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2.
오스카 이후엘로스Oscar Hijuelos가 두 번째로 발표한 장편 소설 『내 영혼의 마리아』(고려원, 1993)는 1990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한 수작이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아네 글림체어가 연출한 <맘보 킹The Mambo Kings>(1992)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에 불과한 <맘보 킹>은 원작의 세심하고 풍부한 면모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1949년 쿠바(아바나)에서 미국(뉴욕)으로 이민을 온 카스트로 형제는, 1950년대 중반 미국을 달뜨게 한 ‘맘보 붐’의 주역이 된다. 형 세자르와 동생 네스토르는 돈독한 형제애를 자랑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첫사랑의 여인 마리아를 잊지 못하는 네스트로는, 한 번으로 영원히 완성되는 ‘사랑의 원형’을 추구한다. 이런 유형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적당하지만, 현실에서는 몽상가로 여겨지기에 십상이다. 사랑의 원형이란 그야말로 이상적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네스트로는 자신의 몽상가적 기질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델로레스와 연애를 하던 때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난 유령, 즉 투 사베스tu sabes라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정말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했을 때, 그를 아는 친구는 모두 “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아”라는 그의 말버릇을 기억했다.
세자르는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마다 “자 보라, 저기 미래가 있다”라고 농담을 하곤 했던 만큼, ‘오늘을 즐기라!’는 계율에 충실했다. 그 결과 “아나, 미리엄, 베로니카, 비비안, 미미, 베아트리츠, 로자리오, 마가리카, 아드리아나, 그라시엘라, 죠세피나, 버지니아, 미네르바, 마르타, 알리시아, 레지나, 비올레나, 필라, 피나스, 마틸다, 쟈신타, 아이린, 홀란다, 카르멘시타, 마리아 데 라 루스, 에우랄리나, 콘치타, 에스메랄다, 비비안, 아델라, 이르마, 아말리아, 도라, 라모나, 베라, 질다, 리타, 베르콘, 콘수엘로, 엘러이사, 힐다, 후아나, 페르페투아, 마리아 로시타, 델미라, 폴로리아나, 이네스, 디그나, 안젤리카, 다이아나, 아센시온, 테레사, 알라이다, 마누엘라, 셀리아, 에멜리나, 빅토리아, 머시디즈, 그리고……”라고 나열해도 끝이 나지 않을 만큼, 숱한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다.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는 극과 극인 듯 보이지만, 삶에 대한 태도만큼 다른 것은 아니었다. 네스트로가 한 여자를 향한 사랑 속에 세상의 모든 여자와의 사랑을 담았다면, 그와 반대로 세자르에게는 셀 수 없이 무수한 여자와의 사랑이 모두 하나의 사랑으로 수렴된다. 그랬다는 것은, 그가 죽기 전에 동생이 쓴 노래 가사를 유서 대신 베껴 놓았던 사실로 미루어 짐작된다. “마리아, 내 생명, 내 영혼의 아름다운 마리아.” 예순두 살이 되도록 지치지 않고 여성을 찾아다녔던 그 또한, ‘마리아’로 불리는 사랑의 원형을 갈구했던 것이다. 하므로 이질적인 것은 사랑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세자르의 현세적인 인생관과 네스트로의 회의적인 인생관이었다.
『내 영혼의 마리아』를 쓴 오스카 이후엘로스는 카스티요 형제처럼 쿠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쿠바혁명 이전에 미국에 둥지를 튼 쿠바 이민의 풍속도가 잘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진하게 그려진 것은, 1950년대의 미국 대중음악계를 풍요롭게 했던 쿠바 음악에 대한 살가운 애정이다. 직접 맘보를 연주하기도 한다는 작가는,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쿠바 음악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작품을 썼다. 라틴 음악과 재즈에 밝은 독자들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페레스 프라도․몽고 산타마리아․레이 바레토․티토 푸엔테․티토 로드리게스․마치토․에디 팔리에리의 실명을 발견하고 흥겨움을 느낄 것이다.
쿠바는 야구․시가․사탕수수․럼․사회주의 혁명의 나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쿠바는 ‘음악의 섬’이기도 하다. 쿠바 음악의 다양성은 과히라Guajira․룸바Rumba․콩고Conga․손Son․단손Danzon․맘보Mambo․살사Salsa․차차차Chachacha 등,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음악으로 증명되는데, 쿠바의 음악이 이처럼 다양해진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1492년 콜럼버스가 쿠바를 발을 딛은 이후에 진행된 스페인에 의한 식민 역사. 둘째는 카리브 해의 교통 요충지라는 지역적 특성. 셋째는 원주민(크리올)․흑인․유럽인(백인)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인종 융합.
쿠바 음악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음악이 춤과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맘보, 살사, 차차차 등의 쿠바 음악은 음악의 명칭이자 춤의 명칭이기도 하다. 쿠바 음악의 이런 특성은, 대규모 농장에서 노예 노동을 해야 했던 흑인들의 유일한 여가 활동이 바로 춤이었던 아픈 역사에 기인한다. 천샤오추에의『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역사』(북돋움, 2007)에서 한 대목을 인용한다.
“노예해방 전 흑인노예들은 종교행사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종교축제는 흑인들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들은 평소와 다른 복장으로 최대한 화려하게 치장하고 아프리카 음률과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음악을 행진곡으로 사용하면서 쿠바 음악 장르를 만들어냈다. [...] 쿠바 카니발은 문화의 역사이며 민족음악의 요람이다. 본래 약소 문화는 강대문화의 보조 혹은 단역에 머문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강대 문화 안에서 모순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약소 문화가 주목을 박고 카니발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약소민족은 주신 바커스의 신도처럼 음악의 매력에 빠져 하루 빨리 불행이 지나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기원했다. 카니발의 매력은 바로 민중의 기대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적어도 카니발 때만은 희망 없는 억압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뜻밖이지만,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생상스․라벨은 직접 아바나를 방문해서 각기 하바네라(habanera: 아바나의 무곡)풍의 무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쿠바 음악이 끼친 더 큰 영향력은, 쿠바혁명으로 100만에 가까운 쿠바 이민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 대중 음악계에 불러일으켰던 쿠바 음악 열풍이다. 쿠바 음악은 맘보처럼 쿠바 고유의 지역 음악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재즈나 록큰롤과 접합되면서 기존의 음악에 활력을 주거나, 미국 음악 자체를 변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