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샤엔의 『파시즘 세균』(지만지, 2008, 지만지 고전 선집 112)을 읽다. - 근대 중국의 시작은 1911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부터 시작한다. 신해혁명으로 중국은 268년 동안의 만주족 통치(청나라)와 기원전 221년 진시황부터 2133년간 지속되었던 황제 통치를 동시에 무너뜨리고 공화국(중화민국)을 선포했다. 신해혁명의 중요성은, 혁명의 도화선이 된 10월 10일의 우창봉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신해혁명 기념일’로, 또 타이완에서는 ‘쌍십절雙十節’로 동시에 기념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신해혁명과 공화국 수립은 그러나 청나라를 패망시켰을 뿐, 황제 제도의 잔재와 군벌들의 각축 시대를 열었으며, 외세의 영토 분할[租借]과 경제적 침탈 앞에 무기력했다. 그래서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주의 혁명이 다시 요구됐고, 그런 열망이 터져 나온 게 1919년의 베이징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난 5.4운동五四運動이다. 같은 해에 일어났던 러시아 혁명의 영향이라고도 하고 또 조선의 3.1운동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는 5.4운동은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한편 근대사·현대사의 새로운 기원을 연 대중 정치운동으로 평가된다.
5.4운동은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근대화를 서두르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중국의 현대 연극도 당연 5.4운동 전후로부터 시작한다. 젊은 문학인들과 지도적인 정치 이론가들에 의해 주도된 그 시기의 연극 운동은 ⅰ) 중국 전통 연극과 결별하고 ⅱ) 일본의 중국 유학생들이 일본의 ‘신파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신극[화극話劇]’을 좀 더 리얼리즘 원칙에 부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시기를 ‘신극 운동’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운동의 기원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일본의 신파극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서구화를 가장 앞서 받아들인 나라고, 그것의 가공할 만한 결과를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의 승부가 보여준다. 다시 말해 여타의 모든 분야가 그랬듯이 연극 분야에서의 서구화 역시 일본이 앞장섰는데, 청일전쟁 때 서구화를 숭상하던 일본의 청년들이 서양 현대극 형식을 들여와 군대의 사기를 북돋았던 연극이 바로 ‘지사극志士劇’이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며 직업화된 게 바로 신파극이다. 이는 1906년을 전후로 크게 유행했다.
1906년 12월, 중국의 일본 유학생들이 뒤마 피스의 소설을 각색한 <춘희>를 도쿄에서 공연한다. 일본 신파극의 연출 기법을 채택했던 이 연극을 시작으로, 중국 현대 연극은 중국 전통의 구극(경극)과 결별하게 되고 신극 시대를 연다. 이 기원이 당대의 중국 현대 연극의 형식을 규정하는데, 여기엔 부연되어야 할 사항이 있다. 중국 현대 연극이 서구 리얼리즘 연극과 조우하기 위해, 반드시 일본 신파극을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단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것이다. 중국의 서구화가 시기적으로 일본에 뒤지긴 했지만, 일본만이 서구 사조의 유입에 유일한 창구는 아니다. 샤옌과 궈모뤄를 비롯한 많은 극작가들이 일본 유학을 거친 건 맞지만, 1922년에는 미국에서 연극 공부를 마치고 상하이로 귀국한 텐한 같은 작가도 벌써 생겨났다.
일본을 경유한 서양 화극의 영향에 덧보태야 하는 중국 현대 연극의 또 다른 기원은, 중국이 처한 당대의 상황이다. 제국주의와 반근대적인 봉건 유습에 찌들어 있는 중국의 낙후한 상황은 지식인과 학생들로 하여금 구국을 자신의 책무로 여기게 했으며, 어떤 일을 하던 구국을 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기원은 앞서의 기원이 형식과 연관되었던 것과 달리, 내용과 연관되는 것으로 “‘신극’이 왜 초창기부터 사회 개혁의 뜻을 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이유”(마썬, 『현대 중국 연극』,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6, 27쪽)를 설명해 준다.
중국 현대 연극이 국가 만들기에 했던 기여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나남, 2003)에서 주장했던, 근대 국가 만들기에 문학(소설)이 했던 역할과 같다. 문학처럼 연극 또한 새로 형성되는 시민계급에게 지적·도덕적 발견을 실어 나르며, ‘언문일치’와 ‘공감’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하나로 묶어,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든다.
애국 계몽을 통하여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고 봉건적 유습을 철폐하려는 노력 가운데 나왔던 중국 현대 연극은 ‘표준어(베이징어)’ 사용을 통해 국가의 구성원을 하나로 묶고, 근대화를 효율적으로 이루는 데 필요한 초석을 놓고자 했다. 1930년부터 1949년까지 기라성같은 중국 현대 극작가들이 활동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는데, 여기에는 꼭 알아두어야 사항이 하나 더 있다. 같은 시기 한국·중국·일본 3국에서 나온 극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중국 극작가의 수와 작품의 월등한 질에 누구나 놀라게 된다. 그 저력은 원나라 때부터 자기 이름으로 희곡을 쓰고 발표했던 중국 희곡의 유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1900년 절강성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샤옌은 일본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중에 중국공산당에 참가하게 되고 진보 성향의 문학 단체에서 일하게 된다. 고리끼의 『어머니』를 번역하고 소련 영화 이론을 소개하는 등의 활동하던 그는 최초의 장막극 「새금화」(1935)와 자신의 대표작 「상해의 처마 밑」(1937)을 발표하면서, 차오위와 함께 당대의 가장 뛰어난 극작가로 손꼽혔다.
