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1953~)의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은 광기의 힘을 빌려서라도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학생운동의 절정기였던 80년대의 어느 날, 학우의 분신 자살 계획을 경찰에 알렸다가 조직의 일원이었던 애인에게 버림받았던 경험이 고통의 기억의 저변을 이룬다. 주인공은 현재 안양의 여로 여관에 장기 투숙하면서 옛 애인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또한 미친 여자의 전화 공세에 시달린 끝에 다니던 출판사와 집에서 쫓겨난 기억 역시 간직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공장에 들어갔던 그는 그 뒤 시인이 되어 시집도 한 권 낸 바 있다. 그 시들은 대학 시절 애인이었던 “그녀와의 사랑의 이야기들을 밑자리에 깔고 있”었는데, 미친 여자는 그 시들이 자기와의 연애를 기념하기 위해 쓴 시라고 주장했던 터였다.
“시가 써지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모두 52개의 짧은 매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매듭들은 이성복, 최승자, 성기완, 송찬호 등 시인들의 시 구절을 에피그램처럼 머리에 얹고 있으며, 각 매듭의 이야기들은 에피그램 격인 시 구절들과 긴밀한 조응 관계에 놓여 있다(이 소설이 이 코너에 초대된 것은 그 때문이다). 가령 첫 매듭의 에피그램은 이성복의 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의 일부이다: “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시의 인용된 부분은 서울 근교 허름한 여관방에 누워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주인공 김윤수의 정황을 짐작하게 한다. 그와 함께, “나 자신이 움직여 나 자신을 움직이는, 내 시는 써지지 않는” 반면, 남들의 시와는 교감하며 “나 자신을 단지 남의 시의 시적 정보나 정서로만 알아보는” 스스로를 가리켜 “저 시인에게와는 다른 양태로, 내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질문하는 데에서도 인용된 시 구절은 교묘하게 차용되어 있다.
최승자의 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앞세운 두 번째 매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래,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피해가고 싶지 않았다./ 그 구덩이에 내가 함몰된다 하더라도/ 나는 만져보고 싶었다,/ 운명이여.” 미친 여자에게서 터무니없는 전화 공세가 빗발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매듭의 내용과 최승자의 시가 훌륭하게 조응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소설의 핵심적인 사건이라 할 대학 시절의 분신자살을 회고하는 서른일곱 번째 매듭에는 유하의 시 「그 옛날의 어린 눈빛」이 인용되어 있다: “축제와 죽음이 한몸으로 만나는 각도에서/ 지상의 모든 눈부심이 내 청춘의 나머지를 지워버렸으므로”“나를 순간적으로 죽이면서 도달하는 순간적인 절정의 그 무엇”이 바로 그 느낌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이인성은 놀랍게도 유하의 이 시를 혁명 또는 변혁이라는 ‘축제’를 위해 한 사람의 죽음을 요구했던 80년대의 ‘눈부신’ 광기, 그리고 그 광기 뒤에 연인에게 버림받은 주인공 김윤수의 처지를 노래하는 것으로 ‘전유’한다. “언젠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땐 모두 미쳤었던 건지, 한꺼번에 동시에, 이 세상 자체를 축제판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던 적이 있었”으며 “그때 죽음마저도 불사한 그런 축제가, 놀랍게도 우리 눈앞에, 정말로 실재했었”지만, 안타깝게도(?) 김윤수는 “그걸 내 축제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으며 “그 순간부터, 내 청춘은 사그리 삭제되어 버렸다”는 것이 이인성이 전유한 유하 시의 산문적 풀이다. 정말이지 교묘한 재봉 솜씨라 하겠다.
대학 시절 김윤수를 이끌어 죽음에 이르는 광기와 조우하게 하고 결국 그의 청춘을 박탈해 간 연인은 현재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과거와는 다른 성격의 광기에 함몰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만든 ‘범인’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저만치를 피해가고 있었”던 대학 시절의 윤수가 “이 세상의 독한 페퍼포그 안개 속에 쓰러져, 피투성이로, 먼 나를 향해 뻗치던 손”을 만나고, 그 손의 주인이었던 여자의 연인이 되어서는 여자를 좇아 분신 자살을 결의하는 현장에도 함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여자, “사랑도 전술 전략”이라며, 분신 계획을 경찰에 알리겠다는 그에게 “시답잖은 감상주의는 집어치우라고, 신성한 죽음을 모독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내뱉던 그 여자가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던가.
“윤수씨에 대해선 나 많이 미안해했어.(…)하지만 이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건 철이 없었던 시절 이야기고, 세월이 지나 나도 많이 달라졌어. 모든 게 바뀌었고, 지금 우린 건강한 생활인으로 잘살고 있어.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과거는 잊고 앞으로를 올바르게 살아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야.”
이제 그 여자는 “한때는 (김윤수와) 함께 살다시피 한 친구였고 동지였”던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며(윤수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 여자가 말한 ‘우리’란 그 둘을 가리킨다), 그런 커플을 향한 “살의 질투”가 김윤수로 하여금 미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미치고 싶은데 미쳐지지 않는 주인공의 상태는 이인성 소설 특유의 분열적 인물 묘사로 나타난다. 소설에서 주인공 김윤수는 세 개의 대명사 ‘나’ ‘너’ ‘그’로 나뉘어서 등장한다. 그 세 대명사는 각각 현재(‘나’)와 과거(‘너’), 그리고 미래(‘그’)를 지시한다. 요컨대 소설은 현재의 인물 ‘나’가 ‘너’라는 과거의 상처와 ‘그’라는 미래의 전망 사이에 찢긴 채 그런 분열을 봉합하려 애쓰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나’와 ‘너’와 ‘그’ 사이의 이런 관계는 다음 구절에 적절히 요약되어 있다.
