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1936~)은 문학사에 대한 의식이 남달리 예민한 작가다. 그가 고전 문학작품과 선배 작가들의 소설을 여러 편 자기 식으로 다시 쓴 데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박태원의 소설을 패러디한 연작소설집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대표적이지만, 가령 만년의 대작인 장편 『화두』에서도 조명희(1894~1938)의 단편 「낙동강」은 소설을 끌어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렇다는 것은 최인훈이 자신의 문학이 놓인 문학사적 맥락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문학작품이란 평지돌출 식으로 뜬금없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대 작품들의 영향과 그늘 아래에서 생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최인훈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화두』 말고도 최인훈은 여러 편의 고전을 패러디했다. 「금오신화」 「열하일기」 「옹고집전」처럼 고전의 제목을 빌려와 현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도 있고, 「춘향뎐」 「놀부뎐」처럼 고전을 지금의 관점에서 다시 쓴 단편들도 있다. 최인훈의 고전 패러디는 소설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어서, 낙랑 설화를 재해석한 「둥둥 낙랑둥」, 온달 이야기를 변형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심청 이야기를 다시 쓴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같은 희곡에서도 그의 패러디 작업은 의욕적으로 이어졌다(지난 회에 이어 다시 최인훈을 다루게 된 데 대한 일종의 변명으로 이해해 주시길).
최인훈의 고전 패러디는 패러디 대상이 되는 작품에 드러난 중세적 시각을 근대인의 관점에서 뒤집어 본다는 공통적 특성을 지닌다.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달아 달아 밝은 달아」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고전의 대표적인 두 작품인 『춘향전』과 『흥부전』을 다시 쓴 「춘향뎐」과 「놀부뎐」을 통해 그 점을 살펴보자.
최인훈의 「춘향뎐」이 원작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주인공 춘향을 괴롭히는 ‘악당’ 변학도를 보는 시각이다. 최인훈의 소설에서 변학도는 특별히 사악한 탐관오리가 아니다. “여염집 부녀에게 수청을 강요한 것만 가지고도 폭정이 자명한 것이 아니냐고 하기 쉬우나 그것은 우리 생각이다. 우리처럼 인권이 완전히 보장돼서 관에 의한 사생활의 침해가 완전히 없는 현대 한국 시민의 생활 감정으로 재어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권력에 갇힌 어두운 중세의 밤을 살던 옛사람들에게는 그 한 가지만 가지고 지방 관장을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이 대목에서, 특히 두 번 반복되는 ‘완전히’라는 부사에는 작가의 아이러니적 의도가 들어 있는 것 같다.) 그가 지은 죄는 “개인 변학도가 감당할 죄가 아니요 구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돌려져야 할 화살”이다. 그런가 하면 변학도의 탐학을 응징하고자 조정에서 파견된 암행어사는 원작에서와 같은 이몽룡이 아니라 엉뚱한 인물이다. 이몽룡 자신은 아버지가 역적 모의를 하였다 하여 멸문지화를 입고 쫓기는 몸에 불과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몽룡 대신 암행어사로 내려온 위인이 춘향을 소실로 들이려 하자 두 청춘 남녀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야반도주를 감행한 그들은 깊은 산속에서 세상과 연을 끊고 숨어 사는 삶을 택한다.
판소리 사설조에다 곳곳에 아래아 표기를 곁들여서 고어투를 흉내낸 「놀부뎐」은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흥부가 아니라 그의 형 놀부인 것이다. 놀부 자신을 화자로 내세운 이 소설은 “세상의벗님네야 이내푸념 들어보오 광대글쟁이 심사를볼작시면 세상일다아드키 못본일본드키 옥황상제염라대왕 승지노릇지낸 듯이 남의일 제일같이 잘도주워섬기지만 무딘붓 함부로놀려 무고인생해친것이 가히 도척의뺨치겠(다)(이하 괄호 안 문자는 아래아 표기 대신임)”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흥부는 선하고 욕심 없는 사람이 아니라 게으르고 무능한 인물로 그려진다. 반대로 놀부 자신은 성실과 근면으로 지금의 재산을 일구었으며 그의 처는 “뒷문으로 양식 나르고 치마폭에 의복 나르”며 남몰래 흥부 가족을 도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소설에서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흥부가 고집하는 양반의 허위의식이 되는데,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양반전」에서 풍자적·반어적으로 지적되었던 양반의 폐해가 여기서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흥부전』에서 흥부의 착한 심성이 하늘의 보답을 받는 일화로 나오는 박씨 사건 역시 ‘광대 글쟁이’들에 의해 왜곡된 것이, 사실 흥부는 우연히 얻어 걸린 남의 재물을 꿀꺽했다가 큰코를 다치게 되며 그 결과 형인 놀부의 재산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주워 섬긴 다음 놀부 자신이 내리는 결론은 이러하다. “세상사람 들어보소 ‘흥부뎐’ 자초지종이이러한데 야속할손 세상인심이요 괘씸할손 광대글쟁이솜씨더라. 있는말없는말에 꼬리를달아 원통한귀신을 매섭게몰아치고 웃으며 짓밟더(라) 세상일에 속에는속이있고 곡절뒤에곡절인데 겉보고속보지않으니제가저를속이며 소경이제닭치고 동리굿에춤을춘(다) 강남제비박씨받아 흥부이치부했다니 이아니기막힌가.”
