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 9.
유진 오닐의 ‘Strange Interlude’를 두 번역본으로 번갈아 읽었다. 김영관의 『이상한 막간극』(조선대학교 출판국, 1998)과 이일범의 『이상한 막간희극』(1998)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 오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가 창안했던 ‘의식의 흐름’ 수법을 적극 실험하고 있다. ‘팔루스phallus’의 엄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의 비극을 이처럼 숨김없이 드러낸 작품은 없으며, 팔루스의 부재가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성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 작품만한 것은 없다.
김영관이 번역한 『이상한 막간극』에는 오닐의 작품 뒤에, 번역자 자신의 창작 단막극 세 편을 덧붙여 놓았다. 이처럼 엽기적으로 편집된 책을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다. 「불신시대」는 촌극에 불과했지만, 「별 달기」는 ‘자기 기질'의 희생자가 자주 등장하는 오닐의 초기 단막을 연상시킨다.
세 편 중에 재미있는 것은, 라디오 방송의 문학 프로그램 프로듀서와 구성작가가 오닐을 전공한 지방의 영문과 교수를 찾아와, 오닐에 대한 30분짜리 녹음을 하는 과장을 담은 「당신의 목소리는」이다. 여기서 좌충우돌하는 구성작가는 영문학 교수를 이렇게 공박한다. 차례대로:
ⅰ) [교수가 유진의 여성상은, ‘활동적인 여성이기보다,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가슴의 여성이라고 말하자] 그게 뭐예요. 여성들이 남성의 휴식처라고요? 함께 열심히 뛰는 여성, 얼마나 바람직한 여성이에요. 안 그래요? 이 세상은 남성 위주로 완전히 잘못 구성되었어요.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요!
ⅱ) [교수님]은 마치 무얼 많이 알고 계신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자기 것이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에요! 우리 문학은 달라요. 지난번 우리 문학 작품 산책 프로를 할 때는, 우리 것이어서 그랬는지 뭔가 가슴에 와 닿았는데 교수님의 말씀은 전혀 우리 것 같지가 않아요. 하여튼 교수님 이야기는 남이 써 놓은 것을 그대로 암송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니깐요.
ⅲ) [교수가 오닐이 천착했던 주제를 열거하면서 ‘프로파간더 문학’을 싫어하고, 부조리 극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에 무관심했다고 설명하자] 우리 주변에는 비참한 사람 이 많아요. 정치적, 경제적 여건이 안 좋은 나라들도 많고요. 우린 어땠나요? 한 때 인권이 유린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어요? 그런데 소외니, 고독이니 하며 사치스런 소리나 나부랑대는 부조리극이라니요? (교수에게 대들 듯이) 교수님 유신 시절과 광주 항쟁 땐 무얼 하셨나요? 그땐 어디에 계셨나요? 이런 연구만 하고 계셨나요?
어느 평론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라면서, “익명의 권위가 집단화될 때 그것이 가르치는 것은 다 교과서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작중의 구성작가가 교수에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교과서적 폭력’이다.
영문학 교수로 오랫동안 희곡을 가르쳤던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의 지은이가(그는 셰익스피어학회, 현대영미희곡학회, 한국드라마학회의 회원이자 이사이기도 하다), 직접 희곡을 쓰고, 엉뚱하게도 자신이 번역한 책의 끝 부분에 자신의 창작극을 덧붙여 발표한 계기는 어떤 것일까? 좌충우돌했던 구성작가의 조롱에 답이 있다.'
그토록 많이 알고 계시는 교수님께서 자신이 전공한 드라마 작품 한 편 안 써 보셨단 말이에요? 지금 말씀하신 내용들 모두가 여러 책들을 읽고 말씀하신 거지요? 교수님 말씀 속에는 교수님 나름대로의 독창성이 있다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대로 복사한 걸 녹음기 틀어 놓은 듯 이야기한다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