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비르지니 데팡트의 『베즈 무아』(책세상, 2002, mephisto 03)를 읽다. - 2부 27장과 에필로그 격의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1부의 마지막 장인 13장이 될 때까지는 나딘과 마뉘의 이야기가 병렬로 전개된다. 홀수 장은 나딘, 짝수 장은 마뉘의 장이다.
나딘은 창녀다. 몸이 좀 뚱뚱한 편이라서 그런지 손님을 가릴 처지가 아닌 모양인데다가, 그녀 자신이 마조히스트 역할을 즐기기도 한다. 현재 그녀는 혼자서 집세를 낼 능력이 없어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세브린이라는 여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나딘은 프랑시스라는 남자에 빠져 있는데, 그는 마약과 관련된 범죄자다. 나딘의 취미는 포르노 비디오를 보는 것과, 음악을 듣는 것이다.
마뉘는 수간이 나오는 하드코어 포르노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그 일을 하지 않는다. 몸집이 작은 마뉘의 취미는 온종일 군것질을 하는 것과 바에서 남자들을 낚는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8장에서 한 여자 친구에 의해 “맨날 어려운 애들을 도와주고, 둘도 없이 인정이 많은” 여자로 묘사된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나딘과 마뉘의 나이는 확실히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나딘은 며칠 동안 소식이 없던 프랑시스로부터 살인을 저질렀다는 전화를 받고, 그가 있는 파리 근교의 호텔을 찾아 나선다(5장). 한편 마뉘는 동네의 섹스 파트너였던 게 분명한 ‘카멜’이 살해당하고 또 다른 남자 친구인 라두앙을 같은 동네의 범죄 조직이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2?4장). ‘카멜’은 알제리나 모로코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은어로, 마뉘가 사는 동네가 파리의 빈민 구역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덧붙여, 여기서 ‘섹스 파트너’가 뜻하는 것은, 섹스와 생활비(용돈)를 함께 제공하는 남자 친구다.
마뉘는 앞서 말했던 여자 친구와 함께 센 강변을 산책하던 중에 세 명의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때 함께 있었던 여자 친구는 성폭행범들의 차에 치여 죽고, 마뉘 혼자 도망친다(8장). 한편 나딘은 프랑시스에게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출장 섹스’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함께 집세를 내는 세브린이 자신의 위스키를 허락 없이 마셨다고 잔소리를 하자, 나딘은 그녀를 목 졸라 죽인다(9장). 실제로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살인범이었다는 소문이 세브린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 나딘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성폭행범들로부터 용케 도망쳐 온 마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섹스 파트너인 라킴의 집으로 가서, 그가 몰래 숨겨둔 금고와 권총을 훔쳐 온다. 그녀는 그 총을 가지고 라두앙의 얼굴에 황산을 부은 일당 가운데 한 명이자, 한때 자신의 섹스 파트너이기도 했던 무스타파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카멜을 살해했을 것으로 보이는 보석 담당자를 찾아가 그도 죽인다(10장).
나딘은 기차를 타고 프랑시스가 있는 파리 근교의 호텔에 가서 그를 만난다. 그런데 프랑시스는 나딘을 만난 직후 호텔 앞 약국에 마약 성분이 있는 약을 사러 갔다가, 그를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한 약국 주인에게 총을 맞고 죽는다. 나딘은 물을 사러 나왔다가, 프랑시스가 약국에서 뒷걸음질 쳐 나오다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본 뒤, 영문도 모른 채 역으로 도망친다(11장). 한편 마뉘는 엄마가 새로운 애인과 여행을 가는 바람에 비어있는 파리 근교의 집을 찾아온다(12장). 초면인 나딘과 마뉘는 역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마뉘 엄마의 자동차를 타고 브레타뉴로 바다를 보기 위해 떠난다(13장). 포르노 비디오 광이었던 나딘이 마뉘를 기억해 내고, 또 마뉘가 자신을 알아본 나딘과 곧 의기투합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상이 1부의 요약이다. 이미 몇 명이 죽는 것을 보았지만, 2부에서는 얼마나 많이 죽는지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이 작품은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델마와 루이스Thelma&Louise>(1991)처럼, 여성 버디buddy물인 동시에 여로 형식의 소설이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의 영화가 온전히 페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반면, 이 소설은 페미니즘보다는 펑크 문화에 더 강력하게 밀착되어 있다.
