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강영숙의 『리나』(랜덤하우스, 2006)를 읽다. - 이 작품은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열여섯 살짜리 탈북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두 명의 부모와 남동생을 포함한 스물두 명의 탈북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중국을 가로질러 제3국으로 향한다. 중국은 북한과 동맹국인 때문에, 국내에서의 탈북 망명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몽골·베트남·라오스·버마·인도·부탄·네팔 등의 나라로 밀입국 한 다음, 그곳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망명 신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는다.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그 과정은 중국 공안과 불법체류자를 신고해서 포상을 받으려는 중국인의 눈을 피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안정한 지위는 온갖 종류의 범죄와 인권 유린에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작중의 탈북자들은 중국 서쪽 국경을 넘은 직후(혹은 중국 서쪽에 위치한 중국의 자치구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화학약품공장 공장장의 습격을 받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리나를 포함한 네 명의 탈북자는 그에게 잡혀 강제 노동과 함께 몸을 빼앗기게 된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를 남한의 체제 우위를 선전하려는 용도로만 접근했지, 탈북자를 미래의 한국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때문에 남한 정부는 북한 정권의 고위층이나 엘리트층의 탈북이나 망명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떨면서, 몇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른다는 평범한 북한주민의 탈북 사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이중성을 보인다. 이름난 지식인들도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에 대해서는 정부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우창·문광훈의 『세 개의 동그라미 : 마음·이데아·지각』(한길사, 2008)은 그야말로 마지못해 언급하는 것처럼, 탈북자 문제를 화제로 삼는다(이 대담집의 출간연도는 2008년이나, 실제 대담은 『리나』가 문예지에 분재되고 있을 무렵인 2006년 6~10월 사이에 이루어졌다).
김우창 : […] 뉴욕타임스에 나온 거 보니까 3,000불이면 북한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그랬어요. 부패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자신이 없는 나라일 수밖에 없어요.
문광훈 : 탈북하는 데 돈이 얼마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 보도될 정도라면, 그것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 상당히 퍼져 있다는 거 아니에요?
김우창 : 아는 사람이 배를 타고 북한 쪽을 넘겨다 보고 오는 관광을 한 모양이에요. 여러 가지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광경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처럼 꽉 막힌 것은 아닌 거 같아요.
문광훈 : 얼마 전에 보았는데, 지금 탈북하는 아이들 가운데는 아홉 살 때 누나와 압록강 쪽으로 탈북하여 밖에서 잠자고 구걸로 연명하면서 중국 내륙을 횡단하여 베트남이나 태국까지 가는 경우도 있더군요. 무려 4, 5년 혹은 6, 7년이나 걸쳐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그것도 걸어서 말이지요. 보통 문제가 아니던데요.(650~651쪽)
짧은 대화이지만, 탈북자에 대한 김우창의 관심은, 탈북 사태에 대한 외교적?정책적 해결책이나 한국에서의 수용 방식을 고민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탈북자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그저 북한이 부패했다는 것, 완벽히 통제된 사회는 아니라는 것에 머문다.
다시 『리나』다. 이 소설의 흥미롭고도 특별난 점은, 스물두 명의 탈북자가 떠나온 나라는 ‘북한’으로 지칭되지 않으며, 리나 일행이 가고자 하는 대한민국 역시 ‘P국’으로 기호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리둥절함은 남한과 북한에 그치지 않고, 작중에 나오는 모든 국가와 도시에 적용된다.
