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는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과도 같다. 고려 승려 일연이 쓴 이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의 생성과 부침을 기록한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 및 식물, 천문과 지리, 그리고 자연 현상에 관한 진기한 이야기들을 수집해 놓은 이야기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숱한 시인·소설가 들이 『삼국유사』라는 샘에서 영감을 길어 올렸으되, 이 샘은 여전히 찰랑찰랑 새로운 이야기와 생각 거리로 흘러넘치고 있다.
윤대녕(1962~)의 단편소설 「신라의 푸른 길」 역시 『삼국유사』에 이야기의 얼개를 기대고 있다. 작가의 관심을 끈 대목은 이 책의 권 제2 ‘기이’ 하 편에 나오는 수로부인 이야기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러 가던 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까마득한 바닷가 절벽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누가 저 꽃을 꺾어 바치겠느냐?”고 좌우에 물었으나 위험하다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소를 몰고 지나던 웬 노옹(老翁)이 절벽을 올라가 꽃을 꺾어다가 부인에게 바쳤다. 그런 다음 노래를 지어 바쳤으니 「헌화가」가 바로 그 노래이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수로부인은 미색이 출중했던 모양이다. 철쭉꽃과 「헌화가」 사건이 있은 지 이틀 뒤에는 역시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던 중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납치해서는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순정공 앞에 이번에도 웬 노인이 나타나 계책을 일러 주었는데, 여럿이서 함께 용을 위협하는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었다. 이때 부른 노래가 「해가」(海歌)였으니 이러하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약탈했으니 그 죄가 얼마나 큰가.
네 만약 거역하고 내어 바치지 않으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서 먹으리라.
가락국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강림 설화에 나오는 「구지가」(龜旨歌: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와 비슷한데다, 가락국 왕과 순정공 부인의 이름 역시, 비록 한자는 달라도 한글 발음으로는 같은 ‘수로’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편은 “수로는 자태와 용모가 뛰어났으므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자주 신물(神物)에게 납치당했다”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헌화가」와 「해가」 사건뿐만 아니라 여기서 기록하지 않은 비슷한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다는 뜻이겠다.
윤대녕의 소설 「신라의 푸른 길」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남자가 서울을 떠나 경주를 거쳐 칠번 국도를 타고 동해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미모의 유부녀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다룬다. ‘일’이라고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별다른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두 사람이 버스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했다는 정도? 남자의 목적지 동해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행로를 따라 헤어지며, 그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이런 싱거운(?) 이야기가 소설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경주-강릉 간 버스 안이라는 공간을 『삼국유사』의 설화적 세팅과 중첩시킨 작가의 상상력과 그것을 뒷받침한 특유의 미문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작가는 우선 서울에서 경주로 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행위에 모종의 종교적·신화적 의미를 부여한다. 지리멸렬하고 갑갑한 서울 살이에 찌든 심신을 달래고자 석굴암 본존불을 알현하고 화자가 ‘생불’(生佛)이라 부르는 동해의 삼촌을 친견하러 나선 길이라는 것이다. 불국토 경주를 거쳐 가는 그의 행로는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눈치챌 리 없는 그 첩첩 천리 신라의 길”이라 표현된다. 주인공은 그 신라의 길을 따라 『삼국유사』의 세계로 들어설 참이다.
경주에 도착해 일박한 다음 계획처럼 석굴암 본존불을 알현한 그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강릉행 시외버스에 오른다(그러니까 『삼국유사』의 세계에 탑승한 셈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수로부인’을 만난다. 공교롭게도 만원 직행버스에 마지막으로 남은 두 자리에 서른네 살 동갑내기 유부남과 유부녀가 나란히 앉아 가게 된 것이다.
부처님 한 분을 알현하고 다음 부처를 친견하러 가는 처지에 멀쩡한 유부남이 버스 옆자리의 유부녀를 향해 흑심을 품는대서야 두 분 부처님께 면이 서지 않을 노릇일 테다. 그러나 작가는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마련해 두기를 잊지 않는다. 남자의 아내가 뒤늦게 공부를 하고자 일본에 가 있는 상황으로 설정한 것이다. 게다가 그 아내는 지금 한 달째 연락이 없다! 두 사람 사이에 말문이 트인 뒤 남자가, “저야 뭐 보시다시피 처용가를 부르며 신라를 떠돌아다니고 있죠”라고 자기 소개를 한 것은 그런 처지에 대한 자조이자 동시에 은밀한 알리바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처용 운운의 자기 소개가 지닌 세 번째 목적이 따로 있다. 버스 안의 좁은 공간을 『삼국유사』의 세계로 마술처럼 바꾸어 놓고자 하는 것이다. 마침 옆자리에는 “드물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소유자인 ‘수로부인’이 앉아 있지 않겠는가. “헌화가에 나오는 수로부인도 경주에서 강릉까지 이 바닷길을 따라갔다고 하죠?” 『삼국유사』가 깔아 놓은 길을 따라 이야기는 처용에서 수로부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이어지는 회심의 일격. “아무튼 이 바닷길을 수로부인과 함께 여행하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설화 속 수로부인과 버스 옆자리의 동행을 동시에 겨냥한 절묘한 포석이라 하겠다.
