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지금 나보고 봉평에 가 달라는 겁니까?”
이순원(1957~)의 단편소설 「말을 찾아서」는 주인공인 ‘나’(소설가 이수호)의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있고 그가 통화하고 있는 상대는 어느 사보의 편집자다. 사보 편집자는 그에게 이효석(1907~1942)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강원도 평창군)을 다녀와서 문학기행 성격의 원고를 써 달라고 청탁하는 중이다. “독자들이 작품과 작품 배경을 이해하기 쉽게 작품 얘기 반, 작품 무대 얘기 반”으로 구성된 글을 편집자는 원하고 있다.
‘나’의 항의성 질문은 그런 청탁에 대한 거부감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사실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후반에 이미 봉평이며 대화, 진부 같은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를 답사한 바 있으며,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에도 개인적인 사연 때문에 고향 강릉에서 봉평까지 혼자 여행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도 그가 원고 청탁을 뜨악해한 까닭은 무엇일까. 「말을 찾아서」는 그가 느끼는 거부감의 바탕에 있는 사연을 차례로 캐 올린다.
거부감을 낳은 일차적인 원인은 며칠 전 새해 벽두에 꾼 말 꿈에 있었다. 안장과 고삐도 없는 붉은 맨몸의 말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와 히히힝, 소리를 지르듯 주위를 맴돌았던 게 그가 꾼 말 꿈의 전부다. 그러나 그 꿈은 그보다 두 달 전쯤 일본에서 열린 문학 심포지엄에 참가했다가 엉겁결에 말 사시미를 먹고 탈이 났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그 기억은 다시 그로 하여금 그토록 말고기에 심리적 저항감을 지니게 작용한 특별한 개인사(史)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의 개인사의 특별함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나이에 손이 없던 당숙의 양자로 들어갔다는 사실로 요약된다. 당숙은 마차를 끄는 노새를 부린다고 해서 ‘노새 애비’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그의 양자로 들어간 ‘나’에게는 ‘노새집 양재’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그 별명은 수치스럽고 혐오스럽게만 다가왔다. 양부모가 된 당숙과 당숙모의 헌신적인 사랑도 그의 수치심과 혐오감을 씻어 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3년이 흘러 ‘나’가 중학교 1학년이 된 해의 어느 날, 동료 마부들 앞에서 아버지 행세를 하려는 당숙에게 ‘나’가 모욕감을 준 일이 계기가 되어 당숙은 노새를 몰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말을 찾아서」의 뒷부분은 뒤늦게 자신의 철없는 언행을 후회하게 된 ‘나’가 봉평 어디의 산판장에 가 있다는 당숙을 찾아 데려오는 이야기에 할애된다.
“대관령 아래 면소재지 마을까지 20리를 걸어나가 강릉에서 올라오는 대화행 완행버스를 타고 먼지 풀풀 날리는 아흔아홉 굽이 고갯길을 넘어 세 시간 반 만에 가닿은 곳이 봉평이었다.” 차를 타기 위해 걸어나온 시간에다 차를 기다리거나 갈아타느라 지체한 시간이 더해져, “아침 일찍 나온 걸음이었는데도 오후 늦게야 그곳에 닿았다.”
봉평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어른들의 눈을 피해 그 나귀의 왕자표 노새자지를 툭툭 건드리며 나귀를 못살게 구는 각다귀 떼들(장터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장돌뱅이들)은 여전히 등짐이 아니면 나귀에 물건을 싣고 이 장 저 장을 떠돌아다녔다.”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은 이라면 기억하리라. 나귀를 타고 봉평장에서 대화장, 제천장으로 떠돌아다니던 허생원이니 조선달이니 동이니 하는 장돌뱅이들을. 그리고 주인공 허생원의 당나귀를 장난삼아 괴롭히던 장터의 어린 악동들을 가리켜 쓴 단어 ‘각다귀’를. 그렇다. 이곳 봉평은 바로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였고, 중학교 1학년생 ‘나’가 찾아갔던 1969년의 봉평은 그 작품이 씌어진 1936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그러니까 나는 아직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기도 전 그 소설의 무대를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았던 셈이다.”
