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4일
안톤 빠블로비치 체호프의 『숲귀신』을 읽다
『숲귀신』(애플리즘, 2010)은 체호프가 29세 때 쓴 첫 번째 장막이다. 작품이 발표된 그 해에 공연이 되었으나,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이후 체호프는 자신의 생전에 출판과 공연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작품의 옮긴이는, 2010년 ‘안톤 체호프 탄생 150주년 기념공연’을 위해 이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했다.
이야기가 벌어지는 무대는 자작나무 숲으로 뒤덮인 모스크바 외곽의 한 별장이다. 등장인물의 한켠(①)은 퇴임교수 알렉산드로의 가족이고, 다른 한켠(②)은 지방의 지주(졸부)들이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알렉산드로 세례브라꼬프/ 퇴임 교수
옐레나/ 그의 아내. 27세
쏘냐/ 교수와 전처 사이의 딸. 20세
마리아/ 전처의 모친
이고르/ 전처의 오빠. 47세
②
졸뚜힌/ 엄청난 부자 청년. 20대 중반
율라/ 그의 여동생. 18세
이반/ 지주
효도르/ 지주의 아들. 35세
흐루쇼프/ 지주이자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 일명 ‘숲귀신’
쟈진/ 망한 지주
같은 작가의 「바냐 아저씨」를 읽은 독자라면, 『숲귀신』의 인물 구성 ①이 「바냐 아저씨」의 인물 구성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29세 때 쓴 『숲귀신』과 37세에 쓴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대응표를 만들면 아래와 같다.
알렉산드로 세례브라꼬프 → 세레브랴꼬프 알렉산드르 블라지미로비치/ 퇴임 교수
옐레나 → 옐레나/ 그의 아내. 27세
쏘냐 → 소피야/ 교수와 전처 사이의 딸
마리아 → 마리야/ 전처의 모친
이고르 → 이반/ 전처의 오빠. 47세
같은 것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나 이력만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애증과 갈등마저 같다. 두 작품에 나오는 퇴임교수(세례브라꼬프)는 아무런 학문적 업적이 없는 머저리인 데다가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현재 자신에게 혹한 미모의 젊은 여성과 재혼한 상태이면서도, 전처의 재산과 전처 가족들의 경제적 뒷바라지에 의지하고 있다. 전처의 장모와 처남이 재혼한 사위/매부를 뒷바라지하는 것은, 죽은 딸/여동생이 남긴 딸(쏘냐 혹은 소피야)을 돌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교수에 대한 턱없는 존숭尊崇과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머저리에다 이기적이기까지 한 퇴임교수는 전처가 딸의 몫으로 남겨준 유산을 팔아 핀란드로 이주하려고 한다.
한편 『숲귀신』의 등장인물 ②는 「바냐 아저씨」로 옮겨오면서 매우 단출해졌다.
흐루쇼프 → 아스뜨로프 미하일 리보비치/ 의사
그 외의 모든 인물들 → 쩰레긴 일랴 일리치/ 몰락한 지주
두 작품은 인물 구성이나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애증과 갈등만 아니라, 대사마저 같다.
세례브라꼬프 : 평생 학문에 몸바치고, 서재와 강의실만 알고 살았고 훌륭한 학우들과 지냈어. 그런데 갑자기 정신 차려보니 왜 이런 무덤에 와 있지? 매일같이 시시하고 저질인 사람들과 같이 시시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난 살고 싶어. 원하는 걸 이루고 싶어. 유명해져서 떠들썩하게 칭찬도 받고 싶어. 그런데 여긴 마치 귀양살이하는 것 같아. 끊임없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남의 성공을 볼라치면 질투가 나고, 죽음의 사자가 매일 밤 찾아오면 도망 다녀야 하고! 정말 못 견디겠어, 참을 수가 없어……. 왜 여기는 내가 늙는 것조차 용서해 주지 않는 거야!(『숲귀신』, 37~38쪽)
세례브라꼬프 : 평생 학문을 위해 일했어. 서재, 강의실, 훌륭한 동료들에게 익숙해 왔지. 그런데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묘지 같은 곳에 뚝 떨어져, 매일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만나고 쓸데없는 이야기나 듣고 있다니……. 나는 살고 싶어, 나는 성공을 사랑하고 명성과 떠들썩한 걸 사랑해. 하지만 여기는 유형지 같아. 매 순간 과거를 그리워하고, 남들의 성공만 지켜보고, 죽음을 두려워해……. 그럴 순 없어! 견딜 수 없다고! 게다가 여기서는 내가 늙었다는 걸 봐주려 하지 않거든!(『벚꽃 동산』, 열린책들, 2004, 144쪽)
이런 많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다르다. 『숲귀신』은 미혼 남녀의 짝짓기(쏘냐+흐루쇼프, 율라+효도르)가 중요한 모티브인 반면, 「바냐 아저씨」는 퇴임교수와 처남의 ‘영지(쏘냐의 유산)’ 갈등이 극을 이끌어 간다. 또 『숲귀신』을 특별하게 하는 옐레나의 가출과 일명 ‘숲귀신’으로 불리우는 흐루쇼프가 「바냐 아저씨」에는 없는 대신, 「바냐 아저씨」에는 체호프를 체호프이게 하는 버려진 사람들의 슬픔이 극대화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