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온다. 어째 마음이 축축하다. 장마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방바닥에 물음표 모양의 검은 것이 떨어져 있다. 보푸라긴가 싶어 손으로 집었다가 흠칫 놀라서 다시 땅바닥에 버린다. 딱딱해진 물음표 모양의 벌레다. 조금 긴, 다리가 여럿 달린 그것들이 두셋 방바닥에 말라 있다. 비가 이 벌레들의 외출을 강요했을 것이다. 이상한 예감을 품고 떠났을, 쏟아지는 빗속에서의 마지막 여행. 촘촘히 달린 발들이 징그럽다. 휴지로 감싸서 포가 된 그 벌레들을 휴지통에 넣는다.
사람에게도 그렇다. 비는 때로 무의식적이고도 갑작스러운 외출을 강요한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무언가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만든다. 실제로 비가 오면 음악이 잘 들린다. 빗속에서 종소리는 깊어지고 먼 소리들이 지척에서 매만져진다. 또는… 나지 않던 소리들이 귓가에서 쟁쟁쟁, 울린다. 갑자기 들리기 시작하는 그 소리를 찾아 집을 나서서 하염없이 걷는 사람들. 언젠가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부근 흐릿한 차창 너머 갓길에서 커다란 우산을 본 적이 있다. 우산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물기어린 사이드 미러에 비친 그 사람은 오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어깨는 왠지 나약해 보였다. 뭐가 잘못 됐을까.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차들이 물날개를 달고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 진입로에 그 남자는 진입했다. 머릿속의 지도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어딜, 누구와, 또는 누굴 만나러 가고 있는 걸까.
그 때 과거는, 그리고 과거의 장소는 무차별적으로 현재형이 되어 현재 안에 난입한다. 그것이 실은 병의 주된 내용이다. 문간을 넘어 들어오는 빗물처럼, 현재형의 문턱을 넘어 현재를 잠식하는 과거. 추억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이 현재의 마당 안에 마구 부려진다. 현재는 과거의 흙더미에 깔려서 숨을 못 쉰다. 현재는 탈출하기 위해 과거의 흙더미를 헤치고 뛰쳐 나온다. 그 때 시체들을 만난다. 현재형의 문간을 넘어 살아나온 과거의 것들을. 그리고,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그 시체들과 대화한다. 대화하며 머릿속 지도를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차들은 아랑곳없이 그 혼돈의 육체를 쌩쌩 지나친다.
비는 추억의 산사태를 일으키고, 정신은 그 앞에서 무너진다. 여지없이…
그리고 나는 베를렌느를 듣는다. 비의 시인, 멜랑콜리의 시인 베를렌느의 울림을.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느(Paul Verlaine)는 청각의 시인이다. 그는 듣는다. 듣는다고 쓴다. 그리고 듣는다고 쓰는 그 글자들이 그의 연주가 된다.
Il pleut doucement sur la ville
(Arthur Rimbaud)
Il pleure dans mon coeur
Comme il pleut sur la ville,
Quelle est cette langueur
Qui pénètre mon coeur?
O bruit doux de la pluie
Par terre et sur les toits!
Pour un coeur qui s'ennuie
O le chant de la pluie!
Il pleure sans raison
Dans ce coeur qui s'écoeure.
Quoi! nulle trahison?
Ce deuil est sans raison.
C'est bien la pire peine
De ne savoir pourquoi,
Sans amour et sans haine,
Mon coeur a tant de peine!
…
마을에 조용히 비내린다
(아르튀르 랭보)
마을에 비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내 맘 속으로 스며드는
이 나른함은 무엇인가.
오 부드러운 빗소리여
대지 위에도 지붕들에도!
갑갑한 마음을 달래주는
오 비의 찬가여
지긋지긋해진 내 맘 속에
이유 없이 눈물 흐른다.
뭐? 무슨 배신이냐고?
이 비통함에는 이유가 없다.
왜인지 알지 못하는
이 고통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은 고통으로 미어지네!
…
Paul Verlaine, 『Romances sans Paroles』
어쩌면 베를렌느의 가장 유명한 시의 하나일 이 시의 필사본을 보면, 베를렌느는 시의 제목 ‘마을에 조용히 비내린다’ 옆에 괄호를 치고 아르튀르 랭보의 이름을 써넣었다. 아예 이 시가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실려 있는 시집 『말없는 연가 Romances sans Paroles』는 베를렌느가 감옥에 있던 1874년, 친구의 도움으로 발간되었다. 이 시기라면 베를렌느의 가장 극적인 시절이다.
스물 여섯 살 때인 1870년, 그는 열 여섯 먹은 어여쁜 사촌 여동생 마틸드 모테와 결혼을 한다. 그녀에 대한 청순하고 순진무구한 연모의 정이 잘 드러난 시집 『좋은 노래 La Bonne Chanson』가 그 과정에서 나왔다. 1871년 파리 코뮨이 발발하자 베를렌느는 봉기에 지원한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만남. 열 일곱 살의 아르튀르 랭보. 스물 일곱의 그는 랭보와 십년 차, 그와 동거에 들어간다. 베를렌느는 신혼생활마저 저버리고 랭보와 함께 벨기에 런던 등지를 떠돌다가 결국 1873년 7월(딱 이맘 때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랭보와 다투다가 랭보에게 권총을 발사. 랭보는 왼손에 상처를 입고 침 퉤퉤, 베를렌느와 결별. 베를렌느는? 감옥행. 너무나 인구에 회자된 일화다.