난 이 국경의 동쪽 아래에 있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내가 태어난 나라와 같은 말을 쓰지만 때깔이 전혀 다르고 풍요로운 곳이라고 알려진 P국으로 가려고 했죠, 국경을 넘어서 이 나라에 들어 왔어요. 처음엔 이 나라의 서쪽으로, 다시 동남쪽으로 그리고 다시 출발한 동북쪽으로 갔어요. 도대체 난 얼마나 걸었을까요? 내가 몇 살처럼 보여요? 공단이 무너졌어요. 무너졌는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집을 짓고 벽을 올리고 줄 끊어진 전화기를 갖다 놓았어요.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려고 했죠. 이 국경 너머에 있다는 북쪽나라로 가보고 싶어요.(344~355쪽)
위의 보기는 분명, 리나가 북한을 탈출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남한으로 가고자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저렇게 명시적인데도 불구하고, 지은이가 구태여 국명을 지워서 얻고자 하는 효과란 또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이 소설의 크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탈북자이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탈북’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지은이가 이 작품에 나오는 국가명을 죄다 지워버렸을 뿐 아니라, 탈북자로 여겨지는 모든 등장인물로부터 ‘북한말’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깨끗이 지워 버린 이유도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모두 표준말을 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지은이는, 아래와 같은 비난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날 수 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바로 ‘언어’이다. 황석영 소설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북한에 대한 많은 공부도 하고 또한 직접 북한에 가서 많은 체험도 하셨겠지만, 가장 중요한 언어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고정 관념 같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장담하건대, 여기에 나오는 북한 언어들의 90퍼센트는 북한에서 과거에나, 현재에나 사용한 적도 사용하지도 않은 이상한 단어들과 사투리였다. (한겨레학교 아이들, 『달이 떴다』, 이매진, 2008, 191쪽)
강영숙의 『리나』가 발표된 다음 해, 황석영도 열일곱 살 먹은 여주인공을 내세운 『바리데기』(창비, 2007)라는 탈북자 이야기를 썼다. 아직 읽어 보지 않은 황석영의 저 소설은 북한말과 사투리를 그대로 썼던 모양인데, 북한에서 내려온 청소년 독자의 평에 따르면 괜한 수고였나 보다(한겨레학교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남한 적응을 위해 세워진 학교. 『달이 떴다』는 그곳 학생들의 문집).
고유명 지우기와 표준어 사용을 통해 지은이가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것은, 남한과 북한이 다르지 않다는 것. 예를 들어 북한이라고 가정되는 곳에서의 리나의 삶은 이랬다.
리나는 열여섯 살이었고 탄광 지역 노동자인 부모 밑에서 큰딸로 자랐다. 리나는 학교가 끝나면 유소년 직업훈련센터에 나가 밤늦게까지 단순한 기계 부품을 조립했다. 잠이 오고 지겨워지면 나사를 코밑에 들이대고 “죽어, 죽어”라고 말하고 발밑으로 한 개씩 집어던졌다.(9~10쪽)
그런데 저런 삶의 양태는, 즉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삶은, 남한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더 나은 삶을 위해 탈북을 한 리나 일행이나, 돈벌이를 위해 중국 국경과 대륙을 떠도는 남한 출신의 ‘프로듀서 김’과 ‘선교사 장’은 데칼코마니처럼 같다.
지은이의 고유명 지우기가 낳은 더 큰 효과는, 중국이라는 중심부의 자연스러운 등장이다. 고유명을 지우면 지울수록 중국은 더 커지는 반면(중국이라는 국가명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나라들은 왜소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고유명이 나오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경제자유구역’이 중국인 줄 알며, 그곳에서 노동력을 파는 사람들이 동남아시아 주변에서 온 일용 노동자라는 것을 안다. 지은이는 그들에게 “제3세계 눈물 공연단”(266쪽)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리나’라는 도회적이고 외래 풍의 이름은, 도무지 북한 소녀의 이름 같지 않다. 그렇게 간주할 때, 이 소설은 ‘탈북 소녀’의 이야기가 아닌, ‘탈남 소녀’의 이야기가(도) 될 수 있다. 통일이 되든, 안 되든, 남한과 북한도 ‘제3세계 눈물 공연단’의 일원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어두운 미래일까? 아니면, 이미 현재일까?
사족이다. 북한 출신 학생의 『바리데기』에 대한 두 번째 불만은 아래와 같은데, 이 불만은 『리나』에 대한 나의 불만을 대신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의 구조나 내용 전개를 볼 때 내용이 너무 뻔하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책의 첫 부분은 그나마 진실성이 보이고, 또 탈북자로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될 수 있었는데, 중간 부분부터는 솔직히 말해 큰 공감이 가지 않았다. 중국에서 마사지하고, 배 타고 영국에 가고, 또 영국에서 좋은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 손자와 결혼하는 등 소설의 내용이 너무 영화적인 것 같아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192쪽)
특히 모든 사건의 중심에 ‘(여성)육체의 교환’이 자리하는 전개는, 좀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