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3일
앙드레 쉐디드의 『욥의 아내』(열림원, 1997,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0)를 읽다
욥은 현대 철학자들에게 인기 높은 성경 속의 문제 인물이다. 특히 실존주의자들에게 욥은, 단지 세상에 내던져졌다는 이유만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을 상징한다. 하지만 『욥의 아내』를 쓴 앙드레 쉐디드에게는 욥보다 그의 아내가 더 문제적이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은 신과 악마 사이의 내기에 걸려 자식과 재산을 모두 잃는다. 신이 세상을 두루 돌아보고 온 악마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자랑하자, 악마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며,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러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신은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라며 악마의 내기에 응했다.
이 작품은 「욥기」를 골격으로 삼지만, 작가는 욥이 아닌 욥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욥기」 속에서 욥의 아내는 매우 불경하게 묘사된다. 일곱 아들과 세 명의 딸을 잃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욥이 기와 조각으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난 악창을 긁고 있을 때, 그의 아내는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악담을 한다. 하나님을 악담했던 때문인지, 「욥기」에 단 한 번 등장했던 아내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서도 욥은 하나님을 욕할 줄 몰랐다. 그 결과 「욥기」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끝나게 된다.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1만 4천과 약대 6천과 소 1천 겨리와 암나귀 1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 딸을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1백4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아마 작가는 저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아니, 그렇다면 하나님을 욕했던 아내는 어떻게 되었나? 새 아들과 딸을 낳은 여인은 악담을 했던 그 아내였을까, 아니면 새 아내일까?’ 확실히 저 대목에서 성경은 명료하지 못하다. 우선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라고 응대했던 욥부터 아내를 참았을 것 같지 않으니, 두 사람이 백년해로 했을 법하지 않다. 그러므로 욥은 본처와 이혼하고, 새 아내를 맞은 것일까? 「욥기」는 아내에 대한 언급을 극구 피하는 방법으로 이 사항을 처리했다.
신화나 경전에 소홀하게 취급된 인물이나 일화를 잡아채어, 거기에 새로운 조명과 전복적인 해석을 부여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애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대표적인 예가 남성중심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부추겨 왔던 ‘동화 새로 쓰기’다. 작가는 똑같은 방법을 원용하여, 불경하고 소홀히 취급된 욥의 아내를 복원한다. 성서 속에서 이름이 박탈되었던 욥의 아내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이름이 없지만,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작가는 욥의 아내가 남편에게 ‘신에 대한 불경’을 늘어놓았다는 것을 구태여 부인하지 않는다. 이 점이 중요하다. 「욥기」를 보면, 마치 아내가 남편과 함께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의 불행 때문에 하나님을 욕한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작중의 아내는 남편이 불행을 겪기 이전부터, 그러니까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었을 때부터, ‘믿음’에 대한 의심을 품었다. “신에게 한탄해볼까? 그녀는 여전히 신의 언어를 모른다. 열렬히 신을 경배하는 이들이 신에게 바치는 언어를”이라는 아내의 혼잣말은, ‘신의 언어’를 남성 가부장에 귀속시키는 동시에, 여성은 그 언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암시해 준다. 즉 욥의 아내는 신과 남편을 같은 통속으로 보면서, 남편의 종교를 남성 가부장을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본 것이다.
욥의 아내는 신에 대한 큰 믿음이 없다. 그녀가 믿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 속에서 그녀는, 신의 느닷없는 시험으로부터 남편을 지키고 친구들의 조롱으로부터 남편을 옹호하는 강건하고 사려 깊은 여성이 된다. 그녀에게 이름이 없는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욥의 아내였었고, 욥의 아내였고, 욥의 아내이고, 욥의 아내일 것이다. 그녀는 다른 이름이 없다. 그녀는 어떤 다른 이름도 원치 않는다.”
사족: 이 작품에 대한 내 최초의 독후감은 『독서일기』 4권에 실려 있는데, 거기서는 불신앙자가 아닌, 신앙자가 빠지는 ‘죄’를 경고하기 위한 경종으로 욥의 사례를 들고 있다. 이런 해석은 정통적이다.
『욥의 아내』 말미에는 「욥기」의 전문이 실려 있다. 독후감에 나오는 「욥기」는 모두 여기서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