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1936~)의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와 복거일(1946~)의 장편 『비명(碑銘)을 찾아서』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비슷하면서도 상이한 상상력을 끄집어낸다. 「총독의 소리」 연작이 1960, 70년대를 배경으로 한반도에서 암약하는 ‘일본 총독’의 존재를 상정하는 데 반해, 『비명을 찾아서』는 1980년대 후반 현재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를 끌어 간다. 복거일은 1987년에 전작으로 발표한 이 소설을 ‘대체 역사’(alternative history)라 불렀는바, 그런 명명법을 좇자면 최인훈의 연작 역시 일종의 대체 역사 소설이라 할 법하다.
「총독의 소리」 연작은 모두 네 편으로 이루어졌다. 연작 1~3은 1960년대 말에 발표되었으며 마지막 4편은 작가가 3년여에 걸친 ‘미국 시대’를 마감하고 귀국한 직후인 1976년 여름에 나왔다. 1959년 단편 「Grey 구락부 전말기」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십수 년에 걸쳐 열정적으로 소설을 써 오던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4」를 마지막으로, 1994년 장편 『화두』를 내기까지는, 길고 오랜 소설적 침묵에 빠져든다(「총독의 소리·4」와 『화두』 사이에 그는 「달과 소년병」 같은 짧은 단편을 내놓았을 뿐 주로 희곡과 산문에 집중한다. 197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기 시작한 ‘최인훈 전집’은 1980년 모두 12권으로 일단 완간되었다).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총독의 소리」 연작 첫 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목소리가 “제국의 불행한 패전이 있은 지 이십유여 년” 동안 ‘반도’에서 비밀리에 활동해 온 일본 총독부의 지하 방송이라는 사실은 소설 말미의 이런 자기 소개로써 비로소 분명해진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불란서의 알제리아전선의 자매 단체이며 재한 지하 비밀 단체인 조선총독부 지하부의 유령방송인 총독의 소리가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및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종료에 즈음하여 발표한 논평 방송을 들으셨습니다.”
2차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에서 물러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터에 조선총독부가 지하 비밀 단체로서 엄존하고 있다는 설정은 참신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엉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을 미리 앞당겨 제출해 보자면, 작가의 그런 상상력은 나름대로 타당한 현실적 근거를 지닌 것이라는 데에 이 작품의 문제성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씌어진 1960년대 후반 남한의 현실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일소하지 못한 채 여전히 식민지로서의 성격을 온존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총독의 소리 방송은 그런 식민지적 성격을 정권의 매판성과 민중의 노예근성 두 가지로 크게 요약한다.
“반도의 역대 정권은 본질적으로 매판정권으로서 민족의 유기적 독립체의 지도부층이 아니라, 외국 세력의 한국에 대한 지배를 현지에서 대행해줌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보존해왔던 것입니다.”
“반도인들의 이 뿌리 깊은 노예근성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총독의 소리’는 당연히 정권의 매판적 속성과 민중의 노예근성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작가의 의도가 그와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음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패전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 야욕, 그리고 그 야욕에 빌미를 제공하는 한반도의 위정자들과 민중의 반역사적 행태를 반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판단의 직접적인 계기는 1967년 5월과 6월에 있었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였다.
“반도인들의 그 썩은 근성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막걸리는 흘러서 강을 이루고 부스럭 돈은 흩어져 낙엽을 이루었습니다. 또 다시 피아노표, 쌍가락지표, 다리미표, 무더기표, 대리 투표, 개표 부정의 난장판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난장맞은 것입니다.(…)그들은 지난날 일억전원옥쇄의 가르침을 고지식하게 명심하고 있다가 이천만 전원 타락이라는 희한한 실천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들은 볼 장 다 봤습니다. 파장은 가깝습니다. 지하에 있는 나의 충용한 모든 제국 신민은 정권 수복의 그날을 준비하십시오.”
「총독의 소리」가 비판하는 것이 한반도의 남쪽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연작 제2편에서 분명해진다. 총독이 보기에 한반도의 남과 북은 일본 식민 지배의 두 축이었던 반공주의와 천황제를 사이좋게 나눠서 지켜 오고 있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남쪽의 타락상은 「총독의 소리·1」에서 확인되었거니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목표로 삼은 31명의 북한 무장 게릴라 침투사건을 계기로 씌어진 「총독의 소리·2」에서는 북한 사회의 시대착오적 면모가 신랄하게 고발된다. “그들(=북조선 공산당)은 제국 신민답게 천황제 국가적 사회 형태와 권위 신봉적 인간형을 공산주의라는 이름 아래 온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보는 총독은 남과 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는 것이 일본의 한반도 재지배에 유리하리라는 판단을 내비친다.
