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1일
이하의 『이하시선』(민미디어, 2001, 중국시인총서 106[당대편唐代篇])을 읽다
헌책방을 다니다 보면, 언제 나왔는지 알 수도 없는 책들을 발견하게 된다. 민미디어라는 낯선 출판사에서 나온 ‘중국시인총서’가 그렇다. 중국 시인만으로 100여 권이 넘는 총서가 기획되었다니, 장관이 아닌가? 누가 내어 놓았는지, ‘당대편’에 속하는 열두 권(연번 101~112)이 나와 있길래 모두 샀다.
관능적인 유혹이 깃든 시 - 나는 성성이 입술을 먹고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맹호연孟浩然·왕유王維·이백李白·두보杜甫·백거이白居易를 다 제치고, 김민나가 선역選譯한 『이하시선』부터 집어 들었다. 이하는 이십대 때 내가 좋아했던 시인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시 가운데 어느 한 편을 특별히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하가 남겼다는 240여 수의 시 가운데, 39수를 가려 실은 이 선집에는 그 시가 없다. 내 기억에, 이십대 때 읽었던 이동향 선역 『이하시선』(민음사, 1976, 세계시인선68)은 편수가 이 시선보다 더 적었는데도 그 시가 있었다. 뿐 아니라, 김원중 평역 『당시감상대관唐詩鑑賞大觀』(까치, 1993)은 딱 두 편의 이하 시를 골라 실으면서 이 시를 싣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이규일이 선역한 『이하시선』(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0469)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던 것도 바로 그 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규일 선역은 이동향이나 김민나 선역보다 훨씬 많은 64수나 되었는데도, 내가 좋아했던 그 시가 없었다.
젊었을 때 읽었던 이동향 선역 『이하시선』은 마흔 살, 중학교 시절부터 모았던 모든 책을 내다버릴 때 내 곁을 떠났다. 『당시감상대관』은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앞에서, 의자를 돌려 팔을 뻗으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책이지만, 여기에 실린 번역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또 이번 일로 뒤늦게 알게 된 송행근 선역 『이하시선집』(문자향, 2003)에서 새로운 번역을 찾아냈지만, 왠지 옛날에 읽었던 그 시가 아닌 것 같다(이 선집에는 112수가 실려 있다). 왜 그럴까? 어린 시절의 입맛이 변하지 않듯이, 처음에 읽었던 번역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이동향이 번역한 그 시를 찾아봤는데 헛수고였다. 대신 처음 이하를 발견했던 시기에 더불어 읽었던, 이원섭 역해 『당시唐詩』(현암사, 1965)에 실려 있는 그것을 찾을 수 있었다. 제목은 「나는 성성이 입술을 먹고」.
제 집은 횡당橫塘이구요. 창에는
계수 향이 풍기는 붉은 사紗가 쳐 있지요.
푸른 구름을 시켜 머리를 틀어 올리게 하고
둥근 달이 내 귀고리 된답니다.
연꽃에 바람 일어
강은 봄인데
긴 둑 여기에
내사 임 못 놓겠어요.
당신은 잉어의 꼬리를 잡수세요.
나는 성성이 입술을 먹고
이렁성 여기서 지내시되
아예, 양양壤陽에 갈 생각은 마세요.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까.
보세요, 오늘 창포꽃이 향기롭지만
내일이면 단풍이 벌써 시들어버릴 걸요.
이 시의 원제는 「대제곡大堤曲」이지만, 김원중은 「떠나는 님을 저어하며 부르는 노래」로, 송행근은 「대제를 노래함」으로 번역했다. 이동향은 이원섭처럼 「나는 성성이 입술을 먹고」와 비슷하게 번역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대제는 중국 양양 근방에 있는 유명한 색향色鄕으로, 이 시는 대제의 술집 아가씨가 근무지 내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정부를 놓치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성성이(고릴라) 입술 요리와 잉어 꼬리 요리에는, 정부를 잡으려는 아가씨의 정성과 관능적인 유혹이 깃들어 있다.
