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1일
윤광준의 『소리의 황홀』(효형출판, 2001)을 읽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재까닥 샀었다. 작가 생활 15여 년 만에 처음으로 집필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집에서 그곳으로 출퇴근을 할 때였다. 7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550만 원이나 되는 인테리어 비용을 쏟아 붓고서 줄창 음악만 들었으니, 아예 음악 감상실이었다. 집에는 매킨토시 MC6900·코플랜드 CTA401·유니즌 리서치 SIMPLY TOW 등속의 앰프와 와디아23 CD플레이어, 그리고 JBL 4425·플로악 Tablette 50 Signature·AR 2ax 따위의 허다한 스피커가 넘쳐 났으나, 고르고 고른 것은 막상 아담했다. 피셔250 TX 앰프와 토렌스 TCD 2000 CD플레이어를 연결하고, 천장에 보스 121 스피커를 달았다.
나는 어두컴컴한 카페에 앉아 있다가 멀리서 반짝이는 커피 추출기의 붉은 램프를 보고 오디오인 줄 알고 황급히 구경을 하러 달려갔던 얼빠진 사람인 데다가, 영화를 보다가 화면에 오디오가 비치면 갑자기 두 눈의 룩스lux가 밝아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어떻게 감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직업 음향 기술자인 상우가 어떤 음향기기를 사용하는지에만 신경이 곤두섰다. 직업 음향 기술자가 소니나 티악 같은 일제 음향기기를 쓰면, 국제영화제에 나가서 비웃음을 당하거나 ‘테크니컬 감점’을 당할 텐데…… 아, 그런데 무려 나그라NAGRA가 아닌가. 소품의 완성도까지 돌보는 우리들은 이제 ‘촌놈’이 아니다! 혼자 뿌듯했던 이 기분은 오직 오디오파일audiophile, 오디오애호가들만이 알아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소리의 황홀』 같은 책은, 대학생들을 온통 ‘빨갱이’로 물들였다는 80년대 이념 서적보다 더 무섭다. 그래서 나는 거의 한 달 동안이나 쓰다듬으며 보던 이 책을, 집필실에 놀러 온 선배에게 선뜻 건네주고 말았다. 마크 레빈슨·제프 롤랜드·패스·골드문트…… 다른 사람에게 저 보석 같은 이름을 가진 역병을 몰래 옮기고 저 혼자 살아남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내가 자주 들리는 구립도서관의 음악 관계 서가를 기웃거릴 때마다 나를 손짓해 불렀다.
오디오파일을 일컬어 ‘재생기기를 통해 득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음악 감상의 대부분을 재생 수단(LP·CD, 라디오 등)에 의지한 사람들에게, 현장의 감동을 내 집에서 재현해보려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다. 뿐 아니라, 어떤 오디오파일의 궁극은 연주회장의 원음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보다 특화된 자신만의 소리를 찾는 데로 향한다. 말하자면 오디오파일은, 원음 재현을 목표로 삼는 리얼리스트와 자신만의 이상적인 음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모더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지은이의 ‘주체사상’에 귀 기울여보자.
“오디오는 음악과 기기, 인간 세 축으로 이루어진다. 음악성이 빠진 오디오는 공허하다. 오디오적인 섬세함이 빠진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 균형을 유지하는 나는 진정한 주체다. 오디오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운드의 완성을 통해 음악의 도취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결국 인간의 문제다. 수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고뇌가 얽혀 있는 오디오는 그 이면에 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음악 애호가나 음악 관련 종사자들이 죄다 오디오파일의 선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도 재즈 평론가 김진묵의 예가 나오듯이, ‘리얼리스트냐, 모더니스트냐?’라는 논란 자체를 거부하면서 그저 소리만 나면 됐지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단지 오디오파일이 아니다 뿐, 음악을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하등 뒤지지 않는 이 신념범들 또한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계보다는 오로지 CD나 LP에만 혈안이 된 레코드 컬렉터. 이들은 ‘세상은 넓고 모을 디스크는 많다’는 확신으로 사방 벽은 물론이고 집안 전체를 CD나 LP로 발 디딜 틈 없이 만든다. 둘은, 음악을 들으려면 실제 연주의 감동을 느끼는 것이 최고라는 라이브파live派. 이들은 LP든 CD든 오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통조림에 든 음식’과 같이 취급하면서, 억만금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보다 실황 연주가 주는 감동이 훨씬 크다고 강조한다. 이 두 부류는 오디오파일만큼 돈이 들지 않는 것 같지만, ‘마니아’의 경지에 들면 오십보백보다.
오디오 취미가 천하의 역병인 것은 지은이의 말처럼 “들인 돈만큼 정확하게 소리를 들려준다”는 데에 큰 원인이 있겠지만, 오디오 취미만큼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를 강요하는 것이 또 없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어느 날 친구에게서 서재용 가운을 선물 받았다. 그가 그것을 걸치자 집안의 모든 풍경이 새 가운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책상과 책장, 커튼 등을 차례로 바꾸다가 결국은 멀쩡했던 온 방 전체를 바꾸고 말았다. 이 책에도 좋은 CD플레이어가 나왔다는 오디오 숍의 전화를 받고 와디아를 샀던 지은이가, 새 CD플레이어의 뛰어난 수준을 기존의 앰프와 스피커의 성능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프 롤랜드를 넘본 경험담을 적고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은 오디오파일이 매번 당하는 사소한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는 여러 바보가 있지만, 그 가운데 최고의 바보는 ‘남한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모두 대학교를 나왔는데 나는 왜 고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을까, 누구는 돈 많은 부모가 있는데 내게는 왜 그런 부모가 없을까, 나는 왜 장동건이나 고소영만큼 잘생기지 못했을까…… 남에게 있지만 나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는 삶은, 단연코 불행한 삶이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쓴 지은이의 직업이 부러웠다. 본업은 사진이지만 오디오 평론을 겸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에는 고가의 최신 오디오가 리뷰어용으로 들락날락한다. 하지만 미루어 짐작건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 생업인 사람의 독서가 즐겁지 않듯이, 의무적으로 시청기試聽錄를 써야만 하는 그 일 역시 고역일 게 분명하다.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운 것은 오디오 평론가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가 거금을 들여 오디오 편력을 할 수 있었던, 내게 없는 재력이다.
그러나 지은이도 부자는 아니었다. 오디오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는 그에 따르면 “‘절실하게 필요할 땐 가질 수 없고, 가질 수 있을 땐 그 필요가 절실해지지 않는’ 쌍곡선의 비애가 바로 삶”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보시킬 행복은 없다.” 때문에 그는, 행복을 향한 열정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지금 당장 충족시키고자 할 때 힘을 갖는다”며 먼저 저지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때문에 더 열심히 살게 된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