“이것입니다. 일제 농구화를 북의 무장 특무에게 신겨서 남쪽을 짓밟게 하는 것―이것이 요체입니다. 제국은 꾸준히 이 정책을 번갈아 가며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누누이 설명했듯이 반도의 남과 북이 방공과 천황제를 각각 계승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쪽도 쓰다듬어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총독이 보기에 1970년대 초중반 미국과 소련 및 중국 사이의 화해(데탕트) 분위기는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미-소 및 미-중 데탕트는 곧바로 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한반도의 남과 북 사이에도 화해 분위기를 조성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총독의 소리」 연작 4편은 “이른바 데탕트라고 불리는 귀축 미영(鬼畜米英)과 적마(赤魔) 러시아 사이의 더러운 야합 놀음에 대하여, 본 총독부의 공식 견해”라면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반도의 경영의 두 번째 목표는, 남북 사이에 데탕트의 여택이 긍정적으로 미치는 것을, 적극 가로막아야 할 것입니다.”
분단 이후 갈등과 대립의 역사를 거듭해 온 남과 북 사이의 화해가 최인훈의 초미의 관심사였음은 그의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니, 갈등이나 화해 이전에 남과 북의 분단이라는 사태부터가 그에게는 부당한 역사의 농담 정도로 다가왔던 듯하다. 다음과 같은 총독의 말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범 일본이 당해 마땅했던 국토의 분단이 전쟁 피해자인 한반도의 몫으로 떨어져야 했던 얄궂은 역사의 주사위 놀음에 대한 작가의 불만을 반어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이다.
“현실은 그와 거꾸로 된 길을 걸어왔습니다.(…)이 끔찍한 분할 점령의 악몽을 반도가 현실로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반도는 제국의 비운의 순간에도 제국을 위한 살길을, 몸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참으로 제국의 복지(福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참으로 제국을 위한 속죄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총독의 소리」 연작은 일본의 한반도 재식민화 야욕과 그에 빌미를 제공하는 남북한 위정자 및 백성들의 타락상, 그리고 애초에 전범 일본이 아닌 전쟁 피해국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고 결국 분단으로 몰고 간 강대국들의 불합리한 처사를 두루 비판하고 있다. 연작 1·2편에서 총독의 소리 방송을 듣고 난 ‘그’ 또는 ‘시인’이 착잡한 심사를 곱씹으며 ‘어둠’을 내다보거나, 연작 4편에서 역시 ‘시인’이 (깨어 있기 위해서) “불면제를 먹는다”는 결말은 작가의 그런 비판적 태도를 대행하는 것으로 읽힌다.
「총독의 소리」 연작에서 반어적이거나 소극적으로 드러났던 작가의 역사관과 현실 인식을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피력한 것이 1968년에 발표한 단편 「주석의 소리」다. “환상의 상해 임시정부가 보내는 주석의 소리” 방송이 전송하는 “주석 각하의 3·1절 담화”를 표방한 이 소설은 근대 이후 세계사의 전개를 개괄한 다음 한반도가 놓인 상황을 설명하고 현단계 민족사의 주체로서 ‘동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정부·기업인·지식인·국민으로 항목을 나누어 제안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에 의한 비판의 온갖 기회를 스스로 개방하여야 하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 정권 자체의 득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든가 “기업의 공익성에 대해 최대의 노력과 자제를 보이지 않으면 야단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진리의 옹호, 그것이 지식인에게 맡겨진 주요한 노동입니다. 우리의 경우 진리를 옹호한다 함은 민족 국가의 독립을 지키고, 사회정의를 실천하고, 사회적 부의 증대를 가져오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이것을 사회에 보고하는 일입니다”와 같은 식이다.
이렇듯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주문이 제시되고 있지만, 여기서도 방송을 듣고 난 ‘시인’의 심회는 「총독의 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착잡하다. 말할 나위도 없이, 주석의 제언과는 동떨어진 현실의 면모 때문이다. 작가가 가상의 존재로서 일본 총독을 상정하든 상해 임시정부 주석을 상정하든 그들을 프리즘 삼아 들여다본 현실의 불구성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작가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광장』에서부터 두드러졌던 이런 문제의식은 그의 만년의 역작인 『화두』에까지 이어지는 필생의 ‘화두’라 할 법하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 총에 맞은 이토 히로부미가 부상만을 입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는 역사적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1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1년 동안을 배경으로 하며 모두 109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각 장 앞머리에는 짧은 인용문들이 붙어 있는데, 첫 장의 인용문은 ‘작은 차이로도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란 변화가 초래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이토 히로부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데에서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의 전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고,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그 핵심에 해당하며, 그것이 이 소설의 기본 전제를 이룬다.
