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1909~1986)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은 ‘한국형 소설가 소설’의 효시로 꼽을 만하다.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의 작가적 정체성과 소설가로서의 일상, 그리고 소설 쓰기에 관한 고민 등을 다루는 소설이 소설가 소설이다. 박태원의 이 작품에서는 소설가 구보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그의 하루 동안의 동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특별한 목적이 없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찻집과 술집 등을 순례하며 친구들과 어울린다. 목적이 없다고는 했지만 구보에게는 나름대로 뚜렷한 목적이 없지 않다. 그가 ‘모더놀로지오’라 일컫는 ‘고현학’(考現學)이 그것이다. 고현학이란 고고학에 대비되는 말로, 현대 사회와 현대인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 분야를 가리킨다. 소설가 구보가 이 말을 쓸 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현실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등의 취재 행위를 뜻하게 된다. 거리에 나선 그를 두고 작가는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 한군데라 그가 갈 곳은 없었다”는 모순적인 진술을 하는데, 이것은 그의 배회가 무목적적인 시간 소모인 동시에 소설을 위한 취재 활동으로서의 고현학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는 행위임을 말해준다.
소설을 쓰기 위한 활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또한 소설에 대한 소설, 그러니까 메타소설이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소설의 주인공인 구보씨가 작자인 박태원 자신의 분신이라는 점에서는 이 작품을 일종의 사소설로 분류할 수도 있을 법하다. 소설가의 일상과 교제 범위, 행동반경과 사고방식 등을 두루 엿볼 수 있는 만큼 이 작품은 문단(풍속)사의 자료로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이 다면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소설이 후배 작가들을 자극해 지속적인 패러디 작품으로 이어지게 되리라고는 아마 박태원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터다.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들이 금기에 묶여 있던 1969년~1972년에 최인훈(1936~)은 무려 열다섯 편에 이르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을 써서 책으로 묶어 냈다. 1990년대 초에는 주인석(1963~)이 다시 다섯 편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연작을 내놓았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도 윤후명(1946~)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제목을 단 연작 두 편을 발표했다. 소설은 아니지만, 오규원(1941~2007)의 1987년도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에는 ‘시인 구보씨의 일일’ 연작 14편이 수록되기도 했다. 고전이 아닌 한국 현대문학 작품 가운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만큼 많은 패러디와 오마주의 대상이 된 경우도 달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어떤 매력이 이토록 후배 문인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그리고 ‘원조’의 영향은 후배 작가들의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 있을까.
우선, 박태원의 소설은 구보가 정오 무렵에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다가 다음날 새벽 2시에 집으로 돌아가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젊은 건축학자 조이담(1967~)이 쓴 흥미로운 책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2005)는 서울 청계천변 다옥정 7번지 집에서 출발해 광교와 종로 네거리를 지나 화신상회에 이른 다음 전차로 동대문을 거쳐 조선은행까지 이동한 뒤, 다시 도보로 낙랑파라와 남대문, 경성역, 제비다방, 광화문통 조선총독부 앞, 경성부청, 엔젤카페, 종로 네거리를 거쳐 다옥정 7번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15.7㎞(전차 이동 구간 5.7㎞ 포함)에 이르는 소설 속 구보의 동선을 정리해 놓은 바 있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 살짜리” 청년 구보는 “한 손에 단장과 또 한 손에 공책을” 무기 삼아 거리로 나선다. 지팡이가 그의 보행을 돕는 도구라면 공책은 그의 고현학에 필요한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에 그런 아들은 도무지 요령부득인 텍스트와도 같다. “대체, 그 애는, 매일, 어딜, 그렇게, 가는, 겐가” 어머니는 궁금하다. 혹시나 싶어 “어디, 가니?” 하고 집을 나서는 아들의 등을 향해 질문을 던져 보아도 아들에게서는 좀처럼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어디 월급자리라도 구할 생각은 없이, 밤낮으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혹은 공연스레 밤중까지 쏘다니고 하는 아들이, 보기에 딱하고, 또 답답하였다.” 생활과 상식의 인간인 어머니의 눈에 소설가 아들이란 제 속에서 나온 괴물처럼 여겨지지나 않았을지.