『심청전』을 희곡으로 각색한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서도 원작 비틀기는 계속된다. 주인공 청이 남경 상인에게 팔린 뒤 인당수에 빠졌다가 용궁을 거쳐 연꽃 속에서 환생한다는 원작의 해피엔딩을 작가는 미련 없이 포기한다. 아비 심봉사가 시주를 약속한 공양미 3백 석 때문에 청이가 배꾼들에게 팔려 가는 것까지는 원작과 같지만, 청이는 뱃길의 안전을 위해 인당수에 빠지는 대신 중국 땅까지 끌려가 색주가에서 몸을 파는 신세가 된다(청이와 중국 배꾼들을 연결시켜 준 뺑덕어멈은 물론 심봉사 역시 청이의 그런 앞날을 잘 알고 있다). 희곡에서는 청이가 ‘근무’하는 색주가의 이름이 용궁루로 등장하며, 절망한 청이가 죽을 각오로 물에 뛰어들었다가 살아났다는 사실이 매파의 대사를 통해 확인된다.
“어때 네가 처음 와서는 염라국에서 온 것처럼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했지만, 살아보니 용궁이지?(…)// 그때 네가 바다에 달려나가 물에 뛰어들었을 때 죽었어봐, 물고기 밥이나 됐지, 별수 있어?”
매파의 언설은 물론 사태를 제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견강부회의 혐의에서 자유롭기 어렵겠지만, 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었다가 용궁을 거쳐 되살아났다는 설화의 현실적 근거를 짐작하게 해 주는 미덕은 지니는 셈이다. 비록 지옥 같은 용궁루에서의 생활이라지만, 거기에서도 청이에게는 한가닥 구원의 가능성이 열린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인삼 무역을 하는 김 서방을 만난 것이다. “고향 바닷가에 시름처럼 핀 해당화꽃 같은 청이”와 혼인할 마음을 먹은 김 서방은 힘겹게 모은 돈으로 마침내 몸값을 치르고 해방시킨 청이를 조선으로 가는 배에 먼저 태워 보낸다.
“참 잘됐소/ 당신 몸값을 치르고 나니/ 또 한 걱정이/ 당신을 어디다/ 맡겨두고 갈까 걱정이었는데/ 마침 이 배가/ 조선 간다 하니/ 아 아니 잘되었소/ 한 발 먼저 가서/ 그리운 아버님/ 만나뵈시오// 그리구 이건 (품속에서 꺼내) 나 본 듯이 지니시오”
김 서방이 품에서 꺼내 청이에게 건넨 것은 옛이야기에서 정인들 사이의 징표로 흔히 등장하는 ‘귀한 물건’ 거울이었거니와, 그 거울이 청이와 김 서방을 끝끝내 다시 맺어주지는 못한다. 청이의 앞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청이가 탄 배를 해적이 습격하고, 해적의 소굴로 끌려 간 청이는 그곳에서 해적들의 허드렛일을 거드는 한편 그들 욕정의 해소처로 한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러다가 전쟁이 벌어지고, 피난민들에 섞여 고향으로 향하던 청이는 보따리마저 도둑맞는 등 곡절을 겪는다…
희곡의 마지막 대목은 이미 늙은 청이가 아이들과 수작을 주고받는 장면이다. “심청 할머니 얘기해줘요” “용궁 다녀온/ 얘기해줘요”라고 아이들이 조르자 청은 산호 의자와 침대, 구슬로 만든 발과 금과 은으로 된 문, 돈 많고 힘센 왕자들이 등장하는 용궁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사실 아이들은 청이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청청/ 미친 청/ 청청/ 늙은 청”이라 놀리며 달아날 뿐이다. 게다가 늙은 청이는, 아비의 눈을 뜨게 한 보답(?)인지 아니면 그것도 유전인지, 그 자신 눈이 먼 상태다. 이제 홀로 남은 청이 연기하는 진짜 마지막, 슬픈 장면이다.