소설의 부제 ‘京城, 쇼우와 62년’은 이 책의 시·공간적 배경이 일본 식민치하의 서울과 서기 1987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게이조’(京城)는 서울의 일제 시대 명칭이며(소설에서는 ‘게이조우’로 표기된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쇼와’가 되어야 할 ‘昭和’ 역시 ‘쇼우와’로 나온다. ‘도쿄’여야 할 ‘東京’도 같은 이치로 ‘도우꾜우’로 표기되며, 한반도를 가리키는 ‘半島’도 ‘한도’가 아닌 ‘한도우’로 표기된다), ‘쇼와 시대’란 히로히토가 왕위에 오른 1926년을 원년으로 삼는 연호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 1987년 현재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는 여전히 일제의 식민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기노시다 히데요(木下英世), 조선인이다.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창씨개명 때 흔히 하던 방식대로 ‘박’(朴)을 파자(破字)해서 ‘木下’로 쓰고 ‘기노시다’로 읽었으며(외래어표기법 상으로는 이것도 ‘기노시타’가 맞다), 한국 이름 ‘영세’ 역시 일본식 한자 이름 ‘히데요’로 바뀌었다. 기노시다 히데요는 게이조 데이고쿠 대학(京城帝國大學) 출신으로 잡종 간부 후보생을 거쳐 만주에서 군복무를 하다가 제대했으며, 지금은 ‘한도우(半島) 경금속 주식회사’의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른아홉 살 된 남자다. 정식 등단을 거쳐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딸 하나를 둔 유부남이면서도 부하 직원인 내지(일본)인 처녀 시마즈 도키에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
쇼와 62년 1월 1일 이른 아침, 기노시다 히데요가 면도를 하면서 마흔을 목전에 둔 자신의 삶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회사원답게 자산과 부채를 꼼꼼히 따져 본 결과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제법 충실한 대차대조표”라는 중간 결산을 내린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인데, 그랬던 그가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는 삶의 모든 근거를 놓아둔 채 미지의 땅으로 ‘망명’을 떠나기에 이른다. 소설 『비명을 찾아서』는 기노시다 히데요의 삶에 찾아온 이런 극적인 전환의 계기와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
‘대체 역사’ 소설로서 『비명을 찾아서』에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여럿 있다. 기노시다 히데요와 직장 동료들은 “차기 오림삣꾸 개최지로 게이조우가 유력하다는 신문 기사”를 저녁 회식 자리에서의 화제로 삼는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소설적 반영이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는 1970년에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며 할복 자살했던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소설에서는 1986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으로 그려진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주더 등 중국 공산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1935년 국민당 군과의 옌안 전투에서 전사함으로써 당 자체가 와해되지만, 공산당은 나중에 류사오치에 의해 재건되어 중국 본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국민당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은 2차대전 때 독일·이탈리아와 함께 추축국으로서 참전하지 않았으며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에 우호적인 중립 노선을 지킴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나가사키와 히로시마 대신 독일 드레스덴과 브레멘이 미국 원폭의 첫 투하지가 되며, 미국과 러시아가 분할 점령했던 폴란드가 동서로 분단된다). 그 덕분에 일본은 조선과 대만, 만주 등을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강한 나라로 행세하고 있다. 그런 일본에 완전히 동화된 조선인들은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자신의 말과 역사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등국민’으로 자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제 민족의 처지에 비교적 만족해하고 있던 기노시다 히데요로 하여금 현실을 달리 보게 만든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라는 제목의 이 작자 미상 소설은 그러니까 『비명을 찾아서』의 거울상이라 할 법하다. 히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 뒤의 역사 전개를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실제 역사라 하겠는데, ‘대체 역사’ 소설인 『비명을 찾아서』의 세계에서는 그런 상황이야말로 여지없이 가상의 ‘대체 역사’가 되는 것이다. 『비명을 찾아서』의 주인공인 기노시다 히데요에게는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라는 텍스트의 이야기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자, 그동안 자명하다고 생각해 왔던 현실과 역사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게 만드는 자극제로 다가온다. 그 책과의 만남은 그의 인식과 실존에 무시무시한 충격을 던지는 ‘사건’이 된다.
“히데요는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세상의 한 모서리가 무너져나가 문득 드러난 허공 앞에 선 느낌이었다. 스산한 가슴속의 들판을 소슬한 늦가을 바람이 쓸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지처럼 단단하고 확실하게 보였던 관념들이 그 바람 앞에 나뭇잎들처럼 흔들렸다.”