그 자신 나중에 커서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을 ‘나’가 일찌감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봉평을 ‘답사’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가 봉평에서 양아버지인 당숙과 상봉하는 장면은 어쩐지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오르게 한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진부옥이라는 이름의 식당 겸 술집. 양아버지는 뒤늦게 자식을 바라고 그곳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 돌았던 터였다. 양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당숙이 산판에서 내려와 진부옥으로 ‘나’를 불러서 둘은 그곳에서 석 달 만에 상봉하게 된다. 이 장면을, 충주집에서 허생원과 동이가 마주치는 장면과 비교해 보자.
충주집 주모인즉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버”릴 정도로 허생원의 마음을 앗아 간 여자. 그런 여자를 꿰차고 아직 해도 떨어지기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던 동이를 발견한 허생원은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주”기에 이른다. 명분이야 아직 어린 동이에게 어른으로서 따끔한 충고를 한다는 것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암컷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수컷의 다툼 아니었겠는가(그런 점에서, 밖에 매어 놓은 허생원의 나귀를 두고 아이 녀석들이 하던 말, “늙은 주제에 암새를 내는 셈야. 저놈의 즘생이.”는 나귀가 아니라 허생원 자신을 겨냥한 핀잔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요컨대 유전자, 그러니까 ‘씨’를 둘러싼 경쟁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서야 윤곽이 드러나거니와, 허생원과 동이는 어쩌면 유전자를 건네주고 건네받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일지도 모르던 것.
「말을 찾아서」에서도 양아버지와 양아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는 ‘씨’를 둘러싼 소동으로 볼 수 있다. 양자라는 제도를 통해 상징적 유전자 전승을 꾀했던 당숙이 ‘나’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치자 이번에는 생물학적 유전자 전파 쪽으로 눈을 돌렸고, 진부옥은 상징적 유전자와 생물학적 유전자 사이의 한 판 대결의 장이 된 것이다(당숙과 조카 사이의 생물학적 유전자 부분 공유는 여기서는 잠시 논외로 하자).
“아들이 없기는, 내가 노새나? 아들이 없게. 애비 산에 가서 안 온다고 이렇게 여게까지 데리러 오는 아들이 있는데.”
정 붙일 아들이 없어서 떠돈다더니 이렇게 멀쩡한 아들이 나타난 게 웬 조화냐는 산판 동료들의 질문에 당숙은 의기양양해하며 대꾸한다.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나 생식 능력이 없는 노새가 은연중에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대목이다. ‘노새 애비’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그 자신 사실상 노새 취급을 당했던 당숙에게 이제는 자신을 ‘아부제’라 부르는 아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말을 찾아서」는 아들의 (양)아비 찾기라는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속내인즉 아비의 아들 찾기라 할 수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모티브가 아비의 아들 찾기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평생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던 허생원.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던 그이지만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만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으니, 물방앗간에서 마주친 성서방네 처녀와의 연분이 그것이었다. 단 하룻밤의 인연을 끝으로 처녀네 식구는 제천으로 이사했다 하고, 지금 허생원의 앞에 나타난 동이인즉 봉평 출신으로 제천에 살던 어미한테서 생겨났으나 아비가 누구인지는 본시부터 알지 못했노라는 것 아닌가. 소설은 왼손잡이 동이가 역시 왼손잡이인 허생원의 아들일 수 있다는 강력한 암시로 마무리된다. 왼손잡이가 유전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와는 무관하게, 여기서도 아비는 마침내 아들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말을 찾아서」에서 양아버지와 양아들이 봉평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 밤길 장면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과 동이가 조선달과 함께 봉평을 떠나 대화 장으로 가는 밤길의 묘사를 떠오르게 한다. 반세기 전 선배 작가에 대한 후배의 오마주라 할 두 대목을 마지막으로 읽어 본다.
“진부옥을 나온 다음 아부제와 나는 밤길을 걸었다. 아니 걷지 않고 마차 앞 자리에 타고 밤 늦도록 이목정까지 나왔다.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이었다. 아부제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가 조금도 싫지 않았다. 노새는 연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고, 길 옆은 온통 옥수수밭이거나 감자밭, 올갈이 무와 배추를 뽑은 다음 씨를 뿌린 메밀밭이었다. 꽃 향기도 좋고 저녁 바람도 시원했다.” (「말을 찾아서」)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얬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메밀꽃 필 무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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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