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알베르 카뮈의 『칼리굴라 · 오해』(책세상, 1999, 알베르 카뮈 전집 12)를 읽다. - 이 책에 대한 최초의 독후감을 쓴 것은 2000년 1월 5일로, 그것은 『장정일의 독서일기』 5권 43~44쪽에 실려 있다. 이후로 나는 『칼리굴라』를 세 번 정도 더 읽었다.
칼리굴라는 기원 12년에 출생하여 37~41년까지 재위에 있었던 로마의 황제다. 본명은 가이우스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군화를 자주 신어 ‘칼리굴라(작은 군화)’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그게 이름이 됐다. 김화영 번역 『칼리굴라?오해』의 말미에 붙어 있는 로제 키요의 해설에 따르면 카뮈는 칼리굴라를 “추남”에다가 “종잡을 수 없는 행동”(272쪽)을 한 인물로 간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1965년에 초간 되어 아직껏 이탈리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읽히고 있다는 인드로 몬타넬리의 『로마제국사』(까치, 1998)는,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칼리굴라는 이미 용감하고 유능한 군인으로 알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켄투리아회에 자신의 권력을 반환함으로써 민주정치를 추진하였다.”(282~283쪽) 그러나 뇌의 질병(혹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난 다음부터는, 본래 운동선수 같은 체격을 상실하고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는 등의 여성적인 행동을 하였으며, 악명 높은 기행을 연출하게 된다.
카뮈의 『칼리굴라』는 그가 누이동생 드루실라와 금지된 사랑을 했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드루실라가 죽자 칼리굴라가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절대적인 ‘부조리’를 인식하게 됐다는 설정을 보탠다. 근친상간이 당대에 얼마만큼 횡행했는지, 아니면 희소했는지, 우리는 확실히 모른다. 다만 카뮈는 그의 산문집인 『결혼』의 어느 쪽에 “이탈리아가 근친상간의 땅이라는 사실, 아니 적어도 - 사실은 더 의미심장한 점이기도 하지만 - 겉으로 털어놓고 고백하는 근친상간의 땅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이제 뜻밖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에서 불멸로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또 앞서 말한 인드로 몬타넬리의 책도 그 점을 껄끄러워한 바, 칼리굴라와 드루실라의 관계에 대해 쓰면서 “시간이 갈수록 그는 이집트 문명에 관심을 집중하여 그곳의 풍속을 로마에 소개하려고 하였다. […] 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이집트를 모방하려고 하였으며, 자신의 여동생들을 애인으로 삼기도 하였다”(283쪽)라고 썼다. 근친상간은 이집트에서 온 풍습이란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어디에선가 ‘신분이 미천한 사람이 미치는 것은 아무런 해가 없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이 미치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책이나 영화를 통해 로마 황제의 ‘살아있는 신’과 같은 위력을 듣고 보았던 독자는 『칼리굴라』를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저 말을 ‘신분이 미천한 사람이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은 아무런 해가 없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이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말로 변주하고 싶어질 것이다. ‘지상의 신’이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절대적인 부조리를 인식하고, 저 역시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정녕 세상은 한껏 위태로워지지 않겠는가?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을 뜻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자들이 삶의 어느 순간, 어떤 계기에 의해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지, 또 그런 깨달음이 권력자의 통치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참 궁금한 사항이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종교에 귀의했고(아우구스투스 · 양무제), 대부분은 열락으로 죽음에 적대했으며(네로), 누구는 아주 현실적으로 불사약을 찾으러 다녔다(진시황). 『칼리굴라』 2막 5장을 보면, 칼리굴라가 무키우스의 처를 겁탈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부조리 인식과 죽음의 탈출구로서, 에로티시즘으로 가는 문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대목은 오히려 육욕이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 하잘 것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나아가 에로티시즘을 능멸하기 위해 덧붙여진 장면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신성모독적 언사와 행위가 자주 묘사되는데(1막 11장 43~44쪽, 3막 1장 전체와 2장 95~96쪽), 칼리굴라는 죽음의 문제를 종교가 아닌 철학적 고민과 실천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그를 희극적으로 만든 철학적 실천이야말로 칼리굴라를 문제적 인물로 만든다. 과연 플라톤의 철인왕은 가능한 것인가? 1막이 오르면, 드루실라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칼리굴라가 행방불명된 채 “오랫동안 궁전을 비”웠다(29쪽)는 정보가 제시된다. 그러다가 불시에 나타난 그는 측근인 헬리콘에게 “말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무거운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헬리콘: 그럼 그 진리라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폐하?
