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내兒孩다. 아버지가나의거울이무섭다고그런다. 사람의팔그속의水銀. 싸움하지아니하는二匹의平面鏡은없다. 네가보아도좋다. 싸움하는上脂에사기컵이손바닥만한하늘을구경한다. 銃은鸚鵡의꿈이있다. 그러나그것으로부터그중의나비떼가죽었다. 무서워하는혹은自殺하는비둘기의손. 들窓이하얀帽子를쓴나를날아가게하려한다. 드디어나는城으로들어간다. 또무서운무엇이白紙처럼거대한가슴의걸인이있다. 13을아는게적당하다. 試驗에서나는쏘지아니할것이로다.”
김연수(1970~)의 연작소설 『꾿빠이, 이상』(2001)은 이상(1910~1937)의 「오감도 시 제16호」를 중심에 놓고 전개된다. 이상의 ‘오감도’(烏瞰圖) 연작은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 >에 연재되었다. 당시 <조선중앙일보 >에는 이상과 같은 ‘구인회’(九人會) 동인이었던 소설가 이태준(1904~?)이 학예부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대중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 시들이 신문에 실릴 수 있었다(이태준은 이듬해에는 역시 구인회 멤버였던 박태원[1909~1987]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신문에 연재되도록 주선했으며, 이상은 이때 ‘하융’(河戎)이라는 필명으로 삽화를 그린다. 이태준이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일 뿐만 아니라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와 소설이 신문에 발표되도록 힘을 쓴 언론인이자 기획자였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로 시작되어 “(길은뚫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로 끝나는 제1편을 필두로 삼아 보름 남짓 이어진 ‘오감도’ 연작에 대한 독자들의 인내심에는 그러나 한계가 뚜렷했다. 학예부장의 지위와 권한으로도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게 웬 정신병자의 넋두리냐’는 것이 항의의 요지였다. 결국 ‘오감도’ 연재는 제15호를 끝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나는거울업는室內에잇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 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잇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떠케하랴는陰謀를하는中일가.”로 시작해 “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업즐러젓다. 내가遲刻한내꿈에서나는極刑을바닷다. 내꿈을支配하는者는내가아니다. 握手할수조차업는두사람을封鎖한巨大한죄가잇다.”로 끝나는 작품이었다.
타의에 의해 연재를 중단당한 이상이 불만을 토로한 ‘‘오감도’ 作者의 말’ 역시 인용해 둘 만하다.
“웨 미쳤다고들 그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十年씩 떠러저도 마음놓고 지낼作定이냐. 모르는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든일도 좀 뉘우처보아야 아니하느냐. 열아문개쯤 써보고서 詩만들줄 안다고 잔뜩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二千點에서 三十點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三十一年 三十二年 일에서 龍대가리를 떡 끄내여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깜박 新聞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것도 실수지만 李泰俊, 朴泰遠 두 兄이 끔찍이도 편을들어 준데는 절한다. 鐵―이것은 내 새길의 暗示요 앞으로 제아모에게도 屈하지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勿論 다시는 무슨 다른方途가있을것이고 위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工夫나 하고 딴은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이상이 ‘오감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시대를 몇십 년 앞서 간 자신의 과감한 시도가 독자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속상해하는 정황이 선연하게 드러난다. 이 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구절은 ‘오감도’ 연재가 본래 30호까지 이어질 예정이었고 그것조차도 2천 편에서 고르고 고른 작품이라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이상에게는 이미 발표된 15편 말고도 또 다른 15편의 완성된 ‘오감도’ 원고가 있었으며, 초고 형태의 원작은 무려 2천 점에 이른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이상은 <조선중앙일보 > 연재가 중단된 뒤 ‘오감도’ 연작을 다른 매체에 발표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신문에 실리지 않은 나머지 ‘오감도’ 연작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은 바로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오감도 시 제16호」를 인용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거니와, 현존하는 이상 작품집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은 이 시의 출처와 정체, 진위 여부를 추적하는 과정이 이 연작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연작은 모두 세 편으로 이루어졌다. 첫 편 「데드마스크」는 이상이 운명한 직후 병상에서 떴으나 그 뒤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데스 마스크가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우선 첫 대목을 읽어 보자.
“이 일은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잘못 걸려온 전화. 잘못 전화한 사람은 잘못 전화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잘못 전화하지 않은 사람은 잘못 전화한 사람이었다./ 문장의 꼴이 이렇게 되긴 했지만, 이상을 흉내내려는 생각은 절대 아니다.”