그런 어머니의 궁금증과 답답증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 구보는 걸음이 향하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 거리 저 골목을 쏘다닌다. 다니면서 그가 하는 일이란 지나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그리고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거리를 곱씹는 것이다. 걷다가 지치면 가까운 다방이나 카페에 들어가 다리를 쉬면서 또 이런저런 생각을 저작한다. 가령 그는 아홉 살 때 읽은 『춘향전』이 “뒤에 온, 그리고 또 올, 온갖 것의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춘향전』으로 대표되는 이야기 또는 문학과의 만남이 그의 삶을 결정지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작가로서의 그의 삶과, 경성역에서 마주친 졸부 동창생과 다방에서 어울린 생명보험회사 외교원 등이 대리하는 ‘황금광시대’ 사이의 모순과 대립은 이 소설의 저변을 흐르는 주조음과도 같다.
구보는 시인이면서 생활의 방편으로 신문사 사회부 기자를 하는 벗(=김기림?)을 전화로 불러내기도 하고, 다료(茶寮)를 운영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리는 벗(=이상)과 만나 저녁으로 설렁탕을 먹고는 일단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술을 마신다. 그들이 찾은 술집은 “벗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계집”이 근무하는 낙원정의 어느 카페. 그곳에서 그들은 여급들을 옆에 앉힌 채 맥주를 마시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한편(구보는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런저런 정신병에 걸려 있으며 자신의 증세는 ‘다변증’[多辯症]이라고 여급들에게 말한다), 구보는 “창작의 준비는 비록 카페 안에서라도 하여야 한다”는 신조에 따라 공책 위에 만년필로 메모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시고는 비가 내리는 종로 네거리로 나온다. 헤어지면서 벗은 “그럼 내일 또 만납시다” 하고 언제나처럼 말하는 것이지만, 구보의 대꾸는 평시와는 달리 나온다. “내일, 내일부터, 나,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사실 그는 목적 없는 배회와 고현학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소진하는 동안 새삼스럽게 각오한 바가 있었다: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생활을 가지리라.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다음날부터 구보가, 각오한 대로 집에서 창작에 전념하거나 생활을 챙겼을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렇게 이상과 헤어져 돌아와서부터 쓴 것이 바로 이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에 씌어진 이 소설에서 이민족의 지배라는 특별한 상황에 대한 언급을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 의아스럽다(도쿄 유학 시절의 일이 회상되고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가 인용되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 현실을 환기시키고 있지는 않다). 물론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지식인의 초상, 그리고 그가 목격하는 바깥 사회의 이모저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미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모더니스트 박태원 특유의 문학관의 반영일 수도 있겠고, 1909년생인 박태원에게 일제의 지배라는 현실이 공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리라.
최인훈의 소설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92)은 제1장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에서 제15장 「난세를 사는 마음 석가씨를 꿈에 보네」까지 모두 열다섯 편의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시기적으로 1969년 동짓달부터 1972년 5월까지에 걸쳐 있는 이 소설집은 “한 월남 피난민으로서, 서른다섯 살이며, 홀아비고, 십년의 경력을 가진 소설가” 구보씨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박태원의 구보가 박태원 자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인훈의 구보 또한 최인훈 자신으로 짐작되며, 이 점은 주인석의 구보 역시 동일하다.
열다섯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책인 만큼 여기에는 소설가 구보의 다채로운 일상이 등장한다. 소설 쓰는 이외에 따로 직업이 없기는 박태원의 구보나 다르지 않지만, 최인훈의 구보는 거리를 걷거나 친구와 만나 차 또는 술을 마시는 것 말고도 제법 다양한 활동에 종사한다. 대학 초청으로 문학 강연을 하는가 하면, 잡지의 소설 공모 심사를 맡기도 하고, 선배 시인의 출판기념회와 후배 시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또래의 문학평론가와 함께 문학전집 기획 회의를 하기도 하며, 샤갈과 이중섭의 전시회장을 찾기도 한다.