『비명을 찾아서』의 주민으로서 히데요는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에 대해 “천황이 정치적으로 아무런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로 된 것, 결코 다른 나라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헌법에 명시한 점,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강한 황군이 십만 명도 못 되는 ‘일본 자위군’으로 된 것, 수상의 야스구니진자 참배가 새로운 군국주의적 행동이라고 야당인 일본 공산당의 비난을 받은 것 따위는 좀 믿기 어려운 상황 설정이었”노라는 독후감을 제출한다. 상상력이란 것이 얼마나 현실에 종속되어 있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비명을 찾아서』의 ‘대체 역사’ 역시 얼마든지 현실로 몸을 바꾸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겠다.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과의 만남으로 현실을 ‘달리’ 보게 된 히데요는 멸실된 조선의 역사로 이끄는 끈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비록 내지어(일본어)로 글을 쓰고는 있지만 조선의 시인으로서 그는 조선의 문화와 언어를 향한 탐색 역시 멈추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거니와, 지금의 현실이 요지부동의 확고한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힌트를 얻은 그의 눈에 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실마리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아득한 옛날 징꼬우 황후(神功皇后)가 조선을 정복해서 복속시킨 뒤로는” “조선이 따로 정부를 가졌던 적은 없었다”고 알고 있던 히데요는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이 독립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성이 ‘신라’라는 옛 왕국의 왕에게서 온 것이며 자신의 이름은 ‘기노시다 히데요’가 아니라 ‘박영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 조선에는 조선 나름의 말과 글이 있었다는 사실, 나아가 중국 상하이에 조선 임시정부가 칠십 년째 활동 중이라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이 임시정부는 어쩐지 최인훈의 소설 「주석의 소리」의 그 임시정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장모의 장례에 참석하느라 처가인 모토야마(元山)에 갔던 히데요는 화장을 마친 장모의 재를 치르러 들른 절에서 어느 노스님으로부터 『님의 침묵』과 「조선 독립의 서(書)」 등 만해 한용운의 글들을 전해 받는다. “뜻밖의 곳에서 스승을 만나 소중한 의발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이렇듯 잃어버린 조선의 역사와 언어라는 뿌리를 되찾는 일은 ‘기노시다 히데요’가 ‘박영세’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과도 같다.
“한 사람이 자기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넓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실체가 바뀌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쉬운 일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라고 믿었던 실체의 상당한 부분이 허구였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큰 충격일 터였다. 그리고 그 허구로 밝혀진 것을 대신해서 채울 실체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찾아야 했다. 당연히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두려운 일이었다. 새로 태어나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일는지 모른다는 것은 반생을 넘게 살은 사람에겐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찾아야 했다. 아니면, 전보다 훨씬 작아진, 그리고 그나마 불완전한, 인격으로 남아야 했다.”
그는 이제 힘들더라도 진실을 좇을 것이냐 아니면 안락한 허구에 눌러 앉을 것이냐 하는 실존적 결단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만해 선사의 글을 물려받는 순간, 그는 이미 루비콩 강을 건넌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출장을 간 길에 그는 교토 데이고쿠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관련 책들을 복사해서 들여오려다가 붙잡혀 고문과 취조를 당한 끝에 전향자 단체인 ‘사상보국연맹’에 편입되어 갱생 교육을 받게 된다. 유치장에 갇힌 그는 ‘결국 이렇게 되는 수밖엔 없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지만, 결국 그렇게 되는 수밖엔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조선 사람들이 조선 사람으로 남기를 고집해야 합니까?”라고 그의 갱생 교육을 담당하는 조선인 문학평론가 하쿠야마 마사오미는 묻는다. 조선인이 하루빨리 조선인의 껍데기를 벗고 완벽한 황국 신민이 되는 것만이 살 길이라던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이광수)의 논리의 연장인 셈인데, 그것이 히데요를 설복하지는 못한다: “그에겐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야 쇼우와 62년의 조선에서 조선 사람이 ‘한도우징’(半島人)이 아닌 ‘조선인’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조선이라는 뿌리를 일단 확인한 이상,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본인으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해진 것이다.
“설령 세상이 바뀌어 내지인들의 조선 통치가 너그럽고 공정하고 현명한 것이 될지라도, 조선 사람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것보다 더 공정하고 현명한 통치가 될지라도, 조선은 꼭 독립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는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와 자유는 양립할 수 있는 개념들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히데요가 조선이라는 뿌리를 찾아가게 된 데에는 역시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민족 차별이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다.(“궁극적으로 그의 문제는 내지인이 주인인 세상에 조선인으로 태어난 죄였다.”) 그가 비록 실존의 저변을 뒤흔드는 인식론적 충격을 맛보았다고는 해도 유치장에서 풀려나고 회사에도 복직한 그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꾸려 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갇혀 있는 동안 그의 석방에 도움을 주겠다는 핑계로 아내와 접촉한 일본군 장교가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데다가 술에 취한 채 히데요의 어린 딸까지도 범하려는 일이 벌어지자 그는 결국 그 장교를 목 졸라 죽이고 마지막 선택을 한다.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가기로 한 것이다.