그렇게 베를렌느는 2년간 복역을 하게 되는데, 이 시 『마을에 조용히 비내린다』는 그 사이에 지어진 시다.
이 시는 ‘듣기’의 행위에 관한 시다. 소리의 향방을 따라서 마음이 움직인다. 마을에 조용히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마음은 우울해지기 시작하고, 마을이 젖어가는 것처럼 축축히 젖어간다. 마을은 비로, 마음은 눈물로 젖는다. 보통 프랑스어에서 ‘울다 pleurer’라는 동사는 비인칭 주어 il(영어로 치면 it)와 더불어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베를렌느는 ‘비가 온다’고 표현할 때 쓰이는 ‘il pleut’의 비인칭 ‘il’을 ‘눈물난다’는 대목에도 쓰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음악적으로도 운이 맞고 바깥에 오는 비과 내 마음을 적시는 눈물 사이에 상관관계가 생긴다. 더군다나 비인칭 주어를 쓰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비가 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눈물이 스며든다. 그렇다. ‘스며든다’. 습기가 스멀스멀 방 안으로 스며들 듯,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나른함이 마음 속에 ‘스며든다’.
오 부드러운 빗소리여
베를렌느는 실제로 그 소리를 듣고 있다. 어쩌면 감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지 위에 빗소리가 떨어지고 지붕 위에도 떨어진다.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다르다. 베를렌느는 그 소리들을 구분하면서 찬찬히 음미하고 있다. 대지와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리드미컬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마음을 달래준다. 드디어 빗소리는 ‘찬가’, 다시 말해 기쁨의 노래가 된다.
오 비의 찬가여!
처음에는 그냥 ‘빗소리’라고 했다가 점차 그 빗소리가 ‘노래’로 바뀐다는 것을 베를렌느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빗소리-노래의 쌍은 마을-마음의 쌍에 각각 작용한다. 이렇듯 이 시는 계속해서 두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쌍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깥-내면의 항목들을 일관성있게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안팎의 하모니다.
2연을 기점으로, 비의 노래는 이내 가슴 아픈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부드러운 빗소리가 마음을 달래주는 듯 하지만 결국은 가슴이 미어지는 추억이 살고 있는 과거의 시간으로 여행하는 고속 열차가 된다. 너는 왜 떠났니. 배신, 고통, 이유없음, 비통함, 그런 단어들이 마음속에 치밀어 오른다. 아무리 그래봐야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 떠난 랭보는 돌아오지 않고 빗소리는 조용히 가슴을 적시고 그것은 눈물이 되어 슬픔에 젖는다. 추억이, 산사태를 일으킨다. 시간이 뒤섞인다…
똑똑…
그렇게 시작하는 한 두 방울의 빗소리는 소리의 문, 귀 저 안쪽의 창호지, 고막을 때리는 노크소리 같다. 그렇게 시작한 빗소리는 이내 불규칙한 리듬의 여러 타점을 지니는 복잡한 타악으로 변한다.
후두둑…
…아까부터 다시 비가 오고 있다. 나는 깨어나듯 베를렌느의 시에서 현실의 빗소리 속으로 들어온다. 베를렌느의 시를 지배하고 있는 부드러운 자음들, 특히 r 발음.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 소리들이 물방울처럼 내 마음에 스미는 것을 느낀다. 빗소리를 글자들로 적으면서 베를렌느는 가능한 한 그 글자들이 ‘소리’로 울려퍼지길 원했다. 나는 그 소리의 울림들을 들으려고 애쓴다. 아니, 애쓸 필요도 없다. 창밖에 빗소리. 방안은 어둑어둑해진다. 저녁이 오려나보다. 온 세상을 뒤덮는 뿌연 물안개. ‘후두둑’은 이내 파도 소리 비슷한 소나기 소리가 된다.
솨아…
똑똑 --> 후두둑 --> 솨아
베를렌느의 시에서 나와 시간차를 두고 그렇게 전개되는 실제 빗소리를 감상한다. 먼지들이 피어날 때 나는 알싸한 냄새가 그 소리들에 동반된다. 비는 후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가만히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점차 그 소리의 심포니에 빠져들게 되다. 사실 빗소리의 전개는 모든 음악의 기본 형식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의 동기로 시작해서 점차 소리들이 거세지다가 나중에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강한 파도를 연상시키는 코다(음악의 종결부분)로 이어지는 모든 음악을. 운명의 노크 소리로 시작한다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 그리고 쇄도하는 희망의 파도가 청중을 압도하는 9번 교향곡. 그것들 모두 빗소리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10번 교향곡. 갑자기 그 우울하기 그지없는 도입부를 듣고 싶어진다. 10번 교향곡 1악장의 도입부는 비오기 직전에 검은 구름이 몰려드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때는 스탈린이 막 죽고 난 이후. 그 직전에 쇼스타코비치는 그 유명한 ‘지다노프 비판’으로 절망에 빠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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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성기완
나는 오랫동안 시와 음악을 오갔다. 어쩌면 둘을 가르는 좁은 벽 위에 서 있었는지 모른다. 벽 위에서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기타를 쳤고 잡글을 썼다. 『쇼핑갔다 오십니까?』(1998), 『유리 이야기』(2003), 『당신의 텍스트』(2008), 이렇게 세 권의 시집을 냈고 『나무가 되는 법』(1999), 『당신의 노래』(2008), 이렇게 두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산문집도 있다. 『장밋빛 도살장 풍경』(2002), 『홍대 앞 새벽 세시』(2009), 그렇게 두 권. 변변찮은 이 작품들은 내 꿈의 흔적들. 나는 만남을 꿈꾸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