박태원의 소설에서 구보가 만나는 문우가 이상과 김기림(?) 두 사람뿐인 데 비해 최인훈의 소설들에는 많은 동료 문인들이 약간씩 바뀐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동기(이형기), 김관(김현), 이홍철(이호철), 남정우(남정현), 김광섭(김광섭: 한자 이름이 다르다), 김견해 또는 김공론(김윤식?), 이문장(이문구) 등등.
“현실을 늘 선례에 의해서 이해하는 상고주의자요, 관념론자인” 최인훈의 구보씨는 박태원의 구보 이상으로 사념과 토론을 즐긴다. “칼이 없는 시도 가짜고, 시가 없는 칼도 가짜다” “명월(明月)이나 오동나무에는 발정(發情)하는 시심(詩心)이 인사(人事)의 정사(正邪)에는 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원리의 일관성에 모순된다” “인간을 개인주의적인 인간학의 집합으로 분해함으로써 근대 문학은 사회라는 ‘집단’을 굽어볼 수 있는 관측 지점을 잃어버린 것이다” “서양 양반 계급의 멸망의 가락에 얹혀서 읊어댄 평민 계급의 해춘(解春)의 가락. 그것이 한국 낭만파다”와 같은 명제들이 그 사념 및 토론 과정에서 제출된다.
그러나 문학 및 예술에 관한 고민보다 훨씬 더 구보를 사로잡고 있는 걱정거리는 따로 있으니, 남북 분단과 또 다른 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그 자신 전쟁통에 이북의 고향을 등지고 월남한 처지이기 때문인 듯 구보는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움직임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 그에게 남북 적십자사 사이의 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회담이라든가, (나중에 실미도 특수부대원들로 밝혀지긴 했지만)서울 도심 한복판에 출현한 무장공비의 소요 및 자폭 사건, 위수령에 따른 군대의 대학 내 주둔, 닉슨의 베이징 방문으로 상징되는 미국과 ‘중공’의 데탕트, 미국 기자들의 평양 방문 취재 소식 등은 날카로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 연작의 열세 번째 장은 ‘남북조시대 어느 예술노동자의 초상’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거니와, 최인훈의 구보씨에게 남북간 분단과 대립이라는 현실은 그의 실존적 정황을 저변에서 떠받치고 있는 토대로 인식된다.
구보씨와 함께 문학전집 기획을 위한 회의를 하면서 평론가이자 교수인 김공론(김견해)은 이렇게 말한다. “월북 작가들 작품 말이야.(…)이런 기회에 어떻게 안 될까?” 1988년 ‘해금’ 조처가 있기 전까지는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금기의 대상으로 묶여 있었던 사정을 가리킨 말일 텐데,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작품에 아마도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들어 있었을 테다. 결과적으로 김공론의 이런 바람은 다만 바람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자신의 연작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는 데에서는 최인훈 나름의 문학사적 감각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박태원의 시절로부터 35년 남짓 지난 시점에 씌어진 최인훈의 연작에서 ‘가배차’라는 예스러운 낱말을 만나는 일은 새삼 반갑다. 박태원 소설에서 오후 두 시의 다방에 들어간 구보가 종업원 아이에게 시킨 이 커피를, 최인훈 소설 속 구보의 또래 친구인 시인 김중배가 주문하는 장면은 어쩐지 박태원과 최인훈 사이의 문학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주인석의 구보 연작은 소설집 『검은 상처의 블루스-소설가 구보씨의 하루』(1995)에 들어 있다. 연작 첫편이 1991년 3월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연작 제5편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을 불타게 한다」가 1994년 12월을 다루고 있다(세 번째 연작 「그때 시라노는 달나라로 떠나가고」는 기자 겸 시인인 도형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소재로 삼는데, 도형기의 모델임에 틀림이 없을 기형도의 몰년이 1989년이라는 사실은 이 연작의 시간대 계산에 적잖은 곤란을 초래한다).
박태원과 최인훈의 구보들과 마찬가지로 주인석의 구보 역시 소설 쓰기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혼 남성이다. “1991년에 이십대 후반인 소설가”이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동안 복역하고 나온, 주인석의 구보는 역시 주인석 자신의 분신이라 보아 무방하다.