칼리굴라: (얼굴을 돌리며, 특징이 없는 목소리로) 인간들은 죽는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헬리콘: (잠시 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글쎄요, 폐하. 그건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한 진리군요. 주위 사람들을 보세요. 그 진리 때문에 밥을 못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칼리굴라: (갑자기 흥분된 말투로) 그렇다면 그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거짓이기 때문이야. 나는, 모두가 진리 속에서 살기를 바라는 거야! 그리고 마침 나는, 그들이 진리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단 말야. 헬리콘, 난 그들에게 모자라는 것이 뭔지 알아.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인식 능력이야. 그래서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는 선생이 필요한 거야.
헬리콘: 이런 말씀 드린다고 언짢게 여기진 마십시오. 폐하. 하지만 폐하께선 우선 좀 쉬셔야겠습니다.
칼리굴라: (의자에 앉으며, 부드럽게) 그건 못 해, 헬리콘. 이제부터 그건 절대 못 하게 되었어.
(30~31쪽)
부조리를 인식하게 된 칼리굴라는, 부조리를 인식하기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부조리의 화신’이 된 그는 ‘부조리의 계몽군주’, 즉 자신의 권력을 수단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부조리를 교육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부조리를 교육하겠다면서 측근의 귀족을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돌아오는 것은 아부거나 반발이다.
우리는 칼리굴라가 깨달았다는 ‘진리 내용’과 그의 교육방법이 설득력 없다는 것을 느낀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그리고 그게 어떻게 삶보다 중요한 진리가 될 수 있는가? 칼리굴라에 대한 가장 손쉬운 비판은 스물아홉이 된 그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이고, 작중에서 그는 그렇게 취급된다.
헬리콘: 케소니아, 폐하는 이상주의자예요.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다시 말해서 그분은 아직 뭘 모르시는 거죠.(33쪽) [하략]
케소니아: (일어서며) 그 사람은 어린애였어.(34쪽) [하략]
케소니아: […] 다만 당신의 병이 어서 낫기를 바랄 뿐이에요. 당신은 아직 어린애예요.(144쪽)
칼리굴라가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칼리굴라와 친구면서 시인인 스키피오가 원로들로부터 어린애 취급을 받는 27쪽으로 보강되는데, 두 사람은 젊고, 문학을 좋아한다. 그런데 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표지이기도 하다(26쪽).
‘모든 인간은 죽는다’란 칼리굴라의 깨달음이 너무 평범한 것 같지만, 부조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갑작스럽고 압도적인 ‘낯섦’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부조리로 화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뭇 장삼이사가 이미 알고 있으며 백과사전에 자세한 사항이라고 해서, 개개인에게 닥친 부조리가 쓰잘 데 없거나,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요는 칼리굴라가 우리는 모르는 어떤 특별난 부조리를 인식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조리를 인식한 이후의 칼리굴라, 또는 폭정(칼리굴라)과 부조리에 당면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카뮈의 문제의식이었다.
2막이 시작되면, 칼리굴라의 전횡이 3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정보가 주어지고, 죽음 앞에 몸부림치는 그의 악행이 여러모로 묘사된다. 3막은 칼리굴라가 자신의 논리에 지친 모습을 보여주며, “휴식”(112쪽)을 원한다. 4막은 폭정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서의 귀족들의 반란이 준비되고, 칼리굴라 역시 그가 마음껏 행사하는 ‘자유’의 바탕을 의심스러워하면서, 죽음을 수락한다.