이하(790~816)는 중국시의 황금기인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흔히 당나라는 초당初唐·성당盛唐·중당中唐·만당晩唐으로 시기 구분을 하는데, 이하가 활동을 했던 시기는 안사安史의 난(755~763)이 끝나고 국운이 쇠락하던 중당 시절이다. 이 시기는 맹호연·왕유·고적高適·이백·두보 같은 대시인들이 친근하고 진솔한 감정을 노래했던 성당과 달리, 이성적이고 현실 비판적인 사회시가 등장하는 시기다. 이 시기의 유명한 시인으로는 원백파라고 불리는 원진元稹·백거이, 한맹시파라고 불리는 한유·맹교孟郊가 있다. 전자가 쉽고 통속적인 표현을 즐겨했다면, 후자는 어렵고 기괴한 표현을 좋아했다.
중당 시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하는 한유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지원받은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감정의 표현이나 묘사가 일상적이지 않았고 시재詩材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이하의 유미주의적인 시작 태도와 독특한 표현법은 대숙륜戴叔倫·장벽張碧·유언사劉言史·장남걸莊南傑 등의 동시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만당 시기의 후대시인들인 이상은·두목·온정균溫庭筠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런 뜻에서 이하는 한맹시파의 마지막 주자면서, 중당과 만당을 잇는 가교이기도 하다.
초자연적 시세계 - 가난과 좌절된 벼슬길, 끈질긴 병력
중국 문학사에서 희귀한 재능을 뽐냈던 이하의 시는 몇 가지 배경을 갖고 있다. 먼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가 살았던 당나라 중엽은 안사의 난을 거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때였다. 환관들이 군권을 장악하여 조정을 농단하고, 각 지방을 차지한 지방장관들은 중앙정부의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조세제도가 무너진 가운데 백성들은 무거운 과세로 고통을 겪었다. 이런 사회적 혼란상이 이하로 하여금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탐닉과 현실 비판적인 풍유시風諭詩는 물론이고, 색정 문학가色情文學家로 오해받는 농염한 시마저 아울러 쓰게 만들었을 것이다.
귀신과 초자연의 세계를 넘나본 이하의 시는 『초사楚辭』의 신화적이고 주정적인 시풍에 크게 빚졌다. 이하가 절친한 친구에게 보냈던 「진상에게 드림贈陳商」이란 시의 일부와, 「상심하여 노래하다傷心行」와 「창곡의 북원에 새로 돋은 죽순 네 수·둘째昌谷北園新筍 其二」의 전문을 차례로 보자.
장안長安에 대장부 있는데
스무 살에 마음은 벌써 썩어 버렸네
능가경楞伽經은 책상머리에 쌓여 있고
초사도 손에서 놓지를 못하네
인생살이 곤궁하고 못났기만 하니
해질 무렵에 애오라지 술잔만 기울이네
현재 길은 이미 막혀 버렸으니
백발을 기다릴 필요 어디 있으랴? (송행근 역)
목 멘 소리로 초사를 읊조리나니
병든 몸의 아픔은 하얗게 적막하여라
가을 같은 몸엔 백발이 자라고
나뭇잎 위로 비바람이 운다
푸르스름한 등잔엔 기름이 말라가고
떨어지는 빛 속에 춤추는 나방의 날갯짓
오래된 벽엔 짙은 먼지들이 자라고
나그네의 영혼 꿈속에서 중얼거린다 (이규일 역)
대나무의 푸른 껍질을 벗겨 초사를 쓰니
춘분[春粉 : 새로난 대나무에 묻어 있는 하얀 가루]은 향기 진하고 글씨는 뚜렷하구나
대나무와 그 위에 쓴 시를 어느 누가 보겠는가?
안개를 누르는 이슬만이 수많은 가지에서 울고 있는데 (송행근 역)
세 편의 시는 이하가 『초사』를 좋아했으며, 그것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케 해 준다. 그러나 그의 시에 자주 나오는 ‘鬼·神·死·老·血·墓’ 등의 단어는 스물일곱 해 밖에 살지 못했던 그의 개인적 병력과 상관해서 풀이해야 한다. 『신당서新唐書』에 실린 「이하전李賀傳」에 따르면 그는 피를 토하는 병을 앓았으며, 17세 때 머리가 하얗게 세는 신체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죽음의 공포를 대면해야 했다.