‘가자, 상해를 찾아가자. 조선 사람들이 세운 망명 정부가 있는 곳, 조선 사람들이 조선말을 하고 조선 글을 쓰는 곳, 조선 사람들이 조선 사람 노릇을 하는 곳, 그곳으로 가자. 가서 조선 사람이 되자. 기노시다 히데요는 이 땅에 벗어놓고, 그 자유로운 땅에 가서 박영세가 되자.’ 가슴이 벅차올라, 그는 거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가자. 그곳에 가서 시를 쓰자. 조선 글로 쓰자. 녹슨 조선 글을 달구어 땀 흘려 벼리는 대장장이가 되자.’
배낭을 멘 등산객으로 위장한 그가 만주와 몽골을 거쳐 상하이까지 수만 킬로미터를 순전히 도보로 주파한다는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 가능성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그 길의 부름에 응해 나선 것이다. ‘길이 보이는 한, 난 망명객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땅을 찾아가는 망명객이다.’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 『비명을 찾아서』의 거울상인 것처럼, 최인훈 소설 「총독의 소리」의 총독은 히데요의 거울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 두 인물―과 그들의 거처인 두 소설―은 반대 방향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거울과도 같다. 그 거울에 비치는 이미지는 상대방의 뒤집힌 꼴[逆像]이다. 다음의 인용문들은 두 소설의 거울 관계 또는 메아리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제국은 종교를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종교는 무언가? 식민지인 것입니다. 식민지는 무언가? 반도인 것입니다. 반도야말로 제국의 종교였으며 신념이었으며 사랑이었으며 삶이었으며 비밀이었던 것입니다.”(「총독의 소리」)
“내 얘기가 바로 그거야. 조선은 일본이 진 십자가라고. 조선을 다스리는 데는 어쩔 수 없이 군인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자연 문민 정치를 이루는 데 장애가 생기고. 그렇다고 골치 아프니까 조선을 떼어내어 팽개칠 수도 없잖아? 한 나란데.”(『비명을 찾아서』)
「총독의 소리」와 『비명을 찾아서』는 모두 한반도(남쪽)의 현실이 식민지와 다름없다는 비판적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1960년대 말과 1980년대 말이라는 발표 시기 및 작품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의 현실 인식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인다(『비명을 찾아서』에서, 일본의 공해 산업이 집중적으로 조선으로 들어온다거나 시위 주동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자살하는 사건, 또는 일본의 수도군단장을 비롯한 일부 장성이 군의 위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감행한다는 등의 설정은 80년대 남한 사회의 현실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비명을 찾아서』의 작가 복거일의 그 뒤 행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2003년에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21세기의 친일문제』라는 책을 내놓은 바 있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다양한 논문과 통계 자료 등을 동원한 그 책의 요지는 일본의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조선의 근대화가 이뤄졌으며, 일제 말기의 인구가 초기의 2배에 이를 만큼 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시대가 그런대로 살아갈 만한 세월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일제 식민통치가 더 할 나위 없이 가혹했”으며 “따라서 조선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친일행위에 대한 비난은 부당하다”는, 얼핏 자기모순적으로 보이는, 논리다. 이 논리를 가령 앞서 인용한, “식민지와 자유는 양립할 수 있는 개념들이 아닌 것”이라는 히데요의 생각과 비교해 보자. 복거일이 『비명을 찾아서』에서부터 얼마나 먼 길을 떠나 왔는지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와 비슷한 무렵에 그는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책을 내고 책 제목과 같은 ‘과격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는데, 그런 주장과 조선어에 대한 히데요의 애착 사이에는 또 얼마나 너른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인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냉담하며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태도를 그 유력한 증거로 삼고자 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출세작인 『비명을 찾아서』에서 보이는 것은 역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경도라 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의 잃어버린 역사와 언어를 찾아 헤맨 끝에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를 향해 망명 길에 나서는 히데요를 두고 맹목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매도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복거일에게 묻고 싶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한다지만, 때로는 퇴보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복거일을 비롯한 얼치기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보이는 것은 힘에 대한 굴종과 아첨, 약자에 대한 차별과 능멸일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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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