연작의 첫 작품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에서 정오 무렵에야 일어난 구보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설 때 어머니는 “어디 가니?” “일찍 들어오너라”는 질문과 당부의 말을 차례로 구보에게 던지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듣는 데에는 실패한다. 박태원의 소설에서도 어머니는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어디, 가니?”라는 질문과 “일쯔거니 들어오너라”는 당부를 연달아 했지만 아들은 역시 침묵할 따름이었다. 마찬가지로 주인석 소설 속 구보의 어머니가, 아들이 원고료로 사다 준 스웨터를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글세 우리 아이가 사다주었지 뭐유. 소설 원고료 받았다구 하면서” 자랑하는 모습은, 박태원 소설 속 구보의 어머니가, 아들이 준 돈으로 치마를 해 입고 마실 가서는 “이거 내 둘째아이가 해준 거죠”라며 자랑하는 장면에 대한 오마주라 하겠다.
최인훈의 구보에게 분단된 조국의 상황이 핵심적인 조건이었다면, 주인석의 구보에게는 80년대의 기억과 90년대 현실 사이의 괴리가 가장 심각한 화두로 다가온다. 주인석의 구보에게 “80년대는 1979년 10월 26일과 1980년 5월 27일 사이에 시작되어 1987년 6월 10일과 그해 12월 16일 사이에 끝난 연대를 가리킨다.” 심복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의 암살에서부터 시작해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일당의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학살 및 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투표를 통해 군인 출신 대통령을 뽑은 그해 12월의 대통령선거까지가 구보가 생각하는 80년대라는 것이다. 그 80년대 때문에 구보는 3년 동안 감방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90년대. 단순히 10년의 세월이 더 흐른 것만이 아니라,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느낌을 구보는 받는다. 단적으로 말해, 구보 자신과 같은 사건으로 나란히 3년형을 받고 나온 친구 H가 출판사를 차려서는 성공한 자본가들의 체험담을 모은 책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구보는 옛 소련의 대학생들이 1917년 혁명 이후 소련의 역사를 ‘사잇길의 역사’로 규정하는 신문 기사를 보고서도 반감을 느낀다. 그것이 단지 소련만의 일이 아니라, 구보가 포함된 80년대의 어떤 정신과 움직임을 겨냥한 표현이기도 하다는 판단에서다: “우리가 그 사잇길을 헤매던 시간들은 소중했던 것이 아닌가. 그것이 모두 다 헛된 것이었고 착각이었고 과오였다고 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소프라노 아리아를 제목으로 삼은 다섯 번째 연작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을 불타게 한다」에서 구보는 12·12 쿠데타의 15년 공소시효가 끝나는 1994년 12월 12일 밤 경복궁에 들어가 쿠데타의 주역들과 맞닥뜨리는 환상을 경험한다. 술에 취한 그가 경회루에서 파티를 여는 쿠데타 주역들을 향해 “난 너희들하고 동업 안 한다. 이놈들아. 죽으면 죽었지”라고 절규하지만, 저들은 이미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또 다시 권력을 연장할 정도로 수많은 ‘동업자’들을 확보해 둔 것이고, 그에 저항하는 구보의 처지란 그만큼 옹색할 수밖에 없는 것. 연작 소설집의 제목이 ‘검은 상처의 블루스’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여기서 짐작된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80년대를 마음에 품고 몸으로는 90년대를 사는 주인석의 구보에게 소설은 복수의 형식으로서 역설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소설은 현실에 대해 숨겨진 과거로 저항한다. 사람들이 숨긴, 잊은, 잊으려 하는 과거로. 소설가는 반성시키는 반성가다. 그러기 위해 소설가는 실패해야 한다. 가난해져야 한다. 실패하려고 해야 한다. 실패할, 한 운명이다. 그리고 그는 실패로 세상과 싸운다.” 박태원과 최인훈의 구보들에 비해 주인석의 구보가 소설과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 및 현실에 대한 소설의 효용에 대해 훨씬 예민한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태원과 최인훈의 구보 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인석의 구보 연작에서도 시인 도형기(기형도)를 비롯해 문인들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연작의 네 번째 작품 「한국 문학의 현단계, 1992년 겨울」이 그러한데, 출판사 ‘문학적 지성’(문학과지성사)의 네 금씨로 불리는 금병매(김병익)·금치산(김치수)·금주령(김주연)·금연(김현), 시인 허숙영(허수경)과 소설가 심경숙(신경숙), 그리고 소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나를 알겠는가』(『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의 류인화(이인화), 『죽어버린 자의 기쁨』(『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박이무(박일문), 『즐겁게 살아』(『즐거운 사라』)의 마성기(마광수) 등이 그들이다. 표절과 필화 사건으로 얼룩진 1990년대 초반의 한국 문단을 우울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구보는 문학에 대해 사뭇 비판적이며 회의적인 견해를 내놓는다. 소설집 『검은 상처의 블루스』의 말미에는 「마지막 소설가, 구보씨의 10년 후-서기 2005년,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후기에 해당하는 이 글 속에서 작가는 “10년 후에 구보씨가 살아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과연 계속 소설을 쓰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말이 씨가 되었던 것인지, 『검은 상처의 블루스』 이후 주인석은 소설을 떠나 극작과 연출 쪽으로 전공을 사실상 바꾸었다.