병을 많이 앓아 약 달이는 냄새가 집에서 가시지 않았다던 그의 병력에 더하여, 극심한 집안의 경제적 궁핍과 좌절된 벼슬길 또한 이하의 시세계를 초자연적 영계靈界로 밀어붙인 배경이다. 그의 집안은 황실의 후손이었으나,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평민이나 같은 수준으로 몰락했다. 집안을 일으켜야 했던 그는 21세 때, 응진사거(應進士擧:진사가 되기 위한 시험)를 치러 장안으로 갔으나, 경쟁자들이 피휘避諱를 문제 삼은 탓에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이하 아버지 이름인 진숙晉肅의 진晉이, 응진사거의 진進과 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봉예랑奉禮郞과 같은 말단 관직에 머물렀다(원래 피휘란 군주를 일컫는 휘諱가 암시하듯이, 군주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법칙이지만, 차츰 조상이나 부친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데까지 확장됐다. 현대인이 이해할 수 없는 풍습처럼 보이지만, 대선수를 기억하기 위해 등번호를 영구 결번시키는 프로야구의 관습을 생각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인화리에서 황보식과 송별하며仁和里雜叙皇甫湜化」라는 시에서 그는 “낙양 바람결에 말 타고서 장안을 들어서려 하였더니/ 문을 열기도 전에 미친개 만났구나”(송행근 역)라고, 가휘家諱를 문제 삼아 자신의 진사시를 방해한 진사과의 경쟁자들을 ‘미친개’라고 격하게 비난한 바도 있거니와, 「숭의리崇義里에서 비 내려 머물다」 혹은 「숭의리의 장마」라고 번역되는 시에서는 출세가 막힌 울분을 애달프고 차분하게 노래하고 있다.
저 초라한 이는 어느 집의 자식인가
장안의 쓸쓸한 가을을 느끼고 있네
젊은 나이로 나그네의 울분을 품고
꿈속에선 백발을 슬피 우네
야윈 말은 썩은 풀만 먹고
빗물은 차가운 도랑 위에 날린다
남궁南宮엔 고색창연한 휘장이 어둡고
젖은 공기 사이로 종소리 들려온다
고향은 멀어 천 리 길
구름은 동쪽으로 흘러간다
칼집을 베고 잠드는 우울한 밤
여관의 잠 속에선 제후가 되는 꿈을 꾸네 (이규일 역)
「진상에게 드림」과 「상심하여 노래하다」란 시에서 독자들은 이미 ‘백발’을 본 바가 있거니와, 위의 시에서 다시 보게 되는 백발은 그의 일생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병력을 되새기게 한다. 거기에 더하여 방금 읽은 시는, 벼슬에 나가고자 하는 수그러들지 않는 욕망과 벼슬에 오를 수 없는 좌절감을 그 어느 작품보다 더 짙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준 짙은 좌절감도 「나무를 심지 마라」 혹은 「나무를 심지 말자」로 번역되는 시에 비하면 견딜만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뜰에 나무를 심지 말자.
나무를 심으면 사시사철 근심하게 된다.