옆자리 여자를 수로부인에 견주면서 그가 노린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자신 역시 설화 속 등장인물로 ‘격상’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노린 설화 속 인물은 누구? 청백리라는 남편 순정공은 당연히 아니고 철쭉꽃은 더더욱 아닐 터이니,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헌화가」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 노옹의 자리를 그는 은연중에 넘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던 현자란 웬 젊은 스님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노옹에 대한 그의 부연설명은 자신과 노옹을 동일시하는 그의 잠재의식을 노출시킨다.
「헌화가」의 노옹은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꺾어 바쳤다. 그렇다면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이 그의 수로부인에게 바칠 철쭉꽃은 무엇일까. 영덕에서 잠시 버스가 멈추었을 때 주스캔을 사 가지고 와서 여자에게 건네긴 했지만 그것을 철쭉꽃이라 할 수는 없으리라.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버스가 남자의 목적지인 동해에 이르러 그가 마침내 차에서 내려야 했을 때 그는 말한다. “오는 길에 임해정이 어디란 걸 알았다면 내려서 철쭉꽃을 꺾어 드렸을 텐데요.” 결국은 철쭉꽃을 꺾어 바치지 못했다는 뜻일 텐데, 그는 사실 자신도 모르게 철쭉꽃을 꺾어 바쳤으니, 수로부인과 「헌화가」에 관한 이야기를 여자에게 들려주지 않았겠는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 옆자리의 유부녀는 잠시나마 자신을 설화 속 수로부인과 동일시해 보았을 테니 그런 상상이야말로 화사한 철쭉 한 다발에 값하는 것 아니겠는가.
「헌화가」에서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꺾어 바친 노옹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홀연히 퇴장한다. 그러나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은 설화 속 노옹처럼 쿨하지는 못하다. 버스 안에서 여자에게 건 최면에 그 역시 푹 빠지고 말았으니, 그는 설화와는 다른 결론을 꿈꾸어 본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녀가 이미 타인일 수 없다는 집요한 유혹에 나는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단한 날들에도,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세상이 눈에 밟히듯, 오늘 어쩌면 그녀를 거부할 수 없다는 체념 같은 게 강박처럼 내게 달겨들었다. 뭘 어쩌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몇 시간 동안이나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그녀와 나 사이에 어느덧 매듭 같은 게 생겼다는 걸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여자 쪽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르겠다. 애초에 버스 안에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나란히 앉게 되었던 두 사람은 중간 기착지에서 사람들이 여럿 내려 빈자리가 많이 생겼음에도 의연히 옆자리를 고수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남자가 내려야 할 동해에 버스가 도착한 뒤에는 두 사람 다 화라도 난 것처럼 굳은 얼굴로 꼼짝 않고 앉아 있었으니, “나는 그녀와 내 손이 수갑 같은 것에 한 짝씩 묶여 있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이 순간 두 사람은 일종의 기로에 서 있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지. 바람 속의 장작불처럼 사납게 타오르고 있었던 그 순간 남자의 심경은 이렇게 그려진다. 윤대녕 득의의 시적 표현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때로 그게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어도, 어스름한 저녁에 깨어나 지붕에 후득이는 빗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간절하게 사무치는 때가 있다. 벽구석에 몸을 말아붙이고 앉아 손가락 하나로 아무렇게나 건반을 꾹꾹 눌러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두 분 부처님의 원려 덕분인 듯, 남자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장작불처럼 타오르려는 조급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애초의 서늘한 마음자리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맹렬히 타오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때로는 거리의 아름다움에도 눈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가까스로 도달한다.
그래, 그러나 다시 멋쩍은 타인으로 돌아가 서로 건너편에 서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에 어른거리는 당신의 더운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불러도 서로 들리지 않는 멀찍한 거리에서 우리는 만난다. 가끔은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그 거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타인이며 또한 이렇게 모두가 타인이 아니다. 그래, 나는 자주 부싯돌 같은 마음을 꿈꾼다. 겨우 환해졌다가는 이내 눈귀를 막고 단단한 어둠으로 스스로 돌아갈 줄 아는…
장작불과 부싯돌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그는 부싯돌을 택한 것인데, 『삼국유사』에 빗대 보자면 처용의 처지에서 출발한 그는 자칫 신물(神物)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노옹의 자리에 안착한 셈이다. 안착이라고는 했어도 미련이야 왜 없겠는가. “…칠번 국도엔 언제까지 버스가 지나다닐까요?” 『삼국유사』의 공간이었던 버스에서 내리기 전, ‘노옹’은 망설임 끝에 이렇게 묻지 않겠는가. ‘수로부인’ 역시 의문문으로 답을 대신하는데, 이 경우 문장을 마무리하는 물음표는 궁금증이 아니라 기대를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아 보인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헌화가가 완전히 잊혀질 때까지는 아마 운행을 계속하겠죠?”
그러니, 사람들아, 칠번 국도에 오르거든 「헌화가」의 수로부인과 노옹을 떠올려 보아라. 「신라의 푸른 길」의 두 남녀를 기억해 보아라. 그 길은 그들과 함께 가는 길임을, 그대들이 『삼국유사』와 윤대녕 소설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라. (*)
--------------------
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