그러나,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주인석이 버린 구보 연작은 2000년대에는 윤후명을 통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후명은 구보 연작 이전에도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주인공이 나오는 자전적 및 에세이적 소설을 즐겨 써 왔거니와, 구보가 등장하는 그의 두 단편 「서울 랩소디-소설가 구보씨의 하루」(2006)와 「소설가 구보씨의 2009년 하루」(2009) 역시 작가 자신으로 짐작되는 소설가 주인공의 여행과 사유를 통해 구보 소설의 맥을 잇고자 한다. 그러나 최인훈이나 주인석에 비해 ‘원조’ 구보와의 친연성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오규원의 ‘시인 구보씨’ 연작은 소설가 구보씨들과의 거리가 한결 멀어 보인다. 아무래도 소설로 쓴 소설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로 쓴 시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시인은시를더좋아하니까/시에미치지요밥만먹고못사니까/밥만먹고는못사는이야기에미쳤지요”(「시인 구보씨의 일일 1-구보씨가 당신에게 보내는 사신 또는 희망 만들며 살기」)라든가 “서 있어도 시/걸어다녀도 시/다방에 앉아 있어도 시”(「시인 구보씨의 일일 4-다방에서」)와 같은 구절들에는 소설가 구보씨들을 연상시키는 면모가 없지 않다. 연작의 세 번째 작품 「시인 구보씨의 일일 3-쇼핑 센터에서」는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이 무렵 오규원 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인용할 만하다.
“나는 사주고 싶네 사랑하는 애인에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스판덱스 브래지어, 사주고 싶네 아폴리네르 같은 팬티스타킹, 아 소포로 한 짐 보내고 싶네 에밀리 디킨슨의 하얀 목덜미 같은 생리대 뉴후리덤//(…)// 나는 사랑하는 애인에게 사주고 싶네 하이네 같은 쌍방울표 메리야스, 워즈워스 같은 일곱 색 간지러운 삼각 팬티, 아 나는 등기 소포로 보내고 싶네 바스코 포파의 「작은 상자」에 든 월계관표 콘돔”(「시인 구보씨의 일일 3-쇼핑 센터에서」 부분)
박태원에서 주인석까지의 소설가 구보씨들은 물질적 현실에서 삼십 센티미터쯤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면모를 보인다.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게 비친다. 그들이, 최인훈의 구보가 자탄하다시피, “삶에서 말을 배우는 게 아니라 말에서 삶을 배우”는 종류의 인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적 무능과 패배로써 거꾸로 현실의 추악한 본질을 까발린다. 주인석 소설의 한 대목처럼 “소설은 좌절한 의식의 소산”이지만, 그 좌절은 반성과 저항으로 이어지는 적극적 좌절이다.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머릿속으로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곱씹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구보씨들은 적어도 그런 정도의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것이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는 주인석 소설 속 구보 어머니의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설을 읽고 또 쓰는 것은 바로 ‘소설과 구보씨’ 들의 그런 역할 때문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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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