홀로 잠드는 남쪽 침상으로 비쳐드는 달
올 가을 지난 가을 한결 같다. (김민나 역)
중국시나 우리나라 사람이 쓴 한시에는 책 앞이나 뒤에 작품 전체에 대한 총평(해설)도 있지만, 시마다 편편이 주해가 달려 있는 게 특징이다. 지금 읽고 있는 김민나·이규일·송행근의 역본도 그런 관례를 따랐다. 세 사람의 선역자는 ‘나무를 심으면 왜 근심하게 되는지’ 제각기 다른 주해를 붙였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뜻을 둔다는 의미이다. 일단 뜻을 두면 뜻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 언제나 조마조마 근심하게 된다.”(김민나) “나무는 계절을 알려주고 세월을 알려준다. 세월만 보면 금년 가을이나 작년 가을이 다를 바 없지만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사람을 생각하면 수심이 생긴다. 더구나 항상 공명을 생각하는 이하는 나무를 보며 헛된 세월을 세는 일이 더욱 괴로울 것이다.”(이규일) “나무 심는 일이란, 곧 자신의 마음에 수심을 심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뜰 앞에 심어 놓은 나무를 보면서, 그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는 등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하기는커녕, 심은 나무가 자라면 자신의 수심도 그만큼 늘어나고 깊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송행근)
사실주의 - 강도 높은 현실 비판 의식
개인의 병력과 가로막힌 관직이 이하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세계로 눈길을 돌리게 했을테지만, 신괴시神怪詩로 불리는 이 계열의 시는 고작 10여 수에 불과하다. 물론 그에게 시선詩仙내지 선재仙才라고 불렸던 이백에 견주어 시귀詩鬼 내지 귀재鬼才라는 칭호를 선사한 것은 이 계열의 시 10여 수와 그의 시에 그들먹한 기괴한 상상력 덕분이지만, 그 때문에 소홀히 취급받은 현실에 바탕한 사실주의적인 시들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정약용의 「스스로 거세한 남자를 슬퍼함哀切陽」을 떠올리게 하는 「느낀 바를 풍자함 - 하나」를 보자.
함포엔 진주가 없고
용주엔 귤이 없네
조물주의 힘이야 족히 알지만
태수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네
아낙들이 베를 짜지 못한 것은
어린누에들이 이제야 꿈틀거리기 때문이네
현관이 말을 타고 오는데
성난 수염 규룡의 모습이라
가슴에서 판을 꺼내는데
판에는 글이 몇 줄 쓰여 있어라
“태수가 노하지 않았다면
어찌 네 집을 찾아왔으리“
아낙은 현관에게 절을 하며
“뽕잎이 아직 작으니
늦봄까지 기다려야
겨우 베틀을 돌립니다“
아낙이 애원을 할 때
시누이는 좁쌀로 밥을 짓네
현관이 음식을 남기고 떠나면
부리가 다시 찾아와 마루에 오른다 (이규일 역)
이 시의 원제는 「感風五首 其一」인데, 감풍感風은 풍자와 같은 말이다. 이 시에 나오는 함포와 용주는 각기 진주와 귤의 산지인데, 산지에 진주와 귤이 없다니 그만큼 수탈이 심했다는 뜻이다. 또 뽕잎과 누에가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베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관리의 행태로부터, 한 숨 돌릴 틈조차 없었던 백성의 곤경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관縣官이 가자마자 지방의 말단 관리인 부리簿吏가 들이닥치는데, 이것은 중당 시기 현실 풍자시의 전형적인 창작 기법이라고 한다. 이 시뿐 아니라, 「마시 스물세 수馬詩二十三首」·「황가동黃家洞」·「환관 사령관이 밤 지샐 대까지 즐김貴主征行樂」같은 시들을 보면, 혁명적이라 할만큼 강도 높은 현실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하는 초자연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신에게 부르는 노래神鉉曲」 같은 시와, 방금 읽은 「느낀 바를 풍자함」과 같은 현실 풍자시를 더불어 썼다. 이하는 이 두 계열 외에도 「나는 성성이 입술을 먹고」나 「궁녀를 노래함宮妵歌」처럼 여성 화자를 빌려 애틋한 연애 감정을 드러내거나 여성의 애환을 노래한 작품, 그리고 「황두랑黃頭朗」․「공후를 타며箜篌引」 같이 떠나간 남편을 그리는 규정閨情을 읊은 시도 많다. 약 30~40수에 이르는 이 계열의 작품 가운데, 「붉은 옷 그만 빨아요」혹은 「붉은 옷 빨지 마세요」라고 번역되는 작품을 보자.