막 이 작품을 읽은 나는 펑크 문화를 설명할 언어나, 펑크 문화를 이 작품과 연관하여 설명할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길지만, 옮긴이가 쓴 후기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펑크 세대의 작품이다. 1970년대 중반 석유 파동 이후 유럽 경제는 하강세를 타기 시작했다. 경제적 난항은 사회적 변동을 가져왔다. 실업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따라 불만과 절망의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게 되었다. ‘미래는 없다No Future’는 기치를 앞세우고 일어난 이 운동은, 일종의 ‘굵고 짧게’라는 인생관을 제시한다. 미래가 없으므로 인생에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누리고 일찍이 사라지자는 경향이다. 특히 대중음악 영역에서는 1970년대 말부터 영국의 록 그룹인 크래시, 섹스 피스톨즈 등을 선두로 펑크 록 유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의 너바나에게까지 맥을 잇는 펑크록은 현대 서구 사회의 절망감이 창출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원제 Baise-moi는 영어로 옮기면 Rape-me가 된다. 이는 너바나의 세계적인 히트곡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비르지니 데팡트의 『베즈 무아』 역시 이러한 펑크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두 주인공 나딘과 마뉘, 썩은 하층 사회에서 전전하던 두 사람은 쾌락을 즉각적으로 만족시켜야 한다는 욕구(마약, 알코올, 섹스)를 함께 나눈다. 그들에게 내일이란 없으며, 단지 지금 이 순간을 불살라버리는 일만이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총만 가지고 닥치는 대로 쾌락을 즐긴다. 여기에는 감정도 없고 터부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1970년대와는 반대로 성적 환상은 순수성을 잃었다. 그 속에는 노여움이 섞여 있다.”
나딘은 이 소설 어디에서 “손에 어울리는 것, 그것은 총과 술병, 그리고 좆이다”고 말한다. 두 명의 여주인공은 실로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고 또 아낌없이 총알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이 소설의 도발성은 여성 갱스터gangster의 출현에 있는 게 아니다. 그것만큼 현실적이지 않은 게 없기 때문이다. 하므로 무엇보다 도발적인 것은, 여성의 ‘포르노적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나딘이 “브뉴엘과 고다르의 비디오테이프 사이에서” 포르노 테이프를 찾아내는, 그 한 장면으로 요약된다. 그 장면은 브뉴엘과 고다르 사이에 있고 싶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데, 브뉴엘은 성을 통해 가부장화 된 부르주아 세계의 위선을 드러냈고, 고다르는 낯설게 하기라는 형식을 통해 똑같은 일을 했다. 여성 갱스터보다 더 큰 비중으로 독자를 압박하는 두 여주인공의 포르노적 욕망이야말로 ‘가부장화 된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낯선 형식의 폭로’가 아닌가?
나딘과 마뉘가 파티마와 타레크 남매와 만나게 되는 17장 이후, 특히 두 여주인공이 건축가의 집을 털러 갔던 25장은 ‘참 만화 같은’ 이 작품에 돌연 광채를 부여한다.
사족. 이 소설은 작가 자신과 포르노 영화배우인 코랄리 트린 티의 공동 연출로 영화화됐다. 2000년 여름, 개봉된 지 이틀 만에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으로부터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행정법원에 불복하는 상영 투쟁 끝에, 영화는 2001년 여름 ‘18세 미만 관람 불가’라는 조건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영화의 몇 장면을 사진으로 봤는데, 영화는 전혀 보고 싶지 않다. 25장이 돌연 빛낸 광채는 아무래도 영화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