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6일
이시카와 사카에의 『여론조작 위기의 시대』(이담, 2009)를 읽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주제는 ‘패로팅Parroting’ 현상이다. ‘앵무새처럼 흉내 내기’라는 뜻의 패로팅 현상은, 여론조사 등에서 질문을 받으면 미디어가 말한 논조 그대로를 받아 옮기는 경우를 말한다. 즉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디어가 주입해 준 의견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을 패로팅 현상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패로팅 현상을 입증하기 위해 2003년 여름, 일본의 5대 전국지 가운데 상위를 차지하는 3개 신문의 독자를 대상으로 일본 사회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여덟 가지 쟁점에 대해 질문을 해 보았다. 책에는 없지만, 본문의 내용을 도표로 만들면 아래와 같다.
3개 신문 구독자의 여덟 가지 쟁점에 대한 위의 답변을 보면,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구독자의 답변이 대부분의 쟁점에서 가장 큰 폭으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런 현상이 답변자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의 논조와 같다는 것을, 3개 신문의 같은 쟁점에 대한 사설·기사·외부 칼럼의 횟수와 내용 분석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역시 책에는 없지만, 본문의 내용을 알기 쉽게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위의 두 도표는, 구독지의 논조가 구독자의 의견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구독신문의 논조와 구독자의 의견이 흡사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두 가지 가능성이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하나는 구독지의 논조가 구독자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미디어의 여론 형성설). 다른 하나는 독자가 자신의 의견에 가까운 신문을 구독하게 되었을 가능성(독자의 미디어 선택설).
지은이는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미디어의 여론 형성설을 취한다. 일본의 경우 <요미우리신문>이 논조를 선명하게 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며, <요미우리신문>이 논조를 선명하게 함으로써 독자가 큰 폭으로 이동했다는 아무런 자료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논조가 변화해도 많은 독자가 기존의 신문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만의 의견을 가진 독자가 자신의 의견에 따라 구독지를 선택하는 행위가 일본의 미디어 상황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일본의 가정은 압도적으로 한 종류의 신문만 구독하고 있으며, 두 개 이상의 신문을 보는 가구는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패로팅 현상은 각 신문 사이에는 분명한 논조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신문에만 의존하여 그것을 정보원으로 삼아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정보 부족 현상이다.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단일의 정보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정보원을 체크하는 것이 흔히들 말하는 일반적 상식이다.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토지를 매입한다거나 자동차를 바꾸는 등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들은 다양한 정보를 다각적으로 체크한다. 그러나 정치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복수의 정보원을 체크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대다수의 세대에서는 한 종류의 신문만을 구독한다.
패로팅 현상을 교정하기 위해 지은이는 두 가지 이상의 신문을 대조해 보는 ‘크로스 미디어 체크Cross Media Check’, 유언비어나 소문에 대처하기 위한 ‘논리적 사고’, 그리고 인터넷 활용을 제시한다. 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편향적이고 조작된 정보에 대해 “개개인의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 내용과 결론부인 2부 7장의 요약인 바, 패로팅 현상에 대한 증명과 그것을 교정하는 세 가지 방법은 그저 그렇다. 언론이 애초부터 정도를 걷는다면(그러기로 노력한다면), 독자들이 두 개 이상씩의 신문을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문제는 언론이 편향적이고 조작된 정보를 업으로 삼게 된 이유를 알고, 언론에게 정도를 걷도록 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책의 진면목은 2부에 있다.
먼저 지은이는 일본의 신문 독자들이, 하나의 신문으로 만족하게 된 원인을 파고든다. 첫째는 신문사들이 자신은 공정하고 중립적이라는 신화로 독자들을 마비시켜 놓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실제로 8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의 유력지들은 논조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아무거나 하나만 보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다수의 유력지들이 공정․중립을 표방하거나, ‘신문, 다 똑같아. 아무거나 보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정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1987년에 이루어진 민주화와 <한겨레신문> 같은 정론지가 생겨나기 전까지, 신문은 많았지만 제호만 달랐을 뿐이다.
북한이 자칭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발사한 다음날인 지난 2009년 4월 6일, <산케이>,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 일본의 종합 일간지는 하나같이 “북(조선) 미사일 발사”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
<요미우리신문>이 1984년 1월 1일 자 사설(「평화·자유·인권에의 현대적 과제」)을 통해 국수주의와 우익 노선을 표방하면서 <아사히신문>을 가리켜 “빨갛다, 빨갛다, 아사히는 빨갛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기 전까지, <아사히신문>·<마이니치신문>·<요미우리신문> 등의 일본의 유력지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신문이었다. 그렇게 된 기원은, 미국의 일본 통치 전략에서 비롯한다.
