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헨릭 입센의 『로즈메르솔롬』(예니, 2002)과 『대건축사 솔네즈』(예니, 2002)를 읽다. - 두 작품을 처음 읽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대사의 어조와 지문, 눈여겨 두어야 할 일화나 소품이 지뢰밭처럼 조심스러운 여느 희곡 읽기와 같이, 이 책에도 연필로 많은 밑줄과 표식을 을 해 놓았다. 그런데 아무런 필기가 되어 있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며 읽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다. 이 두 작품을 읽고 어디엔가 독후감을 써 놓았다면, 이번 독후감은 두 번째로 쓰는 것이 된다.
『로즈메르솔롬』과 『대건축사 솔네즈』는 각기 1886년과 1892년에 쓰여진 입센의 말년작이다. 이 작품들은 입센의 전성기(중기)이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사회문제극 시기에 나온 네 작품과는 색깔이 상당히 다르다. 네 작품은 『사회의 지주』(1887)?『인형의 집』(1879)?『유령』(1881)?『민중의 적』(1882)을 가리키는데, 이 작품들은 사회 고발적 성격이 강한 리얼리즘 극이다. 그런데 입센은 말년으로 가면서 인간 내면의 갈등에 집중하고 기법적으로도 상징주의에 기울었다.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 작품이 『들오리』(1884)라고 하는데, 나는 이 작품을 읽지 못했다. (『로즈메르솔롬』과 『대건축사 솔네즈』를 출간한 예니의 ‘헨릭 입센 희곡전집’에 예고는 되어 있으나,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이 작품은 번역본을 구하지 못해, 읽지 못한 작품 가운데 가장 읽고 싶은 작품 중의 하나다)
‘로즈메리솔롬Rosmersholm’의 ‘솔롬sholm’은 저택을 뜻하는 장莊이나 가문家門인듯 하니, 『로즈메르솔롬』은 ‘로즈메리 장’ 내지 ‘로즈메리 가문’쯤 된다. 작품의 주인공은 요한 로즈메르로, 로즈메르솔롬의 주인인 그는 한때 보수주의에 동조하는 목사였으나, 지금은 정치 운동과 목사직에서 손을 떼고 은거하고 있는 상태다. 그가 공적 생활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아내의 자살 때문이다. 비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데 대한 절망감과, 남편 옆에 붙어 있는 젊은 처녀 레베카에 대한 질투로 장원 앞에 있는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다. 비타가 살아 있을 때, 로즈메르와 레베카는 자신들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포장했으나, 그것은 아내는 물론이고 두 사람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다. 비타가 죽고 나서도, 두 사람은 우정이라는 이름의 기만을 계속하는데, 이는 죽은 비타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다.
공적 생활에서 손을 뗀 로즈메르에게 손위 처남이자 보수주의자인 크롤이 찾아와, 사회진보당(사회주의자) 세력을 누르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부탁한다. 동시에 사회진보당 진영에서도 간절히 그의 지지를 요청한다. 로즈메르는 각기 찾아온 처남과 사회진보당을 지지하는 신문의 발행인인 모르텐스가드와 대화를 하는 중에, 자신이 목사직만이 아니라 신앙마저 버렸다는 것을 고백(선언)하게 된다.
보수주의자인 크롤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여기에 굳이 적을 필요가 있을까? 그것보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진보당의 대표격으로 로즈메르를 만나러 왔던 모르텐스가드의 반응이다. 애초에 그가 로즈메르를 찾아와 지지를 구하게 된 속내는 “독실한 기독교도를 얻게 되면 언제든지 저희의 도덕적 입지가 크게 강화되고 동조자를 포섭할 기회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로즈메르가 선뜻 사회진보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나서면서 “난 이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외다. 기독교니 원리니 하는 것과 인연을 끊은 지 오래되었어요. 그건 나와는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곧바로 태도가 바뀐다.
모르텐스가드 : […] 만약 목사님께서 교회와 손을 끊으신 걸 발설을 하시게 되면 애초부터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마십니다.
로즈메르 :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모르텐스가드 : 예, 절 믿으십시오. 여하튼 그렇게 되시면 이 지역에선 대의명분을 위해 그다지 많은 일을 하실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저희 쪽에서도 목사님과 같은 사상을 지니신 분들을 많이 모시고 있습니다. 저의가 요구하는 건 기독교 사상입니다. … 이를테면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존경하는 기독교 원리라 할까요. 저희 쪽에서 보면 그건 필요악이죠. 그러니 대중의 관심을 저버리는 발설은 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로즈메르 : 알겠습니다. 내 변절을 누설하기라도 하면 나와는 관계를 끊을 셈인가 보군요.
모르텐스가드 : (머리를 저으며) 그런 모험은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로즈메르와 레베카는 그들을 공적으로 삼은 보수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양편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비타가 떨어져 죽은 다리에서 자살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은 후미진 해안마을의 관습과 전통 탓이 아니다. 자신들의 사랑을 떳떳이 선언하지 못했던 기만과, 서둘러 삶을 기피하고 “행복은 외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는 오도된 세계관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이 오도된 세계관은 영웅의 표지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관습과 전통을 가리키는 ‘백모단(비합법적인 자경단)’, ‘이상한 법’, ‘유령’, ‘원죄’, ‘벽에 걸린 초상화’ 등의 모티브와 상징이 가득하다. 특히 노르웨이 서부 해변 도시의 오랜 명문가인 로즈메르 가의 장원은, 자유로운 인간의 생기를 빼앗아 가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오래된 저택’은 항상 ‘죽음의 집’을 뜻한다.
『대건축사 솔네즈』에서, 입센은 『로즈메르솔롬』의 주제를 되풀이한다. 한때는 높은 첨탑(교회)을 설계하는 건축사로 이름을 떨친 솔네즈는 장인 집의 화재가 원인이 되어 두 아이가 죽음을 당하자, 신앙을 잃고 더 이상 교회를 짓지 않는다. 대신 평온하고 안락한 ‘지상의 집(일반 주택)’만 지었다. 그러다가 만년에 이르러 창조력이 고갈되고 젊은 건축가들이 도전해 오자, 최후의 첨탑을 짓게 되고 ‘공중’에 자신의 거처를 만들고자 한다.
『로즈메르솔롬』이 전통과 관습을 자살이라는 극한 선택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라면, 마지막으로 건설한 첨탑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는 솔네즈 역시, 자신의 자유 의지로서 노쇠와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에 도전하고자 했던 일종의 프로테메우스적 영웅이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유럽 연극계와 당대 유럽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사회문제극 시기를 거쳐 입센이 도달했던 종착점에는, 오직 ‘자유’라고 쓰인 깃발만이 힘차게 나부끼고 있다.