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한스 페터 리히터의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두레, 1979)를 읽다.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소년의 눈물』(돌베개, 2004)을 읽었다. 이 책은, 지은이가 초등학교에서 대학 시절까지 읽었던 책과 독서 체험을 중심으로 쓴 열두 편의 에세이를 싣고 있다. 한스 페터 리히터의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에 관한 소개는 이 책의 두 번째 꼭지에 나온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나이 서른을 넘긴 뒤 죽마고우 중 중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여교사 친구가 권유해 읽었다. ‘프리드리히’라는 이름의 유대인 친구를 둔 독일 소년이 나치스의 발흥과 더불어 어른들의 광적인 배외주의拜外主義에 차츰 마음을 빼앗긴다. 이 독일소년의 양친은 양식 있고 인정 많은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프리드리히 일가가 받는 수난에 대해서는 속수무책, 무력하기만 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방공호 안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탓에 결국 프리드리히가 죽고 만다는 얘기다. 모든 아동문학 작품들이 반드시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들에게 모종의 희망적인 위안거리를 마련해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엄격한 작품이다. 아동용 책이라고 해서 건성으로 읽을 수도 없었다. 책의 말미에 유대인들의 생활습관이나 유대교의 관례에 관해 적절하고도 자세한 주를 달아둘 만큼 적이 진지했다.
위 대목을 읽고, 저 책을 헌책방에서 사놓았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쌓아 놓은 외국소설 더미 밑에서, ‘2008. 4. 23.’이라는 구입 날짜가 적힌 이 책을 찾아냈다. 서경식이 요약한 줄거리에 약간의 세부 사항을 더 얹어보자. 1925년, 쾰른의 어느 임대 주택 2층에는 남편이 실업자인 독일인 부부가 살았고, 3층에는 남편이 우체국 공무원인 유대인 부부가 살았다. 그 해에 두 부부는 일주일 차이로 외아들을 낳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독일 부부의 외아들인 ‘나’인데, 그와 3층에 사는 유대인 부부의 외아들인 프리드리히는 어려서부터 서로의 집안을 오가며 놀았고, 장난감을 공유했다.
같은 건물의 위?아래에 살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나와 슈나이더는 함께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때는 1919년에 결성된 나치스가 반민주·반공산·반유대주의를 내걸고 한창 당을 재건하던 때였다. 나치와 반유대주의자로부터 손가락질받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프리드리히의 가족은 여전히 독일 시민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은 1933년, 히틀러가 제국 수상에 취임하면서부터 노골적인 유대인 배척과 탄압으로 돌변한다. 한국어판의 부록에는, 서경식이 일본어판을 보고 칭찬했던 “유대인들의 생활습관이나 유대교의 관례에 관해 적절하고도 자세한 주”와 더불어, 나치가 공포한 유대인에 관한 법률 고시 및 명령이 굉장히 길고 자세한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 소설과 연관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933년 4월 1일 유대인 상점 및 영업소 1일 보이코트 실행.
4월 7일 아리아 인종(인도-게르만 인종)이 아닌 공무원 해임. (참전자는 제외)
4월 28일 아리아 혈통이 아닌 어린이의 신규입학을 제한.
9월 15일 독일인 또는 같은 혈통의 국민에게만 ‘제국시민권’을 부여. 유대인은 독일인 혈통의 국민과 결혼할 수 없으며, 유대인은 45세 미만의 독일인을 가사 노동자로 고용할 수 없음(뉘른베르크 법).
8월 17일 유대인은 1939년 1월 1일부터 오로지 유대인의 성姓만을 쓸 수 있고, 독일식의 이름을 가진 자는 ‘이스라엘’ 또는 ‘사라’라고 이름에 덧붙여 쓰게 함.
11월 9일 9일부터 10일까지 ‘포그롬’ 시작. 이 사건을 ‘제국 백야 사건’이라고 부름.
11월 12일 유대인에게 상점 및 수공업 경영 금지. 유대인에게 극장, 유흥업소, 음악회, 전시회 입장을 금지.
1941년 9월 1일 유대인에게 ‘유대인의 별’ 착용 의무화. 경찰의 사전허가 없이 거주구역 이탈을 금지.
10월 14일 독일에서 유대인 강제추방 개시.
원래의 연표에서 추려본 위의 법률 고시 및 명령은, 이 소설의 줄거리와 같다. 지은이는 나치가 유대인에게 실행한 법률 고시 및 명령을 따라서 작품의 플롯을 짠 것이다.
프리드리히 가족이 직장·학교·주거에서 차츰 쫓겨나는 것과 달리, 나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집권과 함께 실직상태를 면하게 되고 살림도 피게 된다. 지은이는 나의 부모들이 프리드리히 가족의 곤경을 안타까워만 할 뿐 반유대주의에 아무런 항거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나치에 공조하거나 침묵했던 독일 시민의 유죄성을 캐묻고 있다. 1961년에 출간된 이 소설의 제사題詞는 다음과 같다.
그때에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오늘날 저 멀리엔 흑인들이,
그리고 여기에는 학생들이 있다.
내일은 백인들이, 기독교도들이,
또는 관료들이 있게 될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