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1954~)의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사평역에서」 전문이다. 당시 곽재구는 전남대 국문과에 재학 중이었다. 같은 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임철우(1954~) 역시 같은 대학의 영문과에 다니고 있었다(당선작은 「개도둑」). 두 사람은 대학 2년 선후배 사이(임철우가 선배)였으나 신춘문예 당선 이전에는 서로를 몰랐다고 한다(1981년의 중앙지 신춘문예에 전남대 재학생 두 사람이 동시에 당선했다는 사실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81년이란 어떤 해인가. 1980년 5월 광주의 이듬해가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두 사람이 신춘문예 공모에 제출할 작품을 써서 보내고 당선 통보를 받은 것은 아직 1980년이 끝나기 전이었던 것이다. 이후 임철우는 여러 중단편과 다섯 권짜리 대작 장편 『봄날』을 통해 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영웅적 투쟁을 줄기차게 형상화했으며,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한 곽재구 역시 초기 시의 현실 지향적 면모에 그해 5월의 사태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신춘문예 당선을 계기로 두 사람의 교유는 본격화했거니와, 임철우가 198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사평역」은 그 교유의 아름다운 증거라 할 법하다.
평소 좋아하는 시를 암송하기를 즐겼던 임철우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역시 다른 시들과 함께 암송 목록에 올려놓고 자주 읊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남대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1982년 겨울께, 문득 사평역을 무대로 한 소설 한 편이 떠올랐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나왔다. 마치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숙성되었다가 저절로 원고지로 옮겨지는 듯한 느낌, 다른 소설을 쓰면서는 경험하지 못한 행복이었다. 「사평역」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소설 「사평역」은 시 「사평역에서」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는 「사평역」의 한 대목을 제사(題詞)로 인용해 놓기도 했다. 이 작품이 곽재구의 시를 소설화한 것임을 분명히한 셈이다. 두 작품 모두 톱밥난로가 피워진 사평역 대합실을 무대로 삼아 연착하는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등장시킨다(사평역은 현실에는 없는 역이다. 무등산 뒷자락에 해당하는 전남 화순군 사평면이 있긴 하지만 그곳에는 역이 없다. 임철우 자신은 소설을 쓸 때 나주시 남평읍의 경전선 간이역인 남평역을 염두에 두었노라고 밝힌 바 있다). 장르의 특성상 시에 비해 소설에서 인물과 상황이 한층 구체적인 것은 물론이지만, 곽재구 시의 서사성과 임철우 소설의 서정성은 자신의 장르적 특성을 지우면서 상대방을 향해 수렴해 가는 양상을 보인다.
시의 전문은 앞에서 인용해 놓았으므로 앞으로는 임철우의 소설을 중심으로 그것이 곽재구의 시와 어떤 식으로 거울 관계를 이루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대합실 안에서 새어나간 불빛이 유리창 가까운 땅바닥 위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비추고 있다.”
“청년은 유리창에 반사된 톱밥 난로의 불빛을 응시한다. 그 주홍의 불빛은 창유리 위에 놀랍도록 선명하게 재생되어지고 있었으므로 청년은 그것이 정작 실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뻔했다. 그것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먹빛 어둠은 화폭으로 드리워지고 네모진 창틀 너머 순백의 눈송이들이 화폭 위에 무수히 흩날리고 있다. 거기에 톱밥 난로의 불꽃이 선연한 주홍색으로 투영되어지자 한 순간 그 모든 것들은 기막힌 아름다움을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아아, 저건 꿈일 것이다. 아름답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것. 청년은 불현듯 눈빛을 빛내며 한 발 창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인용한 두 대목은 곽재구 시의 2~4행에 해당한다. 대합실 밖에 수북하게 쌓이는 눈, 그리고 유리창에 비친 톱밥난로의 주홍 불빛을 묘사한 부분이다. 곽재구의 시가 1인칭 ‘나’를 화자로 삼아 대합실 톱밥난로 주위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이들을 관찰하도록 했다면, 임철우의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해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자유롭게 들락거린다(곽재구 시의 ‘나’가 관찰자라고는 해도 그가 관찰하는 이들의 시시콜콜한 사연은 물론 관찰자인 그 자신의 이야기 역시 시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임철우의 소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의 인물은 모두 아홉 명인데, 이 가운데 대학 제적생인 청년을 곽재구 시의 ‘나’에 해당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소설에 제시된 정보를 종합해 보면 그는 사평역 인근 마을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도회지의 국립대학에 진학한 ‘수재’였으며, 다섯 동생과 가난한 집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한 달 동안 유치장 신세를 진 끝에 결국 3학년을 끝으로 제적되고 말았다. 그가 곽재구 시의 화자에 해당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을 포함한 대합실의 인물들이 놓인 팍팍하고 막막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일말의 아름다움을 보는 인물이라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또한 바로 그 점에서 문학부 소속인 이 대학생은 임철우 소설의 힘, 나아가 문학의 힘을 담보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앞서 인용한 부분에서도 그러하지만, 다음의 두 대목 역시 아름다움에 유독 민감한 청년의 감수성을 잘 보여줌은 물론 곽재구 시의 구절들이 소설적으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알게 해준다.