칼리굴라(폭정) 또는 부조리에 당면한 인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칼리굴라를 에워싼 인물들의 반응을 살피면 된다. 실제 역사 속에서 칼리굴라의 네 번째 부인이었던 케소니아는 ‘사랑’을 부조리의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시인이면서 칼리굴라의 친구인 스키피오는 칼리굴라의 폭정을 방관하면서 그의 부조리 인식에 심정적으로 동조한다. 이 인물은 이 작품의 자매작이자 후속작인 『계엄령』 속에서 ‘나다’로 변주되는데, 이들은 니힐리스트라 할 수 있다.
한편 노예 출신 광대인 헬리콘(22, 125쪽)은 점증해가는 칼리굴라의 악행을 참는 귀족들을 가리켜 “고통도 맛본 적 없고 위험도 무릅써 본 적 없는” 탐욕스러운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다(125쪽). 헬리콘의 입장은 칼리굴라가 “내가 제일 감탄하고 있는 게 바로 너희들의 인내야”(70쪽)라고 귀족들을 비웃었던 것과 같은 입장으로, 그는 군주가 폭정을 가하는 상황에서 귀족이나 민중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는 ‘반항’이라는 것을 안다.
이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케레아다. 『로마제국사』에 따르면 친위대장이었던 ‘카시우스 카이레아’가 분명한 이 인물은, 카뮈의 작품 속에서, 칼리굴라의 폭정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의 ‘철학’을 위험하게 여긴 유일한 인물이다(105쪽). 아래는 그의 대사다.
그이는 우리들 마음속의 가장 깊은 부분을 위협하고 있는 거요. 아마도 제국에서 한 사람이 무한권력을 쥐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인간과 세계를 부정할 정도로 그 권력을 무제한으로 행사하는 경우는 처음이죠. 이것이 바로 그의 소름 끼치는 일면이고, 내가 물리치고 싶은 것도 바로 이거예요. 목숨을 잃는 다는 것쯤은 대수로운 게 아니오. […] 그러나 이 삶의 의미가 사라져버리고, 우리의 존재 이유가 소멸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참을 수 없는 거요. (54~55쪽)
내가 행동에 나서려는 것은 야심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인 공포 때문이오. 저 비인간적인 정열에 대한 공포 말이오. 그 비인간적 열정에 비겨보면 내 목숨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오. (56쪽)
이 작품은 카뮈의 또 다른 희곡인 『계엄령』과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한다. 『칼리굴라』의 한 대목에서 칼리굴라는 “요컨대, 내가 페스트의 역할을 대신하자는 거지”(131쪽)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내뱉는다. 그런데 소설 『페스트』를 고스란히 희곡으로 각색한 『계엄령』에서 카뮈는 억압받는 민중이 칼리굴라와 같은 폭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단 한 마디로 보여준다. 의인화된 독재자인 페스트의 여비서는, 페스트에 저항하는 의사 디에고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여비서: 작은 비밀을 하나 가르쳐 주죠……. 당신 말이 맞아요. 그 사람[페스트]의 수법은 그야말로 탁월해요. 그렇지만 그 완벽한 기계에도 한 가지 결함은 있어요.
디에고: 그게 무슨 말이오?
여비서: 한 가지 결함이 있다니까 그러네.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사람의 인간이 공포를 극복하고 반항하기만 해도 기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기계가 아주 멈춰 버린다는 말은 아녜요. 그럴 리 없죠. 하지만 아무튼 삐걱거리기 시작해요. 때로는 아주 마비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요.(『정의의 사람들 · 계엄령』, 책세상, 2000, 알베르 카뮈 전집 13, 240~241쪽)
단 한 사람이라도 공포를 극복하고 반항하기만 하면, 폭정이라는 기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 주제야말로, 카뮈가 ‘개인적인 반항’이었던 부조리 시대를 마치고, 연대를 발견한 저항 시대로 가는 머릿돌이다. 카뮈는 ‘부조리에서 저항으로!’라는 자기 변화 가능성을 『칼리굴라』의 마지막 장면에 암시해 놓았다. 『칼리굴라』는 거울로 깨트리며 칼리굴라가 외치는 두 마디 말로 끝난다. “역사로 돌아가는 거다, 칼리굴라, 역사로.”, “나는 아직 살아 있다!”(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