「파시즘 세균」(1942)은, 극작상으로는 「상해의 처마 밑」이 보여 주었던 ‘인물의 전형화’ 수법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내용적으로는 ‘정치 제1, 예술 제2’라는 공산당의 지도를 따르고 있다. 예술가들이 공산당의 지도를 선선히 받아들이게 된 바탕에는 급박했던 당대의 중국 현실 탓도 있지만, 무엇이든지 ‘중국 안에 중국의 기원’이 있다고 믿는 중국인들은 이것 또한 중국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문장으로 도를 구한다’는 오래된 문이재도文以載道의 목적론적인 문학 사상이 중국 전통 속에 있었고, 그런 한문 문화권의 문학관이 공산당의 지도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도록 했을 것이다.
전 5막으로 이루어진 「파시즘 세균」은 철저하게 막 개념을 장소의 이동과 일치시킨 작품이다.
1막 도쿄 교외. 위스푸의 셋집(1931년 9월)
2막 상하이 프랑스 조계. 위스푸의 집(1937년 8월)
3막 홍콩 자오안타오의 거실(1941년 12월)
4막 홍콩. 위스푸의 집(1941년 12월 하순)
5막 구이린 기슭. 자오안타오의 피난지(1942년 2월)
시간과 장소의 변화를 동반한 이 연극 작품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상황 앞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인물들의 변화를 그린다. 1막부터 4막까지 줄곧 순수 과학 연구에 매진하면서 정치를 기피했던 위스푸는 5막에 가서 자신의 태도를 바꾼다. 반면 그의 친구인 자오안타오와 대위법적인 자리바꿈을 하는 인물이다. 위스푸와 달리 늘 정치를 앞세웠던 그는 2막에서 퇴락한 군벌이자 은행가의 딸 첸친셴과 결혼을 하는데, 그는 그것을 기점으로 전시의 혼란을 틈타 돈놀이와 희귀재 장사에 몰두한다. 자오안타이와 함께 위스푸를 비난했던 친정이 역시 5막에 가서는 약삭빠른 장사꾼으로 변한다.
혼란기를 틈탄 기회주의적인 인물의 묘사가 흥미를 돋우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정치와 순수 과학 사이의 대립이다. 그 갈등은 29, 47, 64, 65~66쪽 등에 흩어져 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4막 125~127쪽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 샤옌은 첸위의 입을 빌려 “전염병과 전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면서, “장티푸스를 박멸하려면 파시즘을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첸위 : 아시다시피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무서운 세균이 발견되었어요.
위스푸 : (놀라며) 뭐라고?
첸위 : 금년 6월부터 현재까지 동유럽과 소련 및 독일 전선에서 이미 천만 명이 죽었는데, 사실상 이 병은 벌써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전파되어…
위스푸 : (영문을 모르는 듯) 무슨 병인데?
첸위 : 이 세균을 퍼뜨리는 건 쥐도 아니고 이나 벼룩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바로 우리 자신, 바로 인류라는 거죠. 그 세균은 인간의 뇌막 표피 속에 기생하는데, 장티푸스균보다 훨씬 작아서, 60배짜리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고 배양할 방법도 없다고 합니다. 그건 일종의… 추상적인 세균인 거죠.
위스푸 : 웃기는 소리야. 자네 허튼소리 하는군.
첸위 :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이 세균의 이름은 파시즘이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파쇼주의’라고 하죠. 이 세균으로 인해서 퍼지고 있는 전염병이 바로 파시즘 침략 전쟁이라는 겁니다….
위스푸 : (웃으며) 음. 꽤 똑똑하군. 이런 얘기들, 어디서 생각해 낸 건가?
첸위 :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어제저녁 방공호 안이 굉장히 추웠는데, 전 상의를 서우전에게 주고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깨달았죠. 방공호 안에서 북적대는 남자들, 여자들, 그리고 노인들과 어린아이들, 이 사람들은 모두 파시즘 세균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있는 병자들이라는 사실을요….
위스푸 : (일어나서 걸으며) 음. 아주 말 잘했네, 아주 똑똑해 하지만 이런 세균은 의사가 박멸할 수 있는 게 아닐세.
인용된 대목에서 첸위는 정치(전쟁)와 위스푸가 몰두하고 있는 순수과학(세균 연구)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위스푸의 ‘전문가 지상주의’를 공박하고 있다.
친구들이 자신의 신념을 모두 상실한 5막에 가서, 위스푸는 자신의 과학지상주의를 버리게 되고(161~162쪽), 이제는 입장이 바뀐 친구를 공박한다(166쪽). 그러면서 연구소가 아닌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기로 결심한다(168쪽).
이 작품은 1938~1939년 사이에 쓰여진 B.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오 갈릴레이」보다 앞서, 과학이 결코 정치·사회와 같은 주변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또 J.P.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에서 지식인이란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던바, 샤옌은 ‘전문가주의’에 빠진 지식인의 한계에 대해 사르트르보다 훨씬 앞서 고민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족. 본문 가운데, 샤옌이 활동했던 시절의 중국 연극을 가리켜 “당대의 중국 현대 연극”이라는 어색한 표현을 딱 한 차례 쓰고 있다. 까닭은 2011년의 “당대의 중국 현대 연극”은 따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시점의 “당대의 중국 현대 연극”은, 탈서양·전통 회귀다. 많은 점에서 오늘의 중국 현대 연극은, 샤옌이 활동했던 시절의 중국 현대 연극과 다르다. 그 단적인 예가 프랑스 망명으로 단절되고만 가오싱젠의 연극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국내에 번역된 가오싱젠의 여러 작품집과, 거기에 붙어있는 그의 연극론을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