이상을 흉내낼 생각은 전혀 아니라면서도 이 대목은 분명히 이상의 「오감도 시 제3호」를 흉내내고 있다. “싸홈하는사람은즉싸홈하지아니하든사람이고또싸홈하는사람은싸홈하지아니하는사람이엇기도하니까”로 이어지는 작품 말이다. 도입부의 문장에서 보듯 『꾿빠이, 이상』에는 ‘오감도’를 비롯한 이상의 글들에 대한 오마주 성격의 베껴 쓰기가 만연하다.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이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대목에서 이상의 시 「異常한可逆反應」의 제목이 직접 언급된다면,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딴에는 정신병이나 고쳐야겠다”는 「데드마스크」의 마지막 문장은 ‘오감도 작자의 말’의 마지막 문장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이상의 단편소설 「失花」(실화)의 제목을 풀어 쓴 연작의 두 번째 편 「잃어버린 꽃」에서도 이상의 흔적은 확연하다. “내 마음속에서 뚜우 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하는 인공의 정오다.”라는 대목은 소설 「날개」의 마지막 대목과 포개지며, 마지막 문장 “자―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꾿빠― 이.” 역시 「날개」의 서두 부분에서 되풀이되는 “꾿 빠이”의 메아리로 들린다. 「날개」의 메아리는 연작 마지막 편 「새」에서도 이어진다. “실신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내 정신은 은화처럼 맑았다”, 그리고 「새」의 마지막이자 소설 『꾿빠이, 이상』 전체를 마무리하는 다음 대목도 「날개」의 서두부를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꾿빠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禍)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잎이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傷)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 상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 꾿빠이.”
『꾿빠이, 이상』에서 이런 문장 차원의 베껴 쓰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혁민’이라는 핵심 인물이다. 『이상을 찾아서』라는 수기를 남기고 일흔셋 나이에 이상이 죽었던 도쿄제대 부속병원에서 최후를 마친 이 인물은 이상의 글은 물론 그의 삶 전체를 흉내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층 문제적이다. 그는 이상의 행적을 좇아 도쿄에 가서는 이상이 묵었던 곳에 묵고 그가 보았던 것을 보며 그가 샀던 책을 사고 그가 썼던 것과 비슷한 글을 쓴다. 그는 “한 작가의 존재감에 압도돼 평생 그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삶까지 따라한다. 단어 하나하나는 모조품에 불과해 아무런 생명이 없었으며 삶은 누군가 한번 살았던 삶이다. 푸른 나무 그림에 회색을 덧칠한 꼴이었다. 이상을 통해 한번 생명을 얻었던 언어와 삶이 그에게 와서 죽은 갑각류의 껍질처럼 한낱 껍데기에 불과했다.(…)그는 글을 베껴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이상의 삶까지 흉내냈다. 그건 자기 삶을 판돈으로 거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문학작품의 아류는 쉽지만, 삶의 아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90년대 초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한국 젊은 작가들의 표절 논란이 일었을 때 장정일이 제출했던 문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혁민의 이상 베끼기는 문장과 문체 또는 세계관의 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높은 층위의 베끼기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베끼기, 말하자면 ‘베껴 살기’에 해당하는 모험이자 도박이었으니까.)
연작 첫편에서 핵심적인 모티프로 구실하는 이상의 데스 마스크, 그리고 이 글의 앞머리에서 인용한 「오감도 시 제16호」는 모두 서혁민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글을 흉내낼 뿐만 아니라 이상의 삶을 따라 살고자 했던 그가 유실된 이상의 데스 마스크를 새롭게 만들어 내고, 이상이 썼음 직한 시를 제 손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혁민(또는 또 다른 누군가)은 어떻게 「오감도 시 제16호」를 썼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이상 전문가인 ‘김태익’의 지적이 적실하다. “(‘오감도’ 열다섯 편에서)많이 나오는 단어를 쭉 정리해서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오? 나, 내, 아해, 아버지, 나의, 거울, 무섭다, 그리오. 이게 뭡니까? 당신이 오늘 신문에다가 발표한 「오감도 시 제16호」라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오감도 시 제16호」는 이상의 ‘오감도’ 연작을 짜깁기해서 만든 위작이었다. 이상의 마지막 행적을 좇아 도쿄에 온 서혁민이 도쿄제대 부속병원 격리병동 로비에서 이 ‘문제작’을 쓰는 연작 두 번째 작품의 마지막 장면 묘사는 이러하다.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오감도 시 제16호 失花’라고 쓰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내가 죽어 영원히 이상으로 다시 사는 길이기도 하다. 내 오랜 꿈. 이로써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자―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꾿빠― 이.”