“대학생은 방금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열차의 불빛이 아직 자신의 망막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어느 찰나에 피어올랐다가 소리없이 스러져버린 눈물겨운 아름다움 같은 거였다고 청년은 생각한다. 어디일까. 단풍잎 같은 차창들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대학생은 문득 고개를 들어 말없이 모여 있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여겨본다. 모두의 뺨이 불빛에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청년은 처음으로 그 낯선 사람들의 얼굴에서 어떤 아늑함이랄까 평화스러움을 찾아내고는 새삼 놀라고 있다.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란 때로는 저렇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청년은 무릎을 굽혀 바께쓰 안에서 톱밥 한 줌을 집어든다. 그리고 그것을 난로의 불빛 속에 가만히 뿌려넣어본다. 호르르르. 삐비꽃이 피어나듯 주황색 불꽃이 타오르다가 이내 사그라져들고 만다.”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7시45분 도착 예정이던 막차는 삼십 분째 연착하고 있다.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의 인물은 모두 다섯. 대학 제적생 청년과 중년사내, 오래 앓아오던 병이 악화되어 도회지의 병원을 찾아가는 중늙은이와 그의 아들인 농부 부자, 그리고 대합실 찬 나무의자 위에 벌렁 누워 있는 미친 여자가 그들이다. 아들에게 기대어 난롯가를 지키고 앉아 시종 콜록거리는 중늙은이의 기침은 곽재구 시의 “오래 앓은 기침소리”를 떠올린다. 역장으로서도 처음 보는 중년사내인즉 교도소에서 열두 해를 살고 얼마 전에 출옥한 인물이다. 그는 감방에서 만난 사상범 허씨의 부탁으로 그의 노모와 가족들을 찾아 이곳에 왔던 길이지만, 노모는 벌써 5년 전에 세상을 버렸고 다른 가족들 역시 고향을 떴다는 사실을 확인한 채 돌아가는 참이다. “(그가 들고 온)그 보퉁이엔 한 두름의 굴비, 그리고 낡고 때묻은 내복 따위 같은 사내의 옷가지가 들어 있을 뿐”이라는 구절은 곽재구 시의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에 대응하는 셈이다.
열차 도착 예정 시각에서 한 시간여가 지날 즈음, 네 명의 여자가 대합실에 새롭게 출현한다. 그들은 망월재를 넘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눈 때문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기차역으로 달려온 것. 이들 중 두 사람은 각각 옷가지와 해산물을 들고 다니며 파는 행상이고, 나머지 둘은 서울에서 온 이들이다. “눈부시게 흰 밍크 목도리와 값비싼 코트를 걸친” 뚱뚱한 여자는 자신의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금고의 돈을 챙겨 달아났던 사평댁을 잡으러 내려왔던 터였다. 그러나 막상 대면해 보니 사평댁의 가긍한 처지가 하도 딱해서 오히려 지니고 있던 돈을 쥐여준 채 돌아선 길이었다. 한편 이곳 출신으로 신촌 민들레집 작부로 있는 춘심이(본명은 옥자)는 3년 만에 귀향해서 식구들을 만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식구들에게는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미친 여자를 제한 나머지 여덟 사람의 인물과 사연이 차례로 소개되었고 그들 사이에 소소한 대화 몇 마디가 오가긴 했지만, 난로를 둘러싸고 모여 앉은 그들은 대체로 말이 없다. 곽재구의 시에서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표현된 정황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그려진다.
