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단편소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와 남진우의 시 「겨울 저녁의 방문객」을 비교해 가며 읽는 일은 흥미로운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신경숙의 단편은 그의 소설집 『딸기밭』(문학과지성사, 2000)에 실려 있고 남진우의 시는 시집 『타오르는 책』(문학과지성사, 2000)에 들어 있다.
부부 사이인 두 사람의 소설과 시가 나란히 겨울 밤을 배경으로 단 둘이 생활하는 부부를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뜨인다(남진우의 시에 등장하는 ‘그대’와 ‘나’가 부부 사이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정황상 부부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남진우의 시에 나오는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라는 ‘그대’의 말은 바로 신경숙 소설의 제목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두 소설과 시는 영향 관계 내지는 대화적 관계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신경숙의 단편에서 두 젊은 부부는 2년 전에, 태어난 지 7개월 된 딸을 수두로 잃은 아픔을 겪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 뒤 여자는 사는 일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등산 모임을 따라 온갖 산을 섭렵하고 돌아다닌다. 그 여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이다. 한때 출판사에 근무했던 여자가 소설가인 ‘선생님’에게 쓴 편지 형식을 취한 이 작품에서 여자는 “딸아이를 잃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에 충실하고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가족 모임에도 변함없이 얼굴을 내미는 남편이 견딜 수 없어졌어요”라고 말한다. 부모를 잃은 천붕(天崩)의 슬픔에 필적할 것이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慘慽)의 고통일진대, 하나뿐인 딸을 여의고도 멀쩡하게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남편이 그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자는 심지어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래를 설계하는 그 사람이 저는 제 남편 같지가 않았어요”라고까지 쓴다. 결혼식장에서 주례 선생님과 부모님, 하객들 앞에서 하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서로 사랑하며 살겠노라’는 맹세에 심각한 균열이 온 것이다.
이렇듯 딸아이의 죽음 이후 갈수록 서로에게 거리감을 느끼며 위기로 치닫고 있는 부부가 어느 겨울 새벽에 모처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계기는 남편이 들었다는 누군가의 문 두드리는 소리. 그러나 의아해하며 열어 본 현관 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시어머니가 심어 준 모과나무 밑에 눈이 소복”히 쌓여 있을 뿐이다.
부부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고독한 잠을 청하려 하는데, 이번에는 아내 쪽에서 무슨 소리를 듣는다. “욕조에 받아놓은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서 욕조에 들어가 놀기를 좋아했던 딸아이를 떠올린 아내가 남편을 불러 세면장을 확인해 보지만, “세면장 창문으로 새어들어온 흰 눈빛이 욕조를 희뿌옇게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은 아내 쪽의 실수(?).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려던 부부는 어느 순간, 이번에는 똑같이 무슨 소리인가를 듣고는 약속이나 한 듯 부엌 냉장고 앞으로 간다. 그리고는 자신이 들은 것을 상대방에게서 확인하려 한다.
“당신도 들었나요?”
“당신도?”
“네.”
그들이 함께 들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죽은 딸아이의 옹알이 소리였다. 생전에 아이는 냉장고 안에서 맛난 것을 꺼내 먹여 달라는 말을 대신해서 옹알이를 했던 것.
이렇게 두 사람이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남편의 추워 보이는 맨발이 아내의 눈에 들어온다. “어두운 부엌 냉장고 앞에 길을 잃은 사람들처럼 서 있”던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 간다.
“잊고 있었어… 그날이 오늘이더군.”
“…”
“당신은 알고 있었어?”
“네.”
‘그날’이란 무슨 날이겠는가. 바로 2년 전 딸아이를 떠나 보낸 날이었던 것.
아내는 2년 전에 했어야 할 질문을 그제야 남편에게 건넨다: “아이를 어떻게 했어요?” 혼자서, 산에 묻었다는 남편의 대답을 듣고서야 아내는 자신이 그토록 산을 탐했고 산에만 가면 마음이 평온했던 까닭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대답 끝에 입을 비틀며 울기 시작하는 남편. 아내는 그동안 남편 혼자 감당해야 했던 슬픔과 아픔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다.