붉은 옷 그만 빠세요
여러 번 빨면 붉은 색 바래지니
당신께서는 젊음을 자랑했었지요
어제 은교殷橋에서 만났을 적에
벼슬하면 빨리 돌아오세요
시위 떠난 화살 되지 마시고 (송행근 역)
이 시 역시 내가 처음 읽은 이동향 선역에 실려 있는 것이니, 그걸 다시 보고 싶다. 붉은 색 옷을 자주 빨면 색이 엷어지는 것처럼, 젊음이나 애정도 시간이 흐르거나 오래 못 보게 되면 퇴색한다. 그러니 서울에서 어정거리지 말고 어서 내게 돌아오라는 여성 화자의 안타까움이 베여 있는 이 시는, 이하가 많은 시에서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색채 감각이 두드러진다. 온갖 붉고 푸른 색깔이 어우러져 있었던 「나는 성성이 입술을 먹고」만큼은 아니지만, 붉은 옷과 타오르는 정념이 한 색깔로 섞여 여성 화자의 간절한 염원을 눈에 선히 드러낸다.
입이 없는 여성의 정한을 대신 노래해준 이런 작품들 때문에 “이하는 귀족 출신으로 여색女色을 매우 탐하였고, 그의 시에 농염한 시들이 많다는 측면에서 색정 문학가로 평가”(송행근)받기도 했다는데, 그것은 시인에 대한 오해다. 「소년을 비웃다嘲少年」같은 시는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색정에 빠진 문학가 따위가 쓸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진 청총마[靑驄馬 ; 푸른색과 흰색 털이 뒤섞인 말]에 빛나는 황금 안장
비단옷에 스미는 진한 용뇌[龍腦 : 귀한 향의 이름]의 향
미인과 포개 앉아 옥 술잔을 건네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천상의 도령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지은 누각은 대숲에 가깝고
낚시를 드리워 연못에서 잉어를 잡는다
어떤 날은 꽃밭에서 취하고
뒤돌아 쏘는 황금 구슬에 새가 떨어진다
평생에 나그네 된 적 없다 하고
일생에 거쳐 간 미녀가 삼백이 넘는다 하네
그가 어찌 알리 땅 파는 농가엔
관아의 세금 독촉으로 베자는 처녀 하나 없음을
황금 보옥 쌓여 있어 위풍당당하고
빈객들과 인사하며 자신이 넘친다
이제껏 책 반 줄 읽은 적 없으나
오직 황금으로 귀한 신분 되었다
소년이라 어찌 영원한 청춘일까
바다의 파도도 한순간에 뽕나무 밭이 된다네
영화와 쇠락은 화살처럼 빠르게 뒤바뀌나니
하늘이 어찌 그대만을 편애하리
아름다운 청춘 영원하다 말하지 마오
백발과 주름진 얼굴이 그대를 기다린다오 (이규일 역)
시인은 주색에 빠진 귀족 자제의 사치스러운 일상과 관가의 수탈로 농가의 처녀들이 부잣집 첩으로 팔려가거나 기녀가 된 상황을 생생하게 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 이제라도 주색에서 깨어나기를 충고한다.
재미나게도 「붉은 옷 그만 빨아요」에 주해를 단 송행근은, 시 속에 나오는 “경경卿卿”이나 “봉후封候”와 같은 단어를 들어 “시인이 봉예랑직을 수행하기 위해 아내와 이별할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고 적고 있다. 그는 말미의 해설에서도 “그의 시 「출성出城」 등에 결혼 생활에 연관되는 ‘경경·학병鶴病’ 등의 시구가 나타나는 걸로 봐서 결혼은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재차 시인의 결혼 여부를 확정했다. 하지만 이규일의 해설에는 “이하는 또 일생 동안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라고 나와 있다. 송행근이 근거로 삼은 「출성」은 해설에 나온 제목과는 다른 「장안을 떠나며」라는 제목으로, 그 자신이 선역한 『이하시선집』에 실려 있다. 이 시에는 분명히 ‘아내’가 등장한다. 그 부분을 보자.