“사람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대합실 벽에 붙은 시계가 도착 시간을 한 시간 반이나 넘긴 채 꾸준히 재깍거리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창밖엔 싸륵싸륵 송이눈이 쌓여가고 유리창마다 흰보라빛 성에가 톱밥 난로의 불빛을 은은하게 되비추어내고 있을 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말을 잊었다. 어쩌면 그들은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년 사내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성냥불을 당기려다 말고 멍하니 난로의 불빛을 들여다보고 있다. 노인을 안고 있는 농부도, 대학생도, 쭈그려 앉은 아낙네들도, 서울 여자도, 머플러를 쓴 춘심이도 저마다 손바닥들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망연한 시선을 난로 위에 모은 채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라고 특정되지 않는 인물의 입에서 나온 “흐유, 산다는 게 대체 뭣이간디…”라는 질문성 독백은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에서부터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까지의 곽재구 시 허리 부분에서 대답을 얻는 형국이다.
“사평역을 경유하는 야간 완행열차는 두 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도착했다.” 그 사이에 상하행선 한 차례씩 두 개의 급행열차가 이 간이역을 무정차 통과했고, 대합실의 사람들은 그때마다 간이역과 완행열차에나 비끄러매어져 있는 자신들의 남루한 처지를 새삼 돌아보았을 터였다. 어쨌거나, 비록 예정 시각보다 두 시간이 늦었을망정, 기다리던 열차가 도착했고 대합실의 아홉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와 안쓰러운 희망을 향해 기차에 오른다. 아니, 사실은 기차를 타지 않고 대합실에 남은 한 사람이 있었다. “미친 여자였다. 지금껏 난로 곁에 가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그녀는 이제 난로를 독차지한 채, 아까 병든 늙은이가 앉았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잠들어 있었다.” 소설에서 다른 여덟 사람에 관한 정보가 많건 적건 제시된 반면, 미친 여자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 여자 혼자 대합실에 남은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야 “이따금 그녀가 이 마을을 찾아왔다가는 열차를 타고 떠나곤 했다”는 정도의 희미한 정보가 제시될 따름이다. 그 여자가 누구이고 왜 미친 것인지를 독자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여자를 광기의 암흑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 5·18 광주학살일 것이라는 하나의 추측이 가능하다(아울러, 소설의 중심 인물인 대학생의 제적 역시 어떤 식으로든 5월 광주와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임철우 소설 「사평역」의 미친 여자는 최윤의 중편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의 실성한 소녀의 ‘선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최윤의 소설에서, 비록 간접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소녀를 실성에 이르게 한 원인이 5월 광주의 참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 비해 임철우의 소설에서 그 점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 ‘광주’의 기역자도 꺼내기 힘들었던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서 작가는 5·18이 남긴 상처와 고통을 막연한 광기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설 말미에서 모두들 떠난 대합실에 홀로 남은 미친 여자, 그리고 여자를 위해 난로를 끄는 대신 톱밥을 더 넣어 주는 역장의 행위는 모종의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아마 그 여자에겐 갈 곳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서 출발이란 것은 이 하룻밤, 아니 단 몇 분 동안이나마 홀로 누릴 수 있는 난로의 따뜻한 불기만큼의 의미조차도 없는 까닭이리라.”
도식화해서는 곤란하겠지만, 사평역 대합실의 톱밥난로와 유리창에 비친 그 불빛은 공동체의 나약한 희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제적 대학생이 난로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서 아늑함과 평화를 느끼고 유리창에 비친 난로 불빛에서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것이 그 증거다(그 난로의 온기를 마지막 순간에 미친 여자에게 오롯이 할애하는 데에서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유리창에 비친 난로 불빛을 두고 대학생이 “아름답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것”이라 표현할 때 그는 임철우 소설의―아니 사실은 문학 자체의 확고한 지향을 선포하고 있는 셈이다. 곽재구의 시에서는 마지막 두 줄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 「사평역에서」와 소설 「사평역」은 두 동갑내기 문인의 아름다운 우정의 증거이자 일종의 문학적 출사표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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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