. 쇼스타코비치는? 강압적인 것이었는지 몰라도, 최소한 공식적으로 그 역시 그것을 선택한 사람의 하나다. 레닌에게 혁명은 전쟁이었지만 스탈린에게 혁명은 현실이었다. 혁명은 지속되어야 하되, 스탈린의 말처럼 ‘당은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야 하며, 노동계급보다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며, 자연발생적인 운동의 꼬리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지휘통솔해야 한다’. 스탈린주의를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이론과 전술’로 정의한다면, 그리고 그 시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력의 전 세계적 부각과 위협을 감안한다면, 스탈린주의는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이론과 전술로서 현대의 소비에트 러시아와 사회주의 진영을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초’로서 기능했다고 말하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다시 말해,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혁명기를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사회주의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우뚝 선 쇼스타코비치는 분명 그 흐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역시 많은 굴곡이 있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운동이 바람몰이를 하고 있던 1934년, 그는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를 썼고 이 작품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936년에 ‘프라우다’지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실리게 된다. 누가 예술가의 작업을 간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비판을 받아들이고 저 유명한 ‘5번 교향곡’을 씀으로서 재기에 성공한 후 마침내 ‘피아노 5중주곡’(1940)으로 제 1회 스탈린 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완전 컴백. 바로 그란 말이다, ‘제 1회 스탈린 상’을 수상한 작곡가가! 2차 대전 때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방공감시원으로 자원하여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다. 그러나 대전 이후 다시 9번 교향곡으로 지다노프 비판의 대상이 된 그는, 무시무시한 정국이었겠지만, 스탈린의 산림정책을 찬양하는 칸타타 ‘숲의 노래’(1949)를 쓰게 되고 이 곡으로 두 번째 스탈린 상을 수상한다. 이처럼 그는 비판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소화하는 모습을 (최소한 겉으로는) 보여주었다.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자. 그러나 이 때부터, 쇼스타코비치의 내면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비에트의 이념과 정면으로 맞상대한 한 사람의 예술가. 우리는 그 예술가의 내면을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아니, 사실은 상상할 수 있다. 박정희 시절이나 전두환 시절을 떠올리면 그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소비에트의 이념은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잔인한 대답을 요구한다. 너는 어떻게 살 거야. 쩜쩜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지다노비즘, 또는 지다노프 독트린이라고도 불리는 정풍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지다노프. 지다노프는 군인이다. 줄곧 스탈린의 오른팔이었던 지다노프는 과연 군인답게 서슬퍼런 칼날을 휘둘러 예술가들의 자유를 굴복시킨다. 제 5공화국 시절에 허 뭐시기가 그랬었나. 지금의 우리나라에는 누가 있나. 물론 정반대의 방향이겠지만, 권력의 오른팔 노릇을 하고 있는 예술가 출신 관료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뭐라 뭐라 떠든다. 문화 가지고 장사하자는 게 논리의 핵심인 것 같다. 돈 되는 문화면 다 된다. 지다노프 독트린의 대척점인 것 같아도 어딘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권력은 예술을 소유하려 한다. 그래서 선전하거나 선동하려 한다. 아 암울해.
지다노프 독트린의 핵심은 이분법에 있다. 제국주의적 예술의 핵심적인 결함은 ‘형식주의’에 있다. 형식주의로 낙인 찍힌 작품들은 소비에트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줄줄이 무덤으로 들어간 그 ‘형식주의적’인 작품들 가운데는 쇼스타코비치의 걸작의 하나인 9번 교향곡도 있었다. ‘제국주의 서구’와 ‘민주주의 소비에트’를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는 도그마들로 무장한 관제 비평가들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역시 그 정확한 구분을 음악적으로 표출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던 와중인 1953년에, 스탈린이 세상을 떠났다. 10번 교향곡이 발표된 것도 같은 해. 스탈린이 죽었다. 이젠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가. 무덤으로 들어갔던 작품들이 살아 나왔다. 숨을 멈추고 있던 사람들이 숨을 다시 쉬기 시작한다. 그 숨소리에는 울음 소리들이 섞인다. 공포를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안도감, 그리고 자괴감, 자책감. 공포를 견디기 위해 공포의 유포에 참여했던 죄책감. 10번 교향곡에서 그런 마음 속 그림자들이 그림을 그린다.
때로 평론가들은 10번 교향곡의 미흡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갈등의 테마들을 해소하는 요소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소리들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 돌부리처럼 성급하게 솟아올랐다가 깨진다. 그러나 이 소리들의 히스테리를 듣고 있자면, 현대적인 것이 무엇인가 알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병적인 징후들을 전시하는 것, 그것이 모더니즘의 한 사명이라면 사명이다. 고전주의의 점잖은 화성과 낭만주의의 질풍노도, 민중적인 플래쉬백,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테이프 루핑한 것처럼 몽타쥬되어 있다. 우연한 요소들이 부딪히고 긴장하면서 작열하는 균열의 불꽃들, 쇼스타코비치의 10번 교향곡은 그 몽타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듣기에 따라서는 그의 다른 어떤 곡들보다도 현대적이고 새롭다.
10번 교향곡을 들으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북받치는 오열처럼, 내면에 있던 것이 바깥으로 터진다. ‘지다노프 독트린’ 이후 소련 사회에서 비극적인 테마라는 것 자체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10번 교향곡은 바로 갈등과 긴장, 불안, 신경증이 그 테마다. 마치 일부러 그런 것 처럼, 그렇게 정교하고 지적이던 쇼스타코비치의 형식미가 산산히 깨져 있다. 바로 이 대목. 나는 이 10번 교향곡에서, 글의 시작에 언급했던,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부근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 하나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걸어가던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난다. 마음이 복잡하면, 그 말은 현실의 말이 아니다. 말이 안 된다. 현실과 과거가 뒤섞이고, 추억은 원한과 만나 이상한 추상화의 몽타쥬를 그려낸다.
지난 여름이 떠오른다. 아마도 늦 여름, 8월의 마지막 주나 그 전 주 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한 여인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고 화형시켰다. 검은 슬립을 입은 여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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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성기완
나는 오랫동안 시와 음악을 오갔다. 어쩌면 둘을 가르는 좁은 벽 위에 서 있었는지 모른다. 벽 위에서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기타를 쳤고 잡글을 썼다. 『쇼핑갔다 오십니까?』(1998), 『유리 이야기』(2003), 『당신의 텍스트』(2008), 이렇게 세 권의 시집을 냈고 『나무가 되는 법』(1999), 『당신의 노래』(2008), 이렇게 두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산문집도 있다. 『장밋빛 도살장 풍경』(2002), 『홍대 앞 새벽 세시』(2009), 그렇게 두 권. 변변찮은 이 작품들은 내 꿈의 흔적들. 나는 만남을 꿈꾸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