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시집 『질마재 신화』(1975)에 실린 「신부」의 내용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시집 속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행갈이에 인색한 산문투로 씌어진 이 시는 신혼 첫날밤 신랑에게 버림받은 신부에 관한 설화를 들려준다.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치르기 위해 신부네 집에 차려진 신방에 들었다가 오줌이 급해진 신랑이 뒷간에 가고자 서둘러 방을 나서는데, 무언가가 그런 신랑의 옷자락을 뒤에서 잡아당기더라는 것. 실인즉 방문 돌쩌귀에 옷이 걸린 것인데, 신랑은 그것이 음탕한 신부의 소행이라 생각하고는 옷이야 찢어지건 말건 뿌리치고 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그로부터 무려 40년인가 50년인가 지나서야 신부네 집 옆을 지나는 길에 문득 궁금해져서 신부 방 문을 열어 보았다는 것. 그런데 그 방 안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 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이 기막힌 설화를 읽으면서 독자가 탄식을 내뱉게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필이면 돌쩌귀가 신랑의 옷자락을 물고 늘어져서는 그런 엄청난 오해를 낳았다는 공교로움,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까지도 첫날 밤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가 신랑의 뒤늦은 알은체에 그제서야 지난 세월을 한꺼번에 먹은 듯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린 신부의 한. 여기에다가,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지레짐작으로 판단을 내리고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행동을 취해 버린 성급하고 어리석은 신랑에 대한 비판이 곁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고, 적극 나서서 신랑의 오해를 푸는 대신 부당한 허물을 뒤집어쓰고 손해를 달게받으며 가만히 앉아서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에 대해서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페미니즘의 독법으로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 아마도 시인 자신은 결코 의도하지 않았을 낯설고 도발적인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시인의 작의(作意)와 이 작품에 대한 관행적인 수용 속에서 「신부」는, 『질마재 신화』 속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설화적 배경과 사건들을 통해 민족 고유의 정서에 호소하는 전통 미학의 한 본보기와도 같은 시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서구적 합리성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물론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겨레의 마음자리를 오묘하게 포착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신부」가 ‘질마재 시편’의 대표작 중 하나로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데 반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선행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조지훈(1920~1968)의 시 「석문(石門)」이 그것이다.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낸 합동시집 『청록집』(1946)을 제하면 지훈의 첫 개인 시집이 되는 『풀잎 단장』(1952)에 실린 작품이다. 이 시 역시 미당의 「신부」와 비슷한 모티프를 다루고 있다. 지훈의 고향인 경북 영양 일월산 아랫마을의 황씨 처녀가 자신을 좋아하던 마을의 두 총각 중 한 명에게 시집을 갔는데, 신혼 첫날 밤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의 눈에 신방 문에 어린 칼 그림자가 들어왔다. 마당의 대나무 잎 그림자를 칼로 잘못 본 것인데, 연적이 자신을 노리고 숨어 있는 것으로 오해한 신랑은 그 길로 달아나 버렸고, 신부는 원삼과 족두리도 벗지 않은 채 신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오해가 풀린 신랑이 썩지 않고 첫날 밤 모습 그대로 있는 신부의 주검을 수습하고는 사당을 지어 혼령을 위로했다…
새신랑으로 하여금 첫날 밤 신부에게 등 돌리고 줄행랑을 치게 만든 동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두 이야기는 놀랄 만큼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미당은 지훈의 시 「석문」을 통해 ‘억울한 신부의 죽음’ 이야기를 접하고 그것을 자기 식으로 변주한 것일까, 아니면 지훈의 고향과 마찬가지로 미당의 고향 질마재에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 것일까.
경위야 어쨌건 간에, 「석문」은 한을 품고 죽은 신부의 목소리를 빌려 사태를 서술한다.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여기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신부가 들어 앉아 있는 공간은 굳게 닫힌 석문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돌로 된 문이니 웬만한 힘으로는 여닫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 문은 또한 그토록 기다리는 ‘당신’이라면 “손끝만 스쳐도” 스르르 열릴 쉬운 문이기도 하다. 신부의 한이 맺히고 응어리져 된 것이 돌문인 만큼 그 한을 풀어줄 당사자의 손길 아래에서는 센서 달린 자동문처럼 한없이 온순하고 용이하게 작동하리라는 뜻이겠다.
“몇만 리 구비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순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지 못하오리다.”
굳게 닫힌 돌문처럼, 첫날 밤 모양 그대로 굳어 있는 신부의 형상 또한 ‘당신의 손길’이 있어야 비로소 티끌로 사라지겠단다. 사람이든 한갓 미물이든 일단 죽은 뒤에는 먼지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죽은 신부가 상기도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결코 축복은 아닌 것이다. 축복은커녕 저주라고 보는 것이 「석문」과 「신부」의 공통된 관점이다. 그러니까 미라로 굳어 있는 신부의 주검이 순리에 따라 먼지로 돌아가도록 작용하는 신랑의 뒤늦은 손길이야 말로 화해와 용서의 촉매라 하겠다.
「신부」에서 그 화해와 용서가 완결된 데 비해, 「석문」의 신부는 아직도 최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것이라며 신부는 사뭇 신랑을 압박한다. 더 나아가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일종의 ‘눈에는 눈’ 식의 엄포와 협박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모치량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서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이런 결론을 두고, 지훈이 미당보다 신부의 처지와 심정을 더 잘 헤아렸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아가, 미당의 시가 지훈의 시보다 늦게 씌어졌다는 점에서, 미당의 ‘퇴행적 미의식’을 지적할 수도 있으려나. 반대로, 사태의 한쪽 당사자인 신부의 목소리를 택한 지훈에 비해, 짐짓 객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작품의 결말을 열어 놓은 미당의 성숙한 면모를 평가하는 관점도 있을 수 있겠다. 당신이 어느 쪽에 서든, 두 시를 비교해 가며 읽어 보노라면 한층 풍부하고 흥미로운 독서 체험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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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