“심청/ 품속을 더듬는다/ 한참 만에/ 반동강짜리 거울을 꺼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들여다본다/ 심청/ 교태를 지으며/ 환하게 웃는다/ 갈보처럼”
황석영(1943~)의 장편소설 『심청』(작가는 신문 연재를 거쳐 2003년에 두 권짜리 책으로 냈던 이 작품을 2007년 『심청, 연꽃의 길』로 제목을 바꾸고 분량도 축약해서 한 권짜리로 다시 내놓았다)은 중국 상인들에게 팔린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지 않고 중국으로 끌려가 매춘에 종사하게 된다는 설정에서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 이어진다. 그러나 최인훈의 희곡에서 심청의 매춘이 용궁루 한 곳에 국한되는 데 반해, 황석영의 소설에서는 가히 ‘매춘의 오디세이’라 할 법한 공간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제물포를 출발한 청이는 중국 난징과 진장을 거쳐 타이완의 지룽으로, 내처 싱가포르와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 열도를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를 끝으로 출발지인 제물포로 돌아오기까지 동아시아의 내해를 순례하듯 일주하는 동선을 보인다. 또한 최인훈의 희곡에서 청이의 수난에서 귀환까지가 다분히 설화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로 그려지는 반면, 황석영의 소설에서는 청이의 동아시아 매춘 오디세이가 이 지역을 휩쓴 서양발 근대화의 과정을 배경 삼아 그려진다. 청이는 옮겨다니는 곳마다 아편전쟁과 난징조약, 태평천국의 난, 일본의 오키나와 복속, 요나오시 민란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격변의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다. 또한 기독교와 시계 같은 서양의 습속 및 문물과도 접하게 된다.
최인훈의 희곡에서 청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김 서방에 해당하는 인물이 황석영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떠돌이 광대패의 비파 연주자인 동유가 그다(‘렌화’[蓮花]라는 이름의 기생 신분으로 동유와 만나 사랑에 빠진 청이가 “내 이름은… 렌화가 아니라, 청이에요”라 말하는 장면은 같은 작가의 단편소설 「삼포 가는 길」에서 술집에서 도망친 여주인공 백화가 길동무였던 청년 영달에게 “내 이름은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이점례예요”라 고백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 군데서 살구 싶어요” “나두… 광대로… 떠돌아다니며 살고 싶진 않아”라며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소박한 미래를 꿈꾸었던 이들의 소망은 가까운 사람들의 음모와 배신으로 산산조각나고, 청이는 다시 매춘의 길에 나서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처럼 타의에 의한 시련과 고난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청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동유와의 단꿈이 악몽으로 뒤바뀐 뒤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육체를 짓밟는 사내들을 보며 “내가 저들을 다 삼켜버릴 거야”라 맹세하는 대목, 매춘부로 팔려가는 길에 사내들이 무섭다고 흐느끼는 어린 동료를 보며 “저것들 모두 여자들 속에서 나온 것들이야.(…)나는 언제든 녀석들을 후릴 수 있어”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장면, 동인도회사 직원 제임스를 좇아 싱가포르라는 낯선 땅으로 가기로 결정한 뒤 “까짓 거, 이젠 낯선 곳은 하나두 두렵지 않아”라는 반응을 보이는 모습 등에서 청이의 당차고 적극적인 면모는 충분히 드러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청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생의 양지 쪽으로 견인하고자 하는 한편,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창녀의 아이들과 기아(棄兒)들을 돌보는 사업에도 뛰어든다. 또한 동아시아의 내해를 일주하며 세상의 이모저모를 목격한 청이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상사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갖추게 된다.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세상은 유월의 바다처럼 바람 잘 날 없고 변덕이 심하지요”라는 관찰, “세상은 정말 살기 좋게 변해가는 걸까요?”라는, 근대화의 결과에 대한 회의를 담은 질문, 그리고 “과거의 업장에 매일 필요가 없지요. 목숨 가진 모든 것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거랍니다”라는 통찰은 청이 만만치 않은 지혜의 인간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수난이 다만 수난으로 그치지 않고 주인공의 인간적 성숙의 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황석영 소설은 최인훈의 희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향해 열려 있는 셈이다.
청이가 끝끝내 고국으로 돌아오고, 이제 할머니가 된 그네가 웃음을 머금는 장면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는 점은 다시 최인훈의 희곡과 황석영의 소설이 공통적이다. 물론 그 웃음의 형태와 색채는 서로 다르겠지만 말이다. 황석영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심청은 눈을 감고는 한벗 빙긋이 웃었다. 오물조물한 입이 조금 움직였을 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그건 아주 희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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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