이 눈물을 다 감추느라고 제가 산에 다니는 동안 이 남자는 그리 반듯하게 살았던 게지요. (…) 그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기가 저처럼 아예 안 하기보다 훨씬 힘들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눈빛이 하얗게 퍼진 부엌의 냉장고 앞에서 이 년 만에 사랑을” 나눈다. 다시 ‘눈빛’이 등장하는 것에 주목하자. 이 겨울 새벽 두 사람의 화해와 사랑의 드라마에 입회하고 있는 눈빛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2년 전에 세상을 뜬 딸아이의 영혼이 아니겠는가. 자식의 죽음 이후 벽을 쌓고 균열을 만들었던 두 사람 사이에 “그것(=자신의 것에 못지 않은 남편의 고통)을 알게 해 주려고 방문객은 그 세찬 눈보라를 뚫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눈보라를 뚫고 제게 왔던 방문객이 구월이면 태어난다고” 여자는 뒷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니까 눈빛=방문객은 2년 전에 수두로 죽은 딸아이이자 새롭게 잉태된 그 아이의 동생이기도 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실로 마음을 닫아건 사람들에게 눈보라를 뚫고 우리를 찾아왔던 방문객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다고 여자는 편지를 마무리한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등장하는 ‘방문객’이라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남진우의 시 「겨울 저녁의 방문객」을 떠오르게 한다. 남진우의 시에서도 자정 가까운 시각 둥근 식탁에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먹고 있던 두 사람에게 어떤 방문객이 찾아온다. 그렇지만 신경숙의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방문객 역시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는 아니다. 그래서 ‘그대’는 식탁을 치우며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라 질문하고, ‘나’ 역시 “누구인가 식탁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와 나/ 우리 말고 우리 곁에 있는 그는”이라며 궁금증을 표하는 것이다.
신경숙 소설에서 남편과 아내의 환청을 거치면서 조금씩 방문객의 존재가 확인되어 가는 반면, 남진우의 시에서는 방문객의 정체와 관련한 더 이상의 정보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곁에 없으면서 우리 곁에 있는/ 그”는 “조용히/ 우릴 바라보며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신경숙 소설의 죽은 자식 같은 구체적인 대상으로 특정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소설과 시의 차이라면 차이일 수도 있겠다.
남진우의 시에서 누군가가 곁에 있거나 집 쪽으로 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대’ 쪽이다. ‘나’는 “이 방 안엔 아무도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너와 나밖엔 아무도 없는 거야”라며 ‘그대’의 불안한 궁금증을 가라앉히려 한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과연 누구일까.
어쩌면 그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다만 내가 지어낸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
나와 그대 사이 건너갈 수 없는 시간의 저편에서
우리의 모습을 엿보고 우리의 말을 엿듣는
그는 어쩌면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누군가란 과연 지어낸 이야기요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진우 시의 마지막 연은 그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배반한다.
그러나 그날 저녁
식탁가에는 세 개의 의자가 졸고 있었다
희미한 등잔 불빛 아래 점점 넓어지는 방 안
그가 앉았다 일어난 자리에 떨어져 빛나고 있는
창백한 머리카락 한 점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 누군가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점으로 자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그렇다면 그 머리카락의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의 삶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목격자이자 감청자로서 그는 혹시 남진우의 시에 종종 등장하는 모종의 신적인 존재 또는 절대자가 아닐까. 물리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그 존재를 의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는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大他者, the Other)를 떠오르게도 한다. 이야기[환영]일까 절대자[대타자]일까. 아니 그 둘은 실은 동일한 것의 다른 이름이 아닐는지. ‘나’가 지어낸 이야기 속 피조물이자, ‘우리’를 감시하는 창조주이기도 한 ‘그’. 어느 겨울 밤 신경숙과 남진우 부부를 찾아갔던 그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 곁에 있다. (*)
--------------------------
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