이런 위작을 이상의 진짜 작품인 것처럼 언론에까지 공개하고서 김태익한테 공박을 당하는 인물은 ‘피터 주’라는 재미동포 국문학자다. 그는 사실 대만 출신 (불법)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인 부모에게 입양된 인물이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으로 택한다. 제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믿었던 무렵의 그는 특히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주목해 이상보다 2년 늦게 태어난 김일성의 저작을 이상의 작품들과 함께 탐독하며 북한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들이 20대가 되던 1937년 한 사람은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로 시작하는 난해시와 일본어로 쓴 글을 들고 제국의 수도 도쿄에 가서 죽었고 다른 사람은 제국을 저주해 150여 명 규모의 유격대를 이끌고 백두산 근처에서 일본군 13명을 사살했다. 수염과 모과처럼 그 기이한 만남. 명명백백한 벌판의 세계와 어두운 새장 속의 세계. 그 두 세계가 동시에 보이지 않으면 조국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그 자신이 문제적 인물이라 할 피터 주에게 서혁민이 작성한(?) 위작 「오감도 시 제16호」를 제공해서 언론에 공개하게 만든 이는 출판 전문 주간지 기자 출신인 ‘김연화’다. 그는 서혁민의 동생이라는 ‘서혁수’가 가짜 교수까지 동원해 이상의 데스 마스크를 화랑에 팔아 넘기는 자리에 입회해서 기사를 쓰게 되었고 나중에 그 일이 사기로 밝혀지자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잡지사도 그만두게 된다(김연화가 확실한 증거도 없으면서 단지 ‘믿음’만 가지고 데스 마스크를 진품이라고 추정하는 기사를 쓴 데에는 당시 그가 유부녀인 ‘정희’와 불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자신 박태원 연구가이며 『1930년대 경성과 구인회』라는 연구서를 내기도 한 정희 남편이 김연화를 찾아와 정희에 대한 사랑이 진짜냐 가짜냐고 추궁할 때 김연화가 한 대답에 그의 행위를 이해할 실마리가 들어 있다.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이상의 데스 마스크)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 그러니까 그는 정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데스 마스크를 진품으로 단정지었으며, 그것과 함께 입수한 「오감도 시 제16호」를 피터 주에게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피터 주의 「오감도 시 제16호」 공개에 앞서 또 다른 「오감도 시 제16호」 공개가 있었다. 역시 이상 전문가인 ‘권진희’가 공개한 「오감도 시 제16호」는 “어둠의 한가운데 검은 꽃”이라는 일본어로 시작되지만, 제목에는 피터 주가 공개한 것과 동일하게 ‘실화’가 들어 있다. 권진희가 공개한 것과 피터 주가 공개한 것 중 어느 쪽이 서혁민의 위작인지, 아니면 둘 다 또 다른 인물(들)의 손에서 빚어진 것인지 여부는 소설 속에서 불확실하다. 어느 쪽이든 무방하기 때문이리라. 작가 김연수가 오감도 위작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정작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서혁민의 베껴 쓰기와 ‘베껴 살기’가 있기 전에 이상의 삶 자체가 거대한 흉내내기이자 도박이었다는 것이 김연수의 판단이다. 무슨 뜻인가.
알다시피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었으나 1928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기념 사진첩에 본명 대신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김해경은 ‘箱’이라는 글자를 쓰던 그 순간에 도쿄제대 부속병원에서 결핵성뇌매독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김연수는 쓴다. 그런 것이 “전기로는 파악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다시, 무슨 뜻인가. “김해경은 자신의 삶을 판돈으로 걸고 확률이 불분명한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작품이 아니라 삶을 판돈으로 걸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불멸의 작가 이상이 그의 기댓값이었다. 도쿄에서의 죽음은 바로 그런 도박이었다.” 요컨대 “이상은 소설을 창작한 게 아니라 앞으로 쓸 소설처럼 자신의 삶을 먼저 창작했다고. 아이 김해경이 쓴 소설이 위대한 작가 이상이라고” 김연수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상이 위장술의 대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소설 「날개」의 서두부에 들어 있는 “그대自身을 僞造하는것도 할만한일이오”라는 문장에 주목해 보자. 그런가 하면 「오감도 시 제15호」와 비슷하게 거울 모티프를 동원한 시 「거울」의 마지막 두 연은 이러하다. “나는至今거울을안가젓소만은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잇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事業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反對요마는/ 또꽤닮앗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診療할수업스니퍽섭?하오” 자신을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로 분리시켜 파악하고 서술하는 것은 자아 분열의 징표로 볼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자 하는 의도 역시 개입되어 있을 법하다. 같은 이치로 「날개」를 비롯한 이상의 ‘자전적’ 소설들에서 보이는 그의 면모가 진짜 이상인지 여부는 따로 따져 볼 만하다. 그가 소설 속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위조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는 삶 자체가 철저하게 짜여진 플롯을 좇은 결과라는 것이 김연수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그런 이상의 삶을 뒤쫓아 가며 베낀 서혁민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창작으로서의 삶을 다시 한번 흉내낸 이중의 베끼기라 해야 옳지 않겠는가. 각설하고, 굿바이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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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