태평양전쟁의 승리자인 미국은 일본을 쉽게 통치하기 위해 전전의 일본 통치기구를 최대한 유지했고, 미국의 역逆코스 정책으로 정치 일선에 복귀한 일본의 보수 정객들은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적극 받아들였다. 미국은 일본 점령 통치를 끝마칠 즈음, 자유당과 민주당을 합쳐 자민당을 만드는 ‘55년 체제’를 배후에서 완성했다. 한국전쟁을 기회로 경제 성장의 호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서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미국이 점령했던 또 하나의 패전국인 독일에서는 전쟁 전에 발행되고 있던 신문이 모두 발행 정지되고, 동일한 제호 하에 발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에 협력했던 <아사히신문>·<마이니치신문>·<요미우리신문> 같은 신문들이 제호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활동하도록 용인받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의 언론은 향후 다음과 같은 ‘이중의 짐’을 지게 되었다. 첫 번째 짐은, 일본 언론은 미국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고 있는 일본의 처지를 외면하는 것인데다가, 일본 지식인들은 좀체 반미의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반미는 일본의 독자적인 정체성 확립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일본 정체성의 확립은 전쟁 이전의 일본 애국주의를 연상시켰다. 두 번째 짐은, 55년 이후 정권교체가 없다는 것에서 오는 짐이다. 2대 정당 간에 정기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서는, 현 정권에 지나치게 근접하게 되면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일본처럼 자민당이 장기 독주를 하게 되면, 미디어는 권력에 접근하여 기득권을 챙기게 되고 보수화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일본의 신문은 한 덩어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트린 것이 <요미우리신문>의 1984년 신년 사설이었다. 이때 일본은 ‘미국에 노No'라고 말하고도 남을 만큼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경제로 맞붙은 ‘제2의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환호하던 때였다. 하므로 경제대국에 걸맞는 ‘정상국가’로서의 위상을 찾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1992년부터 일본의 ‘버블경제Bubble economy’가 붕괴하면서 정상국가에 대한 염원은 국수주의와 우익 노선을 향해, 또 한 번 가파르게 기울었다.
사회 전체로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국가가 보다 강력하게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형태로 사회 전체의 통합을 되찾을 수 있다면, 여러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 젊은 사람들의 자포자기나 방탕, 향락을 꾸짖는 대신, 근면과 통제에 복종하도록 만들려는 움직임들이 구체화 되었다. 애국심의 강조, 봉사심의 강조 등은 이들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모두 개인의 자제, 사회에의 공헌, 희생 등을 강조한다. 그리고 희생을 귀한 것으로 찬미하고 장려하는 태도가 국가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이데올로기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경향을 보수정권은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이것이 정권유지의 기반이며 방법론이었다.
이와 같은 보수정권의 의도에 대하여 미디어는 보수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에 앞서가는 형태로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조해 왔다. 헌법 개정에 관해서도 개정안을 미리 제시하고 교육기본법에 대해서도 구체안을 사전에 제시했다. 그 내용도 국가주의적 색채를 매우 강조하고 있었다.
이 책의 2부가 우리에게 전하는 요지는 명확하다. 민주주의가 병든 사회에서는 언론이 권력에 밀착하여 편향적이고 조작된 정보를 업으로 삼게 된다. 하므로 언론에게 정도를 찾아주는 방법은 민주주의 제도의 근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각 미디어가 민주주의 이념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목표로 삼고 이를 실천”할 필요가 있고, 주체적인 독자들의 자각이 필요하다.
고급이라고 일컬어지는 명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정의부터가 고급일 수가 없다는 험담을 해 왔다. 최고의 사치는 몸에 걸치는 것이든 소지하는 것이든 주문품이다. 자기 취향에 맞추어 자기 개성에 맞는 것을 주문하여 만드는 것이 최고의 사치이며 실제로 부자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현재 명품이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대량생산이며 고가일지는 몰라도 결코 제일 급의 고급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숙고된 의견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사족이다. 지은이가 패로팅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3개 신문 독자에게 질문지를 돌렸던 2003년, 각 신문의 발행 부수는 어땠을까? 김정기의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한울, 2006)에는, 2004년 일본신문협회가 발표한 발행 부수가 나와 있다. <요미우리신문>(1,007만 부)․<아사히신문>(825만 부·<마이니치신문>(395만 부)·<니혼게이자이>(301만 부)·<산케이>(212만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