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일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컬처 코드』(리더스북, 2007)를 읽다
민족성을 도마에 올려놓고 낄낄거리는 농담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있다. 예컨대, 똑같은 상황에서 미국인·영국인·프랑스인·독일인·유대인 등이 각기 어떠한 반응을 보였다더라 하는 농담들 말이다. 언제, 그리고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각 나라의 민족성을 희화화하는 농담들은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그런 농담들이 정형화해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고정불변의 민족성이란 게 있기나 한 것일까?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민족성에 대한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컬처 코드』를 썼다.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인류학 박사이기도 한 지은이는 민족성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파충류 뇌reptilian brain·대뇌번연계·대뇌피질’로 나누어진 뇌를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파충류의 뇌: 이 명칭은 이 부분이 파충류의 뇌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파충류 뇌는 2억 년 전의 조상의 뇌와 별로 다를 바 없다. 생존과 생식을 관장하는 이 뇌는, 다른 두 부분의 뇌보다 영향력이 크다.
대뇌번연계: 출생 직후부터 5세 사이에 주로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아이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통해 따뜻한 정과 사랑, 강한 유대감을 얻는다. 어떤 사람이 감정적이라면, 그는 대뇌번연계가 활성화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대뇌피질: 추상적 사고와 상상력을 도맡는 부분으로, 아이들은 7세가 넘어야 이 부분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대뇌피질은 논리가 작용하는 곳이며,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수준 높은 추리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미국의 어느 금융회사는 자동차 사고의 피해자에게서 긴급 구조 요청이 오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묻는다고 한다. ①몸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②기분이 어떠세요? ③사고 경위를 상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대뇌피질과 대뇌번연계의 싸움에서는 대뇌번연계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사람이 이성보다는 감정을 따를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부분의 뇌 가운데 으뜸은, 파충류 뇌다. 금융회사의 상담자가 자동차 사고 피해자에게 했던 질문의 차례는 파충류 뇌→대뇌번연계→대뇌피질의 서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에게는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나 ‘올바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따라서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파충류의 뇌다. 파충류의 뇌는 대뇌피질, 대뇌번연계와의 싸움에서 언제나 승리한다. 본능, 논리, 감정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하는 것은 본능이다. 이는 개인의 행복과 인간관계, 구매 결정, 심지어 지도자 선택의 문제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지은이에 따르면, 우리가 자의적인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실은 타고난 본능(생존·생식)과 7세 이전에 학습된 감정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때문에 사람의 행동 방식을 이해하려면 행동 자체의 내용보다는, 본능을 이해해야 하며 그가 어떤 문화 속에 살아왔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인간 유전자를 지닌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것이 본능이라면, 그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의 문화적 학습의 결과가 바로 민족성이다.
인간은 7세 이전에 자신이 속한 문화를 물려받으며, 그것을 생존의 도구로 기억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프랑스인은 프랑스인이 되고, 미국인은 미국인이 된다. 민족성을 도마에 올려놓고 희화화하는 농담이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은, 그런 문화적 무의식이 핍진하게 드러났을 때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컬처 코드Culture Code’는 각 나라 사람이 자신의 문화를 통해 일정한 대상(자동차·음식·사치품·사랑·섹스 등)에 부여하고 있는 ‘무의식적 의미’를 뜻하며, 지은이는 이 용어를 다국적 기업이나 국제적인 사업을 하는 이들을 위한 비즈니스 전략으로 개발했다. 즉 전통차를 애호하는 일본인에게 커피를 팔고자 하는 스위스의 식품회사 네슬레나 프랑스의 화장품 업체 로레알은 외국에 맞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판매 전략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현지의 ‘문화 약호’를 파악해야 한다(자국인의 소비 경향이나 기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기업은 자국의 문화 약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이나 이상적인 거주 지역을 찾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그곳 문화의 코드를 발견하고 이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무의식 내지 문화의 구조가 곧 내용message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에 따르면, 기업의 의뢰를 받은 연구자가 컬처 코드를 발견하는 첫 번째 원칙은, 절대 피조사자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인이 자동차에 대해 ‘최고의 안전성, 뛰어난 연비, 우수한 핸들링과 선회력’을 되뇌더라도, 그런 답변에 바탕한 신차 개발이나 광고 전략은 도로가 되기 십상이다. 까닭은 답변자들이 거짓말을 한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질문에 답할 때 “감정이나 본능보다 지성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을 먼저 작용”시킨 탓이다. 하지만 대뇌피질에서 나온 대답은 무의식 내지 문화의 구조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은 이성적인 답변을 한다고 했지만, 자신이 왜 그런 답변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위의 주장을 입증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는, 지은이의 조언에 따라 만들어진 크라이슬러사의 피티 크루저PT Cruiser다. 이 지프는 다른 세단형 자동차보다 연비, 안정성, 기계장치의 우수성 등 어떤 면에서도 뛰어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은이가 강조하는 각인 발견 작업Discovery session을 통해 밝혀진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개성'이었고, 거기에 잘 부응했던 피티 크루저는 큰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이런 자동차는 독일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독일인의 자동차에 대한 컬처 코드는 ‘엔진’이기 때문인데, 피티 크루저의 엔진은 특별히 강력하거나 효율적이지 않았다.
『컬처 코드』는 미국인의 자동차·사랑·섹스·비만·건강·젊음·가정·스포츠·직업·품질·음식·술·쇼핑·사치품·문화·대통령·가치관 등, 약 20여 가지의 문화 약호를 낱낱이 분석한 끝에, 미국인을 지배하는 최종심급 문화 약호가 ‘꿈’이라고 결론짓는다. 식상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여러 가지 문화 코드를 찾아내고 그것을 다른 나라의 코드와 비교하는 지은이의 솜씨는 스스로 “이 책을 읽노라면 ‘탄복할’ 순간들이 여러 번 있을 것이다”라고 뽐냈던 그대로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거나 이민을 가려는 사람, 혹은 문화 콘텐츠의 산업적 활용이나 인문학의 실용화를 고민하고 있다면 한번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