“그는 그의 과거조차도 미래 시제 위에 올려놓는다. 그와 나의 너에게는 현재나 미래도 과거 시제와 맞는 것처럼./ 나? 나에겐, 과거나 미래도 결국 현재?”
분열된 것이 주인공만은 아니어서, 그의 여자들 또한 분열되어 있다. 김윤수는 지금 안양의 여관방에 장기 투숙하면서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여자에게서 걸려 올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미친 여자의 전화 공세를 떠올린다. 처음에는 여느 독자처럼 접근했다가 점차 광기를 드러내며 그를 괴롭히고, 견디다 못한 그가 경찰에 신고해서 결국 정신병원으로 이송되게 만들었던 여자. 그런가 하면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미래 이야기에서 그는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가서는 술집 애인을 전화로 부른다는 게 그 술집의 단골이었던 다른 여자를 부른다. 그렇게 해서 합류하게 된, 배우가 꿈이었다는 여자와 그는 남도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이 여자가 혹시 그 미친 여자가 아니었던가, 터무니없는 의심을 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미친 여자 이전의 성한 여자가 안 미친 듯 미침의 징조를 보였던 만큼은” “어디까지가 이 여자의 이야기였고 어디까지가 저 여자의 이야기였는지, 도통 헷갈려 뒤죽박죽이 되어 간다”는 구절에서 보듯, 대학 시절 연인과 미친 여자 사이에도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온다(미친 여자가, 대학 시절 연인을 염두에 두고 쓴 김윤수의 시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 징후적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을 둘러싼 세 여자는 모두가 한 여자의 분열된 인격이라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주인공이 그 여자들 모두와 전화를 매개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그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듯하다.
전화기와 함께, 현재의 주인공이 머물고 있는 여관방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기물은 거울이다. 전화기는 물론 대학 시절 연인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통화를 향한 시도가 거듭 실패로 돌아가던 어느 날, 소설의 중간쯤에서, 주인공은 방 안의 거울을 응시하다가 빈 컵을 내던져 거울 한가운데에 구멍을 내고 만다. 그런 과격한 행동으로 귀결되는 매듭의 앞머리에는 박남철의 시 「다시 거울 앞에서」가 인용되어 있다: “저 빌어, 배라먹을 놈의 거울 저 망할 놈의 반시(反詩) 세계, 아무래도 나는 저 거울 속으로/ 걸어들어가버려야만 하겠느냐”. 거울을 깨는 파괴적인 행동의 바탕에는, 옛 연인과의 통화가 계속 불발로 끝나는데다 시도 써지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있었던 것이지만, 당연하게도 거울을 깨는 행위가 그에게 무슨 활로를 열어 주는 것은 아니다. 깨진 거울의 몸체와 거기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서 주인공이 보는 것은 오히려 중심을 잃고 파편화한 자신의 모습이다: “거울을 깰 때, 나도 깨졌거늘. 이제, 중심을 떨궈 잃고 균열한 거울이 바로 나. 파편이 된 거울의 입자들이 나의 조각들.”
거울과 가면은 상반되는 듯하면서도 어쩐지 통하는 심상들이다. 한 단계 매개를 거쳐서야 보게 되는 것이 거울이라면, 가리고 위장하는 것이 가면이다. 게다가 거울에서는 좌우가 바뀌어 있다. 요컨대 둘 다 본래의 형상과는 차이를 보인다. 주인공의 미래태인 ‘그’가 전화로 잘못 불러낸 여자가 “내가 하고 싶어해온 거, 그건 사실, 배우가 되는 거야”라고 고백하자 ‘그’가 응대한다: “정말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해야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아.(…)그리고, 그러면 죽음을 피하고도 축제를 벌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내 가면은 바로 시야.” 거울을 깬 그는 이제 가면을 꿈꾸는 것이다.
이렇게, 시가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던 변두리 여관방의 장기투숙객 시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의 저변에 있던 80년대 대학 시절의 상처를 거쳐 다시 시를 쓰는 현재로 돌아왔다. “미쳐버리고 싶은데, 미쳐지지 않는” 그가 광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고통과 상처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시쓰기에 있다. 시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소설이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안양 여관방에서 임검 나온 경찰을 상대하며 진땀을 흘리던 그가 “이 기막힌 내 삶을 베껴 소설이나 한번 써보면 어떨까” 궁리하는 것을 보라. “내 것이 아닌 수십 권의 시집들”을 가지고 여관방에 들어간 그가 상처의 기억에서 벗어나 시를 쓰고자 몸부림친 기록이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된 셈이다. 스물일곱 번째 매듭의 에피그램으로 쓰인 최두석의 시는 바로 그 과정을 시로 미리 쓴 듯한 느낌을 준다.
“이야기는 이야기끼리 스스로 엉켜 집을 짓고/ 과연 희한한 집짓기를 마쳤을 때/ 자신은 어느새 집 속에 갇혀 있다”(최두석 「누에 이야기」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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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