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5일
김훈의 『강산무진』(문학동네, 2006)을 읽다
『강산무진』에 실린 작품들은 철저하게 속진俗塵을 내용으로 삼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두 가지 이야기를 병렬적(병치)으로 끌어가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 실린 여덟 편의 작품은 개별성이 두드러지기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는 뜻에서, 연작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속세의 티끌’을 뜻하는 속진이라는 단어는 세상의 여러 가지 번잡한 일을 이르는 말인데, 이것의 문학용어는 ‘현실성’일 것이다. 하지만 『강산무진』의 내용적 특징을 가리킬 때는, 아무래도 불가의 용어처럼 느껴지는 속진이 더 낫다. 「화장火葬」·「고향의 그림자」·「언니의 폐경」·「머나먼 속세俗世」·「강산무진江山無盡」과 같은 대다수의 작품이 “생로병사”에 맞닥뜨린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머나먼 속세」에서 병든 운동권 수배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로병사로구나”라고 말한 사람은, 해망사海望寺의 주지인 난각이다).
「배웅」은 현재는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전 식품회사 사장 김장수(45세)와 오 년 전 그가 데리고 있었던 여사원(윤애) 사이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이며, 「화장」은 화장품 회사의 상무 오(55세)가 아내의 장례를 치르면서 미국으로 떠나는 어느 여사원(추은주)에 대해 품었던 비밀스러운 연정을 번갈아 기술하고 있다. 「항로표지航路標識」에서는 소라도의 등대장 김철(40세)과 전자회사의 재무관리 상무였던 송곤수(55세)의 이야기가, 「뼈」에서는 사십 대가 된 대학원생 오문수와 ‘알터’에서 발견된 기원전 4세기경의 유적 이야기가, 「고향의 그림자」에서는 택시 강도를 저지르고 원양어선을 탄 조동수를 잡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간 형사(‘나’)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기술되고 있고, 「언니의 폐경」에서는 똑같은 형식이 나이 쉰을 넘긴 두 자매를 놓고 되풀이된다. 「머나먼 속세」는 권투선수 ‘나’의 챔피언 도전 경기와 그가 뭍으로 나오기 전에 행자 생활을 했던 풍도風島 해망사의 추억이, 「강산무진」은 암 진단을 받은 의류회사 상무 김창수(57세)가 신변을 정리하는 이야기에 조선시대 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가 중첩된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일부 |
이야기의 병치나 과거 회상, 이미지 중첩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소설의 특권이다. 그래서 『강산무진』에 흔한 병렬적(병치) 구조가 딱히 유별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집에서 병렬 구조가 눈에 띄는 것은, 병렬 구조를 통해 윤리(선/악)가 발생하고 차이(미/추)가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상은 다 똑같다’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강조하고자 병렬 구조를 동원하는 때문이다. 김철과 송곤수의 자리바꿈이 소설의 서사와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항로표지」는 윤리도 차이도 아닌 속진의 한 풍경일 뿐이며, 「뼈」의 오문수나 「머나먼 속세」의 ‘나’는 병치된 과거와 결별하고도 그 어떤 새로운 가치를 향해 도약하지 못한다.
속진에는 어떤 높낮이도 없는데다가, 뛰어 봤자 벼룩이다. 거기에 충실하려는 『강산무진』은 풍속 소설이 즐겨 다루는 여러 가지 소재(특히 가족 해체와 물질 숭배)를 담담하게 기술할 뿐, 어떤 윤리적 판단이나 심미적 가치도 내세우지 않는다. 표제작인 「강산무진」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탈속이 표나게 묘사되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속세에서의 처세와 단독자의 견고한 자아가 더 두드러진다(주인공은 “가족들 이외에는 암을 알리지 마십시오. 암환자라는 걸 주변에서 알게 되면 신변을 정리할 때 불이익을 당하실 수가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충실하게 행동하며,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는 그를 배웅하러 온 전처의 “기도”를 거절한다).
『강산무진』의 주인공들은 꽤 자세한 이력으로 독자 앞에 제시되지만, 어느 인물에게서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내면에서 발원한 고통이 없다. 게다가 어쩌면 모두 ‘람보’와 같은지! 생로병사와 생계라는 불가항력의 힘은 속진의 티끌에 불과한 람보와 같은 주인공들에게 경제적 동물로서의 처세에 충실할 것과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단독자의 처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독전관 역할을 한다. 어쩌다 “시위”(「배웅」)나 “혁명”(「머나먼 속세」)이 나오지만 조롱될 뿐이다.
솔직히 『강산무진』은 형식이나 인식이 단순하다. 허무를 대하려거든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 나온 전후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 게 낫고, 속진을 체험하겠거든 김원우를 읽는 게 낫다. 간혹 사람을 놀래키는, “풀뿌리 밑이 연화장세계蓮華藏花世”(「언니의 폐경」)라는 말이 나오곤 하는데, ‘선禪’을 흉내 낸 자동 기술처럼 느껴졌다. 거기에는 맥락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