만 리나 떨어진 장안에 와서 과거를 보았으나
관인官印 없기에 스스로 슬픔을 감당하네
사랑하는 아내 애써 나를 위로하겠지만
거울에는 두 줄기 눈물이 떨어지겠지
하지만 같은 선역자가 실어 놓은 「아우 보게나示弟」나 「돌아가는 꿈을 짓다題歸夢」는 오히려 그가 독신이었다는 증거로 읽힌다. 두 시를 차례대로 전문 인용한다.
아우와 이별한 지 삼 년 만에
집에 온 지 열흘 남짓
녹령은 오늘 저녁 술인데
상질로 싼 책들은 예전 그대로구나
병든 몸 홀로 살아 있으니
세상에 무슨 일인들 없겠는가?
우마牛馬에게 물을 필요가 어디 있으니?
던진 주사위에 모든 것을 맡겼거늘
장안의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객지 서생은 창곡[昌谷 : 시인의 고향]을 꿈꾸었네
어머니는 기뻐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고
동생은 산골 개울에서 푸른 미나리를 꺾는구나
집안 사람들의 두터운 사랑과 기대는
나에게 주린 배 채워 주길 바라지만
피곤에 지친 마음
등불만이 잠 못 이룬 눈 비춰 주네
여성 화자를 흉내냈던 이하의 궁체시宮體詩가 그의 혼란된 성정체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듯이, 「장안을 떠나며」에 나오는 아내 역시 이하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식으로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이하가 죽은 뒤에 그의 시집에 서문을 쓴 두목이나 그에 대한 짤막한 전기를 썼던 이상은, 그리고 앞서 소개된 『신당서』의「이하전」이 그의 결혼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하는 당대唐代 뿐 아니라, 송대宋代의 대표적 문학 양식인 사詞, 원대元代와 명대明代의 여러 시인들 그리고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홍루몽』의 작가인 조설근趙雪芹에게까지 두루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근대에는 공자진龔自珍이 이하의 영향을 받았고, 루쉰과 마오쩌뚱도 그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이 독후감에서는 이하의 본령인 신괴시 계열의 시를 한 편도 소개하지 않았다. 까닭은 초자연적인 세계나 유계幽界에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내 좁은 소견머리 탓이다. 다음 기회에는, 세 사람의 선역자가 미처 거론하지 못한, 중국 현대 시인들에 끼친 이하의 영향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사족이다. 시 쓰는 일에 이십대 초반을 모두 바쳤던 시절,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시인은 마야코프스키·이하·T.S. 엘리엇이다. 엘리엇은 꽤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마야코프스키와 이하는 평균인들의 성공이나 행복에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세 사람이 내 시작에 미친 영향을 세세히 밝히는 것은 부질없지만, 스무 살 무렵에 쓴 시들 가운데 ‘무덤’이나 ‘요절 충동’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마야코프스키와 이하의 영향이라고 해야 한다. 여기 「길목집」·「편지」·「지하인간」을 차례대로 실어 본다.
길목집
봄이 오면 들러 주십시오
강정가는 길목의 나의 집
사람들 발걸음이 울릴 때
나는 부르짖습니다
눈 뜨고 입 벌리면
흙이 차고 들어오는 여기에서
나는 당신이 그리워 부릅니다
“여보세요,
들리십니까?”
걸음을 멈추십시오
나 있는 곳 너무 어두워
아가씨의 흰 종아리
정말 보지 못합니다
걸음을 멈추십시오
둥글고 파란 지붕
이게 나예요!
편지
무덤 속에 내가 있을 대는
당신이 불러도 대답 않으리.
산 아래 마을 겨울의 남은 얼음은 녹아 흐르고
동구에 복사꽃 피고 또 난리진다 하고
떠흐르는 버들씨앗 속에 온 세상이
혼자 취해 흔들리는 날
한 번만 같이 살아 보자고
봉숭아 꽃 그늘이 진 지방 지방紙榜에
고운 우표 동동 띄워 부친다 해도,
귀와 콧구멍, 눈과 입 속으로
흙이 차고 들어와
대답은커녕 나는
울음소리조차 못 낼 것이네.
지하인간
내 이름은 스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 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